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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컴퓨팅,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의 새 장(場)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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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이 뜨고 있다. 혹자는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시대가 지나고 머지않아 엣지 컴퓨팅이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Forbes)를 비롯, 수많은 저널리즘이 ‘2017 메가 트렌드’ 중 하나로 엣지 컴퓨팅을 꼽기도 한다. 엣지 컴퓨팅, 대체 어떤 기술일까?

 

#기존 벽 깨는 특별함… 명칭도 ‘엣지’ 있네!

영단어 ‘엣지(edge)’는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어떤 사물의 맨 끝 부분인 ‘첨단(혹은 가장자리)’, 다른 하나는 ‘칼이나 가위 등 날카로운 면을 사용하는 도구의 날 부분’이다. 국내에선 지난 2009년 방영된 TV 드라마 ‘스타일’(SBS)에서 한 등장인물이 시종일관 “엣지 있다”는 말을 쓴 덕(?)에 한동안 이 표현이 유행하기도 했다.

드라마 속 ‘엣지 있다’는 ‘어떤 사물이나 스타일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특별한 점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흡사 엣지의 형용사형인 ‘엣지(edgy)’를 번역한 표현인 듯하다. 뭔지 모르지만 짜릿한 느낌,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날카로운 면모를 갖춘 사물에 붙이는 수식어라고나 할까? 이렇게 볼 때 엣지는 앞서 구분한 사전적 정의 중 두 번째 뜻(날)과의 거리가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엣지 컴퓨팅에서의 엣지는 두 가지 사전적 의미와 모두 관련된다. 첫째, 지금까지의 클라우드 컴퓨팅과 달리 컴퓨팅 장치가 멀리 떨어진 센터에 위치하는 게 아니라 단말 장치와 가까운 기기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둘째, 정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오늘날 기존 데이터 처리 방식의 무딘 ‘날’을 단단히 벼려 새로운 차원으로의 도약을 시도하는 컴퓨팅 방식이다.

 

#‘포그 컴퓨팅’ ‘클라우드렛’ 등 다양하게 불려

엣지 컴퓨팅은 클라우드 컴퓨팅과 대조되는 콘셉트의 기술이다. 두 방식은 언뜻 (아주 단순한) 물리적 구조 차이로 구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중앙 데이터센터와 직접 소통(communicate)하는’ 방식이라면 엣지 컴퓨팅은 기기 가까이 위치한 일명 ‘엣지 데이터센터’와 주로 소통하며 2차 작업(과 그 결과물의 저장)을 중앙 클라우드에 맡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탄생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온라인 상에서 오가는 데이터 양이 급증했다. 동시에 대개 컴퓨터에 국한됐던 단말기가 스마트폰·웨어러블·스마트홈(센서) 등으로 확장되고 그 크기도 점차 작아졌다. 그 결과, 데이터 처리·저장 작업은 기기 외부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별도 장치(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로 ‘아웃소싱’되기에 이르렀다. 그게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의 기본 개념이다.

반면, 엣지 컴퓨팅은 과거 클라우드에 위임했던 작업의 대부분을 엣지(가장자리)에 맡기는 방식이다. 그 단계에서 한 차례 추려진 상위 작업은 다시 클라우드로 전달된다. 이때 엣지는 당연히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보다 물리적으로 단말기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된다. (한편에선 이 방식을 가리켜 엣지 컴퓨팅 대신 ‘포그(fog·안개) 컴퓨팅’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클라우드, 즉 구름이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상공에 위치하는 데 반해 안개는 인간이 사는 지표면 가까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플랫폼 자체를 일컫는 표현으로 엣지도, 포그도 아닌 ‘클라우드렛(cloudlet)’이란 표현을 쓰는 이도 점차 느는 추세다.)

 

#데이터 처리 속도, 클라우드보다 ‘한 수 위’

클라우드 컴퓨팅이 엣지 컴퓨팅으로 바뀌면 뭐가 달라질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데이터) 처리 시간이 큰 폭으로 줄어든단 사실이다. 처리 시간 단축은 모든 컴퓨팅 작업에서 바람직하지만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생체(얼굴·음성)인식 등 최근 각광 받고 있는 빅데이터 기술 관련 컴퓨팅에서 특히 유의미하다.

인간이 일상적 밝기 조건에서 안면을 인식하는 덴 최소 370ms[1], 최대 620ms가 걸린다. 음성 인식에도 짧게는 300ms, 길게는 450ms가 소요된다. 특정 음성이 인간의 것인지 여부를 인식하는 덴 4ms면 충분하다. 이처럼 예민한 시청각 반응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단 몇 백 ms 차이만으로도 가상(증강)현실 화면이 주는 몰입감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엣지 컴퓨팅의 차이는 또 있다. 이와 관련, 모바일 컴퓨터 과학 전문가인 마하다예프 사티야나라야난(Mahadev Satyanarayanan)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교수는 엣지 컴퓨팅이 지닌 이점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일단 엣지 컴퓨팅이 도입되면 클라우드에 걸리는 데이터 부하(負荷)가 대폭 줄어든다. 단말기에서 모든 데이터를 곧바로 중앙 클라우드와 주고받을 때보다 데이터 부하량이 감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스마트 보안 장치 등 비디오 센서에서 보내는 자료가 늘어나고 화질 수준이 높아지면서 기존 대역폭 상으론 문제가 많았던 부분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또 엣지 컴퓨팅 체계에선 데이터를 엣지에서 클라우드로 보낼 때 프라이버시(privacy) 정책을 강화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네트워크∙클라우드 오류, DoS(Denial of Service, 서비스 거부) 공격 등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을 때에도 엣지 컴퓨팅에선 가까운 엣지(클라우드렛) 플랫폼에서 ‘임시 처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보안 수준이 한층 더 강화되는 것이다.

 

#빅데이터 시대, 차이 만드는 건 ‘머신 러닝’

사실 엣지 컴퓨팅은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을 보다 정교하게 만든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엣지 컴퓨팅이 ‘중앙 집중형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엣지 컴퓨팅과 클라우드 컴퓨팅은 (이제껏 인간이 개발해온 대부분의 기술이 그렇듯) ‘경쟁’ 관계라기보다 ‘공생’ 관계에 더 가깝다.

양자 간 관계에 ‘공생’이란 명칭이 붙는 건 두 단계의 클라우드, 다시 말해 상위의 ‘집중형’ 클라우드와 하위의 ‘분산형’ 클라우드 사이에 분업 내지 협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큰 구름(cloud)’과 ‘작은 구름(edge)’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파트너십을 형성하게 되는 걸까?

클라우드 컴퓨팅 아키텍트(architect)로 잘 알려진 재너카이럼(Janakiram MSV)은 이 관계를 위 도표에서처럼 ‘3중 구조’로 설명한다. “엣지 컴퓨팅 환경에선 세 개의 층, 즉 △데이터 소스(data source) △인텔리전스 레이어(intelligence layer) △실천 가능한 인사이트(actionable insight)가 서로 맞물리며 상호작용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데이터 소스는 말 그대로 ‘데이터가 나오는 부분’을 가리킨다. 그런데 과거 단순 계산에서 출발했던 컴퓨팅과 달리 오늘날 컴퓨팅은 점점 더 많은, 그리고 복잡한 데이터 처리와 관련된다. TV나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산업장비·고객·물품 등 각종 관리 프로그램과 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모든 기기와 프로그램, 앱이 그 자체로 데이터 생성 원천이자 데이터 처리 수요가 된다.

이처럼 데이터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수많은 데이터 간 관계도 점차 복잡해진다. 판단과 행동의 지침을 올바르게 내리려면 그 모든 변수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시시각각 새롭게 생성되는 데이터 속에서 일정한 관계성을 찾아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인간 두뇌론 결코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또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요즘은 그 일을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 해내고 있다. 실제로 머신 러닝은 점차 늘어나는 데이터를 (이전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조합으로 재구성, 창의적 통찰력(insight)을 제공하는 촉매로서 기능하고 있다.

엣지 컴퓨팅에서 머신 러닝은 엣지와 클라우드 간 파트너십을 규정한다. 클라우드는 대용량 데이터 세트와 복잡한 알고리즘에 기초해 머신 러닝 모델을 창출, 엣지 플랫폼에 넘겨준다. 그러면 엣지 플랫폼은 해당 모델을 이용, 실시간으로 데이터 세트를 처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엣지 층(layer)과 클라우드 층을 연결해주는 게 바로 인텔리전스 레이어, 곧 엣지 컴퓨팅 체계의 두 번째 차원이다.

엣지 컴퓨팅 시스템 사용자(이를테면 기업의 정책 결정자)는 인텔리전스 레이어가 제공한 분석에 기초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게 바로 엣지 컴퓨팅의 세 번째 요소, 곧 실천 가능한 인사이트다. 요컨대 엣지 컴퓨팅은 머신 러닝의 지원에 따라 과거 인간 전유물로 간주됐던 창의적 인사이트를 기계로 창출, 인간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 같은 작동 기제는 곧 엣지 컴퓨팅이 ‘가장 바람직한 행동을 위한 판단’을 도출해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보안·정보량 등 과거 방식 한계 극복에 기대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엣지 컴퓨팅은 ‘클라우드-엣지-디바이스’라는 (물리적 차원의) 3중 구조를 띤다. 동시에 ‘데이터 소스-인텔리전스 레이어-실천 가능한 인사이트’라는 (형이상학적) 3중 구조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2중적 3중 구조’인 셈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대기업, 혹은 공공 기관에서나 들여놓을 수 있는 기기였다. 하지만 이 거대한 기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퍼스널 컴퓨터(PC) 형태로 진화했다. 그 과정에서의 1등 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IC칩을 활용한) 스토리지 소형화 기술이었다.

오늘날 모바일 기기의 개발과 보급, 그와 함께 진행된 클라우드 컴퓨팅의 확산으로 정보통신 기술 세상은 완전히 변모했다. 하지만 새로운 컴퓨팅 환경은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취약한 보안이나 한계에 이른 데이터 저장 용량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은 자연히 ‘신개념 컴퓨팅’의 수요를 높였고, 그 결과 스토리지 간 분업을 가능케 하는 머신 러닝 기술을 토대로 ‘엣지 컴퓨팅’이란 명칭의 신기술이 등장했다. 엣지 컴퓨팅에 거는 기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1] 밀리세컨드, 1초의 1000분의 1


“관두겠다 소리치고 돌아온 날, 밤새 아이들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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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다삼성전자 봉사왕을 만나다 스페셜리포트 도비라

연재를 시작하며

“네가 얻는 걸로 네 생계가 꾸려진다. 그리고 네가 누군가에게 주는 걸로 네 삶이 이뤄진다.” 노벨문학상(1953) 수상자이기도 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전 영국 총리가 남긴 명언이다. 그의 말처럼 가치 있는 삶은 타인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헌신’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사회가 건강해야 기업도 발전할 수 있다’는 공존의 철학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매해 국내 임직원의 90% 이상이 연평균 10시간 남짓을 투자해 크고 작은 사회공헌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지난 1994년 출범한 삼성전자 사회공헌사무국(옛 사회봉사단사무국)은 180여 개 해외 법인, 8개 사회공헌센터와 손잡고 24년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나눔과 공생의 기업가치를 실천해오고 있다.

사실 사회공헌 활동의 면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숫자도, 그래픽도 아니다. 그걸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삼성전자 뉴스룸이 ‘봉사를 실천하는 임직원’을 만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 봉사왕을 만나다’는 이 같은 취지 아래 출발한 3부작 연재. 총 인터뷰이만 일곱 명에 이르는 이 대형 기획의 첫 회차는 ‘교육기부’ 편이다.

 김정수 무선사업부 개발2실 수원지역아동센터서 6년째 관심 학생 지도 봉사 수례자 알고보니 저 자신이더라고요

남자 사진

▲김정수씨는 1주일에 한 번 수원 구운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야말로 내겐 진정한 ‘힐링 타임’”이라고 말했다

“(교육기부를 시작한 지) 올해로 벌써 6년째네요. 처음 봉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이 수업에 좀처럼 집중하지 않아 고민이 많았죠.”

김정수(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2실)씨는 지난 2012년 10월부터 주 1회 구운지역아동센터(경기 수원시 권선구 구운로)에서 공부방 학습지도 봉사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가 돌봐야 할 학생은 학교나 사회에서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아이들. 초기엔 당장 ‘접근 방식’부터 막막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에서 돌아와도 누구 하나 챙기는 이 없는 처지에 놓여있어요. 자연히 방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죠. 고심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적어도 내가 데리고 있는 동안만큼은 이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도와주자’는 거였습니다.”

사실 정수씨의 ‘나눔’은 그 역사가 오래다. 대학 시절부터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2005년 삼성전자 입사 이후엔 시각장애인용 오디오북 제작 동호회 ‘메아리’ 회원으로도 활약했다. 그중에서도 (학습 지도를 통한) 교육기부는 그 모든 봉사를 통틀어 그가 가장 꾸준히 해오고 있는 활동이다.

비록 첫 관계는 ‘교사 대(對) 학생’이었지만 그가 생각한 자신의 역할은 단순히 아이들 공부를 봐주는 것, 그 이상이었다. “뭔가를 가르치고 성적을 올리기에 앞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함께하는 시간 동안만큼은 아이들이 ‘내가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있구나!' 느끼도록 해주려 애썼죠.”

학생을 지도하는 남자

▲김정수씨는 수업 틈틈이 아이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는 “공부에도, 자신의 미래에도 무관심하던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서서히 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줄곧 정수씨는 ‘개인 시간을 좀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사내 사회공헌 담당 부서에서 학습지도 봉사 참여를 권하는 이메일을 받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막연한 기대로 시작한 봉사 활동은 그에게 뜻밖의 활력소를 제공했다. 그는 말하자면 ‘친구 같은 교사’다. 아이들을 훈계하거나 계도하는 대신 눈높이를 맞추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때론 수업 진행을 포기한 채 아이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올인’ 하기도 했다.

변화는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찾아왔다. 묻는 말에 답하기조차 귀찮아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한 것.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며 미래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의 꿈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함께한 시간이 2년을 넘어서자, 정수씨가 맡았던 10여 명은 하나같이 ‘꿈’을 품은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훌쩍 커버린 키만큼이나 생각도 성숙해졌다. 그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다”며 “특히 ‘나중에 삼성전자에 입사해 선생님 후배가 되겠다’던 한 친구의 말은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요즘 그는 삼성전자 수원사회공헌센터 주관으로 진행 중인 볼런테인먼트[1]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이제까지보다 적극적인 봉사 활동 참여를 계획하고 있다. “흔히 ‘봉사’라고 하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남에게 베푸는 거라고들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 반대예요. 매번 느끼지만 봉사의 열매는 결국 제게 돌아오더라고요. 봉사에선 시혜자가 곧 수혜자인 셈이죠.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늘 봉사를 권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1] 자원봉사(volunteering)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합성어. ‘신나고 즐겁게 펼치는 자원봉사’를 일컫는다  

유동일 반도체총괄 메모리제조센터 소년원 출소자 대상 고졸검정고시 10년 봉사 비결 조바심내는 습관

남자 사진

▲유동일씨의 교육기부 활동은 올해로 10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는 “사회공헌은 거창한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죠? 지금은 보여드릴 만한 게 없는데….” 유동일(삼성전자 반도체총괄 메모리제조센터)씨는 안양여자청소년자립생활관(경기 안양시 호성로)에서 교사로 활동 중이다. 그가 속해있는 동호회 ‘그루터기’는 소년원 출소 청소년의 고졸학력검정고시 준비를 돕는 교육기부 동호회. 1997년 설립돼 올해로 설립 21년째를 맞는다.

사실 취재진이 동일씨에게 연락을 취한 5월 초는 고졸학력검정고시 직후여서 그루터기 활동이 ‘일시 중단’ 되는 기간이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일종의 ‘방학’이기 때문. 그는 “다행히 지난달까지 가르친 학생들이 전원 이번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물론 처음부터 좋은 성과를 거둔 건 아니었다. “공부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품는 친구가 많았어요. 근데 정말 중요한 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에요. 본인이 (공부하겠단) 마음을 먹었을 때 누군가의 도움으로 노력하고, 그게 (시험 합격이란) 성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해보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죠.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동일씨가 꼽는 그루터기 활동의 최대 의의는 “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차례 사회에서 고립됐던 아이들, ‘다신 뭔가 이뤄낼 수 없고 사회 속에 동화되지도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너희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 그리고 저와 함께 활동 중인 그루터기 회원 20여 명에게 봉사란 단순히 시간과 재화를 나눠주는 것보다 훨씬 값진 일입니다.”

 

 

대화중인 남자 둘

▲유동일(사진 왼쪽)씨가 ‘그루터기’에서 함께 학습지도 봉사를 펼치고 있는 회사 선배 이천안(반도체총괄 메모리사업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이 지난달까지 가르쳤던 학생들은 전원 고졸학력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지난 2008년 미혼모 보호 시설 홀트재단에서 시작된 동일씨의 봉사 활동은 올해로 벌써 10년째에 접어들었다. 봉사에서 그가 최고로 꼽는 가치도 ‘지속성’이다. “1회성 봉사와 지속적 봉사는 뭐니 뭐니 해도 파급력 측면에서 그 차이가 상당해요. 봉사 활동의 가치는 나비효과처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배가되거든요.”

그루터기 내 ‘베테랑 교사’인 동일씨에게도 첫 수업은 언제나 어렵다. “매 학기 첫 수업, 특히 수학 수업은 늘 좌절과 함께 시작하곤 해요(웃음). 학생들은 교사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어 답답하고 교사들은 ‘이번 학기는 또 어떻게 나려나’ 싶어 착잡하죠. 늘 비슷한 유형이 반복돼요.”

‘투입’과 ‘산출’이 확실한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일까, 봉사 현장의 시간은 영 더디게 흘러간다. 더욱이 빠르고 정확한 업무를 중시하는 삼성전자 기업 문화에 익숙해있다 아이들과 마주하면 이유 없이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떨 땐 자신도 모르는 새 ‘이 정도 시간을 투자했으면 이 정도는 이뤄야 하는 것 아냐?’ 하며 효율성을 따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려 애쓴다. “봉사 활동의 성과를 외부에서 찾으려 하면 십중팔구 실망하고 좌절해요. 저 역시 그랬고요. 하지만 봉사의 진짜 의미는 출발점, 그러니까 수업 그 자체에 있어요. 그걸 깨닫기까지 2년 넘게 걸렸네요.” 그는 “한두 시간 수업으로 아이들이 확 달라지진 않지만 한 학기 내내 꾸준히 수업을 진행하면 아이들의 자신감이 높아지고 학습 효과도 몰라보게 커진다”며 “그런 변화가 (성과에 대한) 내 조급증과 강박 관념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봉사를 이어갈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됐다”고 귀띔했다.

스기하라히로유키 반도체총괄 시스템사업부 3년째 지역 어린이에게 일본어회화 지도중 힘들 때마다 날 다잡아준 건 아이들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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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새강지역아동센터 앞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한 스기하라씨. “봉사, 늘 쉽고 즐겁기만 하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가끔 아이들이 건네는 ‘고맙다’ 한 마디면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풀립니다.”

“솔직히 힘들 때 많죠. 그만두고 싶은 적도 여러 차례였고요.” 스기하라 히로유키(Sugihara Hiroyuki,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시스템LSI사업부)씨의 ‘고백 아닌 고백’은 좀 놀라웠다. 취재진이 만난 임직원 중에서도 봉사 시간이 긴 편에 속했고, 그 성과를 인정 받아 상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연재 주제인 ‘봉사왕’에 마침맞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인 그는 올해로 3년째 새강지역아동센터(경기 화성시 동탄중앙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과목은 ‘일본어 기초 회화’. 수업은 매주 한 시간씩 진행된다. 일본에서도 봉사 활동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사실 ‘타의(他意)’에 가까웠다.

스기하라씨는 한∙일 임직원 간 교류 증진을 목표로 개설된 사내 모임 ‘요키토모 한일교류회’ 초기 멤버 중 한 명이다. 처음엔 그저 ‘소규모 동호회 하나 만들자’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사팀 담당자에게서 “단순히 어학 공부나 친목 도모만을 위한 동호회 결성은 안 되니 취미든 봉사든 ‘테마’를 정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봉사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동호회를 만들기 위해 봉사를 시작한 셈이다.

난생처음 해보는 봉사였지만 걱정은 별로 안 했다. 그리 힘들 것 같지 않았고, 뭣보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모국어(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쯤이야!’ 싶었다. 하지만 웬걸, 그는 첫 수업에서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가장 힘든 건 도통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일이었다. 몇몇 학생은 아예 대놓고 수업을 방해했다. “수업 도중 도저히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해 센터장에게 ‘오늘은 못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당시엔 너무 화가 나 봉사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더라고요.”

남녀 선생님과 아이들 7명

▲사내 모임 ‘요키토모 한일교류회’ 소속 동료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 중인 스기하라씨. 그는 매주 화요일 새강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아이들에게 일본어 회화를 가르친다

사실 ‘주 1회 봉사 참여’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봉사 시간은 60분에 불과하다지만 수업을 준비하고 교실을 오가는 데만 해도 만만찮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기 때문. 봉사를 다녀와 녹초가 된 아버지를 본 스기하라씨의 중 2 딸은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왜 그만두지 않느냐”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을 끝내고 돌아서는 길, 그의 눈엔 아이들이 자꾸 밟혔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대부분 맞벌이 부모를 둬서, 혹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제대로 된 방과 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집 자녀였다. 장난이 심하긴 해도 삐뚤빼뚤하게 글씨를 써 내려갈 땐 그렇게 진지할 수 없었다. 결국 스기하라씨의 발걸음은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그의 진심은 개구쟁이 아이들도 조금씩 바꿔놓았다. 아이들은 어설프긴 해도 조금씩 기본 회화를 익히기 시작했다. 툭하면 스기하라씨 뒤통수로 날아들던, 짓궂은 농담도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 수업 도중 말썽을 가장 많이 일으켰던 한 남학생은 학기 말 ‘롤링 페이퍼’에 “사실은 선생님을 좋아한다”며 수줍은(?) 사과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제일 뿌듯한 건 아이들 머릿속에 알게 모르게 남아있던, 일본인에 대한 오해나 거부감이 사라졌단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스기하라씨에겐 새로운 바람이 하나 생겼다. “제 봉사가 최근 급격히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대단한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저 제가 가르친 아이들이 훗날 자라 ‘내가 어릴 때 만났던 스기하라 선생님을 떠올리면 일본인은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추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벽지 시공, 정기 기부, 재능 나눔… ‘나다운’ 봉사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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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뉴스룸 삼성전자뉴스룸이직접제작한기사와사진은누구나자유롭게사용하실수있습니다.봉사왕을 만나다 

연재를 시작하며

“네가 얻는 걸로 네 생계가 꾸려진다. 그리고 네가 누군가에게 주는 걸로 네 삶이 이뤄진다.” 노벨문학상(1953) 수상자이기도 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전 영국 총리가 남긴 명언이다. 그의 말처럼 가치 있는 삶은 타인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헌신’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사회가 건강해야 기업도 발전할 수 있다’는 공존의 철학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매해 국내 임직원의 90% 이상이 연평균 10시간 남짓을 투자해 크고 작은 사회공헌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지난 1994년 출범한 삼성전자 사회공헌사무국(옛 사회봉사단사무국)은 180여 개 해외 법인, 8개 사회공헌센터와 손잡고 24년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나눔과 공생의 기업가치를 실천해오고 있다.

사실 사회공헌 활동의 면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숫자도, 그래픽도 아니다. 그걸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삼성전자 뉴스룸이 ‘봉사를 실천하는 임직원’을 만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 봉사왕을 만나다’는 이 같은 취지 아래 출발한 3부작 연재. 총 인터뷰이만 일곱 명에 이르는 이 대형 기획의 두 번째 주제는 ‘지역기부’다. 공교롭게도 오늘 소개할 세 명의 임직원은 모두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삼성스마트시티 근무자다.

 

김현필 무선사업부 개발실 취약 계층거주지서 전등 갈고 도배하고 몸 쓰는 일 전문

“사회공헌 활동을 왜 하느냐고요? 살면서 굳이 봉사하지 않을 이유도 없으니까요.”(웃음)

삼성스마트시티(경북 구미시 3공단3로)엔 ‘스위트홈’이란 명칭의 동호회가 있다. 주된 활동은 취약 계층 주거 환경 개선 봉사. 회원들은 지역 내 형편이 어려운 이웃의 보금자리를 주기적으로 방문, 자연 재해나 노후화로 망가진 주거 환경을 (동호회명처럼) ‘스위트(sweet)’하게 바꿔놓는다.

벽지를 바르고 있는 남자 둘▲김현필(사진 왼쪽)씨는 “회사에서 머리 쓰는 일을 주로 해 그런지 봉사 활동을 할 때엔 몸 쓰는 일이 더 좋더라”며 “열심히 몰두할 수 있는데다 끝내고 나면 머리가 개운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구미 시내 모처에서 스위트홈 봉사 활동이 있었다. 현장에선 고장 난 전등을 새 제품으로 교체하고, 누렇게 색이 바랜 벽지를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봉사에 합류한 스위트홈 회원은 모두 여섯 명. 그중엔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김현필(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1실)씨도 포함돼 있었다.

올해로 스위트홈 활동 4년차인 현필씨는 익숙한 듯 붓으로 벽지를 쓱쓱 바르고 있었다. “(곁에 있던 한 남자를 가리키며) 여기 이 사장님께 기술을 배워가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도배∙장판 일이 보기보다 간단찮아 아마추어가 곧바로 소화하긴 쉽지 않거든요.” 그가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이는 벽지·장판 시공 전문가. 삼성스마트시티는 스위트홈 회원들에게 봉사 관련 기술을 전수하는 조건으로 이들 몇몇과 계약을 맺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낡은 벽지나 장판을 교체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전문적 영역이다. 아무리 ‘베테랑 봉사자’라 해도 아마추어인 현필씨가 감당하긴 쉽지 않다. 특히 취약 계층 주거지는 일반 주택에 비해 유독 돌발 변수가 많다. 작업의 난이도도 그만큼 높아진다. 현필씨는 “처음엔 인테리어 일을 배워 독립적으로 봉사해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며 씩 웃었다.

스위트홈은 일명 ‘자율봉사’ 방식으로 운영된다. 봉사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 의사를 밝힌 후 동참할 수 있다. (봉사 활동에 드는 비용은 삼성스마트시티 내 사회공헌센터에서 지원해준다.) 작업은 물론 쉽지 않다. 일단 물리적 힘이 많이 들고 공구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시간 투자도 필요하다. 한 번 봉사에 나설 때마다 최소 다섯 시간은 소요되기 때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월 1회 봉사를 지속하는 데에도 단순한 결심을 넘어 투철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실제로 동호회 결성 초반, 40명도 더 됐던 회원 수는 몇 년 새 10명 안쪽으로 줄었다.

대학 시절부터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삼성전자 입사(2007) 후 줄곧 회사 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 봉사 기회를 찾아왔다. 스위트홈 활동을 시작하기 전 천생산·팔공산 등지에서 환경 정화 활동을 펼치고 공중화장실 청소 봉사에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루는 회사 계정으로 사회공헌센터 홍보 메일이 왔어요. 그걸 여는 순간, 확신했죠. ‘그래, 굳이 어렵게 봉사 기회 찾을 것 뭐 있어. 머리 비우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남자 넷과 여자 둘▲봉사 도중 잠시 짬을 내어 스위트홈 회원들과 포즈를 취한 김현필(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씨. 스위트홈은 지난해 금오종합사회복지관(경북 구미시 문장로)에서 감사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현필씨는 예나 지금이나 ‘몸 쓰는 봉사’를 선호한다. 남들이 기피하는 ‘3D 봉사’만 골라가며 해오고 있는 것. 이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몸이 힘든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맘은 오히려 편합니다. 제 업무가 주로 사무실에 앉아 머리를 쓰는 거거든요. 봉사 활동까지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몸을 쓰면서 머릿속은 말끔하게 비우고 싶었죠. 물론 제가 기본적으로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실제로 해보면 스트레스 해소 효과도 탁월합니다. 정말이에요!”(웃음)

김성훈 무선사업부 개발1실 사원증 1회 태그하면 1000원 기부

삼성스마트시티 출입구엔 지난 2015년 여름부터 전에 없던 키오스크(KIOSK) 한 대가 가동 중이다. 일명 ‘사랑의 나눔 로드’로 불리는 이 기기 전면 스크린에선 지역 내 취약 계층 어린이들의 사연이 영상으로 반복 재생된다. 사용자가 이 영상을 시청한 후 기기 하단에 사원증을 갖다 대면 회당 1000원씩의 기부금이 해당 대상 앞으로 적립된다.

김성훈(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1실)씨는 2017년 5월 현재 ‘사랑의 나눔 로드 설치 이래 최다 태그(tag) 임직원’이다. 2015년 8월 19일 시작된 기부는 지난 15일 884회를 기록, 총 기부 금액 88만4000원을 기록했다.

사랑의 나눔 로드 키오스크 앞에 선 김성훈씨▲어느덧 ‘일상’이 된 사랑의 나눔 로드 키오스크 앞에 선 김성훈씨. 그는 “이젠 여길 지날 때마다 습관처럼 사원증을 갖다 댄다”며 웃었다

“글쎄요. 처음엔 그냥 ‘이렇게라도 보탬이 돼보자’ 하는 맘이었던 같아요. 지금은 일상이 됐고요.” 3년째 기부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을 때 성훈씨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 “특별한 계기나 거대한 동기 따윈 없었다”고.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론 봉사 활동을 통 못했어요. ‘회사 일이 바빠서’란 핑계를 댔지만 실은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봉사를 지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게 사실이에요.”

성훈씨는 고교 시절 공부방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봉사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그때 확실히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봉사는 무조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이 그것. 특히 어린이를 돌보는 봉사에서 ‘띄엄띄엄 참여’는 아이들 맘에 오히려 상처만 남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새내기 직장인인 그는 다시 봉사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기적으로 어딘가를 찾아가 꾸준히 활동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든 손▲사내 기부 문화 확산을 목표로 삼성스마트시티 입구에 설치된 사랑의 나눔 로드 키오스크. 임직원이 기기 전면 인식 장치에 자신의 사원증을 한 번 갖다 댈 때마다 1000원씩이 자동으로 기부, 지역 내 취약 계층 어린이 지원에 쓰인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호스피스 봉사도 “(봉사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책임감과 (봉사에 일정 시간을 할애하려는) 용기를 갖추게 될 때까지” 살짝 미뤘다. 그리고 다짐했다. ‘욕심만 앞서 덥석 시작하는 봉사 대신 ‘지금 여기’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보자!’

그런 성훈씨에게 사랑의 나눔 로드는 더없는 기회였다. 키오스크로 접하는 아이들의 사연이 딱하기도 했지만 출퇴근 시 시∙공간적 부담 없이 기부할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만큼이나 필요한 게 재정적 지원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무심코 사원증을 태그했는데 이젠 습관적으로 출근할 때 한 번, 퇴근할 때 한 번 꼭 찍습니다.”

성훈씨의 ‘기부 바이러스’는 점차 동료들에게로 빠르게 전염되고 있다. 실제로 그와 함께 키오스크를 지나는 동료 중 상당수가 성훈씨를 따라 자신의 사원증을 태그한다. 성훈씨의 말마따나 “보람찬 순간”이다. “사회공헌 활동이라고 해서 꼭 거창한 건 아니에요. 자신의 수준과 상황에 맞춰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기부와 후원이라면 어떤 형태든 의미 있는 것 아닐까요?”

조정희 무선사업부 금형기술팀 요양원 등에 패브릭 소품 제작 기부

“한나(가명)씨, 이 부분이 어렵죠? 자, 제가 하는 것 잘 보세요.” 삼성스마트시티 내 한마음프라자 교육실. 한국말이 다소 서툰 열한 명의 여성이 재봉틀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엔 쿠션 커버와 앞치마, 도시락 가방 등 각자 만든 ‘작품’이 미완성 상태로 들려있었다. 여기저기서 “샘(선생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엔 어김없이 조정희(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금형기술팀)씨가 있었다.

이날 정희씨가 진행한 수업의 명칭은 ‘홈패션 2급 자격증 취득 과정’. 수강생은 모두 일본∙필리핀∙베트남 등지에서 온 다문화 이주 여성이다. 수업은 정희씨가 속해있는 삼성스마트시티 홈패션 동호회 ‘노리터’ 회원들이 지난 2014년 초부터 운영 중인 재능기부 프로그램 ‘핸즈온’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지난해까지 인근 요양원과 지역아동센터 등에 베개∙타월∙속싸개 등 손수 만든 패브릭 소품을 기부했던 회원들이 올해 새롭게 기획한 과정이기도 하다.

쿠션을 들고 있는 여자와 이를 주목하는 여자 넷▲홈패션 동호회 ‘노리터’ 회원으로 활동 중인 조정희(서 있는 사람)씨의 수업 장면. 그는 매주 목요일 지역 이주민 여성을 대상으로 홈패션 자격증 취득 과정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희씨가 노리터에 가입한 건 2011년. 동호회 활동 도중 홈패션 1급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홈패션 지도자 과정을 밟는 틈틈이 올 3월부터 8개월 과정의 이 강의를 맡아 진행해오고 있다. 그의 핸즈온 봉사는 노리터 활동을 도와주는 한 외부 강사의 권유에서 출발했다. “강사님이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해주셔서 기쁜 맘으로 참여했어요. 취미에서 봉사로 관심사가 자연스레 확대된 셈이죠.”

핸즈온이 정희씨의 첫 봉사 경험인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꽤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왔어요. 공부방 교사로 봉사할 땐 수업 후 집에 돌아오는 길, 그저 기분이 좋았어요. 엄마가 된 후엔 지역 어린이 돕기 봉사에 참여했는데 그 느낌이 또 남다르더라고요.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찾아가 돌봐주는 경험 자체가 뜻 깊었어요. 단순히 ‘보람 있다’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쿠션을 든 여자▲조정희씨는 홈패션 1급 자격증을 취득하며 닦은 기량을 봉사 활동에 십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취미를 즐기며 재능 기부와 봉사까지 겸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활짝 웃었다

핸즈온 봉사는 가장 최근에 시작했지만 정희씨에 따르면 “내게 가장 이상적인 사회공헌 활동”이다. “이제껏 해왔던 여느 봉사와 달리 핸즈온 활동엔 시간이 꽤 많이 들어요. 생각하기에 따라 자칫 부담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죠. 하지만 전 평소에도 재봉틀로 이것저것 만들며 스트레스를 날리곤 하거든요. 그런 취미를 활용, 봉사까지 할 수 있으니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에요. 제가 도움 받는 측면도 많고요. 제겐 단순한 봉사, 그 이상의 활동입니다.”

“그것 아세요? 시간과 재능은 나눈 것 이상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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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얻는 걸로 네 생계가 꾸려진다. 그리고 네가 누군가에게 주는 걸로 네 삶이 이뤄진다.” 노벨문학상(1953) 수상자이기도 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전 영국 총리가 남긴 명언이다. 그의 말처럼 가치 있는 삶은 타인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헌신’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사회가 건강해야 기업도 발전할 수 있다’는 공존의 철학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매해 국내 임직원의 90% 이상이 연평균 10시간 남짓을 투자해 크고 작은 사회공헌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지난 1994년 출범한 삼성전자 사회공헌사무국(옛 사회봉사단사무국)은 180여 개 해외 법인, 8개 사회공헌센터와 손잡고 24년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나눔과 공생의 기업가치를 실천해오고 있다.

사실 사회공헌 활동의 면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숫자도, 그래픽도 아니다. 그걸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삼성전자 뉴스룸이 ‘봉사를 실천하는 임직원’을 만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 봉사왕을 만나다’는 이 같은 취지 아래 출발한 3부작 연재. 총 인터뷰이만 일곱 명에 이르는 이 대형 기획의 마지막 회차는 단독 인터뷰로 꾸려진다. 김용운(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팀)씨가 그 주인공이다.

 

토요일이었던 지난달 20일 오전 10시, 수원보훈원(경기 수원시 장안구 광교산로) 메인홀. 여느 때 같았으면 조용했을 공간이 아연 시끌벅적해졌다. 일명 ‘모자이크 찾아가는 재능 나눔 연합 봉사활동’의 날을 맞아 삼성전자 임직원 봉사단원 여럿이 이곳을 찾았기 때문. 레퍼토리는 다양했다. 밴드 공연과 합창에 이어 이날 행사의 백미인 ‘재능 나눔’ 시간이 돌아왔다. 지압·꽃꽂이·침…. 다양한 프로그램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저쪽에서 건장한 체격의 사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자타공인 발 마사지 전문가’ 김용운씨였다.

수원보훈요양원을 찾은 봉사단원들이 어르신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봉사단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 수원보훈요양원을 찾은 봉사단원들이 어르신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르신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지난달 20일 수원보훈원을 찾은 봉사단원들이 어르신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12년째 발 마사지 봉사… 수혜자 늘리려 3년 전엔 자격증도 취득

용운씨는 지난 2006년부터 지역사회 어르신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웃을 찾아 발 마사지 재능 기부를 펼쳐오고 있다. 올해로 벌써 12년째다. 지난해부턴 삼성디지털시티 볼런테인먼트(voluntainment) 프로그램의 하나로 발 마사지 재능 기부 동호회 ‘따수미’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1].

“처음 발 마사지 재능 기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재능 봉사’란 개념이 없었어요. 그저 ‘뭐가 됐든 기술을 배워 사람들과 나누자’ 그렇게만 생각했죠. 때마침 접하게 된 게 발 마사지였고요. 실제로 마사지 기술을 배워 나눔 활동을 해보니 어르신뿐 아니라 저희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던걸요.”(웃음)

지난 2014년, 용운씨는 아예 발 마사지 자격증을 취득했다. 마사지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줄을 섰는데 혼자서 그걸 다 소화해내려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던 것. ‘나처럼 발 마사지 할 줄 아는 재능 기부자를 늘리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겠다!’ 판단했고, 그 길로 지체 없이 필요한 과정을 이수한 후 자격증을 땄다.

사내 발 마사지 재능 기부 동호회 ‘따수미’ 회원들과 수원보훈요양원을 찾은 김용운씨▲사내 발 마사지 재능 기부 동호회 ‘따수미’ 회원들과 수원보훈요양원을 찾은 김용운(뒷줄 가운데 분홍색 반팔 티셔츠 입은 사람)씨

이날 따수미 회원들과 함께 수원보훈원을 찾은 용운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자리에 누운 어르신의 발을 꾹꾹 눌렀다. 그에게 발을 내맡긴 어르신은 처음 잠깐 쑥스러워하는 듯했지만 어느새 편안히 자리를 잡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어려운 이 도우려 공부한다”는 지체장애 소년 만나 봉사에 관심

용운씨는 ‘봉사’보다 ‘나눔’이란 표현을 더 좋아한다. ‘남에게 뭔가를 베푼다’는 의미보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과 함께 내 시간과 재능을 나눈다’는 생각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봉사하는 내내 느끼는 거지만 타인을 돕는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나 스스로 도움 받을 때가 많다”며 “시간과 재능은 나눈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반드시 내게 다시 돌아오더라”고 말했다.

“처음 나눔 활동을 시작했을 땐 내심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뭔가 해주는 일’이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건 저만의 착각이었어요. 정말 중요한 건 함께 어울려 지내는 시간 자체가 주는 ‘소통’의 기쁨이더라고요. 소통 없는 나눔은 소외된 이들을 더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거든요. 그건 나눔을 받는 이뿐 아니라 나눔을 주는 이에게도 해당됩니다. 반대로 소통 가득한 나눔은 끊어졌던 인간 관계의 연결고리도 다시 이어주죠.”

마사지 봉사에 한창인 따수미 회원들▲마사지 봉사에 한창인 따수미 회원들. 2014년 발 마사지 자격증을 취득한 용운씨는 요즘 회원들을 대상으로 마사지 기술을 가르치며 재능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그가 처음 봉사에 눈뜬 건 군(軍) 복무 시절이었다. 물론 ‘자의’는 아니었다. 당시 소속 부대의 지역 공헌 활동 중 하나로 중대장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시작했기 때문. “그때만 해도 제가 왜 이런 활동을 해야 하는지, 이 일이 나나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말 그대로 ‘하라니까’ 했던 거죠.”

그의 생각이 바뀐 건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 분대장의 지휘 아래 다른 장병들과 함께 한 지체 장애인 시설을 찾았다가 한 소년을 만난 것. 당시 15세였던 소년은 중증 지체장애를 앓고 있었다. 특이한 건 그의 손에 항상 들려있던 책이었다. 이유를 묻는 용운씨에게 소년은 답했다.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잖아요.”

천진한 표정으로 답하는 소년을 보며 용운씨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제껏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의지로 뭔가 해본 적이 있었나’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는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나눔 활동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월 평균 70시간 봉사… “원칙? 조금씩, 주변부터, 꾸준히 하는 것”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용운씨는 2002년부터 사내 동호회 등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왔다. 일단 시작한 활동은 웬만하면 꾸준히 이어갔다. 워낙 오래,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다 보니 알아주는 이도 하나둘 늘어갔다. 대가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경사도 있었다. 지난 2015년 삼성사회공헌상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해엔 266회 1024시간 동안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삼성디지털시티(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봉사왕’에 오른 것.

용운씨가 사회공헌 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은 월 평균 50시간에서 60시간 사이다. 회사 활동과 별개로 진행되는 ‘비공식 나눔’까지 더하면 70시간을 훌쩍 넘긴다. “1주일에 한두 번 지역사회 청소년 공부방을 찾습니다. 발 마사지 봉사는 매주 주말이나 금요일에 잡히죠. 아, 월 1회 미혼모 시설에 살고 있는 아이들 성장 앨범 사진 촬영 봉사도 나갑니다. 아이들 사진 외에 크고 작은 행사 사진도 찍어주고 있어요. 그 밖에 한 달에 한 번쯤 각종 요양 시설이나 노인 복지 시설을 찾아 어르신들 장수 사진도 촬영합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여전히 아쉽다. “이 일은 하면 할수록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보이거든요. 늘 ‘내 몸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삼성전자 임직원이 한 어르신의 장수 사진을 찍어드리는 모습▲수원보훈원에서 진행된 봉사 활동 중엔 ‘어르신 장수 사진 촬영’도 포함돼 있었다. 사진은 삼성전자 임직원이 한 어르신의 장수 사진을 찍어드리는 모습. 용운씨도 월 1회 집 인근 요양 시설을 찾아 장수 사진 촬영 봉사에 나선다

알고 보면 그의 ‘나눔 DNA’는 대물림된 것이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종종 기부를 하셨어요. 그런데 꼭 제 손에 돈을 쥐여주시고 제가 직접 기부함에 넣도록 하셨죠. 비록 어렸지만 그런 경험 덕분에 어렴풋이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어요. 지금껏 그 영향을 받고 있단 생각도 듭니다.”

용운씨는 아버지에게 배운 나눔 정신을 자녀에게도 물려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제로 용운씨 가족은 그의 나눔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어르신 장수 사진을 찍을 땐 아내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자격으로 동행하고 여덟 살배기 아들은 아버지의 발 마사지 재능 기부 현장에 종종 따라 나선다.

“제가 바라는 건 제 아이가 나눔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으로 자라나는 겁니다. 봉사를 나갈 때마다 아이와 동행하는 건 그 때문이에요. 아이 스스로 나눔의 정신을 깨닫고 그게 본인에게도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으면 하는 거죠. 그래서 훗날 어른이 됐을 때 자연스레 사회공헌 활동을 일상으로 여길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제 꿈이죠.”

 

‘봉사 초심자’에게 건네는 조언 “일단 현장 따라가 뭐든 도우세요”

인터뷰 내내 느낀 건 용운씨에게 나눔이 더 이상 사전적 의미의 ‘봉사’가 아니란 사실이었다. 밥 먹고 회사를 다니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자, 자신과 다음 세대를 위해 당연히 품어야 하는 꿈이었다.

꾸준한 사회공헌 활동. 실제로 해보면 안다,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단 사실을.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기가 주저된다면 봉사를 많이 하는 주변 동료 일을 조금씩 도와주는 걸로 시작해보세요. 현장에서 조금씩 일손을 돕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역할이 하나둘 보입니다. 처음부터 혼자서 다 도맡아 하려 하기보다 서로 조금씩 도와간단 생각으로 차근차근 접근하면 막연한 부담감은 덜 수 있습니다.”

‘나누는 삶’을 꿈꾸는 이에게 용운씨가 던지는 조언은 간명하다. “타인을 돕고 싶단 마음,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걸 어려워할 뿐이죠. 부담감 때문입니다. 그럴 땐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바라서 그런 것 아닐까?’ 하고요. 봉사는 결코 대단한 게 아닙니다.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겁니다. 봉사에 대한 생각만 달리해도 쉽게 시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1] 삼성디지털시티는 임직원이 ‘자원봉사(volunteering)와 놀이(entertainment)를 융합시킨 재능 나눔 사회공헌 활동’ 볼런테인먼트 활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오고 있다

 

 

블록체인, 당신이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낯선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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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블록체인, 당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낯선 생태계

드디어 여름 휴가! 필요한 짐을 챙겨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났다. 웃고 떠드는 가운데 어느새 목적지인 속초 도착. 호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여행 가방을 챙긴 다음, 로비로 향했다. 체크인해야 하는데 프론트 데스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잠시 당황했지만 걱정할 것 없다. 바닥에 나타난 레이저 방향 표시를 따라가기만 하면 예약해둔 객실이 나타나니까. 객실 앞에 도착하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실내로 들어서니 야호! 큰 창 너머로 바다가 눈 앞 가득 펼쳐진다.

 

쉽고 빨라진 금융 거래… ‘검은 손’ 조심하라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세상은 이미 현대인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사물인터넷 세상을 꿈꾸며, 보다 완벽한 실현 방안을 찾아간다. 앞서 예로 든 사례 역시 그런 꿈에서 등장할 법한 장면 중 하나다. 신분 확인이나 거래 등 제반 절차에서 ‘인간 개입’이 생략된 상황 말이다. 이 시나리오 속 세계는 개개인의 몸에 전자 ID(electronic identification) 신호가 부착돼 이를 센서에 읽힌 후 빅데이터로 조회하면 누가 어딜 가든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세상, 한발 더 나아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물품과 서비스가 ‘맞춤형’으로 자동 제공되는 세상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물품과 서비스 대금은 어떤 절차를 거쳐 자동으로 지불되는 걸까? 금전 거래가 공정하게 이뤄지려면 우선 거래 당사자의 물품(혹은 서비스) 소비 기록이 남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 기록이 은행 계좌와 연동돼 해당 인물이 ‘거래 가능한 신분(상태)’인지 여부가 조회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 역시 확실하게 기록돼 다음 거래 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 모든 작업을 빅데이터에만 의존한다면 그걸 저장, 운용하는 데이터 서버는 정말 커야 할 것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량 급증과 함께 엣지 컴퓨팅이 부상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엣지 컴퓨팅 관련 내용은 지난달 17일자 스페셜 리포트 ‘엣지 컴퓨팅,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의 새 장(場) 열다’ 참조).

 

클라우드 컴퓨팅 전성시대, 해커의 위협은 늘 도사리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엣지 컴퓨팅 둘 다 ‘페타바이트(PB)급 정보 시대’에 필요한 정보를 보다 빨리,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나같이 중요한 정보인 만큼 악용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특히 재정 정보의 경우, 속칭 ‘검은 손’의 표적에 걸리기 쉽다. 대형 은행의 방어 장치가 해커들의 집요한 공격에 일부라도 뚫리면 해당 은행이 보관 중이던 고객 자산은 순식간에 해커 집단에 넘어가 탕진될 수 있다.


이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은행은 물리적으로, 혹은 가상 공간에서 여러 겹의 방어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城)이라도 적(敵)의 공격이 충분히 강하면 언젠가 반드시 무너진다. 설사 무너지진 않는다 해도 점차 집요해지는 공격을 막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돈과 에너지가 투입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고객 몫으로 돌아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의 고민은 필연적으로 다음에 이르렀다. ‘단순 방어 장치 강화 말고 좀 더 근본적인 정보 방어 요령은 없을까?’


거래 내역, 장부를 분산시키면 투명해질까?


일부에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블록체인(block chain)’을 내놓는다. 블록체인은 1990년대 초 처음 제기돼 꾸준히 다듬어진 개념. 핵심은 ‘어느 한 주체가 모든 고객의 거래 장부를 소지, 관리하는 게 아니라 다수가 모든 이의 거래 장부를 공유하며 관리하는’ 것이다. 초창기엔 “(은행 같은 대형 기관을 매개로 하는) 온라인 거래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블록체인, 기존 거래 방식과 어떻게 다를까?

블록체인 프로그램 기반 온라인 거래 시스템이 구축되면 기존 방식에선 관찰되지 않았던 이점이 다양하게 생겨난다. 구체적 사례를 들어보자. 여기, 온라인 쇼핑몰이 하나 있다(편의상 A라고 해두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거래가 가능한 A의 연 매출은 300억 달러 수준. 여기서 취급되는 신용카드는 모두 3종(種)이다. 기존 방식대로 특정 은행이 A의 거래 장부 일체를 관리한다면 이 카드에 연계된 몇몇 은행으로 돈이 집중될 것이다. 자칫 해킹 등으로 이중 한 은행과의 연결고리만 무너져도 순식간에 몇 억 달러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다.


만약 A가 금전 거래 관리 방식을 블록체인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1만 명의 분산형 관리자를 고용한 후 그들에게 거래 장부 파일을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소재지나 직업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해당 작업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용량을 갖춘 컴퓨터 소지자라면, 또 암호화된 거래 기록을 읽어내거나 신규 거래 사항을 기입해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무방하다. 이때 분산형 관리자를 ‘노드(node, 그물의 날줄과 씨줄이 만나 겹쳐지는 마디 부분)’라고 부른다.


블록체인 거래, 어떻게 이뤄지나

만약 누군가가 A에 접속, 어떤 상품을 주문한 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해당 정보는 모든 노드의 거래 장부 파일에 전달돼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 물론 이 단계에서도 혹자는 거래 내역을 해킹하려 시도할 수 있다. 노드 중 한 명이 흑심을 품고 조작에 나서는 상황도 얼마든지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블록체인 체계 아래 장부 상태는 새로운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점검된다. 다시 말해 1만 명의 노드가 활동 중인 쇼핑몰 A의 블록체인 프로그램이 “60% 이상이 동일한 내용인 콘텐츠를 기준으로 거래가 진행되도록” 설계됐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한 6000대(1만 명의 60%)의 컴퓨터가 같은 방식으로 해킹(혹은 조작)돼야 거래 교란에 성공할 수 있다. 안전성으로만 치면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현존 거래 방식 중 가장 안전”, 그 근거는…

블록체인 보안, 이래서 믿을 만하다
 출처: 미국 과학기술 전문 월간지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 스펙트럼’ 2015년 7월호


블록체인 시스템에서 활동하는 노드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거래가 한 차례 발생할 때마다 이들에겐 ‘가스(gas)’로 불리는 수수료가 지급된다. 지극히 적은, 이를테면 몇 센트 수준의 돈이다. 하지만 연간 거래 규모가 300억 달러 선이라면 아이템 한 개당 가격이 평균 10달러라 해도 10억 회의 거래가 발생하는 꼴이 된다. 예를 들어 그때마다 3센트씩의 가스가 빠져나간다면 1년에 지불되는 서비스 대금 규모는 9000만 달러에 이른다. 노드 수가 총 1만 명이라면 1인당 연간 9000달러(약 1000만 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 한 대를 편한 장소에 두고 가끔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손에 쥘 수 있는 벌이치곤 결코 나쁘지 않다.


‘노드 1만 명 고용해 온라인 쇼핑몰 차리기’. 언뜻 쉽지 않은 작업처럼 비칠지 몰라도 앞서 설명한 거래 시스템이 일반화되면 온라인 광고 하나 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다. 1만 명을 대상으로 컴퓨터를 확인(혹은 지원)해주고 프로그램을 (물론 유상으로) 깔아주는 작업이라고 해야 수 개월이면 끝날 것이다. 비용 측면으로만 따지면 경리 전담 조직을 만들고 전문 인력을 고용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효율적일 수 있단 얘기다.


이런 방식은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이로울 수 있다. 지금까지의 상거래에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쇼핑몰이 가져가는 돈이 꽤 많았다. 그중 상당 부분은 시스템 유지비, 그리고 은행에 건네는 수수료였다. 은행 역시 그 수수료에서 건물∙장비 임대료 등 제반 비용을 충당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방식의 금전 거래에선 이 같은 비용이 사실상 제로(0)에 가깝게 사라질 수 있다. 여기에 가격을 낮추려는 공급자 간 경쟁 격화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가격 혜택으로 돌아간다.


시장 가치, 사물인터넷과 결합되면 ‘무궁무진’

 

금융거래에서 이용될 블록체인

오늘날 블록체인이 가장 널리 쓰이는 분야는 아무래도 금전 거래다. 돈에 관련된 정보야말로 ‘철통 보안’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록체인은 앞서 예로 든 온라인 쇼핑몰을 포함, 은행∙대부업체∙보험회사 등 거의 대부분의 금융기관 업무에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비금융 분야라고 해서 블록체인이 활용되기 어려운 건 아니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건 콘텐츠 거래 부문이다. 실제로 특정 아티스트가 온라인 상에서 ‘스마트 저장소(계약서)’를 만들어두면 자신의 창작 콘텐츠가 사용자 컴퓨터에 언제 저장, 등록되는지가 꼬박꼬박 기록된다. 동시에 해당 콘텐츠 조회수에 정확하게 비례해 사용료도 착착 입금된다. 악의적 계약으로 아티스트를 착취하려는 기획사가 발 붙일 곳도, 밀린 지불금 갚아 달라며 어깨싸움 할 일도 없다. 돈이 제대로 들어오고 있는지 일일이 신경 써서 점검할 필요 역시 없다. 블록체인 기반 회계 감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그 모든 분쟁의 소지가 말끔하게 해소된다.


블록체인의 효율성을 폭발적으로 키워줄 수 있는 수단은 다름아닌 사물인터넷이다. 글 서두에 소개한 가상의 사례처럼 블록체인이 일상화된 시점이라면 휴가 준비가 한층 간편해진다. 예산 계획을 잘 세워 온라인 여행 일정에 가상 화폐를 충분히 넣어두면 ‘준비 끝’. 일단 길을 떠난 후엔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분식해 낭패 볼 일도, 남은 돈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며 고민할 필요도, 꾸물거리는 호텔 프론트 데스크 직원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염려도 말끔하게 사라진다.


금전 거래 외 분야에서도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대통령 선거가 대표적 예다. 대통령 선거가 온라인 투표 체계로 치러질 수 있다면 인력∙비용∙시간 등 모든 자원이 절약될 것이다. 우려되는 건 단 하나, ‘(투표 결과의) 조작 위험성’이다. 만약 여기에 블록체인 방식을 가미한다면 어떨까? 비용 효율과 안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선거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 밖에도 헬스케어나 자동차∙에너지 관리 등 블록체인 기술이 응용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 기업 경영 컨설턴트인 데이비드 시겔(David Siegel)이 일찍이 강조했듯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꾸는 힘은, 어쩌면 인터넷이 그랬던 것보다 더 클지 모른다.

국내외 블록체인 기술 활용 분야 현황출처 : 한국정보화진흥원

 

“세상 바꾸는 힘, 어쩌면 인터넷 능가할 수도”

이 같은 잠재력과 가능성 덕분일까, 블록체인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차세대 정보통신기술(ICT)의 꽃’으로 꼽힌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은 “오는 2025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블록체인 기술에 저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티은행 △나스닥OMX그룹 △유럽은행연합 △도이치은행 △HSBC 등은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한 관리 프로그램을 앞다퉈 개발 중이거나 이미 실행하고 있다.


국내 기업에도 블록체인은 주요 개발 화두 중 하나다. 한 예로 삼성SDS는 지난 4월 자체 개발한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Nexledger)'를 공개했다. △실시간 대량 거래 처리 △자동 안전 거래 △관리 모니터링 등의 기능을 갖춘 넥스레저는 향후 물류 분야에서도 단단히 제 몫을 해낼 예정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모든 참여자가 생산·가공·보관·운송 이력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원산지 조작이나 제조 기간 변경, 허위 광고도 예방할 수 있다.


미국의 인기 여행 작가 앨런 케슬하임은 1988년 있었던 옐로스톤공원의 대형 화재 이후 기억을 이렇게 기록했다.

 

“눈앞 가득 펼쳐지는 벌거벗은 회색의 숲, 끝없이 이이지는 그을린 땅엔 검게 탄 나무둥치밖에 없었다…(중략)… 하지만 이 재앙에도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산불이 큰 나무를 모두 불태워버리자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숲으로 가려졌던 티튼(Teton)산의 환상적 전경이 드러났다. 사슴과 들소, 날아다니는 새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맨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매료된 난 몇 년 동안 시간만 나면 이곳을 찾았다. 올 때마다 새로운 생명이 숲을 바꿔가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중략)… 불은 모든 걸 바꿔놓았다. 파괴자가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키워내는 자로서.”


어쩌면 현대인은 블록체인의 엄청난 파괴력을 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파괴력은 낡은 걸 없애는 측면보다 새로운 탄생을 도와주는 측면이 더 클 수도 있다, 옐로스톤공원을 다시 태어나게 했던 화재처럼.

 

기억, 어쩌면 창의성의 진짜 보고(寶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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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세상을 잇는 이야기- 기억, 어쩌면 창의성의 진짜 보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지금 여기를 관통하는 최신 기술의 현주소가 궁금하신가요? IT 전문가 칼럼 '세상을 잇는 이야기'는 현대인이 알아두면 좋을 첨단 테크놀로지 관련 상식을 전하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다 함께 생각해보는 삼성전자 뉴스룸의 신규 기획 연재입니다. 분야별 국내 최고 석학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고급 지식의 향연, 맘껏 누려보세요!

여기저기서 “창의성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부모치고 ‘우리 아이 창의력 키우기’ 같은 문구에 한 번쯤 혹해보지 않은 적 없을 터. 하지만 구체적 방법론에 이르면 다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체 무슨 수로 창의성을 계발할 수 있단 거지?’

 

인공지능 세상, 암기는 시대착오적 학습법”이라고?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냄’. 기억(記憶)의 사전적 정의다. 그런데 만약 이 기억이 창의성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면 어떨까?

사람 옆모습과 뇌 그림

뇌(腦)과학에서 기억은 ‘인지 능력의 본질적 구성 성분’으로 정의된다. 실제로 기억은 인간의 지각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반영된다. 생각은 이렇게 기억된 것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는 현상이다. 사람들의 일상은 대개 습관적·반복적 행동과 생활 용어로 구성된다. 매일 특별한 운동 능력을 발휘하거나 학술 용어로 소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어려운 추상 명사나 자연과학 서적에나 등장할 법한 개념어를 몰라도 생활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반면, 인간이 자연 현상을 기록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수학적(혹은 물리학적) 언어가 쓰인다. 또한 과학적 사고를 전개하려면 과학 용어의 개념을 이해,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혹자는 “요즘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 수학 공식을 암기하고 역사적 사건의 발생 연대를 기억하는 학습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억이 없으면 인간은 그저 동물적 상태에 머물 뿐이다. 당연히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도 없다. ‘새롭다’는 개념 자체가 이전 방식과의 비교를 전제로 하는 만큼 이전 방식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 뭔가를 새롭다고 규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파고가 인간과의 바둑 대국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바탕에도 가공할 기억 능력이 있었다.

기억이 없으면 인간은 그저 동물적 상태에 머물 뿐이다.  당연히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도 없다.  ‘새롭다’는 개념 자체가  이전 방식과의 비교를 전제로 하는 만큼  이전 방식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  뭔가를 새롭다고 규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억의 본질적 기능은 ‘뭔가를 잊지 않아 일관된 행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사물이나 사건을 유념했다가 비슷한 상황에 닥쳤을 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단 얘기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인간의 기억은 인지적 측면에서 세 가지 핵심 기능을 갖는다. 오늘 칼럼의 주제도 바로 이것이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뇌 입장선 지극히 당연한 결과

첫째, 기억은 정신 작용을 지속하게 해준다. 기억의 지속성은 예외적 정신 능력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뇌는 매 순간 변화하는 환경에서 입력되는 감각을 그때그때 처리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생각이 극히 짧게 지속되는 건 그 때문이다. 실제로 생각은 점멸하는 자극에 따라 벼룩처럼 튀어 다닌다. 그러고 보면 유행가 가사 “내 마음 나도 몰라”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끊임없이 바뀌는 자극을 처리해야 하는 뇌 입장에선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인간의 뇌는 매 순간 변화하는 환경에서  입력되는 감각을 그때그때 처리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생각이  극히 짧게 지속되는 건 그 때문이다.  실제로 생각은 점멸하는 자극에 따라 벼룩처럼 튀어 다닌다

입력되는 감각이 지속적으로 달라지는 자연에서 동물은 감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감각 종속적 존재가 되기 쉽다. 당연히 기억을 매개로 한 반응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물, 혹은 (기억이 아직 축적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행동은 감각자극에서 곧장 나온다.

아이가 ACTION에 동그라미를 치는 모습

일반적으로 운동엔 두 단계가 있다. ‘계획’이 하나, ‘실행’이 다른 하나다. 즉각적 행동은 별다른 계획 없이 반사적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고 학습된 기억이 점차 쌓이며 인간은 무작정 행동하기보다 ‘기억이 반영된’ 행동을 더 많이 한다. 어른이 돼 전두엽이 발달하면 즉각적 반응에서 지연된 반응으로 운동 출력을 점차 지연시킬 수 있다.

목표 지향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은 실시간으로 입력되는 감각 정보를 자신의 기억과 비교, 판단한 후 그 결과를 살펴 목적에 적합한 운동을 선택한다. 단발성 동작이 연결돼 일련의 행동으로 나타나려면 목표 지향적 기억 정보가 지속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그래서 기억은 정신 작용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은 실시간으로 입력되는 감각 정보를  자신의 기억과 비교, 판단한 후  그 결과를 살펴 목적에 적합한 운동을 선택한다.  단발성 동작이 연결돼 일련의 행동으로 나타나려면  목표 지향적 기억 정보가 지속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그래서 기억은 정신 작용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사 공부를 예로 들어보자. 고조선·부여·고구려·마한·진한·변한·마립간·진흥왕·왕건·무신정권·이성계·세종대왕·이순신·영조·정조…. 이런 고유명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한국사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요컨대 기억은 정신 작용의 재료가 아니라 역사·수학·문학·예술 등 모든 분야를 관통하며 계산하고 추론하는 정신 작용 그 자체다.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 주고받기, 생각 분산의 주범

매 순간 작동하는 작업 기억은 인간의 현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빈약한 기억은 빈약한 사고를 만든다. 문명화 이전의 원시 부족인은 오로지 자신이 경험한 사건만 얘기했다. 경험을 일반화한 추상명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각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순 있었지만 하나의 사건을 다른 유사 사건과 연결 지어 공통점을 범주화하진 못했다.

고유명사와 추상명사는 사물을 지시하고 사물의 본질을 포착, 오랫동안 유지하게 해준다. 오래 기억되며 범주화된 표상은 인간 뇌 정보 처리 과정을 사물과 사건에 지속적으로 집중,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일명 ‘시간적 지속 과정’을 생성한다. 근육 운동과 뇌 신경세포의 작용이 기억의 흔적을 만들어 시냅스 연결이 강화되면 그 연결망은 ‘정보 고속도로’가 돼 강하고 신속한 정신작용을 가능케 한다.

특정 기억이 다른 기억과 연결되려면 일정 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기억과 만나기 전 원래 생각이 바뀌면 다른 기억과 만날 확률은 그만큼 낮아진다. 사물과 사건의 의미를 명확히 판단하려면 비교와 예측, 추론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기억들과의 연결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엔 불가피하게 시간이 들며, 그동안 뇌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해 다른 감각 작용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기억이다.

사물과 사건의 의미를 명확히 판단하려면  비교와 예측, 추론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기억들과의 연결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과정엔 불가피하게 시간이 들며,  그동안 뇌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해  다른 감각 작용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기억이다

기독교의 주기도문이나 불교의 염불은 반복적 단어 암송을 통해 행위자의 사고를 철저히 하나의 대상에 머물게 하려는 행위다. 생물학 중 생화학 과정을 공부할 때에도 아미노산·ATP·핵산·세포공생·호흡작용·광합성 같은 핵심 개념어를 지속적으로 떠올려야 해당 개념이 느낌으로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다.

기억은 생각을 한 방향으로 머물게 하는 동시에 다른 생각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만들어낸다. 기억을 유지하는 능력이 약한 사람은 생각이 자주 분산되고 머릿속도 혼란해진다.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행동은 사실상 잡담에 가깝다. 자연히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 생각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CONSISTENCY

생각의 일관성은 기억을 (집요하게!) 유지하는 시간에 비례한다. 다시 말해 기억은 인간의 사고를 지속시켜줘 사고의 일관성을 만든다. 생각의 일관성은 행동의 일관성으로 이어졌고, 이는 인간 문화 출현의 밑바탕이 됐다. 동물의 행동은 감각에서, 인간의 행동은 기억에서 각각 나온다. 알파고는 대규모로 축적된 기억을 연결, 인간 바둑의 최고 고수를 이겼다. 특정 분야에 한해서이긴 하지만 기계의 기억이 인간의 기억을 이긴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인간은 점점 기억과 멀어지고 있다. 지극히 순간적 행동인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 보내기’가 급증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기억은 시간 차원에서 작동,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따라서 기억과 거리가 먼 인간은 감각에 종속되는 ‘반사적 인간’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인간은 점점 기억과 멀어지고 있다.  지극히 순간적 행동인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 보내기’가  급증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기억은 시간 차원에서 작동,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따라서 기억과 거리가 먼 인간은  감각에 종속되는 ‘반사적 인간’일 수밖에 없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 기억감정 간 관계 함축

둘째, 기억은 감정과 정서를 동반한다. 이 같은 기능은 ‘지식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기억의 가치다. 가을·바람·바다·구름·꽃·별…. 이런 단어는 사용자가 누군지에 따라 나름의 고유한 정서가 묻어있다. 하지만 고유명사는 다르다. 어감이 생소해 정서적 관련성을 부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유명사는 처음부터 뇌리에 각인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발음해야 비로소 기억된다.

강아지를 만지는 여자의 모습

기억은 감정을 일으켜 인간을 행동하게 만든다. 바꿔 말하면 기억이 없는데 웃거나 슬퍼할 순 없다. 특정 분야의 관심과 애정은 전적으로 그 분야의 기억 양(量)에 비례한다. 암석학이나 생화학, 양자역학 같은 단어를 접하고도 아무런 느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그 분야에 대한 기억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감정을 일으켜 인간을 행동하게 만든다. 특정 분야의 관심과 애정은  전적으로 그 분야의 기억 양(量)에 비례한다.  암석학이나 생화학, 양자역학 같은 단어를 접하고도  아무런 느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그 분야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뇌과학적 측면에서 봐도 기억과 감정은 분리된 실체가 아니며, 일명 ‘파페즈 회로(Papez circuit)[1]’라고 불리는 뇌 신경 회로로 연결돼 있다. 파페즈 회로는 다음과 같은 경로로 구성된다.

해마체(hippocampal formation) 뇌궁(fornix) 유두체(mammillary bodies) 유두시상로(mammillothalamic tract) 시상전핵(anterior thalamic nucleus) 대상회(cingular gyrus) 내후각피질(entorhinal cortex) 해마체

변연계 구조 그림 - 뇌궁, 시상전핵, 유두체, 대상회, 해마체로 구성되어있다

 

신경 자극은 감정·중독 관련 뇌 영역인 편도체와 중격(中隔) 영역에서 기억을 형성하는 파페즈 회로로 입력된다. 불의에 대한 분노,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는 의지는 모두 강한 정서적 기억에서 비롯된다. 감정적 느낌이 풍부한 사건과 지식이 기억에 오래 남는 건 편도체가 정서적 자극에 반응, 사건 기억을 형성하는 해마로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교감신경계의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기억의 공고화 과정을 촉진한다. 꿈에선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중단돼 기억이 굳어지지(鞏固) 않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난밤 꿈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는 이유다. 학습 성과는 ‘알고 싶어하는’ 욕구에 비례한다. 경험과 학습을 통해 기억된 내용이 빈약하면 학습 의욕도 기대할 수 없다. 요컨대 기억과 감정은 상호 연관된 뇌 작용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려면 배운 내용을 최대한 많이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는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느낌이 생긴다. 결국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기억의 정서적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학습 성과는 ‘알고 싶어하는’ 욕구에 비례한다.  경험과 학습을 통해 기억된 내용이 빈약하면  학습 의욕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려면  배운 내용을 최대한 많이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관점이 필요해? 시선의 방향·높이부터 바꿔봐!

셋째, 기억은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핵심 동력이다. 새로운 분야를 학습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암기하려는 노력은 종종 평가절하된다. 심지어 혹자는 암기를 창의성의 반대 개념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질의 기억이 축적되지 않으면 창의성 역시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창의성이란 ‘새롭고 가치 있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따라서 사물과 사건을 새로운 관점에서 관찰하는 훈련이 전제돼야 한다.

새로운 분야를 학습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암기하려는 노력은 종종 평가절하된다.  심지어 혹자는 암기를  창의성의 반대 개념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질의 기억이 축적되지 않으면  창의성 역시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사물을 관찰할 땐 시선의 방향과 높이, 대상과의 거리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새로운 시선이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사물이든 사건이든 ‘늘 봐왔던 방향으로’ 바라본다. 세상이 좀처럼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시선의 방향을 이전까지와 달리하기 힘든 건 대상과의 일정 거리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다.

만원경으로 관찰하는 관찰자

관찰자와 관찰 대상 간 거리가 제대로 상정되지 않으면 관찰 대상은 관찰자의 일부가 돼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반대로 익숙했던 대상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면 그제야 비로소 새로운 시선이 열린다. 관찰 대상과 접촉하지 않은 채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 해당 대상의 다양한 측면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시선의 방향이 자유로워지려면 관찰 대상과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보고 싶은 측면이 아닌, 그 대상의 다른 측면이 노출된다.

인간은 본래 ‘접촉 지향적 문화’ 성향이 강하다. 접촉 지향은 농경 사회의 대표적 속성이다. 관찰 대상과의 거리 확보가 여의치 않은 접촉 지향 성향은 논리적·객관적 공간을 없애는 한편, 그 자리에 감정적 반응을 자리 잡게 한다. 이런 상황에선 감정적 반응이 판단의 근거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시선의 방향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시선의 높이가 가치를 결정한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별과 태양이 눈에 들어오지만 사람 키 높이로 시선을 고정하면 사람들만 보일 뿐이다. 인간이 인간에 익숙해지고, 인간에 매몰되는 것이다. 미지의 자연이 사라진 시야를 채우는 건 뻔한 일상 생활 공간이다.

시선의 방향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시선의 높이가 가치를 결정한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별과 태양이 눈에 들어오지만  사람 키 높이로 시선을 고정하면 사람들만 보일 뿐이다.  인간이 인간에 익숙해지고, 인간에 매몰되는 것이다

거친 바다를 개척하고자 하는 시선이 대탐험 시대를 열었다. 크고 작은 지리상의 발견과 과학 발전을 가능케 했다. 시선의 방향과 높이를 새롭게 하려면 관찰 대상과의 일정 거리 확보가 필수다. 하지만 접촉 지향 문화는 대상과의 거리를 소멸시켜 객관적 논리의 공간을 사라지게 만든다.

대리석을 건축에 즐겨 썼던 서양인은 기하학적 도형의 객관적 관계에 익숙하다. 서양에서 과학이 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창의성은 객관적 사실의 기억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두뇌 작용이다. 객관적 세계에선 사물에 대한 지식의 경계가 분명하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게 과학의 출발이다.

 

창의성의 본질은 ‘기존 기억의 새롭고도 독특한 조합’

미지(未知)의 세계는 쉬이 접근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설이 생겨났으며, 그걸 증명하는 과정이 바로 실험이다. 과학은 가설과 실험의 세계이며, 그 바탕엔 무지(無知)에 대한 자각이 존재한다. 창의성은 기존 기억을 새로우면서도 독특하게 조합하는 과정의 결과다. 어렵거나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각자 기억의 새로운 조합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운 후 실험을 통해 그걸 증명해낸다. 그리고 이 모두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기억을 ‘창의성의 바탕’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 있다.

어렵거나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각자 기억의 새로운 조합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운 후 실험을 통해 그걸 증명해낸다.  그리고 이 모두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기억을 ‘창의성의 바탕’으로 정의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 있다

칼럼은 해당 필진의 개인적 소견이며 삼성전자의 입장이나 전략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1] 미국 신경생리학자 제임스 파페즈(James Papez, 1883~1958)가 발견한 뇌 신경 회로. 파페즈는 이 회로를 설명하며 “감정은 대뇌변연계(감정이나 기억과 관련된 뇌 부위)의 각 구조 간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첨단’과 ‘상상’ 입은 기술, 혼합현실(MR)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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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스페셜리포트 도비라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강둑에 앉아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자니 점차 몹시 지루해졌다. 언니가 읽는 책을 한두 번 흘깃 보았는데 거기엔 그림도 없고 대화도 없었다. “그림도 없고 대화도 없으면 책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거지?” 앨리스는 뜨거운 날씨 때문에 몹시 졸리고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 그때 갑자기 분홍빛 눈의 하얀 토끼 한 마리가 가까이 뛰어왔다. 사실 그게 딱히 특별할 것이라고는 없었다. 심지어 토끼가 “에구구! 에구구! 너무 늦은 거 아냐?”라고 혼잣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도,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토끼가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고 서두르자, 그제야 이전에는 조끼를 걸치거나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는 토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앨리스의 머리 속을 스쳤다. 앨리스는 토끼를 쫒아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유명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첫 부분이다. 영국 수학자 겸 작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루이스 캐럴’이란 필명으로 1865년 발표한 이 소설은 요즘으로 치면 판타지 소설 비슷한 것이다. 처음 출간됐을 당시 이 책은 분량이 상당했지만 삽화는 흑백 목판으로 달랑 42개 들어있을 뿐이었다. 나머지 장면은 대부분 독자가 스스로 상상해야 했다.

그로부터 86년이 지난 1951년, 디즈니에서 이 소설을 1시간 15분짜리 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제공했다. 관객들은 이제 글자를 보면서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스크린을 보면서 콘텐츠를 즐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2차원 평면에 펼쳐지는 그 스토리 역시 일방적인 것이어서 그 안에 관객의 자리 따윈 없었다. 천연색이지만 비현실적인 만화 캐릭터가 나오는 화면에 관객이 주인공이 된 듯한 몰입감까지 기대하긴 어려웠다.

소설 속 앨리스 - 영화 속 앨리스 - 실물 토끼▲152년 전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독자는 거의 대부분의 스토리 이미지를 스스로 상상해내야 했다. 66년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나왔을 때 관객들은 눈앞 그림을 따라가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2017년의 사용자는 모바일 기기를 진짜 풀밭 위에 갖다 대기만 하면 ‘진짜 같은 토끼’가 뛰어오르는 걸 볼 수 있다

그로부터 66년이 흐른 2017년, 사람들은 이 얘길 마치 자기 일인 듯 체험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과 함께 풀밭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살아서 움직이는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에구구! 에구구! 너무 늦은 거 아냐?”라고 말하면서 내 눈 앞을 달려서 휙 지나간다. 그럼 사용자는 일어나 토끼 뒷모습을 보며 함께 따라 뛸 수 있다. 토끼는 사라지고 사용자는 깊은 우물 같은 동굴 속으로 빠진다. 소설 속 앨리스가 했던 것과 똑같은 체험을 실제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용자와 가상 캐릭터가 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인터랙티브 스토리(interactive story) 전개. 최근 주목 받는 기술 중 하나인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이라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해진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그 사이 모든 공간

혼합현실이란 말 그대로 ‘다양한 방식을 혼합해 만들어낸 현실’이란 뜻이다.

현실 - 증강현실 - 증강가상현실 - 가상현실 도표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 한쪽 극에 현실이 있고 다른 쪽 극에 가상현실이 있다고 하자. 혼합현실은 그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잠깐, 비슷비슷한 용어가 헷갈릴 수 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증강가상현실에 이어 혼합현실이라니. 용어 정리부터 해보자.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이란 ‘확장된 현실’이란 뜻이다. 현실의 어느 장면을 볼 때, 실제론 그 장면 속에 존재하지 않으나 거기 관련된 이미지나 정보가 덧붙여 보이는 걸 말한다. 그러려면 특수 안경을 쓰거나 스마트폰·태블릿의 사진 PC 촬영 모드를 이용해 그 장면을 봐야 한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토니 스타크가 특수한 수트를 입으면 필요한 모든 정보가 눈앞에 펼쳐진다든지, ‘킹스맨’에서 주인공들이 안경을 쓰면 역시 자기가 보고 있는 대상에 관한 정보가 글자로 눈앞에 보인다든지 하는 건 모두 증강현실의 일환이다(2015년 9월 9일자 스페셜 리포트 “‘진짜 현실’로 다가온 증강현실” 참조). ‘포켓몬고’ 같은 게임도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것이다(2016년 7월 27일 스페셜 리포트 “포켓몬 고 열풍, 기계로 노는 인간들” 참조).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도 있다. 가상현실이란 ‘실제로 존재하진 않으나 꼭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현실’을 말한다. 증강현실 화면 속엔 실제 현실이 다 들어있고 거기에 현실에 없는 부분이 덧붙여진다. 하지만 가상현실 화면은 실제 현실 상황이 전혀 아닌, 만들어진 현실만으로 채워진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현실이 실제 현실과 너무 흡사해 몰입감을 줄 뿐이다. 이를 위해 사용자는 현실 세계 정보를 전혀 보거나 듣지 못하도록 특수하게 제작된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착용해야 한다(2015년 6월 24일 스페셜 리포트 “가상현실, 또 한 번의 부활 꿈꾸다” 참조). 최근엔 가상현실 기법을 활용한 저널리즘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각광 받고 있기도 하다(2016년 3월 16일 스페셜 리포트, “이제 저널리즘까지? VR의 거침없는 하이킥” 참조).

고글을 쓰고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남자

증강가상현실(Augmented Virtuality, AV)이란 가상현실 기법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되, 거기에 현실적 요소가 추가돼 상호작용되도록 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당신이 사무실 의자에 앉아 HMD 고글을 쓰고 가상현실 축구장을 보고 있다고 하자. 그 상태에서 실제로 칩이 내장된 공을 집어 들어 힘껏 던지면 사무실 앞 벽에 맞아 튕겨 나갈 것이다. 하지만 고글을 쓴 당신 눈엔 그게 골대 안으로 날아 들어가 그물을 흔드는 공의 모습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이 기법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론모우어맨(The Lawnmower Man)’(1992)다. 지적장애 청년 ‘조브’가 실험 대상이 돼 벌어지는 가상 프로젝트 세계는 가상현실에 실제 인간이 들어가 소통하는 증강가상현실의 예를 보여준다.

 

#AR∙VR 장점 취합한 후 ‘인터랙션’ 강화해라

기술적으로 접근했을 때 혼합현실이란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을 통합하고 사용자와의 인터랙션을 더욱 강화한 방식’을 말한다. 즉 현실과 증강현실, 가상현실의 요소가 모두 혼합된 상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적 목표 구현을 위해선 어떤 기술 혁신이 선행돼야 할까?

우선 현실·가상현실·증강현실 정보를 동시에 보고 들으며 몰입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장비가 필요할 것이다. 현실 상황을 그대로 느끼는 동시에 현실에 없는 내용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비디오 장치, 현실에 없는 소리를 청각적으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오디오 장치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체육관에 친구들과 앉아 교사의 지시대로 가운데 빈 공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닥이 갈라지며 엄청나게 큰 고래가 솟구쳐 뛰어오른다. 고래와 함께 흩어지는 물살과 물거품의 모습을 보는 건 물론이고 그 큰 덩치가 바닷물을 가르는 소리, 그 여파로 크고 작은 물결이 흩어져 철썩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바다위로 뛰어 오르는 거대한 고래

사실 위 상황은 ‘매직리프(Magic Leap)’라는 혼합현실 제작 전문 기업이 지난해 출시한 콘텐츠의 줄거리다. 요즘은 이처럼 시청각적 정보뿐 아니라 냄새나 촉감 정보까지 더한 혼합현실을 만들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다(관련 자료는 여기 참조).

다음으로 사용자 행동이 가상 공간에 반영되게 되려면 사용자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센서와 이를 전달해 움직임의 결과 상황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가상의 공간에서 어떤 물체를 움직인다고 하자. 이는 신체의 물리적 움직임이 객관적 대상의 위치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반 물리적 과정과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로 진행된다. 사용자가 물리적 힘을 가할 때 그 정보를 파악해 그 힘이 작용하는 대로 가상의 물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우리 눈에 정보를 쏴주는 것이다. 차이는 이때 객관적 대상이 실제 물체가 아니라 가상의 물체란 것뿐이다.

물론 혼합현실 프로그램 과정은 여느 물리적 과정과 다르다.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같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단 사실이다. 사용자와 물체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포착, 같은 프로그램에 로그인된 타인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사람들도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관련 동영상 ‘혼합현실의 세계를 가능케 하다’ 내용은 아래 영상 참조).

Mixed Reality 의 가상모습▲혼합현실의 원리 이해를 돕는 동영상 ‘혼합현실의 세계를 가능케 하다’의 한 장면

마지막으로, 이 모든 장비는 사용자가 착용하고 일상적 활동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만큼 구조적으로 간단하고 가벼워야 한다(기술 혁신이 가장 많이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혼합현실 영상 제작에 활용되는 '라이트 필드 촬영 기법'의 원리

이를 위해 다양한 혁신적 기술의 조합이 이뤄지고 있다. △종전처럼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는 기법이 아니라 수많은 마이크로 렌즈를 통해 피사체가 내는 빛을 포착, 사용자 눈에 투사하는 ‘라이트필드 촬영 기술’ △기존처럼 소리를 구성, 스피커로 내보내는 오디오 패러다임이 아니라 신체로 전달되는 신호를 소리로 재생하는 기술(이와 관련된 사례로 삼성전자가 지원한 스타트업 중 하나인 ‘팁톡’이 있다. 2015년 8월 26일자 스페셜 리포트 “도전과 혁신은 최고의 가치! 파격적 스타트업 지원 시작한 삼성전자” 참조)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구체적 꿈을 꿀 수 있는 세상’ 향해

온라인 시장조사기관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혼합현실 시장 규모는 지난해 4800만 달러(약 55억 원) 선이었다. 2020년이면 4억5300만 달러(약 515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증강현실 기술을 더욱 확대하며 가상현실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현실과의 인터랙션 요소를 강화한 이 기술의 응용은 △교육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컨설팅 △건축 △토목 △물류 △에너지와 환경 관리 △의료 △군사 등 다방면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다.

혼합현실 속에서 고글을 쓰고 공유하는 사람들

상상력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자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상상력은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한계에 갇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내 머릿속에서 그리는 모습을 타인은 알 수 없는 것이다. 현실엔 없는 상상이지만 모든 사람과 공유하며 한 걸음 더 나갈 순 없을까? “모두가 함께 구체적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혼합현실 기술 개발자들은 노력하고 있다.

웹 전성시대, 저널리즘은 지각 변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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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 제시카 스탈 오늘, 워싱턴포스트(Washingtonpost)는 레딧(Reddit)에 공개 게시판을 론칭한다. 이 새로운 공간은 워싱턴포스트가 레딧의 열성 사용자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토론을 이끌어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만나고자 합니다. 여기엔 2700만 레딧 사용자, 그중에서도 레딧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매일 찾아보는 독자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레딧 사용자들이 대화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커뮤니티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겁니다. 우리 콘텐츠를 위한 ‘새로운 집’으로 만들어 최고의 저널리즘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지난달 17일(현지 시각)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블로그에 올라온 이 글은 전 세계적으로 적잖은 화제를 낳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워싱턴포스트는 14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내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일간지이기 때문. 그런 신문이 자사가 직접 운영하지도 않는 독립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기사를 유통하겠다, 고 선언한 것이다.

페이퍼 저널리즘, ‘닷컴’ 서비스에 눈뜨기까지

신문지

따지고 보면 저널리즘이 온라인 매체를 이용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퍼스널 컴퓨터(PC) 사용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에 이미 상당수의 컴퓨터 서비스 업체가 신문∙방송 등 주요 뉴스 매체와 손잡고 PC 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다. △컴퓨서브(CompuServe)[1] △프로디지(Prodigy)[2] △AOL(America OnLine)[3] 등이 각종 뉴스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 제공했으며 얼마 후 국내에서도 하이텔[4]∙천리안[5] 등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뉴스 서비스를 선보였다.

본격적인 웹(web) 시대는 1990년대 들어 인터넷이 보급되고 1995년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이 확대되며 막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뉴스 콘텐츠는 자연스레 온라인 콘텐츠 중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이런 흐름을 타고 한편에선 인터넷 전용 뉴스 대행사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출현엔 사옥과 윤전기, 보급소 등 어떤 것도 필요 없었다. 뉴스를 수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걸 기사화해 온라인에 업로드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추면 됐다. 이후 네이버∙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도 다양한 언론사 뉴스를 편집해 올리기 시작했다. 구글은 아예 ‘선호도에 따라 자동으로 순위가 정해지는’ 뉴스 검색 알고리즘을 탑재,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는 뉴스를 공급하고 나섰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흐름이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당연히 기존 매체들이었다. 실제로 세기 말 직전 유행했던 미래 예측론 중에서도 ‘페이퍼 저널리즘(paper journalism)’은 ‘21세기에 사라질 직업’ 목록의 최상단을 장식하곤 했다. 20세기 후반, 그야말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둘렀던 주류 신문사와 방송사는 일약 “급변하는 뉴스 생태계에서 변신을 도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사가 앞다퉈 사내에 디지털 뉴스 체계를 구축했다. 앞서가는 곳 몇몇은 아예 매체명에 ‘닷컴(.com)’을 붙여 별도 온라인 뉴스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웬만한 곳에선 ‘디지털뉴스팀’을 따로 두고 운영했다.

디지털 콘텐츠

2000년대를 지나오며 변화의 속도는 한층 더 빨라지고 있다. 웹 2.0 등 날로 새로워지는 기술로 인해 온라인 교류 시스템은 점차 개방되고 있으며, 연결성(connectivity)도 강해지는 추세다. PC를 넘어 모바일 기기로 보급이 확산되며 사용자 층도 계속해서 늘었다. 뉴스 공급자 측면에서 볼 때 이런 변화는 뉴스의 생산∙유통이 더 이상 특정 중심(center)에서 이뤄지지 않고 사람과 사람 간 연결을 매개로 확산되는 걸 의미한다. 그 결과, 소비자는 ‘보다 참여적이며 이용자 중심적인 뉴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기술적 기반은 뉴스 콘텐츠 생산∙유통 측면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가능케 했다. 기존 매체 역시 그에 걸맞은 변신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어쩌다 레딧과 손 잡았을까?

‘미국 최고 일간지(워싱턴포스트)’가 ‘온라인 뉴스 전문 커뮤니티(레딧) 사용자 중 하나’로 자신의 위상을 낮춘 사건이 의미심장한 건 이 같은 흐름 때문이다. 지금껏 주류 뉴스 에이전시 중 어느 곳도 온라인 영역조차 스스로 해결하려 했지, 별도 전문 포털의 힘을 빌리려 한 적이 없었던 것. 특유의 자신감 내지 자존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현실은 엄연히 현실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고 호황을 누리던 1993년 당시 매일 120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하지만 이후 꾸준히 판매 부수가 줄어 2015년엔 40만 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반면, 2005년 서비스를 시작한 레딧은 올 들어 월 평균 5억4200만에 이르는 방문자 수를 기록 중이다. 물론 그중 워싱턴포스트 페이지를 열어보는 사람 수는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일단 접근성 측면에서만 봐도 차원이 다른 규모를 자랑한다.

워싱턴포스트 레딧 홈페이지와 갤럭시 탭S3

사실 새로운 웹 환경에 대응하려면 회사 내에 별도 인력이나 장비를 갖추기보다 이전부터 제공돼온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 2013년 파산 위기에 직면한 워싱턴포스트를 2억5000만 달러(약 2조850억 원)에 인수한 이는 제프 베조스(Jeffrey Preston Bezos)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였다. 온라인 생태계의 특성에 누구보다 정통한 그인 만큼 워싱턴포스트 인력의 뉴스 생산 능력과 명성을 온라인의 잠재력과 효율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지난 세기, 명성을 누렸던 언론사가 이처럼 눈에 띄는 결단을 내리는 사례는 최근 속속 생겨나고 있다. 1986년 창립,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고 경제 동향에 초점을 맞춰 인기를 끌었던 영국 조간 일간지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는 지난해 3월 종이 신문을 완전히 폐간하고 온라인 버전만 운영하기로 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시사 주간지 ‘타임(Time)’ 역시 지난달 13일 디지털 뉴스 시대를 맞아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전체 직원의 4%(약 300명)를 감원하는 한편, 동영상과 디지털 콘텐츠 제작∙판매 인력 채용을 확대하기로 한 것. 이와 동시에 신규 디지털 매체 ‘엑스트라 크리스피 (Extra Crispy)’를 출범하며 “올 한 해 5만 건 이상의 동영상을 제작하고 1500시간 이상의 생방송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월스트리스저널(Wall Street Journal)이나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같은 전통 잡지 업계 강자 역시 바이아웃(buy-out, 특정 기업 지분의 상당 부분 혹은 기업 자체를 인수한 후 그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식) 등으로 인원을 감축하며 디지털 자원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사업의 중심 축을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

 

‘25세 미만 모바일 뉴스 소비자’에 주목하라

모바일 뉴스

미디어 업계가 이 같은 지각 변동을 겪고 있는 배경엔 뉴스 소비 행태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소비자의 뉴스 소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이와 관련, 지난해 7월 꽤 유의미한 조사 결과 하나가 발표됐다. 싱크탱크(think tank) 대신 ‘팩트탱크(fact tank)’란 용어를 유행시킨 미국 민간 연구 단체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내놓은 보고서 ‘현대 뉴스 소비자(The Modern News Consumer)’가 그것. 대략적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현대 미국인의 뉴스 소비 행태 - 미국인 열 명 중 네 명(38%)은 온라인으로 뉴스를 본다 (TV와 라디오,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접하는 비율은 각각 57%, 25%, 20%였다) - 온라인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은 다른 매체로 뉴스를 보는 사람보다 더 적극적으로 뉴스를 찾아보는 편이며, 내용도 더 적극적으로 읽는다 - 온라인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은 기존 뉴스 미디어(언론사)에 부정적 시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 온라인에서 본 뉴스의 출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넷 중 하나 정도였는데, 온라인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출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 2013년 이후 모바일 기기로 뉴스 보는 사람 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PC 사용자 비율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 모바일과 PC를 둘 다 이용해 온라인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 중에선 모바일 선호자 비중이 더 높다 - 이상과 같은 경향은 25세 미만일 때가 25세 이상일 때보다 훨씬 뚜렷하게, 큰 비중으로 나타난다 미국 퓨리서치센터 보고서 ‘현대 뉴스 소비자(The Modern News Consumer)’(2016.7)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점점 더 많은 이가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모바일 등 일상에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뉴스를 소비한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아마존이 인수한 워싱턴포스트 정도라면 자체 디지털 뉴스팀이나 닷컴 형태의 온라인 신문사를 충분히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에도 드러났듯 급변하는 뉴스 소비 문화에서 젊은이에게 접근하려면 과거 대단했던 언론사 간판을 앞세우기보다 많은 사람이 맘 편하게 접속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방문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워싱턴포스트가 레딧의 문을 두드린 덴 이런 판단이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미디어 혁명도 전제는 ‘기술’… 변화 앞장서야

딱 500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기독교의 중요한 축일 중 하나인 만성절(All Saints Day) 전야. 검은 두건이 달린 외투를 뒤집어 쓴,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독일 동부 소도시 비텐베르크(Wittenberg) 성문에 큰 종이 한 장을 붙이고 있었다. 종이에 적힌 건 일명 ‘95개조 반박문’. 당시 국왕보다 더 큰 권력을 누리던 교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사내의 이름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훗날 종교 개혁의 불씨를 댕긴 주인공이었다.

현대 역사 교과서는 이날 루터가 손수 못 박은 이 반박문이 종교 개혁의 결정적 계기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루터와 그의 동료들이 도시 곳곳에 뿌린 반박문은 도합 6000부였다. 앞서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가 유럽 전역에 보급한 인쇄술로 상당한 분량의 글도 여러 장 복사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따지고 보면 루터의 반박문이 유럽 전역으로 파급될 수 있었던 1등 공신은 ‘기술’이었던 셈이다.

사용자의 시선을 붙드는, 잘 설계된 콘텐츠라면 단 며칠 새 수 백만 건의 조회 수를 올릴 수도 있는 세상이다. 이 같은 ‘콘텐츠 전파 원리’는 루터가 활약했던 16세기에도, 인터넷 미디어가 득세하는 21세기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要)는 “최대한 많은 이가 봤으면 하는 핵심 콘텐츠는 당대 기준으로 최신 기술을 동원해 전파하게 마련”이란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미디어가 자체 시장 조사를 벌이고 그 결과에 입각해 전략을 수립, 끊임없이 변신을 꾀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환경 급변기엔 변화의 방향을 면밀하게 읽고 그에 맞춰 변화를 선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다.


[1] 미국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PC 정보 서비스
[2] 미국 대형 소매점 시어즈로벅(Sears, Roebuck and Company)과 IBM이 함께 개발한 온라인 정보 서비스
[3] 미국 인터넷 서비스 기업
[4] 1991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제공했던 온라인 PC통신 서비스
[5] 1995년 당시 데이콤이 제공했던 온라인 PC통신 서비스


4차 산업혁명, 한마디로 요약하면 ‘디지털-피지컬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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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

디지털-피지컬 통합

초읽기 들어간 제4차 산업혁명

위 도표는 지난해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연례회의 결과 보고서를 요약한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세계 각국 석학들은 향후 세계 경제의 흐름을 “제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는 과정”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과정에서 핵심 개념으로 등장한 게 바로 ‘디지털-피지컬 통합(digital-physical integration)’이었다(이와 관련, 보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해 12월 7일 자 스페셜 리포트 ‘디지털, 세상을 뒤집다 ②경제·경영_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를 참조할 것).

디지털 기기와 (그 인프라 역할을 담당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개발은 제3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TV나 음향 기기, 시계 등 아날로그적 기계 패러다임으로 제조되던 기기가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컴퓨터 등 독립적 정보통신 기기를 활용한 정보 교류가 활성화되는 수준에 그쳤다. 다시 말해 이 시기 디지털은 인간의 삶에서 ‘개별적으로 이용되는’ 아이템에 불과했다.

4차 산업혁명이 3차 산업혁명과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다. 디지털이 더 이상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일상에 통합되는 존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디지털 영역과 물리적(physical) 영역이 통합돼 새로운 시스템을 창출한단 얘기다. 대체 이건 무슨 의미일까?

첨단 IT 기술, 물리적 공간으로 녹아 들어가다

‘디지털’의 어원은 ‘손가락(혹은 발가락)’을 지칭하는 라틴어 ‘디기투스(digitus)’다. 그런데 이 말이 오늘날처럼 ‘컴퓨터를 근간으로 하는 정보통신 기술 세계’를 가리키는 용어가 된 연유를 둘러싸곤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혹자는 “열 손가락을 전부 사용해 컴퓨터에 뭔가를 지시하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0’과 ‘1’ 등 두 개의 숫자(digit)로 모든 작업이 이뤄진단 의미의 영어 표현(‘two-digital operation’)에서 ‘둘(two)’이란 뜻이 빠지면서 현재 꼴을 갖추게 됐단 설(說)도 있다. 유래야 어찌됐든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그게 일상에서 점점 더 폭넓게 활용되면서 디지털이란 말의 의미도 날로 풍부해져 왔다.

이번엔 ‘피지컬’의 유래를 따져볼 차례다. 역시 라틴어로 ‘자연’을 뜻하는 ‘피지쿠스(physicus)’에서 유래된 이 단어는 중세 유럽에서 ‘물질’이란 의미로 특화돼 쓰였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 피지컬은 (정신과 대조되는) 육체다. 또 세상에서 피지컬이란 가시(可視)적 물질로 구성된 부분, 즉 일상의 현실 세계를 가리킨다.

디지털-피지컬 통합
결국 디지털-피지컬 통합은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실제 물리적 공간에서의 삶에 녹아 들어가 새로운 시스템으로 거듭나는 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기엔 이런 현상이 인류의 경제 활동 전반으로 확산될 거란 얘기다. 실제로 ‘2016 세계경제포럼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세계 각국의 선도적 연구자와 기업은 디지털-피지컬 통합의 구체적 진행 상황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1억5400만 쇼핑 인구, 매장 찾은 이는 44%뿐?

디지털-피지컬 통합이 가장 눈에 띄게 구현되는 분야는 단연 ‘쇼핑’이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일명 ‘쇼핑몰’로 불리는 물리적 쇼핑 공간이 한산해진 지 오래다. 물론 쇼핑 시장 규모 자체가 줄어든 건 아니다. IBM사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추수감사절 주말에 쇼핑으로 시간을 보낸 소비자는 1억5400만 명이었다. 전년도에 비해 300만 명이나 늘어난 숫자다. 하지만 이중 실제 매장을 찾아 쇼핑에 나선 비중은 44%에 불과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체감된’ 경기는 1년 전보다 절반 이상 나빴던 셈이다.

이런 현상이 비단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요즘 쇼핑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 경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요즘 소비자는 온라인에서 산 옷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환불(혹은 교환) 받는가 하면,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서도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 관련 정보를 검색하며 매장에 진열된 제품 사양과 꼼꼼히 비교한다. 온라인상에서의 매장 정보 통합이 가능해져 고객이 원하는 색상과 크기의 옷을 저 멀리 떨어진 매장에서 택배로 받아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는 이제 흔한 게 됐다.

온라인 쇼핑하는 모습

소비자 입장에서 ‘보다 편리한 맞춤형 서비스’는 그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업계의 지각 변동을 의미한다. 미국의 인기 여성 의류 브랜드 ‘더 리미티드(The Limited)’는 250개에 이르는 오프라인 매장을 전부 폐쇄하고 4000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하지만 사업 자체를 접은 건 아니었다. 온라인 쇼핑몰 웹사이트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쇼핑 시스템은 더 강화했기 때문이다. 시어즈∙메이시즈 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 백화점도 이런 추세를 비껴가진 못했다. 2017년 7월 현재 시어즈는 150개 지점을, 메이시즈는 100개 지점을 각각 폐쇄할 예정인 걸로 알려졌다.

폐쇄 조치 이후 남은 오프라인 매장은 대부분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형태로 바뀔 전망이다. 기업들은 여기에 최신 IT 기술을 접목, 새로운 고객 유치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세련된 디지털 사이니지로 고객의 눈길을 끄는가 하면, 최근엔 후방 카메라와 디지털 미러로 고객이 옷 입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을 갖춘 매장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증강현실(AR) 기법을 활용, 자신의 집에 특정 가구나 커튼, 카페트 등 인테리어 아이템이 잘 어울리는지 미리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쇼핑 공간에서의 디지털-피지컬 통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기술과 결합, ‘커넥티드 스토어(connected store)’로 변모하는 매장이 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요즘 매장들은 디지털 사이니지에 실시간 영상을 쏴 고객에게 생동감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고객이 힘들게 카트를 끄는 대신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활용, 원하는 상품을 ‘디지털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계산대에서 바로 받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역시 증강현실을 활용, 옷을 사기 위해 실제로 입고 벗을 필요조차 없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주는 서비스도 꽤 많은 의류 매장에서 제공되는 실정이다.

증강현실 쇼핑

IoT 구현 범위, ‘인간 활동 전반’으로 확장하면…

디지털-피지컬 통합은 쉽게 말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사물인터넷의 속성’이다. 모든 게 연결된(connected) 세상에선 ‘디지털 신호가 물질들을 움직여 물리적 차원의 작용을 일으키는’ 과정 일체를 디지털-피지컬 통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물인터넷은 문(door)이나 자동차, 조명 등 그야말로 ‘사물’에 그 작용이 구현되는 것이며, 디지털-피지컬 통합은 그보다 더 폭넓게 인간 활동 세계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여행 상품에서의 디지털-피지컬 통합도 가능하다. 황금연휴를 이용해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여행사에 들러 하는 행동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과거 여행 상품을 결정하기 전 고객이 참조하는 정보는 여행사 직원이 보여주는 상품 팸플릿과 관련 설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풍경은 이제까지와 사뭇 달라질 게 분명하다. 여행사를 찾은 고객은 사무실에 비치된 가상현실(VR) 고글을 쓰고 편안한 라운지 체어에 누워 눈앞에 펼쳐지는 휴양지의 풍광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을 즐기다 해변가에 위치한 호텔에 들어가 방을 둘러본 후 ‘여기다!’ 싶을 때 손에 쥔 디지털 스틱의 버튼을 누르면 선택 완료.

고글을 벗으면 여행사 직원은 앞 벽면에 걸린 프로젝터로 방금 고객이 선택한 숙박소와 관광지 관련 정보를 모두 보여준다. 교통편과 가격, 유의할 점 등을 꼼꼼히 점검한 후 최종 결정을 내리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그 사이, 빅데이터는 고객이 편리한 시간대에 맞춰 모든 일정과 정보를 자동으로 정리, 고객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VR로 여행지를 고르는 남자

디지털-피지컬 통합이 꽤 활성화돼 있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분야는 ‘헬스케어(healthcare)’다. 21세기 소비자는 건강이 ‘질병 치료’에 그치지 않는단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바이오리듬을 점검한 후 직장이나 집에서의 작업 시간과 환경, 여가 활용법 등의 생활 습관과 통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 일정을 관리해주는 한편, 건강 상태와 계절 흐름에 따라 적절한 식단까지 조언해주는 ‘토탈 헬스케어 시스템’이야말로 디지털-피지컬 통합의 가장 이상적 형태일 것이다.

굳이 자명종을 맞춰놓지 않아도 아침 적정 시각에 깨워주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운동을 유도하며, 운동 도중 좋아하는 음악을 딱딱 맞춰 재생하는가 하면, 영양 정보를 고려한 아침 식사까지 배달해주는 스마트폰 연동 애플리케이션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디지털’ 차원에서 기획돼 ‘피지컬’ 일상을 움직이는 이런 기술이야말로 고단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동반자 겸 지원군일 것이다.

디지털-피지컬 통합이 접목될 수 있는 분야는 이 밖에도 많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만 해도 교육·물류·교통·콘텐츠 등 다양하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물리적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으며, 사이사이 디지털이 결합될 여지가 풍부하단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기대된다

‘우리가 하는 일’ 아닌 ‘우리 자신’을 바꾸는 과정

“4차 산업혁명의 특성은 우리가 하는 일을 바꾸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을 바꿉니다.”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제까지 살펴본 내용은 슈밥 회장 표현에 비춰보면 ‘우리가 하는 일’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바꾼다’는 말의 의미는 뭘까?

언뜻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 생각이나 지향점도 달라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디지털-피지컬 통합 기술 진전은 이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변화를 시사한다. 이를테면 인체 기능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방향으로 IT 기술을 활용하는 건 어떨까?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 내장 기관을 만들어 시술하는 시나리오도 떠올릴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만들어낸 인공 내장 기관은 임상실험 결과, 이전까지의 대체 장기에 비해 거부(면역) 반응이 없는 걸로 보고되고 있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피지컬이란 말의 의미가 세상의 물질적 부분에 대한 적용뿐 아니라 인체에 대한 적용을 의미하기도 하니 이런 현상의 등장은 놀라운 것도 아니다.

벌써 몇백만 년째 지구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인간. 그 시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갖가지 노하우를 개발,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그런 기술의 누적이 인류의 존재 자체를 바꾸는 과정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4차산업혁명시대도 인류가 기술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인간은 늘 준비돼 있었다. 신기술을 빨리 채택하고 앞서가는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기술을 신중하게 살펴보는 것에 대해서도. 빠른 속도로 인류를 압도해갈 4차 산업혁명, 그리고 그 핵심 키워드로 꼽히는 디지털-피지컬 통합 과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술의 주인은 인간일 테니 말이다.

심사위원 4인이 말하는 ‘삼성 스마트스쿨,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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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심사위원 4인이 말하는 ‘삼성 스마트스쿨,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

지난 6일 삼성 스마트스쿨 지원 사업 선정 기관 후보 열다섯 곳이 공개됐다.
올해 선정된 후보는 전국 초∙중∙고교와 교육 시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게 특징. 오는 24일까지
삼성 스마트스쿨 홈페이지에 접속, 각 기관을 온라인으로 응원할 수 있으며 1만 회 이상 응원 받은 기관은 스마트스쿨로 최종 선정된다. 가장 많은 응원을 받은 세 곳엔 삼성전자 임직원이 직접 진행하는 ‘무료 소프트웨어 교육’ 기회도 제공된다.

삼성 스마트스쿨은 자사 보유 IT 기술을 활용,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12년부터 삼성전자가 펼치고 있는 사회공헌 사업이다. 첨단 교실 환경이 낯설 소외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태블릿(갤럭시 탭)과 전자칠판, 무선 네트워크 교육 환경 등을 제공하는 게 골자. 지난해까지 모두 50개 학교와 교육 시설(총 123개 학급)이 혜택을 받았다.

교육 전문가들은 삼성 스마트스쿨에 대해 “교육 사각(死角)지대에 놓여있던 지역 사회 어린이와 청소년을 도심, 더 나아가 세계와 연결시켜준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한다. 말하자면 ‘디지털 연결성(digital connectivity)을 통한 교육 격차 해소’인 셈이다. 올해 삼성 스마트스쿨 사업의 심사와 평가를 맡은 심사위원 4인을 만나 좀 더 깊이 있는 얘길 들었다.

2017 삼성 스마트스쿨 심사위원(가나다순)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김종무 국립특수교육원 과장 김혜정 중앙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옥경원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대표

 

Q. 올해로 6년째 시행… 성과 자평(自評)한다면 
A. 세분화된 교육 가능해지고 디지털 접근성도 강화

옥경원 대표(이하 ‘옥경원’) 삼성 스마트스쿨은 지금껏 소득이나 주거 환경, 건강 등의 이유로 제도권 교육 환경에서 소외됐던 이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단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단계별·수준별 교육이 가능해진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죠. 똑같은 교육 환경이 제공되더라도 교사와 학생의 활용 역량이나 상호 작용 정도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점을 감안한다 해도 기존 천편일률적 교육 체계를 벗어나 보다 세분화된 교육을 시행할 수 있게 된 건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김종무 과장(이하 ‘김종무’)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 학교나 학생의 경우, 국가 행정력이 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삼성전자 같은 민간기업이 교육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그 간극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일도 없죠. 가끔은 민간 사업이 국가 교육 방향을 선도하고 있단 느낌도 받습니다. 교육 정책에 일정 부분 관여하고 있는 입장에서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도 적지 않고요.

김혜정 교수(이하 ‘김혜정’) 맞습니다. 사실 이제껏 기업 차원에서 교육에 이 정도의 자본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경우는 드물었죠. 수혜 학교 입장에선 달라진 수업을 통해 더 큰 세상을 학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어요. 그래서일까요, 올해 스마트스쿨 사업의 문을 두드린 교사들은 하나같이 ‘디지털 시설을 활용한 수업 활동’에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갖고 계시더군요.

김성회 대표(이하 ‘김성회’) 삼성 스마트스쿨의 핵심은 저소득층 혹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IT 시스템을 지원해주는 데 있습니다. 하드웨어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없었던 아이들 입장에선 ‘디지털 접근성’이 그만큼 강화되는 역할을 하죠. 실제로 올해 심사 과정에서 신청 기관들이 제출한 기획안 중에서도 디지털 접근성 부문에 갈증을 느끼는 지역아동센터나 다문화센터 등의 지원이 많았습니다.

 

Q. 디지털 교육 환경, 실제 순기능은 얼마나
A. 장애·
다문화가정 학습자에게 특히 효과 탁월

옥경원 삼성 스마트스쿨은 디지털 콘텐츠를 접해볼 기회가 적은 장애∙빈곤층 학습자 대상 교육 효과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다양한 콘텐츠로 학습 목표에 쉬이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동감 있는 시청각 자료나 데이터베이스 활용을 통해 학습자 스스로 높은 흥미를 갖고 학습에 임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김종무 특히 장애 학습자가 누리는 효과는 상당합니다. 실제로 IT 기술이 장애 학습자에게 제공하는 효과를 검증한 연구 결과도 있을 만큼 IT는 최근 특수교육계의 주요 화두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장애 학습자는 주의 집중 시간이 짧고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교사가 아무리 소명의식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다 해도 하나의 콘텐츠를 지치지 않고 무한정 반복해 가르치긴 어렵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디지털 기반’ 환경이 갖춰진다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애니메이션과 게임 같은 걸로 학습자의 흥미를 지속시키며 수업을 반복할 수 있죠.

▲인터뷰에 응한 심사위원들은 “삼성 스마트스쿨이 불러올 긍정적 교육 효과는 무궁무진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김종무(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 과장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활동적 학습을 좋아하는데 이제까지의 수업은 이런저런 제약으로 쓰기∙읽기 위주였던 게 사실”이라며 “이런 환경에 익숙해있던 아이들에게 삼성 스마트스쿨은 그야말로 새로운 교육 경험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회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성장하며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사실 언어는 이 아이들의 최대 경쟁력 중 하나예요.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건 한국 사회에서 또 다른 사회·경제적 기회를 열어주니까요. 그런데도 정작 이들 앞에 놓인 환경은 이중언어 교육을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못합니다. 만약 보다 많은 다문화가정 아이가 삼성 스마트스쿨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잠재적 경쟁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김혜정 올해 스마트스쿨 대상 후보를 선정하며 가장 신경 쓴 건 ‘교육 격차 해소 여부’였습니다. 교육 격차 해소는 삼성전자 사회공헌사무국이 삼성 스마트스쿨 사업 시행 초기부터 지향해온 목표이기도 해요. 절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삼성 스마트스쿨이 교육 사각지대 학습자에게 한층 강화된 디지털 접근성을 제공, 그들이 좀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심사 시 소득 격차 하위 그룹 지역 소재 기관에 가산점을 더 준 것도 그 때문이었고요.

 

Q. 올해 심사 도중 특히 눈에 띄었던 지원자는
A. 휴전선 인근 고교, 병원학교 등 스펙트럼 넓어져

옥경원 올해 지원자 중에선 강원 인제 귀둔초등학교 기획안이 기억에 남습니다. 외진 곳에 위치한데다 전교생 수도 많지 않아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접하기엔 여러모로 물리적 제약이 있는 학교였죠. 기획안을 제출한 교사의 열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특히 자칫 ‘비인격적 관계 형성’이란 우려가 제기될 수 있는 디지털 교육 환경 조성에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이란) 인간적 상호 작용을 접목, 삼성 스마트스쿨의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 점이 좋았습니다.

스마트스쿨 수업을 듣는 학생들▲지난해 삼성 스마트스쿨로 최종 선정된 한국외식과학고등학교의 시범 영어 수업 장면. 이 학교는 지난달 2일 개소식을 열고 삼성 스마트스쿨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가동 중이다

김종무 전 경기 파주 문산수억고등학교 기획안이 생각나네요. 휴전선 인근이라는, 환경적으로 상당히 고립된 입지에도 “삼성 스마트스쿨을 통해 세계 각국 학교나 교육 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해보겠다”는 목표가 뚜렷해 눈에 띄었습니다. “삼성 스마트스쿨을 잘만 활용하면 우리 학교 학생들이 도심 지역 아이들보다 외려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 묘하게 설득력 있더라고요.

김성회 영남대학교병원학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병원학교는 장기(3개월 이상) 입원으로 교육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 기관인데요. 저도 이번 심사에 참여하기 전엔 병원학교란 게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정상적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화상 강의 등의 디지털 수업을 제공, 누락 없이 상급 학교(학년)로 진급할 수 있도록 돕겠단 취지가 절 비롯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죠.

 

Q. ‘디지털 교실 구축’ 이상의 의의 찾는다면
A. 학습자에겐 ‘가능성’, 지역사회엔 ‘활기’ 각각 선사

김혜정 학습자 입장에선 이전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단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다시 말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특정 정보를 접하는 경험은 어린 학습자에게 무척 소중합니다. 삼성 스마트스쿨은 ‘가르칠 사람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교육 환경 속 아이들에게 적어도 배울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탄생한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알기로 삼성전자는 최종 선정 교육 기관 중 일부에 자사 임직원으로 구성된 봉사단을 투입, 실제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지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은 향후 인생을 뒤흔들 수도 있을 만큼의 가치를 지녀요.

스마트스쿨의 IT기기를 이용하는 학생▲삼성 스마트스쿨에 선정된 교육 기관 중 일부엔 ‘삼성전자 임직원 봉사단이 직접 진행하는 수업’의 특전도 제공된다. 왼쪽 사진은 곽혜랑(무선사업부 개발1실, 왼쪽)씨와 장재준(종합기술원 소재연구센터)씨가 경남 함양 안의중학교 학생들을 위해 화상 수업을 진행 중인 모습. 이들의 수업 내용은 디지털 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안의중 재학생들에게 전달됐다

김종무 삼성 스마트스쿨로 최종 선정되면 삼성전자는 현지 환경을 철저히 분석, ‘맞춤형 인프라’를 구축해줍니다. 흥미로운 건 삼성 스마트스쿨이 해당 교육 기관뿐 아니라 주변 지역 사회와 인근 주민에게까지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단 사실입니다. 실제로 저희에게 접수된 기획안 중 상당수에서도 그런 기대와 희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삼성 스마트스쿨을 유치해 우리 학교(기관)를 살리고 더 나아가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포부 말이죠. 그러고 보면 삼성 스마트스쿨은 그저 첨단 교실 몇 개 만드는 프로젝트, 그 이상입니다. 교육으로 지역 사회를 아우르는 프로젝트라고나 할까요?

 

Q. 최종 선정 기관에 ‘효과적 활용 요령’ 귀띔한다면
A. 도구는 거들 뿐… 제일 중요한 건 교사와의 상호 작용

옥경원 온라인 응원을 거쳐 삼성 스마트스쿨로 최종 선정된 학교나 기관, 특히 교사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 도구를 쥐여준다고 해서 학습이 저절로 이뤄지는 건 절대 아닙니다. 스마트 도구를 매개로 학생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충분히 고민해주세요. 디지털 수업을 통해 아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지도 정교하게 계획하시고요. 단순히 스마트 기기 좀 다루는 것만으로 교사의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김종무 삼성 스마트스쿨의 성패는 교사 한두 명의 역량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해당 사업에 동참하게 될 학교(기관) 구성원 전체의 열정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또 지역색을 충분히 살려 지역사회 특성과 상황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 구현하는 데 집중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Q. 향후엔 이런 부분에도 좀 더 신경 써주길
A. ‘감성적 상호작용’에 관심을… 해외에서도 확대 시행됐으면

스마트스쿨 심사위원-4컷

김혜정 지난 6년간 삼성 스마트스쿨이 매해 교사와 현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은 칭찬해주고 싶어요.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심사 단계에서부터 교육 공간과 주체에 대한 고려가 더해지는 건 어떨까요? 이를테면 지원 교사에게 공간 설계 가능성을 부여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옥경원 4차 산업혁명이 전(全)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삼성 스마트스쿨 같은 프로젝트의 위상은 점차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첨단 기술이 속속 등장하는 시대인 만큼 그에 걸맞은 IT 도구에 익숙해지는 것 역시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경향은 자칫 인간성이나 기타 윤리적 덕목을 도외시하거나 왜곡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삼성 스마트스쿨은 최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만으론 달성하기 어려운 ‘감성적 상호작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수한 콘텐츠를 토대로 하되, 그 위에 인간 간 상호 교감과 공동체 의식 같은 게 더해져야 한단 얘기죠.

김성회 아직 ‘국내’로 지원 범위가 한정돼 있는 삼성 스마트스쿨이 조만간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산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상당한 자원 투입이 불가피하겠지만 성공한다면 지구촌을 아우르는 사회공헌 활동의 좋은 모델이 되지 않을까요?

2017 삼성 스마트스쿨 후보 기관 응원, 여러분도 동참해주세요(7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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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하지만 확실히 시작된 ‘아날로그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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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타이틀

그야말로 디지털 세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모바일·디지털 기기다. 사람들은 종이 신문 대신 모바일 기기나 PC로 뉴스를 접한다. 음악을 감상할 때에도 카세트테이프나 CD 대신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 접속한다. 지도를 펼치기보다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고, 친척과 둘러앉아 명절에나 하던 게임을 휴대전화로 언제든 즐긴다.

‘너무 빠르고 전면적인’ 디지털 물결이 두려운 사람들

급격한 디지털화(化)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영국 소셜 미디어 전문 기업 ‘위아소셜(We Are Social)’에 의하면 2017년 1월 현재 세계 인구는 74억7600만 명. 그중 약 절반(37억7300만 명)이 인터넷을, 37%(27억8900만 명)가 소셜 미디어를 활발하게 쓰고 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사용자는 66%(49억1700만 명)에 이르며 모바일 기기로 소셜 미디어를 즐기는 사람은 34%(25억4900만 명)다.

지금, 지구는 급속도로 디지털화 중! 인터넷 사용인구

이 같은 추세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 2016년 한 해 동안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사용자 수는 각각 10%와 5% 증가했다. 사실 전체 규모를 떠올리면 이것만 해도 엄청난데 소셜 미디어 사용자 전체(21%)와 모바일로 소셜 미디어를 즐기는 인구(30%)의 증가세는 더 가파르다. 웬만한 사람은 누구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이를 통해 세상과 활발히 연결돼 있다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디지털 물결이 세상을 휩쓸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일상도 일파만파로 달라지고 있다. 대규모 변화가 갑자기 감지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일단 경계하고 본다. ‘뭐가 또 잘못돼가고 있는 건 아닐까?’ 덜컥 걱정부터 앞선다. 너무 빠르고 전면적인 변화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높다. 가장 첨예한 관심사는 역시 ‘먹고 사는’ 일, 즉 생계다.

올봄 출간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책 중 ‘2030 고용절벽 시대가 온다’가 있다. 일본 경제학자 이노우에 도모히로(井上智洋)가 쓴 이 저서를 관통하는 메시지 역시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대한 경고’였다. ‘4차 산업 혁명은 일자리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란 부제가 붙은 책은 디지털 세상(digitalized world)을 사는 현대인의 마음속 은밀한 불안을 대변했다. (삼성전자 뉴스룸 역시 지난 5월 10일자 스페셜 리포트 ‘4차 산업혁명 시대, 내 일자리는 무사할까?’를 통해 이 책이 제시한 질문과 그 타당성 여부를 검토한 적이 있다.)

LP·종이·필름… 디지털화되지 않은 ‘진짜 사물’이 온다

그런데 ‘2030 고용절벽…’보다 더 근본적으로 디지털 세상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보이는 책 한 권이 최근 출간됐다. 캐나다 출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데이비스 색스(David Sax)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어크로스)가 그것. 한국어판 제목엔 ‘반격’이란 단어가 쓰였지만 원제(‘The Revenge of Analog’)를 직역하면 ‘아날로그의 복수’가 돼 느낌이 한층 강해진다. 부제는 ‘Real Things and Why They Matter’, 즉 ‘진짜 사물과 그들이 중요한 이유’다. 여기서 ‘진짜 사물(Real Things)’이란 디지털화되지 않은 아날로그적 사물을 뜻한다. 뒤집어 말하면 ‘디지털화된 건 진짜 사물이 아니다’란 뉘앙스도 포함한다.

아날로그의 물건들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을 앞세운 이 책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고 있는 듯 느껴지는 요즘 세상에서 보란 듯이 건재를 과시하는 아날로그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조명한다. △레코드판 △종이 △필름 △보드게임 △인쇄물 △오프라인(매장) △일(로봇이 아닌 인간 노동자) △학교(스마트 기기가 아닌 인간 교사) △실리콘밸리(디지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제조 기업의 아날로그적 기업 문화) 등 아홉 가지 분야 키워드를 중심으로 ‘브레이크 없이 디지털로 향해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기세로 살아나는’ 아날로그적 요소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반격’까진 몰라도 아날로그의 ‘부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플라스틱 LP(Long Playing) 열풍이다. 책에서 ‘스마트폰을 탈출한 미래 세대의 음악’이란 소제목과 함께 등장하는 이 장의 주인공은 ‘유나이티드레코드프레싱(URP)’. 미국 테네시주(州) 내시빌에 위치한 LP 제작 공장이다.

1949년 설립, 한때 하루에만 수십 만 장의 음반을 찍어냈던 이 공장은 1990년대 CD와 인터넷 스트리밍 음악에 치여 고용 인원을 대폭 감축해야 했다. 공장주는 대출을 받아가며 하루 평균 몇 천 장의 LP를 근근이 찍어내며 버텼다. 상황이 역전된 건 2010년. 매출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더니 2015년엔 직원 수가 가장 적을 때의 3배까지 늘었다. 요즘 이곳은 주 6일(일요일 제외) 하루 24시간 쉼 없이 가동된다. 쏟아지는 주문량을 제때 소화,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다.

‘레코드 부활’의 조짐이 비단 URP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니다. 유럽의 한 LP 공장주는 2015년 생산된 LP 수를 3000만 장 이상으로 추산했다. LP 수요 급증을 체감하게 하는 건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 도시인 내시빌을 비롯, 세계 각국 대도시와 문화 중심지를 중심으로 늘고 있는 LP 소매점. 색스는 오늘날 LP 구매 고객 대부분이 10대와 20대, 여성에 치우쳐 있단 사실에서 “LP 관련 수요는 향후 더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단언한다. 정말 그의 말대로 아날로그는 되살아나 디지털에 대한 반격을 시작한 걸까? 그 기세에 (설마!) 디지털이 휘청거리고 심한 경우 쓰러져 패배할 수도 있게 될까?

‘디지털 경도 사회’ 속 현대인, 그들의 인생 균형 잡기

올 1월, 삼성전자 뉴스룸은 ‘디지털 세상을 뒤집다 ⑤몸과 마음_인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란 제목의 스페셜 리포트에서 ‘퀴블러-로스 변화 곡선(The Kübler-Ross change curve)’<아래 참조>을 소개한 적이 있다. 스위스 출신 미국 정신병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zabeth Kubler-Ross, 1926~2004)가 제안한 이 개념은 강도가 높거나 규모가 큰 변화를 겪는 인간 심리 상태 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당시엔 ‘디지털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으로 활용됐다). 오늘날, 특히 기업 경영에서 인간 심리를 설명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로 요긴하게 참조되는 이론이기도 하다.

퀴블러 곡선

인간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변화 앞에서 일단 ‘충격’을 받는다. 그 다음엔 달라진 상황에 대해 “이건 분명 사실이 아닐 것”이라 ‘부정’하며 그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 수집에 나선다. 그러다 아무리 봐도 변화가 지속되고 있단 사실이 확실해지면 그 사실에 ‘좌절’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 단계에서 분노가 일어나는데 그때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면 에너지 부족 상태에 빠진 후 깊은 침체기로 들어가며 ‘우울’해진다. 그 상태로 일정 시간이 흐르면 다시 에너지가 모이면서 무수한 ‘실험’과 ‘결정’을 통해 새로운 상황에서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간다. 그 결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의 ‘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디지털 경도(傾倒)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에 퀴블러-로스 변화 곡선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최근 수십 년간 디지털화가 급물살을 탄 건 주도하는 쪽(공급자)과 호응하는 쪽(수요자) 간 호흡이 제법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수요자가 그 기간 중 일어난 변화를 두 팔 벌려 환호한 건 결코 아니다. 고용절벽이니, 아날로그의 반격이니 하는 키워드를 녹여낸 책이 서점가에서 심상찮은 호응을 얻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은 충분히 입증된다.

명상 용어 ‘마음챙김’ 유행, 왜 실리콘밸리서 시작됐을까?

아날로그와 디지털

새로운 흐름이 이전 흐름의 단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는 인류 역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 중 하나다. 신기술은 이전 기술을 어느 정도 대체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양자는 ‘보완적 공존’ 형태로 존재한다. 5000년 전 쓰인 걸로 간주되는 신석기시대 돌(石) 가공법 중 일부가 현대 첨단 산업에서 응용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석기시대가 끝나고 청동기시대가 시작됐을 때에도, 청동기시대가 퇴장하고 철기시대가 막을 올렸을 때에도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안온했던 지금까지의 세상이 새 시대 도래와 함께 무너져버리면 어쩌지?’ 제1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생겨난 러다이트 운동[1]이 대표적 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 삶이 기계 때문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기계는 인간이 지정했거나 피하고 싶은, 단순하고 위험하며 힘든 작업에 주로 투입된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지속적 관리와 보수는 반드시 필요하다. 보다 효율적 작업을 수행하려면 끊임없는 개발과 혁신도 병행돼야 한다. 그 작업은 모두 인간의 몫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

디지털 기술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인간 사회를 확 뒤집어놓을 정도로 강렬한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관찰하면 그중 상당수는 아날로그적 요소와의 공존을 통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데이비드 색스의 책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은 (‘아날로그의 무조건적 반격’이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로운 공존’을 말하고 있단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아날로그 기반 상품이나 아이디어의 부활 사례는 예외 없이 ‘디지털 문화 확산’ 덕에 더 큰 힘을 받았다. 2007년 이후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LP 산업 부흥의 1등 공신도 인터넷이었다. “좀 무겁거나 거추장스러워도 바늘이 홈을 건드리며 내는 소리 울림이 좋다”는 소비자는 처음부터 소수였다. 이들 ‘LP 마니아’가 인터넷으로 본인이 원하는 LP를 검색하고 구매하는 과정이 확산되며 아날로그 음악을 ‘제2의 전성기’로 이끈 것이다.

색스의 책 마지막 장 ‘실리콘밸리; 낮에는 코딩, 밤에는 수제 맥주’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이상적 공존’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실제로 이 장에 등장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골드칼라들은 ‘디지털 문화의 선도자’란 별칭에 어울리지 않게 (디지털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업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대체로 아날로그(적 행위)에 할애한다.

명상 열풍, 실리콘밸리로부터 시작됐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명상의 일종인 ‘마음챙김(mindfulness)’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단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명상이야말로 반박하기 힘든 아날로그적 행위의 대표 격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올봄 경북 영덕군에 ‘삼성전자영덕연수원’을 짓고 마음챙김 명상으로 임직원 심리 건강을 돌보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나섰다.) 어쩌면 현대인은 지금 퀴블러-로스 변화 곡선의 저점(低點)을 일찌감치 통과, 결정과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세’ 디지털과 ‘부활’ 아날로그, 이기적 유전자의 선택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인간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영국 행동생물학자 겸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진화심리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원제 ‘The Selfish Gene’)에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자신이 성공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식을 낳아 그 자식 역시 성공적으로 생존해가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모든 생명체는 자기 유전자의 영속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며, 그 때문에 늘 자신의 생존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전략을 짜서 이행할 수밖에 없단 얘기다.

숨가쁘게 달려온 디지털화도, 뒤이은 아날로그의 반격도 그 주체는 변함없이 인간이(었)다. 그리고 도킨스에 따르면 가장 진화된 생명체인 인간 역시 예나 지금이나 큰 흐름에서 보면 궁극적 진화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흥미롭게 뒤섞이는 지금 상황은 훗날 어떤 역사로 기록될까? 그 과정에서 인간이 선택한 ‘생존에 가장 유리한 전략’은 또 어떤 형태가 될까? 반격에 나선 아날로그의 미래 역시 그 흐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1] Luddite Riots.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실직을 두려워한 영국 노동자들이 일으킨 기계 파괴 폭동. ‘기계화(자동화) 반대 운동’으로도 불린다

삼성 LED 스크린, ‘최후의 집중형 문화 공간’ 극장을 도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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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어두운 공간. 빛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간다. “차르르… 차르르…“ 구형 영사기가 느릿느릿 돌아간다. 정면에 놓인 작은 화면에선 오래전 흑백 영화의 주인공들이 움직인다. 영사기 너머 검은 실루엣으로 한 노인과 한 소년이 보인다. 화면이 점점 줌인(zoom-in)하면서 초롱초롱 빛나는 소년의 눈빛을 비춘다. 영화에 대해 얘기해주는 노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정겹다.

1988년 개봉, 당시 크고 작은 영화상을 휩쓸었던 이탈리아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의 명작 ‘시네마천국(Cinema Paradiso)’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엔 ‘한 줄기 빛이 어둠을 뚫고 영사기 발광 렌즈에서 퍼져 나오는’ 장면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스크린을 향한 영사기의 빛 속에 다양한 인간 정서를 담아냈다. 이 작품에서 영사기의 빛은 그저 단순한 빛이 아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표 이미지’다.

시네마 천국 포스터
▲2013년 국내 극장 재개봉 당시 ‘시네마천국’ 포스터(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

굳이 30년 전 영화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영사기가 뿜어내는 빛은 오늘날에도 굳건히 ‘영화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관객석 뒤쪽 가장 높은 곳에 배치된 영사기, 거기서 거미줄처럼 뻗어나가 정면의 대형 화면을 가득 채워내는 빛. 그 위엔 하루에도 몇 번씩 꿈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빛이 퍼져 이루는 길을 가로막을까 봐 허리 굽히고 숨 죽인 채 어둠 속을 더듬어 제 자리를 찾아간다.

다소 구식이고 불편해도 그게 (극장) 영화의 묘미였다. TV와 PC,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영화관 사업이 사양길로 직행하지 않은 건 이처럼 ‘공간을 독점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빛(이 주는 몰입감)’의 힘 덕분이었다.

‘120년간 변화 무()’ 극장 문화에 내민 도전장

그런데 이런 풍속도가 조만간 사라지게 될지 모르겠다. 떠돌이 상영사가 소형 영사기를 메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1분가량의 동영상을 보여주던 1890년 즈음을 기준으로 약 120년이 흐른 오늘날, 영사 방식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은 영사기를 따로 배치해 스크린에 쏘지 않고도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스크린을 LED 화면으로 구성, 화면 자체에서 빛이 나와 이미지를 형성하도록 해 멀리 떨어진 곳에 영사기를 따로 둘 필요 자체를 없앤 것이다.

과거 영화관에 사용되던 영사기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사기나 빔 프로젝터로 빛을 스크린에 쏴 상(像)이 맺히게 하면 대형 화면에 초점을 맞추는 데 한계가 있어 선명한 화질과 생생한 색감을 표현하기 어렵다. 반면, LED 화면은 무수한 발광 다이오드가 스크린을 구성하고, 여기서 나오는 빛으로 이미지가 구성된다. 실물 이상으로 선명한 영상을 즐길 수 있는 비결이다.

상영관 실내도 굳이 어둡게 만들 필요가 없다. LED 화면은 (스크린 자체를 구성하는) 발광 소자가 뿜어내는 빛 덕에 기존 영화관 화면보다 밝기가 10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일상적 밝기의 실내에서도 또렷이 잘 보이는 수준이다.

빛을 내는 방식의 혁명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변화를 예고한다. 일단 색 표현력이 정확하고 풍부해져 훨씬 더 실감나는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 어둡지 않은 공간에서 또렷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점도 두드러지는 변화 중 하나. 이 같은 특성은 ‘영사기 없이도 이미지를 자체적으로 구현해낸다’는 특성과 어우러지며 영화관이란 공간을 혁신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갖는다.

‘수퍼 S’ 영화관 공개 행사 당일 스케치
▲삼성전자는 지난 13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삼성 시네마 LED 스크린 ‘수퍼S’ 관 개관 행사를 개최했다

우선 상영관의 크기 제약이 사실상 사라진다. 가족이나 친지끼리 예약해 쓸 수 있는 소규모 상영관에서부터 스타디움 규모의 초대형 상영관에 이르기까지 LED 화면 크기에 따라 다양한 규모의 상영관 설계가 가능하다. 여기에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surround sound system)까지 적절히 결합시키면 영화를 즐기면서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곁들이는 것도 쉬워진다.

영화관 이용 방식도 이전과 달라질 게 분명하다. 더 이상 한 줄로 정렬해 앉아 화면에 집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유로운 탈집중화(decentralization) 방식이 구현될 수 있다. 친한 사람들끼리 전용 소형 상영관을 예약, 식사하거나 게임을 즐기며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영화를 보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거나 토론하는 것도 문제 없다. 영화에 보다 집중하고 싶은 사람은 서라운드 사운드 존(zone) 내에 자리 잡으면 되고, 영화 상영 도중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싶거나 특정 콘텐츠를 검색하고 싶은 사람은 거기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 된다.

이런 가정이 현실화된다면 어둠 속에서, 귓속말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초집중’해야 했던 영화관이란 공간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그리고 대단히 다양한) 성격을 지닌 만남의 장소로 거듭날 수 있다. 자체적으로 빛 에너지를 방출하는 LED 화면의 잠재력은 이렇게나 무궁무진하다.

선명도와 색 재현력, 음향까지… 눈앞 현실인 듯!

극장 스크린을 LED 화면으로 구현하는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 3월 27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시네마크(Cinemark) 극장에서 세계 최초로 극장 전용 LED 스크린 ‘삼성 시네마 스크린’ 공개 시사회를 연 데 이어 지난 13일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역시 세계 최초로 시네마 LED 스크린 상영관 ‘수퍼S(SUPER S)’를 선보인 것.

네마크(Cinemark) 극장에서 세계 최초로 극장 전용 LED 스크린 ‘삼성 시네마 스크린’ 공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역시 세계 최초로 시네마 LED 스크린 상영관 ‘수퍼S(SUPER S)’
▲수퍼S관에 탑재된 삼성 시네마 LED 스크린은 화면 크기와 해상도, 색 재현력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실제 상황을 눈으로 지켜보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수퍼S관의 스크린은 4K(4096×2160) 해상도를 구현하며 영화 상영에 최적화된 크기(가로 10.3m)를 갖추고 있다. 그 덕에 예를 들면 불꽃 터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에도 빛 줄기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표현돼 “영상을 보고 있다”고 느끼는 대신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직접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주변이 환해도 선명하게 구현되는 이미지, 영화 감상에 최적화된 상태로 제공되는 화면 사양 등 앞서 살펴본 LED 화면의 장점도 고스란히 갖췄다.

‘현실처럼 보이는 이미지 구현’을 위해 선명도만큼이나 중요한 게 색 재현력이다. 대부분의 디스플레이 장치가 구현해내는 색감엔 어느 정도 왜곡이 존재한다. 인간의 시각이 포착해내는 현실 색감을 기계 장치로 재현해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결국 화면 기술 차이는 이런 왜곡을 최소화하고 관객에게 얼마나 실감나는 색상 자극을 제공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갈린다. 이를 국제적 약속으로 명시한 게 디지털 시네마 표준 규격인 DCI(Digital Cinema Initiatives)[1]다. 삼성 시네마 LED 스크린은 영사기가 아닌 영화 장비로선 세계 최초로 DCI 인증을 획득, 100% 이상의 색 표현력을 공인 받았다. 따라서 삼성 시네마 LED 스크린 위에 구현되는 이미지는 기존 영사기 기반 이미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선명한 색감 세계를 보여준다.

13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행사 당시 마련된 영화 ‘카3: 새로운 도전’(이하 ‘카3’) 시사회 현장에선 극중 등장하는 자동차의 광택까지 생생하게 표현되는 등 몰입감이 상당했다. 관객이 화면 위 이미지를 ‘기술로 재현되는 가상 세계’가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는 실재(實在) 세계’로 충분히 여길 수 있을 정도였다. 카3가 3D 애니메이션 작품인 점도 삼성 시네마 LED 스크린의 장점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데 한몫했다. 실제로 극중 여러 차례 등장하는 컴퓨터 그래픽 속 사물의 질감은 실시간으로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이런 시각적 경험은 (영사기와 달리) 화면 모서리 부분까지 명확한 색감을 구현해내는 LED 화면의 특성으로 한층 강화됐다.

영화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또 하나의 장치는 음향이다. 관객 입장에서 좋은 음향이란 어떤 걸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요건은 ‘선명한 음질’이다. 볼륨이 크든 작든 음질이 선명해야 관객이 영화에 보다 몰입할 수 있기 때문. 소리가 자연스러우면서도 부드러워 관객 귀에 부정적 느낌을 주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하다. 끝으로 관객이 상영관 내 어느 위치에 앉아있더라도 음향 만족도에 큰 차이가 없어야 한다. 수퍼S관의 사운드는 이 세 요건을 고루 충족시킨다. 특히 오랫동안 최적의 영화 사운드 구현을 연구해온 ‘극장 사운드 시스템의 선두주자’ 하만(Harman)과의 협력 덕에 음향 부문 만족도는 고루 높은 편이다.

이런 게 혁신… 디스플레이 산업 판도 바꿀 것”

삼성 시네마 LED 스크린을 접한 인사들의 말·말·말

“영화관으로 들어간 삼성 LED, 이게 바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다”

한국경제신문

“120여 년의 영화 역사에서 직접 광원을 적용한 시네마 스크린으로 영상을 보는 건 혁신적 변화였다”

양우석, 영화 ‘변호인’ 감독

“삼성 시네마 LED는 극장뿐 아니라 게임 행사, 이벤트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것 같다. 영화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VD(Visual Display) 산업에 큰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김유정, 게임 유튜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네마천국의 주인공인) 어린 살바토레 디 비타가 2017년 현실 인물이 돼 나타난다면, 그래서 요즘 흔한 시네마 콤플렉스를 방문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상영관 내부로 들어가선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분위기로만 치면 철부지 꼬마였던 30년 전, 자신의 고향 시실리 섬에서 들락거렸던 극장 ‘누오보 시네마 파라디조’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문화의 상관관계’는 스페셜 리포트가 늘 관심 갖고 천착해온 주제 중 하나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도구를 만들고 기술을 개발하는 존재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도구와 기술은 인간의 생활 방식, 심지어 사고(思考)까지 바꾸곤 했다. 또한 그런 흐름은 묘하게도 인간 삶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유행(trend)과 궤를 같이해왔다.

‘포스트모던(post modern)’으로 대표되는 21세기 문화 트렌드 중 하나로 적지 않은 문화 전문가가 탈집중화 현상을 꼽는다. 전통(특히 근대화 이전) 사회에선 기술이나 정보, 권력이 특수한 집단이나 계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근∙현대기를 거치며 이 모든 건 서서히 분산돼 다수가 일상적으로 누리는 방식으로 변모해왔다.

새로운 극장 패러다임의 등장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은, 그런 면에서 어쩌면 몇 남지 않은 초집중적 문화 소비 방식인지도 모른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상영관을 찾은 관객에게 다른 ‘옵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 눈앞 화면에서 펼쳐지는 이미지 변화에만 집중해야 한다. 늦게 도착한 관객이 자기 좌석을 찾아가는 행동도 웬만해선 환영 받지 못한다. 객석의 여유가 있다면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영화에 집중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삼성전자가 시작한 ‘LED 스크린 혁명’은 장장 120년간 이어져온 이 같은 극장 문화의 판도를 바꿀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집중형 문화 소비 방식’에 도전장을 내민 건지도 모르겠다. 이 대담한 도발의 끝은 어떤 풍경이 될까? 삼성 시네마 LED 스크린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1] DCI는 시네마 스크린 보안 기준을 충족, 영화 업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보안 측면에서도 공신력을 인정 받고 있다

프로듀서 S, 실리콘밸리 한복판서 개들과 뒹굴며 ‘피 땀 눈물’ 흘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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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S, 실리콘밸리 한복판서 개들과 뒹굴며 ‘피 땀 눈물’ 흘린 사연

∙ 이 글은 실제 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와의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한 결과물입니다
∙ 본문에 삽입된 사진은 전부 갤럭시 S8로 촬영됐습니다

 

“어어, 감독님. 조심하세요!”

돌발 상황이다.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자세로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던 촬영감독을 향해 미니 불독 한 마리가 돌진한 것. 크기는 작아도 한 성격 한다, 싶더니 기어이 사고를 쳤다. 자신을 향한 카메라가 맘에 들지 않았던 걸까, 돌출된 렌즈 부위를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 걸까? 여하튼 녀석은 감독의 코를 사정 없이 깨물어버렸다. 다행히 주인의 빠른 제지 덕에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뜻밖의 ‘유혈(?) 사태’에 촬영이 잠시 중단됐다.

여긴 미국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위치한 삼성리서치아메리카(Samsung Research America, 이하 ‘SRA’) 사업장. 그간 힘들다는 촬영깨나 겪었지만 이렇게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의 연속은 또 처음이다. 대체 뭘 찍기에 그러느냐고?

강아지 촬영 중 1잔디밭에서 개와 놀아주고 있는 견주▲‘반려견과 함께하는 회사 생활은 어떨까?’ 취재진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SRA 사업장을 찾은 건 바로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반려견과 ‘동반 출근’ 가능한 직장?… 그래, 이거다!

이번 촬영의 ‘주연’은 사람도, 공간도 아니다. 매일 주인과 함께 SRA을 찾는 반려견이다. SRA는 임직원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편안한 근무 환경 조성을 돕기 위해 ‘반려견 동반 출근’을 상시 허용하고 있다. SRA 측에서 전해 들은 ‘동반 출근 반려견’은 약 20마리. 처음 이 소식을 접한 올 4월, 대번에 ‘이거다!’ 싶었다. 그 길로 사전조사에 돌입했고 2개월여 간의 준비 끝에 지난 6월 19일(현지 시각), 드디어 SRA에 입성했다.

이번 영상에 담길 반려견은 총 11마리. 촬영을 위해 일일이 견주(犬主)와 미리 연락해 허락을 받았다. 사업장으로의 출근이 허락된 반려견은 하나같이 사람 혹은 다른 개와 함께 지내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충분한 사회화 교육을 거친 상태였다. 주인 명령을 잘 따르는 건 기본. 낯선 이가 가까이 와도 좀처럼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돌입하자 갖가지 변수가 튀어나왔다. 제아무리 “성격 좋다”고 전해 들은 녀석도 낯선 사람이 다짜고짜 시커먼 장비를 들이대자 곧바로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나마 한국에서 준비해 간 반려견 전용 장난감을 마구 투척(?)한 덕분에 ‘견심(犬心)’을 사로잡는 데 일부 성공했지만 까칠하고 도도한 몇몇 개에겐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사실 촬영 과정이 험난하리란 예상은 출국 전부터 했었다. 평소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편이긴 했지만 그들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완성도 높은 영상물을 제작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일 터. ‘사업장 곳곳을 활보하는 반려견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려면 뭘, 어떻게 촬영해야 할까?’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까지 물음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내를 활보하는 개를 촬영 중인 스텝들잔디밭에 앉아 있는 개▲‘반려견 카메라 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녀석들이 카메라 프레임에 온전히 들어오는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종종 영겁(?)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주변 조언을 종합해 내린 결론은 ‘무조건 많이 찍자!’였다. 일단 장비 확보부터 서둘렀다. 미니 달리[1], 스테빌라이저[2], (반려견과 견주 몸에 장착할) 액션캠[3], 고프로 페치 도그 하네스[4]…. 10여 개의 장비를 몇 세트씩 준비해갔다(정작 현지에선 화질 등의 문제로 전부 사용하진 못했다). 그렇게 닷새간 촬영한 파일 분량이 줄잡아 1테라바이트(TB)였다. 말 그대로 주야장천 찍어댄 셈이다.

 

고단했던 오지 촬영 그리울 정도” 개 촬영 분투기

솔직히 영상 주제가 정해졌을 때만 해도 내심 안도했다. ‘오지 촬영 안 가는 것만 해도 어디야. 간만에 편한 출장 한 번 다녀오겠네!’ 일정 내내 귀여운 반려동물과 즐겁게 지내다 올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웬걸, 이번엔 극지 촬영 때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쉽사리 통제되지 않는 개들이었다. 완성된 화면이 예쁘려면 피사체가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게 관건인데 현장에서 만난 개들은 도통 가만히 있질 않았다. 어쩐 일로 얌전하다, 싶으면 잠들어 있기 일쑤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화면에 담긴 개는 죄다 자고 있지 않으면 초점이 나간 상태였다. 결국 ‘포커스가 제대로 맞춰진, 생동감 있는 컷’을 건지기 위해 모든 스태프가 ‘논스톱 촬영’을 감행해야 했다.

촬영 자세를 잡는 일은 더 고역이었다. 영상 속 화자를 반려견으로 정한 탓에 촬영감독은 작업 내내 (개의 시선에 맞춰) 엎드린 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렇게 몇 시간씩 촬영하고 나면 목 뒤와 허리가 뻐근해져 일어날 때마다 “어구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복병’도 있었다. 개 소변이었다. 이번 촬영은 그 성격상 꽤 많은 분량이 (반려견이 뛰노는) 잔디밭에서 진행됐다. 문제는 반려견들이 잔디밭 곳곳에 소변을 보고 다니는 데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흔적’은 스프링클러 물과 섞이며 물인지 소변인지 모호한 상태가 됐다. 이 때문에 잔디에서의 작업이 끝날 무렵이면 촬영감독 몸에선 여지 없이 진한 암모니아 냄새가 풍겼다. 잔디밭 위를 몇 시간 동안 포복 자세로 누비니 더 말해 뭐하랴.

사무실 안에 앉아 있는 개 촬영 중개를 촬영 중인 스텝개를 촬영중인 스텝▲제대로 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촬영감독은 무시로 바닥에 엎드리거나 드러누워야 했다. 그 덕(?)에 매회 촬영 직후 촬영감독의 옷에선 온갖 냄새가 진동했다

 

동료 반려견 ‘쿨하게’ 용인하는 임직원 태도 인상적

길지 않은 일정을 쪼개어 반려견 영상과 견주 인터뷰, 사업장 분위기까지 카메라에 담으려다 보니 출장 내내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닷새 내내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강행군의 연속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 풍경이 있었다. 반려견이 함께하며 한층 자유롭고 쾌활해진 SRA 사업장 분위기가 그것.

현장에서 만난 견주들은 하나같이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일하는 동안만큼은 굉장히 높은 몰입도를 보였다. ‘개 산책시키고 틈틈이 놀아주기도 해야 할 텐데 일은 언제 하지?’ 막연했던 생각은 촬영이 이어지며 서서히 바뀌었다. 현지 취재를 도운 도릿 제하시(Doreet Jehassi) SRA 인사 담당 매니저에 따르면 SRA 반려견 동반 근무 허용제의 목표는 ‘업무 효율성 향상’이다. 그는 “임직원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회사는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동료의 반려동물을 대하는 SRA 임직원의 성숙한 시선 역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원래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이라면 모를까, 별 관심도 없(거나 심지어 싫어하)는데 옆 자리 동료가 데려오는 개나 고양이를 용인하긴 쉽지 않다. SRA에서도 개털 알레르기가 있거나 기타 개인 사유로 사무실에 반려견이 함께하는 걸 원치 않는 동료가 한 명 이상 있으면 해당 팀원 중 누구도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출근할 수 없다. 반려견을 데려오는 이도, 반려견 동반 출근 문화를 바라보는 이도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가 조직 여기저기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것이다.

그간 삼성전자 사업장을 무수히 돌아다녔지만 ‘사람과 개가 공존하는’ SRA 사업장 모습은 손에 꼽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창의력과 업무 효율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모습을 보며 ‘글로벌 기업이란 이런 거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 이제 각설하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영상 두 편을 감상할 차례다. 유행가 가사마냥 ‘피 땀 눈물’이 구석구석 배어있는 영상, 모쪼록 ‘즐감(즐겁게 감상)’하시길!

‘반려견과 함께하는 SRA 기업 문화’를 다룬 영상은 삼성전자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1] dolly. 카메라를 장착한 채 이동하며 촬영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동차
[2] stabilizer. 동영상 촬영 시 손 떨림 현상을 줄여주는 장비 
[3] action camcoder. 신체나 장비 등에 부착한 상태에서 촬영하는 초소형 캠코더 
[4] Gopro Fetch dog harness. 개 신체에 부착, 고프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도록 제작된 끈 장치

 

‘찰나의 마법’ 양자컴퓨터 세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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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찰나의 마법 양자컴퓨터 세계가 온다다

어느 큰 성(城)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다고 치자. 문을 통과해 성 안으로 들어갈 사람과 그러지 못할 사람을 구분해내는 게 그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문지기, 성격이 꽤 변덕스러워 어떤 날은 성문 앞에 모인 사람 전부를 들여보내고 어떤 날은 그중 절반만 통과시킨다.

사실 그는 컴퓨터과학 애호가다. 그래서 카드에 숫자 ‘0’ 혹은 ‘1’을 써놓은 후 성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 수만큼 탁자 위에 엎어놓는다. 문지기의 신호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각자 한 장씩의 카드를 뒤집어본다. ‘0’이 쓰인 카드를 쥔 사람은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1’이 쓰인 카드를 집어 든 사람에겐 성문이 열린다.

어느 날, 성문 앞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 여덟 명이 모였다. 여덟 장의 카드가 뒷면을 위로 향한 채 나란히 놓였다. 사람들은 각자 한 장씩의 카드에 손을 댄 채 문지기의 신호만 기다린다. 문지기가 모든 사람을 들여보내려고 마음 먹었는지, 절반만 들여보내기로 했는지 알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양자컴퓨터의 특성, ‘문지기 확률’에 그 힌트가?!

이 질문은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와 일반 컴퓨터 간 차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오늘날 양자컴퓨팅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리처드 조사(Richard Jozsa)와 데이빗 도이치(David Deutsch)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이론물리학과 교수가 제시한 설명을 살짝 변형했다.

일단 답부터 생각해보자. 카드를 어떻게 뒤집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것이다. 한 장씩 뒤집어 보면 많게는 다섯 장을 뒤집어야 문지기의 그날 계획을 알 수 있다. 처음 네 장의 카드에 모두 1이 쓰여있다 해도 한 장을 더 열어봐야 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동시에 뒤집으면 어떤 경우든 즉시 답을 알 수 있다.

경우의 수

이 경우 카드를 한 장씩 뒤집어 보는 건 일반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방식에 비유할 수 있다. 반면, 모든 카드를 동시에 뒤집어 보는 게 바로 양자컴퓨터 방식이다. 이 차이는 데이터 값이 늘어날수록 커진다. 그리고 데이터 양이 천문학적으로 많아져도 양자컴퓨터는 한순간에 그 구조를 파악하기 때문에 답을 ‘언제나 즉시’ 얻을 수 있다.

 

양자컴퓨터 실용화되면 현행 암호 체계 ‘무용지물’

양자컴퓨터는 올 들어 전 세계 IT 업계에서 부쩍 존재감을 키워온 기술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잡지 ‘네이처(Nature)’를 비롯한 유수 연구기관, 그리고 글로벌 미디어가 발표한 ‘2017 IT 개발 동향’ 보고서는 하나같이 양자컴퓨터를 ‘2017년을 이끌어갈 주요 기술’ 중 하나로 꼽았다. 미국 환경청(EPA)의 연구 프로그램 ‘홈랜드 시큐리티 리서치(Homeland Security Research)’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양자컴퓨터(와 관련 서비스) 시장 규모는 84억5000만 달러(약 9조6500억 원)에 이른다. 이중 정부 주도의 관련 기술 연구∙개발(R&D) 기금 규모는 22억5000만 달러(약 2조5700억 원) 수준이다.

양자컴퓨터는 현재 널리 보급돼 있는 컴퓨터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서 특정 형태의 계산에만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양자컴퓨터가 일반 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제한적 차별성만으로도 세상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양자컴퓨터가 실용화 단계에 이르면 일단 지금까지 컴퓨터를 이용, 온라인을 통해 해왔던 모든 활동에 걸린 암호 체계를 전부 바꿔야 한다. 오늘날 온라인 쇼핑과 은행 거래 등 금전(이나 기타 이해)관계나 프라이버시가 걸려 있는 활동엔 반드시 암호가 필요하다.

암호를 만드는 법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그 아래엔 공통적으로 인수분해 원리가 숨어있다. 예를 들어 “1357×2468은?”이란 질문에 대해 즉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일반 컴퓨터는 순식간에 “3,349,076”이란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숫자를 제시한 후 이게 어떤 네 자리 수와 어떤 네 자리 수를 곱한 값이냐고 묻는다면 얘긴 전혀 달라진다.

빠른 계산이 가능한 양자컴퓨터

일반 컴퓨터는 10000에서 9999까지 모든 숫자 중 두 개의 조합을 꼼꼼히 곱해보며 ‘3,349,076’이란 답을 도출해낸다. 앞선 예에서 문지기가 나눠준 카드를 하나하나 뒤집어보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컴퓨터 성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까지 걸리는 작업이다.

이 시간은 숫자의 자릿수가 높아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제까지 해본 실험 중 가장 자릿수가 많았던 129자리 숫자를 인수분해하는 데엔 1600명의 인터넷 사용자가 달려들어도 꼬박 8개월이 걸렸다. 인수분해가 암호에 쓰이는 건 이런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를 만든 사람은 쉽게 만들고 답도 알고 있지만, 만들지 않은 사람이 그걸 풀려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도 쉽게 답을 구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받대한 데이터를 나타내는 배경

만약 양자컴퓨터라면 이렇게 복잡한 숫자의 인수분해 값을 구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그야말로 ‘찰나’, 즉 몇 십 분의 1초 안에 답이 나온다. 앞의 예시 문제에서 본 것처럼 양자컴퓨터는 모든 자료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특성 덕분에 다양한 업무에 투입될 수 있다. 하나같이 ‘무수한 데이터 값이 연관된 과정에서 아주 단순한 정답을 얻어내는’ 일이다. 수많은 요인이 상호 작용하는 생화학 반응 과정을 예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를 이용해 부작용 없고 효능이 확실한 신약 개발을 앞당길 수도 있다. 지금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정확한 날씨 예측 역시 가능하다. 장거리를 날아가는 무기의 탄도 계산이나 다수가 참석하는 회의에서 최적의 자리 배치법을 찾는 일 등 크고 작은 최적화(optimization) 계산도 간편해진다. 안면 인식 등 인공지능이 하는 일의 경우, 빅데이터를 동원하지 않아도 쉽게 처리된다.

 

양자컴퓨터 속성 알려면 양자역학부터 이해해야

양자컴퓨터의 능력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양자컴퓨터의 기본 패러다임인 양자역학 원리부터 이해해야 한다. ‘양자(quantum)’의 사전적 정의는 ‘에너지나 물질 등 물리적 속성을 갖고 있는, 가능한 한 가장 작은 단위’다. 원자를 구성하는 부분 중 하나인 전자 따위도 포함된다.

양자의 세계는 나노미터의 세계다. 예를 들어 전자의 크기는 0.1 나노미터, 즉 1미터의 100억 분의 1에 해당된다. 이런 극미립자 세계에선 현대인이 일상에서 접하는 물리적 현상들과 전혀 다른 운동 원칙이 적용된다. 다시 말해 에너지가 ‘물질’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기보다 ‘파동’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그 결과, 양자의 운동방식은 몇 가지 특별한 성질을 지닌다.

일반 컴퓨터라면 모든 데이터와 그걸 처리하는 데 관련한 지시는 ‘0’ 아니면 ‘1’의 두 숫자 중 하나인 포지션으로 표시되며 이를 ‘비트(bit)’라고 한다. 이 두 포지션이 무수히 다른 조합으로 이어지면서 내용이 주어지고 작동 방식이 선택된다.

이와 달리 양자컴퓨터는 특정 시점에서의 상태가 0일 수도, 1일 수도, 0과 1 모두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작용 단위는 ‘퀀텀 비트’, 줄여서 ‘큐비트(qubit)’라고 하는데 큐비트는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상태를 모두 포괄하는 일명 ‘슈퍼포지션(superposition)’으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양자 세계에선 모든 데이터가 공존하는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데이터 처리 방식 '비트'

문제는 이 값이 그야말로 찰나에 주어지고 사라져버린단 것이다. 미시적 물리세계의 운동 주체인 양자는 주변의 다른 힘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변해간다. 또한 양자와 양자 사이에 경계가 있어도 그대로 통과해 넘어가버린다. 모두 양자의 에너지량이 너무 적어 생기는 현상이다.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컴퓨터나 컵 같은 물체는 양자 수준의 에너지 주체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에너지가 응축, 발현된 존재다. 웬만큼 센 힘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일정 모습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양자는 현존하는 세계 속에 작용하는 힘에 비해 지극히 적은 양의 에너지이므로 그 힘들이 움직일 때마다 끊임없이 반응하며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양자에 작용하는 외부 에너지 중 하나가 인간의 의식이고 시선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운동의 가능성을 내포한 슈퍼포지션이었던 양자는 인간이 그걸 관측하려고 시선을 보내거나, 아니면 단순히 그런 의도를 품는 순간 고정돼 한 가지 포지션만 보여준다. 보는 입장에 따라 그 포지션은 달리 보인다. 요컨대 양자역학에선 어떤 값이든 확실하게 고정돼 주어지지 않는다.

 

뜬구름 잡는 얘기? 머잖아 세상 뒤집어놓을 혁신”

이런 성질의 양자를 활용, 인류의 필요를 충족하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을까?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설사 가능하다 해도 만만찮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양자컴퓨터 개발 과정은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는 시행착오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앞서 본 것처럼 양자컴퓨터 개발 열기는 점점 더해가고 있다. 개발에 성공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오늘날 컴퓨터공학 발달 과정 자체가 점점 더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단 사실도 무시하기 어렵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데이터의 양은 점점 더 많아지는 반면, 관련 기기 크기는 줄어드는 추세다. 이 같은 변화가 가능한 건 (나노 수준의) 미세한 트랜지스터 활용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그런데 이처럼 소재들이 계속 소형화되면 어느 지점에서 이들은 양자역학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그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통제하려는 노력 자체가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노력과 맞물리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컴퓨터가 개발됐단 거야, 안 됐단 거야?”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에 대한 전문가의 답변은 “아직은 아니다”다. 이론적 가능성으로만 따지면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실제로 2의 4제곱, 즉 16개 인수가 관련된 계산에서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는 양자컴퓨터도 나왔다.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지금의 컴퓨터론 시간이 너무 걸려 못하는 계산도 해내는 수준의 양자컴퓨터에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양자컴퓨터

분명한 건 양자컴퓨터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단 사실이다. 19세기 후반 처음 등장했을 때에만 해도 뜬구름 잡는 얘기로 간주됐던 양자역학은 21세기 들어 그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는 추세다. 진공관 컴퓨터의 큰 덩치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형화시킨 반도체 기술 역시 양자역학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양자컴퓨터 개발 과정 역시 지금은 비약적 문제 해결 방식이 눈에 띄지 않지만 언젠가, 그리고 누군가 주요 해결책을 터득하고 나면 이후 컴퓨터 기술 혁명의 불길이 전 세계를 휩쓰는 건 시간 문제다.

어쩌면 양자컴퓨터 개발 속도에 대한 진단은 데이빗 머민(N. David Mermin) 미국 코넬대학교 응집물질물리학부 교수의 그것이 가장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2050년이 돼도 쓸 만한 양자컴퓨터가 개발되기 어렵다고 말하는 건 경솔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쓸 만한 양자컴퓨터가 개발돼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 역시 경솔한 일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이끌 메모리 반도체? “주인공은 나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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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그래픽처리장치(GPU) 테크놀로지 컨퍼런스. 인공지능(AI) 컴퓨터 분야에서 첨단 기술력으로 각광 받고 있는 엔비디아(Nvidia)가 기존 슈퍼컴퓨팅의 한계를 극복한 GPU 테슬라 볼타 100(이하 ‘V100’)을 공개했다.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연단에 직접 올라 V100의 핵심 부품을 하나씩 밝혔다. 그중엔 삼성전자가 만든 HBM2 D램도 포함돼 있었다.

▲3D 그래픽 버전으로 구현한 삼성전자 8GB HBM2 D램

 

 

컴퓨팅 생태계’ 판 바꾸는 메모리의 등장

최근 메모리 업계는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기술 환경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관련) 산업 분야의 숨 가쁜 변화가 어디 하루 이틀 일일까. 하지만 요즘 나타나는 변화는 그 ‘폭’이 기존의 것과 확연히 다르다. 기술 분야의 혁신적 변화로 생산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 컴퓨터가 처음 개발되던 1940년대부터 메모리 기술은 컴퓨터 성능, 특히 정보 처리 속도 향상을 주도하는 핵심 기술 중 하나였다. 메모리 자체가 컴퓨팅 과정에서 처리돼야 할 무수한 데이터를 저장했다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 초창기 진공관 캐소드[2]식(式) 메모리에서 좀 더 소형화되고 빠른 컴퓨팅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그네틱 코어 메모리, 이어 등장한 코어 로프 메모리에 이르기까지 가속적 진화를 보여온 메모리는 오늘날 IC칩을 활용한 D램 단계에 접어들며 컴퓨터 처리 속도 개선과 소형화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메모리 성능이 진화할수록 컴퓨터 역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IT 산업의 발전으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 양이 급격하게 증가하며 메모리의 고성능화, 소형화에 대한 요구도 날로 높아진다. ‘손 안의 컴퓨터’가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시계나 머리띠처럼 몸에 착용하는 스마트 기기 보급이 늘며 이런 경향엔 점차 가속도가 붙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 역시 이런 추세에 불을 댕긴다. 결국 메모리 기술은 “컴퓨터 진화 정도와 속도에 맞춰 끊임없이 개선돼야 한다”는 안팎의 요구에 따라 기술적 한계를 돌파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업계에서 유일하게 내놓은 HBM2 DRAM은 이런 기존 패러다임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한 제품이다. 현존하는 메모리 중 가장 높은 성능을 갖춘 HBM2 D램이 컴퓨팅 기술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메모리가 컴퓨터 진화 속도에 맞춰 성능을 개선하며 뒤쫓아가기 바빴던 게 이제까지의 추세였다면, HBM2 D램은 메모리의 가능성에 맞춰 컴퓨팅 자체를 새롭게 설계해야 할 정도로 업계 흐름을 바꾼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TSV[3] 기술 기반 차세대 메모리’ 8GB(기가바이트) HBM2 D램을 양산하며 ‘초고속 D램 시대’를 이끌고 있다. 이전까지 개발된 그래픽 D램 중 속도가 가장 빨랐던 건 8Gb(기가비트) GDDR5 D램. 초당 32GB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었다. 반면, 8GB HBM2 D램은 초당 256GB의 메모리 대역을 실현할 수 있다. 20GB 용량의 UHD급 화질 영화 열세 편을 1초에 전송하는 속도다. 도로에 비유하자면 ‘왕복 1차선’에서 ‘왕복 8차선’으로의 변화다.

이 정도의 혁신은 지금까지의 메모리 생태계에서 볼 수 없었던 변화의 잠재력을 품고 있다. 우선 기존 플랫폼에선 시중에 이미 나와있는 메모리 제품 중 단가나 성능 등 생산 조건이 맞는 제품 중 일정 요건을 충족시키는 거라면 뭐든 부품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HBM2 D램은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처음부터 협력, 플랫폼 자체를 새롭게 정의(define)하며 출발한다. 기존  CPU나 컴퓨터 구조만으론 HBM2 D램 수준의 메모리 성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탁월한 성능을 갖춘 메모리가 새로운 슈퍼컴퓨터의 탄생을 견인하는 핵심 부품으로 거듭나는 구조, 메모리가 단순 부품을 넘어 컴퓨터의 진화를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되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메모리를 중심으로 하는 신(新)컴퓨팅 생태계의 위상이 형성된다고나 할까?

 

초고집적 설계, 발열 제어 기술과 만나다

메모리 기술의 핵심은 ‘같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HBM(High Bandwidth Memory), 즉 고대역폭 메모리는 현존 메모리 제품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갖췄다. 데이터(가 지나는) 통로가 많은 덕분이다.

기존 D램은 데이터 통로가 4개나 8개, 많아야 16개였다. 모바일(혹은 그래픽) 제품에선 그 숫자가 32개로 늘어난다. 반면, HBM2 D램은 이 통로를 1024개 제공한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이걸 실제로 가능케 하려면 만만찮은 기술 수준이 요구된다.

삼성전자가 8GB HBM2 D램 양산에 성공한 건 지난해 6월이었다. 이 제품은 하나의 버퍼 칩 위에 8Gb HBM2 D램 칩(20나노 공정 기반) 8개를 쌓아 올린 구조다. 각 칩에 미세한 구멍을 5000개 이상 뚫은 다음, 4만 개 이상의 ‘TSV 접합볼’로 수직 연결한 일명 ‘초고집적 TSV 설계 기술’이 적용됐다. 제한된 공간에서의 정보 처리 능력을 엄청나게 늘릴 수 있는 건 이 기술 덕분이다.

처럼 ‘소형화된 상태로 많은 데이터를 처리, 신호를 빠르게 주고 받는’ 메모리는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신호가 원활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전체적 데이터 처리 과정이 지연될 수 있는 것. TSV는 바로 이 지점에 적용될 수 있다. △웨이퍼에 미세한 구멍을 뚫는 기술 △전도성 물질을 충전하는 기술 △웨이퍼를 연마하는 기술 △칩을 쌓아 올리는(積層) 기술 등 까다로운 기술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HBM2 D램은 여기서 또 한발 더 내딛는다. 일부 TSV에서 데이터 전달이 지연될 경우, 해당 데이터가 다른 TSV로 경로를 전환하게 만든 것. 이렇게 하면 성능 저하 없이 최적의 성능을 고르게 유지할 수 있다. 또 하나, 많은 부품이 고속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게 발열(發熱) 문제다. 열에너지가 집중된 부분은 쉽게 손상될 수 있으며 자칫 전체 시스템의 오류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도 삼성전자는 칩의 특정 영역이 제한 온도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도록 하는 일명 ‘발열 제어 기술’을 자체 개발, 적용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신뢰성을 확보했다.

8GB HBM2 D램은 4GB HBM2 D램과 크기는 동일하면서 2배 용량을 제공, 뛰어난 성능을 구현할 뿐 아니라 전력 효율도 두 배나 높일 수 있다. 사실 8GB HBM2 D램의 소비 전력 효율 개선은 대용량 데이터 처리∙전송 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진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지거나 전송하는 데이터 양이 많아지면 소비 전력량도 그만큼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HBM2 D램은 기존 제품에 비해 동일한 데이터 전송에 필요한 소비 전력량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단 점에서 가히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긴밀한 협력 기반 생태계 조성으로 ‘차별화’

삼성전자가 TSV 기술 양산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건 2010년이었다. 하지만 해당 제품 양산은 2014년 64GB 3D TSV DDR4[4] RDIMM제품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면서부터 이뤄졌다. 이 제품은 이듬해인 2015년 IR52 장영실상과 CES 혁신상을 연이어 수상하기도 했다. DDR4는 칩 하나에 전기 신호 전도용 구멍이 수백 개 뚫려있다. TSV 기술은 HBM에 적용되며 구멍 수가 수천 개 단위로 늘어났다. 이 칩들을 3차원 패키징, 즉 4단에서 8단까지의 구멍 위치에 정확히 맞춰 수천 개의 TSV를 단 하나의 문제도 없이 연결해야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기술 차별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수천 개의 아주 작은 구멍을 정확히 연결, 작동하도록 만드는 건 상당한 난이도를 필요로 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경험과 기술이 아니었다면 심화된 TSV 기술 적용 제품을 상용화하는 작업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신호 간 간섭 문제를 해결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HBM2 D램은 데이터 통로가 1024개나 되는 까닭에 전파 간섭이 일어나 노이즈(noise) 노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1024개 통로 모두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해주는 데서 기술력이 또 한 차례 업그레이드된다.

완제품이 실제 시스템 위에서 작동할 때 다양한 환경 요인에서 오는 변수를 통제하는 일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HBM 패키지 자체에선 문제 없이 작동해도 실제 시스템 위에 탑재되면 프로세서(CPU∙GPU 등)와 동일 기판에 놓이는 만큼 환경이 복잡해진다. 이는 신호 송출 부분에서나 전원 공급 부분에서의 왜곡이 불가피해지는 요인이 된다. 메모리 자체로선 완벽해도 실제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 사용될 때엔 작동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를 개발할 때엔 해당 제품이 실제로 적용될 시스템 환경을 미리 검토한 후 그 특성을 통합, 반영해야 한다. HBM2 메모리가 새로운 협력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한 V100이 성공적으로 출시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같은 협업이 제때 잘 이뤄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특정 메모리가 양산에 성공하려면 제품 자체를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최종 구매 고객과의 원활한 기술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 제반 환경 변화와 장애 요소를 시의적절하게 해결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축적해왔고 그 노하우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AI 플랫폼에 최적화된 메모리’로 승부 건다

모바일 기술은 어느덧 원숙기에 접어들었다. 여기저기서 ‘인공지능 시대’니 ‘테라바이트급 정보 혁명’이니 하지만 이 또한 머잖아 새로운 기술 발전에 의해 빠르게 보편화될 공산이 크다. 결국 컴퓨팅 기술 발전에서 CPU 성능 향상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연산 데이터 처리 관련 메모리 제품을 제때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인공지능 플랫폼만 해도 프로세서 주변에 메모리가 붙어 데이터를 공급해주는데 V100의 경우, 프로세서 하나에 HBM2 네 개를 쓴다. 그러면 초당 1테라바이트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 기능을 수행하려면 이 정도 데이터 공급 능력이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출시되는 인공지능 플랫폼용 메모리엔 거의 HBM2 제품이 탑재된다. 동일 시간 내에 이 정도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메모리는 현재로선 HBM2가 유일하다. 인공지능이 필요로 하는 성능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하지만 종종 발명이 필요를 만들기도 한다. 인간과 기술이 이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맞물려 나아가는 모습은 그간 스페셜 리포트가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로서도 중요한 미래 기술인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HBM2 D램은 이 같은 ‘시대적 난제’ 해결의 열쇠를 쥔 기술이다. 실제로 HBM2 D램은 컴퓨터 디자인 자체를 상당 부분 바꿔놓았다. 이런 변화는 또 인류의 일상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놓을까? 삼성전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기술 행보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1]  TeraByte(TB). 컴퓨터 칩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량의 단위로 1테라바이트는 1바이트의 1012배다

[2] cathode. 전류가 흘러나오는 쪽의 전극

[3] 실리콘 관통전극(Through Silicon Via). 실리콘 웨이퍼를 관통하는 상∙하단 칩에 미세한 구멍(via)을 뚫은 후 그 내부를 전도성 물질로 채워 전기적 연결 통로를 확보하는 반도체 패키징(packaging) 기술

[4] Double Date Rate 4. D램 반도체 규격의 일종으로 맨 뒤에 붙은 숫자가 하나씩 늘 때마다 동작 속도가 두 배씩 증가한다. 최대 전송속도 3200Mbps, 최대 지원용량 16Gb를 갖췄다

 


될성부른 회사 만드는 ‘한 끗 차이’, 기업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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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기업인은 누굴까? 그 답은 ‘성공’을 어떤 기준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서의 ‘기준’ 역시 시대, 혹은 (해당 기준을 정하는 이의) 가치관에 적잖이 좌우될 것이다.

 

크로이소스왕은 어쩌다 ‘위대한 비즈니스 리더’가 됐을까?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걸 성공의 기준으로 본다면 가장 성공한 기업인은 단연 크로이소스왕(King Croesus)이다.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반도에서 가장 큰 나라였던 리디아 최후 왕이었던 그는 재위 당시 소아시아 연안 도시를 잇따라 정복, 리디아를 소아시아반도 최대 규모로 확장시켰다. 실제로 유럽과 소아시아 전역에선 요즘도 ‘크로이소스만큼 부유한(rich as Croesus)’이란 표현이 통용된다. 어원적 배경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이름을 일상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크로이소스왕의 부(富)는 리디아 영토를 가로질러 에게해로 흘러 들어가는 팍톨로스(Pactolus)강 모래에서 나왔다. 이 모래엔 금과 은이 절묘하게 섞인 입자가 포함돼 있어 그것들을 걸러낸 후 제련하면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귀금속이 탄생했다. (팍톨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다스왕이 뭐든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씻은 걸로 알려진 강이다.) 크로이소스왕은 바로 이 자원의 개발에 주력했고, 그 덕에 수천 년 후까지 이름이 전해질 정도의 부자가 됐다.

사실 크로이소스왕에 대한 평가는 꽤 오랫동안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끊임없이 과시하길 좋아했다. 반면, 백성을 잘 다스리는 일엔 별 관심이 없었다.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그는 이웃나라에 다녀온 사이, 적군이 리디아 도성 인근을 짓밟고 약탈하는 걸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성으로 직행해 본인 창고를 지켰다. 이런 이유로 그의 일생은, 얘깃거린 됐을지언정 성공적 모델로 치하되진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5월 한 온라인 경영 컨설팅 웹사이트에서 크로이소스왕은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 등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비즈니스 리더’로 이름을 올렸다[1].

크로이소스왕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이렇게 달라진 비결은 뭐였을까? 그는 세계 최초로 금은화를 일상으로 끌어들이며 화폐 유통을 선도했다. 이집트 시대 등에도 금화가 존재했지만 당시 금화는 고가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크로이소스왕은 작고 휴대가 간편한 물건에 높은 교환 가치를 담아 물류를 촉진시켰다. 창의적 혁신을 통해 세상을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바꾼 점이 후대 들어 재조명된 것이다.

 

나침반·증기기관 혁신성 부각 계기는 ‘근대 유럽 산업혁명’

혁신은 오늘날 기업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간주된다. 새롭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의 세계를 넓히고 개선해가는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도출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특히 기술 개발 측면에서의) 창의성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가치 실현 계기로서 늘 중요하게 기능해왔다. 철기(鐵器)를 예로 들어보자. 인류가 철기 문명에 진입할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창의성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철광석이 많이 노출된 지역에서 산불이 나고 꺼진 자리에 형성된 무쇠 덩어리를 본 후 ‘철광석 제련법’이란 아이디어를 고안해냈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이를테면 수차(水車)는 물이 가득 담긴 두레박을 끌어올리느라 애 먹었던 어느 노동자가 도르래 원리에 착안, 물을 끊임없이 퍼 올리는 장치를 고안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발명품이다. 그 결과, 관개농업 생산성 수준이 확 높아진 건 말할 것도 없다.

‘기존 질서 유지’가 가장 중요한 가치인 세상에선 기술 혁신 자체가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 받거나 보상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설사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그 기술의 혜택으로 입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근대 이전 세계에서 기술 혁신에 공헌한 사람의 이름은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다. 반면, 해당 기술이 가능케 한 경제적 풍요를 지키는 데 공헌한 이들은 ‘영웅’으로 칭송됐다.

그뿐 아니다. 특정 기술이 보유한 혁신성은 종종 “사회에 쓸데없는 변화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묵살되곤 했다. 대표적 예가 나침반이다. 나침반은 17세기 유럽 대항해시대[2]를 여는 선도 기술 중 하나로 각광 받았지만 처음 발명된 건 이보다 500년가량 전인 12세기, 중국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중국 내에서 나침반은 호사가의 취미용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로봇이나 증기기관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에서 처음 선보여 실용화되기 수백 년 전 아시아에서 이미 개발됐지만 이내 사장(死藏)됐다. 농경 위주 사회의 가치관과 산업 구조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이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평가 받고 개발자의 명성이 후대까지 이어진 건 근대 유럽 산업혁명 이후 일이다. 그 결과, △인쇄술을 개혁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 △전기의 일상화에 성공한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 같은 ‘혁신적 기술 발명가’의 탄생이 이어졌다. 현대 산업사회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구축될 수 있었던 것, 혁신(innovation)이 경제적 가치 창출의 핵심 덕목으로 부각된 것 역시 이 같은 변화의 산물이다.

 

반도체 후발주자’ 한국이 6개월 만에 추월한 비결

‘아날로그의 반격’을 다룬 지난달 19일자 스페셜 리포트에서도 강조했듯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반드시 그 이전 기술의 단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기술’ 자리에 ‘가치’를 넣어도 문맥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술적 혁신을 통해 인류의 삶에 풍요와 효율을 더하는 일이 주요 가치로 부상됐다 해도, 그런 가치를 앞세우는 기업이 경제 전반을 이끄는 문화적 구조가 형성됐다 해도 이전 시대의 가치 중 핵심적 부분은 여전히 잔존한다.

이전 시대 가치는 때로 기술 혁신의 강력한 동인(動因)이 되기도 한다. 19세기 말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서구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일찌감치 안착할 수 있었던 동력을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에서 찾았다. 근대 서구사회의 정신적 기초이기도 했던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신교적 기독교 정신에서 강조된 근면∙성실’ 정도로 해석된다. 이 같은 시각은 아시아 국가에도 존재한다. 손윗사람에게 갖추는 예의나 공동체를 향한 헌신, 국가에 대한 충성 등 이 지역 사람들 특유의 정신적 자세가 20세기 말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발전을 견인했단 시각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우리나라 전자∙통신기술(IT) 산업 발전사는 전 세계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2015년 1월 14일자(반도체 부문, ‘메모리 산업 30년사 빛낸 삼성 반도체 신화의 순간들’)와 지난 2월 8일자(가전 부문, ‘퍼플오션의 승자 되는 법: 기존 시장서 새 기회 보는 삼성 가전 성공 전략’) 등 두 편의 스페셜 리포트를 발간, 쟁쟁한 선진국이 경합을 벌이는 기술 시장에서 탁월한 집중력과 창의력으로 입지를 넓혀온 삼성전자의 노력을 소개했다.

64K D램 개발 성공 사례가 대표적 예다. 당초 이 기술의 종주국인 미국이 64K D램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건 수십 년간 축적된 노하우 덕분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도 같은 수준의 기술에 도달하는 데에만 꼬박 6년이 걸렸다. 반면,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반도체통신)는 단 6개월 만에 기술력 부문에서 두 나라를 능가했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함, 회사라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적 열정에 “수십 년간 열세를 면치 못했던 국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애국심이 더해지며 이룬 성과였다.

▲1983년 12월 12일 64K D램 개발 생산 경축 행사 당시 모습. 오른쪽 사진은 그 해 11월 64K D램 시생산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개발진이 모여 촬영한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져온 가치를 기업 운영의 초석으로 삼아온 최고경영자(CEO)의 기업 철학이 바로 그것(물론 그에 공감하고 따르는 임직원의 존재는 필수다). 우리나라가 오늘날과 같은 전자∙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각 분야에서 탁월한 철학을 견지해온 CEO, 그리고 그 철학과 뜻을 함께하는 산업 현장의 일꾼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미래 산업 호령하려면 기술 혁신과 철학, 통찰력 겸비해야

오늘날 ‘기업 철학’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경영인으로 제프 베조스(Jeffrey Preston Bezos)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 공간 아마존닷컴의 창립자 겸 CEO인 그는 오랫동안 부동의 ‘세계 부호 1위’였던 빌 게이츠를 지난해 밀어내고 세계 최대 자산가가 됐다. △블루오리진(Blue Origin) △에어비앤비(airbnb) △디웨이브시스템(D-Wave Systems)[3] △우버 등 수십 개의 잘나가는 기업 운영에 직접 관여하거나 자금을 대는 등 온라인 소매업과 IT 업계 분야에서 존재감을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베조스식(式) 개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경영 방식은 화려한 어록과 함께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켜왔다. 일례로 그는 임직원과 회의할 때마다 자기 옆 자리를 비워뒀다. 일명 “빈 의자(the empty chair) 정책”이다. 의자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고객. 매사 고객의 입장에서 살피고 결정 내려야 한다, 는 그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런가 하면 2015년 미국 시애틀에 들어선 아마존 신사옥의 명칭은 ‘데이원(Day 1)’이다. “늘 처음 시작하는 날인 것처럼 초심으로 일하라”는 의미다. “예전 세상에선 훌륭한 사업을 구축하는 데 당신 시간의 30%를, 그에 대해 떠들고 다니는 데 70%를 각각 들였지만 새로운 세상에선 그 반대 비율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같은 어록에선 베조스 특유의 직관적 통찰이 번뜩인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철학이 있는 기업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철학이란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부정적 인상을 동시에 갖고 있다. 현실적 성공이 뒷받침됐을 때의 철학은 그 성공을 가능케 했던 사고의 깊이와 동의어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철학은 한낱 패배자(loser)의 공염불에 불과하다.

값어치 있는 정보라면 그것의 발생 장소와 무관하게 ‘실시간 공유’가 가능해진 요즘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선 지금 이 시각에도 ‘나만의 철학’으로 기업 경영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용틀임에 한창이다.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서 그중 누가(어떤 기업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예측도 확신을 담보하기 어려운 세상, 분명한 건 단 하나다. 미래 산업을 호령하는 ‘스타 기업(인)’이 되려면 기술적 혁신과 그걸 이끌어내는 철학, 그 철학을 견고하게 만드는 통찰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

 


[1] http://www.business2community.com/leadership/10-greatest-business-leaders-time-01537670#jqyrq2Ch8oMmCux6.97

[2] 大航海時代. 유럽 선박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에 몰두하던 시기를 일컬으며, 대략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3] 캐나다 소재 상업용 양자컴퓨터 제작 기업

모터∙브러시∙핸들… 소비자가 스틱형 무선청소기에 바라는 ‘전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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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삼성전자 기술로 말하다 2편 파워건 이 글은 파워건 개발 업무에 참여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임직원 김동준∙이승열∙유동훈∙김신(왼쪽부터)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이승열씨는 컴프레서앤드모터(C&M)사업팀 모터그룹에, 나머지 세 사람은 개발팀 키친앤드클리닝(K&C)개발그룹에 각각 소속돼 있습니다

1901년 영국 발명가 세실 부스(Cecil Booth)가 처음 선보인 진공 청소기는 말이 끌어야 할 만큼 무겁고 컸다. 소리는 또 얼마나 엄청났던지 끌던 말이 놀라 뒷발질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근 한 세기를 지나며 청소기 기술은 계속 진화해왔다. 작고 가벼운 몸체, 적은 소음과 강력한 흡입력, 탁월한 사용성 등을 놓고 기술자들은 고민을 거듭했다. 스틱(stick)형 무선청소기 역시 그 산물 중 하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기 시장에서 무선청소기는 ‘주력 상품’이 아니었다. 가장 흔히 쓰이는 가정용 캐니스터[1] 청소기의 흡입력이 300W[2] 정도인 데 반해 핸디(handy)형 무선청소기의 흡입력은 약 30W. 성능 차가 워낙 크다 보니 무선청소기는 “눈에 보이는 먼지 위주로 단시간에 청소할 때 쓰는 제품”이란 인식이 강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삼성전자가 출시한 스틱형 무선청소기 ‘파워건(PowerGun)’은 단연 눈에 띄는 제품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동종 제품 중 가장 강한 흡입력(150W)을 갖췄기 때문.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소형 디지털 인버터 BLDC[3]모터(이하 ‘삼성 디지털 인버터 BLDC모터’)와 배터리 기술, 흡입력 제고에 특화된 유로(流路) 설계[4] 등이 합쳐진 결과다.

디지털 인버터 모터 소형이면서도 최고 흡입력 150W 구현 팬 날개 무게 오차 최소화해 소음 저감

파워건은 이름처럼 강력하다. 2017년 9월 현재 출시된 스틱형 무선청소기 중 가장 센 흡입력을 자랑한다. 150W의 힘으로 바닥에 흩뿌려진 먼지를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딱딱한 바닥 면에 시리얼과 모래를 각각 한 줌씩 뿌려놓고 측정한 청소 효율은 99%. △삼성 디지털 인버터 BLDC모터 탑재 △최적 모터 속도 구현 △팬(과 주변 고정) 날개 형상 설계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삼성전자 김신씨가 파워건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모터를 들고 있다

진공청소기에서 모터는 ‘심장’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손으로도 거뜬히 들려야 하는 스틱형 무선청소기 모터라면 작고 가볍게 만드는 일도 중요할 터.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소형이면서 성능이 강력하고 소음과 전력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모터 개발에 착수했다. 삼성 디지털 인버터 BLDC모터는 그 결과물이다.

진공청소기 기술은 ‘(모터를 활용한) 팬 회전’이 관건이다. 팬이 분당 1만 회 이상 회전하며 기기 내 공기를 밖으로 빼내면 기기 내부 기압은 낮아진다. 기기 바깥쪽 기압은 상대적으로 높으므로 내·외부 압력 차가 발생한다. 공기는 기압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이동하므로 청소기 밖 공기가 청소기 안으로 밀려 들어와 먼지도 함께 끌고 나간다. 이때 모터의 회전 속도가 높을수록 청소기 내·외부 압력 차는 커진다.

하지만 모터 회전 속도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고성능 제품’이라 말하긴 어렵다. 모터의 효율이 높아지려면 모터 속도가 적정해야 한다. 모터는 빠르게 돌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하지만 그만큼 수명도 단축시킨다. 모터가 너무 빨리 돌아도, 너무 느리게 돌아도 문제인 구조다. 파워건의 모터 회전 수(6만5000rpm[5])와 속도(190m/s)는 ‘모터 내구성을 고려한 최적 모터 속도’에 대해 삼성전자가 내놓은 해법인 셈이다.

‘모터 회전 수 6만5000rpm’엔 비밀이 하나 더 있다. 모터는 회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고주파음을 낸다. 특히 10만rpm이 넘어가는 제품에선 높고 날카로운 소음을 피하기 어렵다. 파워건은 이 점에 착안, 모터가 너무 빨리 돌았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했다.

생활가전 제품을 만들 때 소음 저감(低減)은 꽤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소음이 심하면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자주 쓰긴 꺼려지기 때문. 진공청소기에서 소음은 팬 날개 균형 정도와도 관련이 있다. 자동차 휠 밸런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자동차 휠의 균형이 틀어지면 고속 주행 시 “웅웅” 하는 소음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파워건 개발진은 모터 팬 날개 무게 오차를 7㎎까지 줄여 균형을 잡아냈고, 소음이 증폭해 본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설계했다.

6만5000rpm의 모터 회전 수로 150W의 흡입력을 구현하기 위해 팬과 그 주변 고정 날개 구조도 바꿨다. 항공기 날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팬과 주변 고정 날개를 모두 유선형으로 설계한 것. 회전 수가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모터 내 공기는 일(一)자형 고정 날개를 지날 때보다 유선형 고정 날개를 지날 때 더 빠르게 흐른다. 회전 수를 더 높이지 않고도 강한 흡입력을 구현할 수 있는 비결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청소기 대부분이 ‘유선형 팬과 일자형 고정 날개’로 구성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고정 날개까지 유선형인 팬 구조를 갖춘 건 삼성 제품이 유일하다(삼성전자는 이 같은 팬 조립 방식으로 특허를 획득했다).

듀얼 액션 브러시 회전 솔 2개 탑재해 효율적 유로 설계 1분에 5000번 회전… 청소 시간 단축

모터에서 발생시킨 힘을 온전히 청소에 쓰려면 유로를 잘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눈 여겨봐야 할 부분은 파워건 유로 입구에 장착된 일명 ‘듀얼 액션 브러시’. 액션(action∙회전) 브러시는 원래 업라이트(upright) 청소기에 주로 쓰였다. 목이 가늘고 긴 디자인으로 북미 지역 카펫 청소에 특화된 업라이트 청소기는 촘촘한 카펫 섬유 사이사이 먼지를 얼마나 잘 제거하느냐 하는 게 핵심 성능이다. 회전 브러시는 캐니스터 청소기에 비해 흡입력이 약한 스틱형 무선청소기의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삼성전자 김동준씨가 파워건의 듀얼 액션 브러쉬를 소개하고 있다

듀얼 액션 브러시는 말 그대로 두 개의 회전 브러시로 구성돼 있다. 이들 브러시가 바닥에 깔려있는 먼지를 쓸어 위로 띄운 다음, 사방으로 회전하며 유로로 재빨리 올려 보낸다. 전용 모터로 회전하는 이들 브러시의 분(分)당 회전 수는 2500회. 파워건을 쓰면 분당 5000번 쓸어 담는 효과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자연히 브러시가 하나뿐인 청소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청소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지금 시장에 나와있는 스틱형 무선청소기 중 회전 브러시를 두 개 탑재한 제품은 파워건이 유일하다).

플렉스 핸들 버튼 하나로 최대 50도 관절처럼 꺾여 가구 아래 틈 청소도 선 채로 ‘오케이’

무선청소기로 청소가 간편해졌다 해도 무게가 2㎏대인 기기를 오래 쓰다 보면 손목에 무리가 가기 일쑤다. 더욱이 스틱형 제품은 앞뒤고 밀고 당기는 작업을 반복하게 돼 있어 손목 역시 그에 따라 펴졌다 구부려지곤 한다. 파워건 개발진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은 대안은 ‘플렉스 핸들’. 손목으로 향하는 무리를 최소화하고 적은 힘만 가해도 작동시킬 수 있도록 설계된 인체공학적 장치다. 버튼 하나로 50도까지 꺾이는 ‘관절’을 본체에 숨겨놓은 게 골자. 손목 대신 본체가 꺾이는 구조여서 장시간 청소해도 손목이나 어깨가 아프지 않다.

삼성전자 이승열, 유동훈씨가 플랙스 핸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플렉스 핸들의 장점은 또 있다. 가구와 바닥 사이 납작한 틈까지 손쉽게 청소할 수 있단 사실이 그것. 역시 본체를 필요한 만큼 꺾으면 된다. 파워건 손잡이 부분은 본체를 바닥에 뉘어도 손목과의 각도를 언제나 최적의 형태로 유지한다.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엎드려 손잡이를 고쳐 잡지 않아도 된다.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기술 고출력 대용량 배터리, 5중 헤파 필터… 머리카락 엉킬 걱정 없는 먼지통도 눈길

파워건엔 탈착(脫着) 가능한 고출력(32.4V) 대용량 배터리팩이 포함돼 있다. 완전히 충전했을 때 한 개의 배터리로 40분간 사용할 수 있으며 배터리를 두 개 쓰면 80분까지 청소를 이어 할 수 있다. 아홉 개의 배터리셀로 구성된 배터리팩은 5년 사용해도 용량이 80%까지 유지된다(자사 실험값, 1년 100회 완전히 충전 후 방전할 때까지 사용했을 때 기준). 방전된 후엔 사용이 불가능한 내장형 배터리 제품의 단점을 보완, 배터리를 탈착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용 도중 방전되더라도 다른 배터리로 갈아 끼울 수 있기 때문.

필터도 파워건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파워건 필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세먼지를 99.9%까지 차단한다. 또한 5중 청정 헤파 시스템은 기기 밖으로 배출되는 공기를 정화해준다. 유로를 통해 올라간 먼지는 ‘사이클론[6] 시스템’에서 한 차례 걸러진다. 강력한 사이클론 기류에 의해 큰 먼지가 걸러진 후엔 ‘이지클린 필터’와 ‘워셔블 엠보싱 필터’가 작은 먼지를 잡는다. PM 2.5 수준의 초미세먼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마이크로 필터’와 ‘헤파 필터’가 걸러낸다.

파워건의 이지클린 먼지통

관리하기 편한 먼지통 역시 청소기 선택 시 소비자가 눈 여겨보는 사양이다. 파워건에 장착된 일명 ‘이지클린 먼지통’은 쉽게 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물세탁도 가능하다. 청소기 먼지통은 대개 사이클론 회전 기류를 이용해 먼지와 공기를 분리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머리카락이나 동물 털 등이 쉽게 감기는 것. 이 사이에 먼지나 이물질이 끼면 청소가 까다로워지고 흡입력도 감소한다. 하지만 이지클린 먼지통은 사용자가 레버만 잡아당기면 필터에 감긴 머리카락 뭉치가 툭 떨어지도록 설계됐다. 손으로 일일이 뜯어내거나 억지로 잘라내지 않아도 빼낼 수 있는 것(이 기능은 먼지통뿐 아니라 듀얼 액션 브러시에도 있다).

파워건의 6대 기술 경쟁력 / 150W 흡입력, 99% 청소 효율 구현, 분당 5000회 작동하는 듀얼 액션 브러시 / 50도까지 껶여 가구 밑 청소도 간편한 플렉스 핸들 / 최대 80분 (2개 사용 기준) 사용 가능한 착탈식 32.4V 배터리 / 초미세먼지 99.9% 배출 차단하는 청정 헤파시스템 / 먼지 제거 용이한 이지클린 먼지통과 브러시

무선청소기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청소 진로를 방해하는 선(cord)이 사라져 집안일을 보다 편리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공간을 덜 차지해 보관이 쉬운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무선청소기는 힘이 없다’는 통념도 이젠 옛말이다. 오래가는 배터리와 강력한 소형 모터 기술이 무선청소기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꿨기 때문이다.

개선된 기술은 사용자의 인식은 물론, 생활 습관까지 바꾼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기는 ‘대청소엔 어울려도 눈앞 작은 공간을 금세 치우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가전’이었다. 하지만 파워건 사용자라면 그런 고민은 필요 없다. 그저 한 손을 뻗어 손잡이를 쥐고 목표물을 향해 ‘정조준’만 하면 ‘상황 종료’다. 흡입력은 더없이 만족스럽고 작업 후에도 별다른 정리 절차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 이 단순한 변화가 불러올, 한층 쾌적해지고 풍요로워질 생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1] 본체·호스·파이프·솔 등으로 구성돼 빨아들이는 힘만으로 청소하는 제품
[2] 와트(watt). ‘에어(air) 와트’와 같은 개념으로 흡입력을 나타내는 일의 단위다
[3] Brush Less Direct Current. DC모터는 소비 전력과 소음이 적고 회전 제어가 용이하며 발열 현상도 덜해 생활가전 제품에 주로 쓰인다. 단, 브러시 마모가 잦은 게 단점. BLDC모터는 브러시를 제거, 이 부분을 보완한 게 특징이다
[4] 진공청소기 가동 시 기기 내부로 공기가 지나는 길
[5] revolution per minute. 1분당 회전 수
[6] cyclone. 원심력으로 유체 속에 섞인 고체 알갱이를 골라내는 장치

프로듀서 S의 애니메이션 제작기 “그러니까 세미컨덕터가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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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배너 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프로듀서 S의 애니메이션 제작기 “그러니까 세미컨덕터가 뭐냐고!” 삼성전자 기업 영상 ‘반도체, 그게 뭐지?(What is a semiconductor?)’ 제작 후기

요즘 주변 사람들이 심심찮게 날 ‘프로듀서 S’라고 부른다. 삼성전자 뉴스룸에 글 몇 편 쓰고 난 후의 변화다. 자타 공인 ‘오지(奧地) 전문 프로듀서’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 촬영 도중 부딪치는 돌발 변수가 워낙 다양해 어지간한 상황에선 좀처럼 당황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 현장은 여러모로 색다르고 또 막막했다. ‘아, 이건 또 뭥미(뭐임)?’

∙ 이 글은 실제 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와의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한 결과물입니다
∙ 본문에 삽입된 사진은 전부 갤럭시 S8로 촬영됐습니다

 

#몰라서 가능했다? ‘용감한 도전’

‘반도체를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이번 영상은 두 달쯤 전,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러니까 ‘반도체(semiconductor) 개념을 간단히 소개하는 영상 제작하기’가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고심 끝에 나와 제작진은 반도체의 구조와 원리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을 한 편 제작하기로 했다.

반도체는 모든 전자기기의 근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모든 이가 마주하고 있는 정보통신(IT) 혁명을 가능케 한 주역이기도 하다. 반도체라고 하면 누구나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막상 그게 뭔지, 어떤 구조를 띠고 있는지 되물으면 명쾌한 대답을 내놓는 이는 드물다. 나라고 예외일 리 없었다. ‘반도체라… 까맣고 작은, 네모나게 생긴 칩 같은 것 아닌가?’ 반도체 원리라곤 1도 모르는 ‘반도체 무식자’의 애니메이션 제작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솔직히 작업 초기만 해도 영상 제작이 어려울 거란 생각은 별로 안 했다. 외려 ‘재밌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나중에야 깨달은 거지만 아주 복잡한 뭔가를 타인에게 설명하려면 자신부터 그 대상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뭔가’가 문과 출신으로 오랫동안 ‘전문적 이공계 지식’과는 담 쌓고 살아온 내겐 너무 어려운 대상이란 사실이었다.

 

#전혀 다른 뇌, 제대로 충돌하다

“그러니까 트랜지스터랑 전류, 나노…. 잠시만요, 조금만 천천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여긴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삼성나노시티 기흥캠퍼스. 보다 정확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반도체 전문가를 만나러 왔다. 기술 소재 영상을 제작할 때 가장 힘든 일은 해당 기술을 공부하는 것이다. 전문가 수준의 이해가 뒷받침돼야 설명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 아쉬운 대로 관련 서적을 찾아 뒤적이고, 심지어 초등학생 대상 과학 책도 구해 읽었지만 여전히 아리송했다. 삼성전자 뉴스룸을 비롯, 웹서핑을 거듭해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반도체의 개념과 기본 구동 원리를 완벽히 이해한 후 그 내용을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하는 게 이번 작업의 핵심. 일단 이해하고 있는 내용을 설명해보라, 던 개발자 앞에서 손짓 발짓 해가며 그간 공부한 것들을 풀어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개발자의 표정은 점차 굳어져갔다.

▲기술 영상을 쉽게 만들려면 전문가 수준으로 해당 기술을 숙지하는 게 우선! 나름 열심히 공부한 후 개발자와 마주 앉았지만 난수표 수준의 자료들 앞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기술 영상을 쉽게 만들려면 전문가 수준으로 해당 기술을 숙지하는 게 우선! 나름 열심히 공부한 후 개발자와 마주 앉았지만 난수표 수준의 자료들 앞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순서를 바꿔 개발자의 설명을 들을 차례. 하지만 이번엔 날 포함한 제작진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급격히 나빠지는 일행의 낯빛을 알아차린 개발자는 짧은 한숨을 뱉더니 펜을 쥐고 칠판 앞에 섰다. “자, 제가 최대한 간단히 설명해볼게요.” 그가 칠판 가득 적어 내려간 건 복잡한 수식들이었다. 굳이 어려운 용어를 동원할 필요 없이 ‘만국 공통어’인 수식을 써 설명하면 좀 더 쉬워지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 맘, 십분 이해했다. 하지만 내 눈에 그 수식들은 전문용어 못지않게 어려웠다. 그때부턴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쩌지? 저렇게까지 설명해주는데 못 알아 듣는다고 얘기하면 실망할 텐데….’

이럴 때 쓰면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비유’다. 제아무리 복잡한 원리라도 일상 생활에 쓰이는 것에 빗대어 설명하면 이해하기가 좀 쉬워지지 않을까?

'개발자 뇌 VS 영상 제작자 뇌'

“잠시만요, 지금 말씀해주신 원리는 A에 비유하면 어떨까요?”

“글쎄요, 비슷하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아닙니다.”

“그럼 B로 설명하면 비슷할까요?”

“아주 틀린 건 아닙니다만 역시 같다곤 볼 수 없습니다. 정답은 아니에요.”

모름지기 기술의 세계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개발자의 머릿속 역시 그 세계에 맞춰져 있다. ‘반도체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볼 영상이니 이 정도 비유면 직관적 이해를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오판이었다. 트랜지스터에서 ‘0’과 ‘1’이 ‘생(生)’과 ‘사(死)’만큼이나 다르듯, 오차 없이 똑 떨어지는 설명이 아니면 개발자의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한편으론 답답했고 다른 한편으론 좌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심 감탄했다. ‘이렇게 정확하고 단호한 태도 덕에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구나!’

 

#무시무시한 관문 ‘피드백 홍수’

개발자와 머리 맞대고 진행한 ‘스터디’가 끝나고 본격적 제작 작업에 돌입했다. 사실 이제부터가 제작자 입장에선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무수한 피드백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기본 원리나 구조에 대한 설명이 맞는지 글 형태로 개발자에게 보내는 것. 정확하지만 복잡하고 꽤 긴 ‘개발자 언어’와 간단하고 명료하지만 정확하다고 말하긴 애매한 ‘영상 제작자 언어’가 수 차례 피드백을 거치며 서서히 합쳐졌다.

우여곡절 끝에 설명 부분 피드백 작업이 완료됐다. 이제부턴 콘티[1]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다른 전자 기술도 마찬가지겠지만 반도체 기술 역시 시각적으로 쉽게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너무 미세해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게 다반사. 지나치게 복잡해 한참 들여다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경우 역시 허다하다. 이 때문에 콘티 작업은 모든 공정 가운데 수정이 가장 많다. 단계별로 현업 부서의 협조도 절실하다. 이래저래 품이 많이 드는 일인 셈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화 작업. 쓱싹 그리는 것 같지만 엄청난(?) 공부가 선행되지 않으면 결코 시작할 수 없는 일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화 작업. 쓱싹 그리는 것 같지만 엄청난(?) 공부가 선행되지 않으면 결코 시작할 수 없는 일이다

스터디 당시부터 함께 공부했던 그림 담당 작가와 콘티를 짠 후 그게 개발자의 설명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이를테면 “삼성전자는 기존 트랜지스터 구조를 확 바꿨다”는 대목에서 우린 ‘확 달라진 변화’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이전 구조를 네모로, 이후 구조를 원(圓)으로 각각 표현했다. 하지만 개발자 피드백은 ‘강경한 반대’였다. “실제로 그렇게(네모에서 원으로) 바꾸는 게 아니므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해를 돕는단 핑계로 기본 원리를 왜곡해선 안 될 일. 결국 이 부분은 그림 대신 글로 설명하게 됐다. 이런 과정이 짧으면 한 달, 길게는 3개월까지 걸렸다.

 

#끝난 게 아니다, 끝날 때까진!

근 두 달 만에 1차 편집본이 완성됐다. 또 다시 개발자의 피드백을 기다리는 시간. 일종의 최종 점검이었던 만큼 ‘이제 됐다!’는 안도감과 ‘또 고칠 게 생기면 어쩌지?’란 초조함이 교차했다.

누군가 그랬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고.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편집 과정에서 ‘사실과 전혀 다른데다 부자연스럽기까지 한’ 부분이 발견됐다. 작화 작가와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걸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왜 꼭 이런 실수는 마지막 순간에야 눈에 띄는 걸까?

▲작화 작가의 손끝에서 점차 활기를 띠어가는 애니메이션. 얼마 남지 않았다, 개봉 박두!▲작화 작가의 손끝에서 점차 활기를 띠어가는 애니메이션. 얼마 남지 않았다, 개봉 박두!

영상이 완성되고 대본까지 나오면 ‘진짜 마지막 작업’이 남는다. 애니메이션에 성우 목소리를 입히는 일이 그것. 영상 제작에 관여한 다수의 의견을 모아 제목은 “반도체, 그게 뭐지?(‘What is a semiconductor?’)로 낙점됐다.

이렇게 또 한 편의 영상, ‘만만하게 봤다 제대로 큰 코 다친’ 기술 애니메이션이 완성됐다. 업로드 작업까지 마친 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약과지. 더한 고생도 얼마나 많이 했어!’

반도체란 무엇인가 영상 캡처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영상은 이제까지의 작업과 확연히 달랐다. 종종 머리에 쥐가 나긴 했지만 몸만은 늘 편했다. 폭우를 헤치며 오지 마을에 고립될 걱정도, 혹시라도 총격전이라도 터지면 어쩌나 긴장할 염려도 하지 않았으니까. 밤잠 방해하는 모기도, 눈뜨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모래바람도 없었으니까.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추억 쌓고 사람 사귀는 몸 고생도 나름 의미 있지만 역시 사람은 몸 편한 게 최고라니까!’


[1] continuity. 영상 촬영 시 각본을 바탕으로 작업에 필요한 사항을 기록해놓은 것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 이렇게 절묘한 ‘콜라보’를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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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기술로 말하다 ③‘LED 디스플레이’ 편  아래 청소기 자리에 시네마 LED를 적당하게 넣어주세요 마땅한 제품 컷이 없어 아래 이미지 드립니다 만약에 밝은 것이 더 괜찮으시면 2안으로 부탁 드려요 이 글은 LED 디스플레이 개발 업무에 참여한 조성필∙이호섭∙김대식(이상 삼성전자 VD사업부 개발팀, 사진 왼쪽부터)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세 사람 뒤로 보이는 게 삼성전자가 개발한 고해상도 LED 대형 디스플레이입니다)

크지 않은 상영관. 실내엔 조명이 환하고 스크린 앞 스탠드 위, 또 하나의 가설(假設) 스크린이 놓였다. 평상시 상영 시각이라면 대부분 채워졌을 객석은 텅 빈 상태. 대신 중간쯤 중·장년 남성 열 명 남짓이 팔짱을 낀 채 영화 감상 모드로 앉아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상영 담당 기술자를 포함한 실무진과 임원들이다.

“……”

화면 위로 영상이 흐른다. 그런데 이 스크린, 뭔가 다르다. 일반 영화처럼 어둠 속에서 빔 프로젝터를 향해 쏴주는 빛이 스크린에 맺히는 게 아니라, 화면 자체 빛으로 화사한 영상이 빚어진다. 기술 개발은 완료됐지만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영화용 LED 화면이 실험적으로 구동되는 현장이다.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암전되자 관람에 집중하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간간이 헛기침 소리도 들린다. LED 화면을 구동시키던 기술팀은 조용히 관람석에 앉아있던 남성들의 표정을 살핀다. 잠시 거북한 침묵이 계속된다.

“이건 아닙니다.”

일갈하는 소리가 침묵을 깬다. 그중 나이가 가장 지긋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듯한 한 명이 일어나 나가며 한마디 뱉는다. 그러자 몇 사람이 주저주저하다 따라 나가고 남은 일부는 난처한 기색으로 기술팀에 말을 건넨다. “저희하곤 좀 맞지 않는 것 같네요. 기존 영상과 워낙 달라서….”

기술팀원이 “뭐가 문제인 것 같으냐”고 물어도 명확한 대답은 없다. 돌아오는 답변은 “이제껏 보던 영상과 다르다” “우리 영화랑은 뭔가 맞지 않는다”처럼 하나같이 모호한 것뿐. 기술팀장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지만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다. ‘다시 대화를 시도해보자!’

극장 상영 전문가 대상 ‘LED 스크린’ 프레젠테이션, 그 결과는

위 상황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LED 시네마 스크린 시장을 개척하던 당시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다. 지난 7월 26일자 스페셜 리포트(삼성 LED 스크린, ‘최후의 집중형 문화 공간’ 극장을 도발하다’)에서 살펴봤듯 LED 스크린은 ‘암전 공간에 설치된 빔 프로젝터로 빛을 쏴 화면에 영상을 맺히게 했던’ 이제까지의 영화 상영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는 기술이다. 120년간 이어져온 ‘전형적 극장 스크린’과 전혀 다른 동시에 상당한 장점을 보유한 기술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기업 중에서도 LED 디스플레이 기술 부문에서 독보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2017 시네마콘[1]’ 기간이었던 올 3월 27일(현지 시각)엔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재 영화관 시네마크(Cinemark)에서 세계 최초 극장 전용 LED 디스플레이 ‘삼성 시네마 스크린’ 공개 시사회를 열었다. 국내에선 지난 7월 13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역시 세계 최초로 시네마 LED 스크린 상영관 ‘수퍼S(SUPER S)’를 선보였다.

삼성 시네마 스크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올해 시네마콘 기간 중 미국 시네마크 영화관에서 개최된 ‘삼성 시네마 스크린’ 공개 시사회 당시. 다 함께 행사를 준비했던 삼성전자 임직원이 한데 모여 포즈를 취했다

롯데 시네마 LED 스크린▲지난 7월 13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수퍼S’ 관 개관 행사 당시 모습

사업적 측면으로 보면 시네마 LED 스크린은 아직 초기 단계다. 이 정도의 가시적 결실을 이끌어내기까지도 DMC(Digital Media & Communications)연구소와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등 삼성전자 내 두 조직의  역량이 총집결됐다. 그 종류가 어떤 것이든 변화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포함,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엔 지금까지의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으려는 속성, 즉 관성(慣性)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때 관성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새로운 움직임 일체를 차단하려는 힘이다, 마치 출입구가 어딘지 감(感) 잡을 수 없는 벽처럼.

극장 문화 전반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이 기술은 시장에 진입하기까지 기술 개발 단계에서 한 번, 사업 파트너 확보 단계에서 또 한 번 등 ‘관성의 벽’을 최소 두 차례 이상 뛰어넘어야 했다. 선행기술 개발에 주력한 삼성전자 DMC연구소, 그 바통을 이어 받아 현장 곳곳을 발로 누빈 삼성전자 VD사업부가 각 단계마다 제 몫을 다한 결과였다.

장점 많은 LED 디스플레이, 실내용 제품도 잘 만들 수 있을까?

취재진이 삼성디지털시티(경기 수원시 영통로)를 찾은 건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3일. LED 디스플레이 개발에 참여했고, VD사업부 주도로 진행된 시네마 LED 스크린 프로젝트까지 수행한 삼성전자 임직원들을 만나 관련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 등에 얽힌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김대식∙이호섭∙조성필▲김대식∙이호섭∙조성필(왼쪽부터)씨는 셋 다 DMC연구소에서 수 년간 LED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해왔고, 지금은 나란히 VD사업부로 소속을 옮겨 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LED는 ‘Light Emitting Diode’의 약자다. 해석하면 ‘빛을 내뿜는 단자’ 정도가 된다. 말 그대로 작고 빛을 내는 단자를 모아 커다란 발광체를 만드는 기술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아주 작은 전구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빛을 내는 원리 측면에선 전구와 전혀 다른 기술이 적용된다.

기존 전구는 필라멘트를 가열시켜 빛을 낸다. 그런데 이 방법을 쓰면 빛보다 열이 훨씬 더 많이 나온다. 모닥불을 피우면 나무가 타며 열을 내지만 그 과정에서 빛도 어느 정도 나와 주변을 밝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따라서 이 발광체를 폭넓게 적용하려면 ‘빛을 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열을 기기가 어떻게 견뎌내도록 할 건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반면, LED에서 빛을 내는 단자는 양자역학 수준에서 작용한다<양자역학에 대해선 지난달 16일 발행된 스페셜 리포트(’찰나의 마법’ 양자컴퓨터 세계가 온다)를 참조할 것>. 다시 말해 특정 구조에서 전자가 움직이면서 남은 에너지가 광자(光子)[2]로 전환되기 때문에 열이 전혀 나지 않은 상태로 빛이 발생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LED는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지금까지의 전구와 차별화된다. 첫째, 열이 나지 않기 때문에 많이 모아 사용할 수 있다. 둘째, 단자를 어느 정도 모으느냐에 따라 지극히 작은 기기에서 엄청나게 큰 기기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전기 조명 △TV 모니터 △실내∙외용 사이니지 △극장 스크린 등 분야를 막론하고 가히 ‘LED 혁명’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LED 기술이 개발, 응용되고 있다.

LED를 활용한 화면 확장은 기술적으로만 봤을 땐 얼마든지 구현 가능하다. 화면을 계속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특정 용도의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기술을 해당 용도에 맞춰 조정해가야 한다. 예를 들어 야외용 대형 전광판 같은 건 여러 개 이어 붙여도 대부분의 사용자가 멀리서 보게 되는 만큼 이음매가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 또한 화소(畵素) 하나하나를 구성하는 LED 모듈 자체 크기가 상당해 전체 해상도가 다소 떨어져도 전광판 내용을 이해하는 덴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이 디스플레이를 실내로 끌어들여 가까운 데서 보게 하려면 앞서 살펴본 두 가지 특성이 오히려 골치 아픈 난제로 바뀐다. 이음매 없이 매끈하게, 전체적으로 하나인 듯 보이도록 하는 게 중요해지는 것. LED 모듈을 아주 작게 만들어 화질을 실물 수준으로 선명하게 개선하는 작업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후발업체 한계 딛고 ‘고해상도 실내 사이니지’ 개발 나서기까지

삼성전자 DMC연구소가 처음 실내용 대형 디스플레이 제작에 도전했을 당시, 개발진은 초기 연구 방향을 ‘LCD 디스플레이 개발 승계’에 맞췄었다. 관건은 LCD 화면 테두리, 즉 ‘베젤(bezel)’을 없애는 것. 작업은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됐다. 기존 LCD 디스플레이에서 베젤을 점점 없애나가는 게 하나, 작은 LED로 기존 베젤 영역을 덮어 안 보이게 하는 게 다른 하나였다. 특히 후자는 보다 미세한 LED 단자를 개발,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선 베젤 없애기부터. 2014년 말 삼성전자는 기존 14.8㎜였던 베젤을 1.7㎜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기존 베젤을 LED로 덮는 작업은 이보다 이른 그해 8월 완성됐지만 막상 해놓고 나니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불거졌다. LCD 화면과 베젤 부위 LED 화면 간 화질을 균일하게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기 때문.

VD VIDEOWALL
▲삼성전자는 2014년 말 이미 기존 14.8㎜였던 베젤을 1.7㎜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결국 개발진은 당초 방향을 선회, ‘(일반 LCD가 아닌) LED 액정 화면 개발’에 집중하기로 했다. LED 디스플레이는 베젤이 없어 이음매 처리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이전까지의 LED 디스플레이가 ‘멀리서도 보이게’ 야외용 전광판 스타일로 제작됐었다면 이제부턴 보다 더 일상에 가깝게, 또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을 만들기 위해 추가 노력이 필요했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일단 아주 작은 LED 모듈용 화면을 제작해야 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초소형 LED 패키지를 사용하면서도 최소 피치(pitch)[3]를 갖춘 화면 개발에 성공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무수한 LED 모듈이 한꺼번에 구동될 때 들어가는 에너지를 적정화(optimization)하는 것. 원하는 수준의 이미지를 얻어내려 에너지를 무작정 쏟아 붓기보다 적정 에너지를 투입하되, 인간 육안으론 들인 에너지에 비해 훨씬 밝고 선명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했다. 요컨대 ‘적은 에너지로 높은 해상도를 구현하는 동시에 소비전력은 줄일 수 있는’ 묘책 마련이 시급했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고해상도 LED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은 혁신적일 뿐 아니라 ‘에너지 절약’이란 측면에서 친환경적이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옛말이 있듯 제아무리 시대적 흐름에 맞는 기술이라 해도 그게 시장에서 통하려면 소비자 입맛에 똑 맞아 떨어지는 형태로 제공돼야 한다.

삼성전자가 고해상도 LED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에 나설 당시만 해도 글로벌 LED 디스플레이 시장은 전광판 중심으로 형성돼 있었다. 그리고 해당 부문에서 삼성전자는 후발업체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고해상도 실내용 사이니지’ 모델에 주목, 본사 차원에서 본격적 개발을 추진했다. 때마침 그 즈음 이뤄진 미국 LED 전문 기업 예스코 일렉트로닉스[4] 인수는 삼성전자가 보다 적극적인 시장 진입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로 꼽히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선보이며 전 세계 이목을 사로잡았던 일명 ‘트랜스포머블 TV’<아래 영상, 관련 기사는 여기 참조>는 그런 노력이 빚어낸 성과였다.

그 무렵 DMC연구소와 VD사업부의 고민은 이미 ‘그 다음 단계’, 즉 ‘실내용 대형 화면이 가장 필요한 장소는 어딜까?’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영화관’은 그 질문에 마침맞은 대답이었다.

120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극장 스크린 시장, 보란 듯이 바꾸다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 두 분야는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란 사실이 그것이다. 영화 상영 기술만 해도 그렇다. 장장 120년간 크고 작은 기술 혁신이 있긴 했지만 암흑과 빔 프로젝터를 활용한 기본 기술 구조는 흔들림 없이 유지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면 ‘모든 게 집중 영사 방식에 맞춰져 익숙해진’ 기존 방식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수퍼S관은 그런 노력의 결실이 탄생시킨, 삼성전자가 새롭게 개척한 시장인 셈이다.

“정치적 혁명도 마찬가지지만 기술 패러다임이 바뀔 때 최상위 기준은 ‘관련된 공동체의 선택’이다. 이런 기준은 논리나 실험 결과를 내세웠을 때와 달리 일단 한 번 형성되면 절대 뒤집히지 않는다.” (토마스 쿤 , ‘과학혁명의 구조’ 중)

굳이 쿤의 주장을 들먹이지 않아도 다들 안다, 아무리 낯설어 보이는 기술도 (그 기술을 실제로 접할) 소비자의 선호와 선택이 뒷받침되면 금세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단 사실을. 물론 초기 관성의 작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문화 자체가 소비자 중심으로 흘러가는 변화의 물결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도저한 인류의 역사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그 물결을 거스르지 않는 ‘기술’이야말로 삼성전자의 자부심 아닐까? 120년간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시장 개척에 보란 듯이 성공한 LED 디스플레이처럼 말이다.


[1] CinemaCon. 세계 최대 영화산업 박람회
[2] photon. ‘빛 입자’를 일컫는 말
[3] 픽셀과 픽셀 사이 간격. 피치가 작을수록 면적당 점(點)의 수가 많아져 보다 세밀하고 선명한 영상 표현이 가능해진다
[4] 이후 사명이 ‘프리즘뷰(Prismview)’로 바뀌었다(공식 홈페이지 https://www.prismview.com/)
[5] Thomas S. Kuhn. 미국 출신 과학철학자(1922~1996)로 버클리대∙프린스턴대∙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를 역임했다. 버클리대 재직 당시 출간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로 큰 명성을 얻었다

2년 넘게 60여 명이 매달렸다… 빌딩, ‘진짜 IoT’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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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기술로 말하다 ④‘스마트 빌딩 통합 관리 솔루션 b.IoT’ 편
이 글은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종민(생활가전사업부 전략마케팅팀)씨, 이주열씨, 남유진(경영지원실 기획팀)씨, 강대희∙송관우∙공동건씨, 주병길(네트워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씨, 이용권∙황규화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이주열∙강대희씨는 한국총괄 B2B영업팀, 송관우∙공동건∙이용권∙황규화씨는 DMC연구소 융복합기술팀 소속입니다

매끈한 디자인의 대형 텀블러(tumbler)를 연상시키는 글래스타워(glass tower). 지난해 5월 완공된 이후 폴란드를 대표하는 마천루 중 하나로 주목 받는 ‘스파이어빌딩(Warsaw Spire)’<아래 사진>이다. 높이 220미터, 사무실 전용 46개 층으로 구성된 본관 양 옆에 두 개의 별관 건물이 나란히 붙은 이 건물은 금세 ‘바르샤바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그런데 이 건물 전면 위쪽 유리판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할 로고가 파란색으로 설치돼 있다. SAMSUNG(삼성). 삼성전자 폴란드연구소가 입주해있는 덕분이다.

스파이어빌딩(Warsaw Spire)

바르샤바 랜드마크’ 스파이어빌딩의 비밀은?

글래스타워는 견고하면서도 아름다워 ‘현대 건축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하지만 에너지 운용 측면에선 설계자나 시공자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긴다. 여름엔 온실효과로 더워진 실내를 충분히 냉각시켜야 하고, 겨울엔 외부 냉기를 효율적으로 차단해야 하기 때문. 기존 운영 방식대로라면 글래스타워 관리자는 건물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발품을 팔아야 한다. 퇴근 시각 이후엔 신경 쓸 게 더 많아진다. 실내 곳곳을 일일이 점검하며 에어컨이 쓸데없이 켜있진 않은지, 구석구석 온도는 적정한지 살펴 에너지 낭비를 줄여야 한다. 불필요한 조명을 끄는 것도 필수다.

하지만 스파이어빌딩 내 삼성전자 폴란드연구소는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다. 건축주인 벨기에 부동산 개발사 겔람코(Ghelamco)와의 협력을 거쳐 해당 층에 스마트 빌딩 통합 관리 솔루션, 일명 ‘b.IoT’를 파일럿 형태로 운영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냉난방부터. 이곳에서의 냉난방은 자동으로 제어된다. 실내는 물론이고 옥상에도 센서가 달려있어 실내·외 온도를 감지, 그에 따라 냉난방 장치가 가동된다. 그뿐 아니다. 입주사 임직원이 출근하기 전 건물의 예열(겨울)·예냉(여름)에 필요한 시간을 자동으로 계산, 냉난방 장치를 운전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한층 절감된다.

센서는 사람 존재도 인식한다. 방이 비어있으면 에어컨과 조명이 저절로 꺼지는 것. 일반적으로 건물 가동에 쓰이는 에너지 중 70%가 공조[1]와 조명 부문에서 소비되는 만큼, 이런 방식의 에너지 절감은 건물 전체 관리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 구동에 필요한 정보 일체의 교환은 무선 네트워킹 기능을 갖춘 컨트롤룸(control room)에서 이뤄진다. 단, 이 공간에선 사람이 24시간 긴장된 상태로 대기하며 일일이 정보를 분석하거나 지시 내릴 필요가 없다. 대다수 기능의 운전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스파이어빌딩은 유려한 외관과 입주자의 쾌적함을 모두 유지하면서도 에너지 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b.IoT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공동건씨▲취재진에게 b.IoT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공동건씨. b.IoT를 채택한 빌딩 관리자는 사진에서처럼 건물 각 층의 상황을 모니터로 편리하게 점검할 수 있다

IoT 기반 에너지 알고리즘, 3년 전부터 연구

스파이어빌딩은 설계 당시부터 삼성전자가 건축주와의 협의를 거쳐 자사 기술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기반 건물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다. 삼성전자가 그간 개발, 구현해온 ‘IoT 빌딩’ 운영 솔루션이 처음으로 집약돼 선보이는 사례이기도 하다.


▲스파이어빌딩에 적용 중인 b.IoT 구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영상

스파이어빌딩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스마트 빌딩엔 다양한 첨단 기술이 녹아있다. 공조와 조명, 센서와 (무선)네트워크, 여기에 IoT와 AI까지…. 관련 기술 전반을 아우르는 역량과 규모를 갖추지 못한 기업은 엄두조차 내기 힘든 영역이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이 분야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b.IoT는 그 출사표인 셈이다. 실제로 이 브랜드 하나를 선보이기 위해 뭉친 조직만 △생활가전사업부 △네트워크사업부 △DMC(Digital Media & Communications)연구소 △해외 연구소(폴란드, 인도 방갈로르) △한국총괄 △기획팀 △디자인경영센터 등 여럿이다.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뉴스룸이 태스크포스(TF)팀 형태로 동고동락해온 임직원과 마주한 건 b.IoT 탄생 이면의 얘길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서였다.

사실 삼성전자 뉴스룸에서도 그간 IoT 관련 기사를 제법 소개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명 ‘홈 IoT’에 집중됐던 게 사실이다. 홈 IoT가 독립된 소공간인 가정에서 보안과 사용자 편의, 외부와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춰 이뤄진단 사실을 감안하면 빌딩 IoT는 규모나 성격 면에서 홈 IoT를 압도한다.

빌딩 IoT에서 핵심은 공조와 조명, 전력 부문의 에너지 절감과 안전성 점검이다. 각 요소를 끊김 없이 연결, 제어하는 기술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삼성전자 DMC연구소 역시 일찌감치 이 부문의 가치에 주목, 3년 전부터 IoT 기반 에너지 알고리즘을 개발해왔다. △빌딩 실내·외 공간에 설치된 센서에서 입력되는 정보(온도와 에너지 사용, 사람 존재 유무 등)가 서버 형태의 플랫폼에 모이고 △AI를 거친 데이터 분석 과정을 거친 후 △그 결과로 형성된 지침이 층별 제어기로 다시 전달되는 식이다.

예전 같았으면 관리자가 일일이 뛰어다니고 이상 여부를 몸으로 감지한 후 컨트롤 패드를 작동시키거나 무전을 하며 스위치를 끄고 켜야 했다. 사용자가 관리에 무심하면 에너지 낭비가 엄청나게, 그리고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스마트 빌딩 통합 관리 솔루션 b.IoT’ 를 설명하는 삼성전자 임직원들▲이날 인터뷰 현장엔 소속이 서로 다른 삼성전자 임직원 아홉 명이 자리를 함께해 b.IoT 프로젝트의 융합적 성격을 짐작하게 했다. 사진은 그중 여섯 명의 인터뷰 당시 모습을 편집한 것.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주병길·남유진·이종민·강대희·송관우·이주열씨

신호 간섭 현상 잡고 CCTV 화질도 대폭 개선

무선 네트워킹과 AI 기술을 토대로 운영되는 b.IoT는 에너지·비용 절감과 효율화 측면에서 기존 관리 시스템을 능가하는 도약이다. 센서만 설치하면 건물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정보를 수집, 복잡한 변수 전부를 정확히 처리한 후 가장 효율적 관리 지침을 (역시 건물 어디에나)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킹 절차가 무선으로 진행되는 만큼 폐쇄회로TV(CCTV) 등 건물 관리에 필요한 기기를 추가로 설치할 때에도 골치 아픈 배선 문제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물론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무선 네트워킹 환경에선 채널이 많아질수록 오가는 신호의 종류도 다양해져 서로 간섭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자칫 원활한 데이터 소통이 방해 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와이파이(Wi-Fi)를 기반으로 하되, 지그비(Zigbee)[2]와 BLE[3] 등 다양한 신호를 하나의 통로, 즉 IoT AP[4]로 공유하는 동시에 효율적으로 통신할 수 있게 했다. b.IoT 구현을 가능케 한 핵심 기술 기반 중 하나다.

홈 IoT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보안 기능도 b.IoT에선 한층 진일보했다. 원래 빌딩 IoT에서 보안은 홈 IoT에 비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편이다. 자체 통제 시스템에 의해 건물 출입 문제만 잘 관리되면 내부에서의 침입 우려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기 때문. 하지만 b.IoT는 오늘날 빌딩 보안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CCTV 화면 화질 문제를 삼성전자의 기술력으로 대폭 개선, 기대를 모은다.

기존 CCTV 장비로 화질을 높이려면 데이터 용량이 커져 전송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화질 수준을 무조건 끌어올리지 못했고 그 결과, 문제가 발생해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됐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고화질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자체 기술을 b.IoT에 탑재, 어느 상황에서도 또렷한 화면과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했다.

비디오 분석 기술(video analytics)의 진전이 불러온 변화도 작지 않다. 기존 CCTV에서 판독이 필요할 땐 사람이 모든 화면을 일일이 돌려가며 시청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칫 한눈이라도 팔면 그 즉시 보안에 구멍이 뚫리는 구조다. 이제껏 CCTV가 ‘예방’보다 ‘(사후) 사태 파악’ 용도로 많이 쓰여온 것 역시 그 때문이다. 하지만 AI 기술을 갖춘 b.IoT는 다르다. 비디오 화면을 자동으로 분석하는가 하면, 특이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경보까지 울려준다. 2017년 9월 현재 에스원과 협업, 비디오 분석 기술의 상용화 여부를 검증 중인 삼성전자는 향후 이 기술이 화질 개선 부문과 함께 빌딩 보안 솔루션 강화를 견인할 걸로 기대하고 있다.

10월 공식 론칭… “당분간 국내 시장에 집중”

사실 네트워크나 AI 등의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기술력은 새삼 언급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일정 궤도에 올라있다. 그런 면에서 b.IoT의 진짜 경쟁력은 ‘조직 간 융합’에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b.IoT 프로젝트’는 삼성전자 내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여러 조직이 TF 결성 단계에서부터 전방위적으로 협업, 완성시킨 결과물이다. 실제 솔루션 개발을 목표로 TF가 출범한 건 2015년 7월. 이후 2년여간 60여 명의 삼성전자 임직원이 땀 흘려가며 호흡을 맞춰왔다.

융합 프로젝트로서의 장점은 ‘론칭 이후’ 더 빛난다. 서비스는 물론, 영업 활동까지 일관성 있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원스톱 토탈 솔루션’인 셈이다. 실제로 b.IoT에 대한 관심은 국내외를 통틀어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해외에서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TF 팀원들은 “당분간 국내 사업 안정화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국내에서 튼실한 기반(infrastructure)을 구축한 후 시장 확장을 고민하겠다”는 복안이다. 2017년 9월 현재 스파이어빌딩에 이어 b.IoT 탑재가 예고된 건물은 △삼성전자영덕연수원(경북 영덕군 병곡면) △대구삼성창조캠퍼스(대구 북구 호암로) 등. 다음 달 18일엔 △삼성전자서초사옥(서울 서초구 서초대로)에서 b.IoT 공식 론칭 행사도 열린다.

아무리 멀리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망원경, 어느 곳이든 날아갈 수 있는 양탄자, 냄새만 맡아도 무슨 병이든 씻은 듯 낫게 하는 사과…. 각 물건을 지닌 3형제가 합심해 병에 걸린 이웃나라 공주를 구해내는 옛이야기가 있다. 만약 이들이 각자의 물건을 독립적으로 사용했다 해도 좋은 일을 꽤 많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 물건이 합쳐지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덕분에 그 성과는 상상 이상일 수 있었다. 각자의 기술력을 토대로 협업,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활짝 열어젖힌 b.IoT 탄생 과정이 문득 그 우화와 겹쳐 떠오른 게 그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1] 空調. 기계 장치나 자연적 방법을 통해 온도·습도 등 건물 내 공기 관련 제반 사항을 최적의 상태로 제어하는 일
[2] 250Kbps 이하의 저속 국제 표준인 IEEE 802.15.4 물리계층 기반의 무선 네트워킹 기술. 영단어 ‘지그재그(zigzag)’와 ‘벌(bee)’을 합성, 벌이 꽃을 쫓아 옮겨 다니듯 여기저기 움직이며 통신한단 의미를 담고 있다
[3] 저전력 블루투스 기술(Bluetooth Low Energy). 도달 반경이 10미터 내외인 2.4GHz 주파수 대역 기반 블루투스 기술을 일컫는다. 저전력∙저용량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4] 액세스 포인트(access point). 무선인터넷 사용자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무선 인터넷 접속을 돕는 중계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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