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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story), 감동으로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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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스토리(story), 감동으로 연결하다

 

응축된 감동의 경연장, 칸 라이언즈 국제 창의성 광고제

 ‘스토리(story)’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크고 작은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때 적절한 시청각 요소가 어우러진다면 단 몇 분만에 감동의 정도는 몇 배, 몇 십 배 증폭된다.

이는 짧은 영상으로 감정을 극대화해주는 힘을 갖는 비디오 경연장 ‘칸 라이언즈 국제 창의성 광고제(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이하 ‘칸 라이언즈’)’의 본질이기도 하다. 칸 라이언즈는 광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지구적 규모의 축제이다. 지난 1954년 동영상 광고 업계 종사자 중심으로 ‘국제필름광고제’란 이름으로 출범한 이래 매년 6월 프랑스 칸에서 약 1주일 동안 개최된다. 현재 참석 인원 규모는 90여 개국에서 초청된 1만1000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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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라이언즈에 출품되는 캠페인은 광고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큰 파급력을 몰고온다. 이들의 작품을 보면 문화계 동향의 키워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계 최고의 광고 회사 중 하나인 레오 버넷(Leo Burnett)은 2015년 가장 두드러졌던 트렌드를 △감동적인 스토리텔링 △차세대 몰입 콘텐츠 △세계를 더욱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고정관념 깨부수기 △밀어주기의 새 시대 등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지난해 12월 2일자 스페셜 리포트에서 다뤘듯 스토리텔링은 트렌드에 신선한 힘을 불어넣는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레오 버넷 보고서는 스토리텔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올해 칸 라이언즈에 출품된 최고의 얘기들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내재된 열망, 즉 다른 사람들과 연결(connect)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1. 따뜻한 눈 맞춤의 시작 ‘룩앳미(Look At Me)’

‘룩앳미(Look At Me)’ 캠페인은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술을 통해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삼성전자의 노력을 보여준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 1년 동안 달린 많은 사람들의 응원 댓글이 감동의 스토리텔링 기초가 됐다.

작품 액자들이 전시돼 있는 미술관. 한 소년이 소파에 엎드리다시피 앉은 모습이 외부와 마주치기를 거부하는 자세처럼 보인다. 김종현군(11세)은 ‘자폐증’으로 외부 세계와 관계 맺는 걸 어려워했다. 그런 종현군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 여성. “종현이는 엄마인 저와도 눈 맞춤하기 힘들어해요.” 

자막이 뜬다. “세계적으로 자폐를 겪고 있는 6000만의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눈 맞춤을 하지 못하는 등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디지털 기기와 소통하는 걸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야의 교수와 의사, 그리고 UX 디자이너들과 함께 ‘룩앳미’란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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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앳미는 쉽고 재밌게 미션을 해가는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표정을 이해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터랙티브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다. 종현군을 포함한 열아홉 명의 아이들이 매일 15분씩 8주 동안 룩앳미 앱을 활용한 결과 그 중 60%의 아이들이 눈을 맞추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증대됐다.

 

#2. 추월 사고 예방하는 획기적 아이디어 ‘삼성 세이프티 트럭(Samsung Safety Truck)’

또 하나의 트렌드로는 ‘브랜드는 세계를 더욱 안전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를 꼽는다. 대표적 사례로 삼성전자가 아르헨티나에서 진행한 ‘삼성 세이프티 트럭(Samsung Safety Truck)’ 캠페인이 있다. 거대한 화물 트럭이 삼성전자의 첨단 기술을 통해 뒤에 오는 작은 차들을 배려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비디오다. “직관과 이해, 그리고 사람들을 삶 속에서 끌어안기- 이런 행동을 통해 브랜드는 그 삶을 개선하고 가치를 더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레오 버넷 보고서의 정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 즉 삼성전자의 지향을 그대로 요약해서 말해주는 듯하다.

황혼이 깔리는 열대우림 사이로 쭉 뻗은 도로가 보인다. 항공뷰로 달리는 도로 위로 자막이 뜬다. “아르헨티나에선 시간당 한 명 정도의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사고는 주로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앞차를 추월하려다 생긴다고. 차들이 쌍방향으로 질주하는 도로 위 큰 트럭들은 속도가 느리니까 뒤를 따르는 승용차 운전자들은 웬만하면 앞지르고 싶어한다.

“2차선 도로가 많은 이 나라에서 삼성전자는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네 개의 커다란 LED 모니터가 뒷면을 가득 채운 삼성 세이프티 트럭, 앞면 카메라가 전방을 비추면 트럭 앞에 놓인 길의 모습이 트럭 뒷면 가득 떠오른다. 트럭이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처럼. 도로를 꽉 채워 시야를 가릴 뿐 아니라 속도를 많이 낼 수 없는 대형 화물 트럭이지만 뒤에 오는 소형차도 도로 앞의 상황을 볼 수 있으므로 안전하게 추월하도록 해줄 수 있다. LED 모니터 덕분에 밤에도 뒤차가 도로 상황을 환히 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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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삼성 세이프티 트럭은 끝없이 뻗은 아르헨티나의 도로를 달린다. 뒤를 따라오던 차들은 불편 없이 적당한 틈을 보아 추월한다. 보는 사람의 감동을 대변해주는 듯한 음악이 깔리며 자막이 뜬다.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대신 삶을 구해주는 아이디어, 삼성 세이프티 트럭’

 

#3. 실패해도 괜찮아! ‘에브리데이 이즈 데이 원(Everyday is Day One)’

레오 버넷 보고서는 동영상 광고의 다섯 번째 트렌드를 ‘밀어주기의 새 시대(New Era in Endorsement)’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밀어주기(endorsement)란 사회적으로 권위와 영향력 있는 사람이 어떤 사항에 대해 인정해줌으로써 여론을 이끌어가는 걸 말한다. 종전까지는 주로 정치적·사회적·학문적 지도급 인사들이 이런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젊은 층은 이런 사람들보단 스포츠나 연예계 유명 인사들의 삶에 더욱 열광한다.

물론 이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특정 상품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대부분 ‘뭐가 어떻게 좋다’ ‘나는 어떤 제품을 즐겨쓴다’ 등 특정 상품을 직접적으로 강조한 표현들이 많이 사용됐다. 이에 비해 최근 칸 라이언즈 출품작들을 보면 그 사람들의 삶 속에서 특정 제품을 쓰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전체적인 비디오의 메시지와 함께 녹아드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는 동시에 제품에 대한 인상도 각인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거리. 한 남자가 신호등이 켜지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뭔가 확인한다. 갤럭시 S5다. 서핑보드 가방을 맨 채 계속 걷는데 석회암 절벽 사이로 해변길이 있는 바닷가로 장면이 연결된다. 남자는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바닷물에 발을 담가본다. 지원 스태프들이 입은 두툼한 점퍼를 보니 추운 날씨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옷을 모두 벗고 가벼운 서핑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손목에 찬 삼성 기어2를 슬쩍 들여다 본다. 스태프들도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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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켈리 슬레이터(Kelly Slater·44세). 세계서핑연맹 주최 대회에서 열한 번이나 우승한 능력자다. 준비 운동을 마치고 백사장에 앉아 입수를 기다리는 그의 등에 ‘슬레이터’란 이름 위로 ‘삼성’ 로고가 잠깐 보인다. 석회암 바위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 앞에서 한동안 숨을 고르다가 절벽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 켈리 슬레이터는 노련하게 균형을 잡으며 바닷물과 하나가 돼 움직인다. 그의 실루엣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화면을 채운다. 물에서 나온 켈리 슬레이터는 젖은 모래에 묻혀 있던 갤럭시 S5를 집어들며 아이들의 사진들 찍어준다.

수압 때문이었을까, 코피가 묻어 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씩 웃는다. ‘해냈다’ ‘참 좋았다’ 그런 메시지가 느껴진다. 화면 가득히 거대한 물벽처럼 밀려오는 파도가 잡히면서 자막이 뜬다. “에브리데이 이즈 데이 원(Everyday is Day One)”

 

삼성전자, 2016년 최고의 창의적 마케터로 선정되다

올해 63회를 맞은 칸 라이언즈는 오는 18일부터 24일까지 펼쳐진다. 조직 위원회는 페스티벌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이전까지의 활동 성과를 평가, 매년 ‘올해의 크리에이티브 마케터’를 선정한다. 2016년 크리에이티브 마케터의 영광은 삼성전자가 안게 됐다. 

삼성전자는 2010년 처음 참가해서 금상 한 개와 은상 세 개를 획득한 이래 점점 더 좋은 성과를 보여 왔다. 특히 2015년엔 ‘론칭 피플’ 캠페인 등 단순히 브랜드 홍보 차원을 넘어 실제로 삼성전자의 기술과 노력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꾸준히 진행한 부분을 인정 받아 △티타늄 1개 △금상 6개 △은상 9개 △동상 11개 등 총 27개 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의 크리에이티브 마케터’ 상은 그동안 하이네켄·맥도날드·코카콜라·유니레버·나이키 등 글로벌 소비 문화를 이끌어가는 기업들에게 주어졌다.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최초의 주인공이 됐다. 테리 세비지(Terry Savage) 칸 라이언즈 조직위원장은 “삼성전자는 뛰어난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마케팅으로 그간 칸 라이언즈의 다양한 부문에서 성과를 보여줬다”며 선정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수상작은 △자폐 아동의 눈 맞춤과 의사소통 개선을 도와주는 ‘룩앳미’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삼성 세이프티 트럭’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감성적으로 조명한 ‘에브리데이 이즈 데이 원’ △대형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매장의 제품 체험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 ‘센터스테이지(Center Stage)’ 등 총 10개 캠페인이다. 대부분 수상 작품은 단순 제품 광고가 아닌 삼성전자의 기술과 제품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기획한 브랜드 마케팅 캠페인이다. 여기엔 ‘기술 혁신이 소비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철학이 담겨 있다. 

김문수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 센터장은 “진정성 있는 마케팅 활동을 펼쳐야 소비자들의 가슴 속에 차별화된 브랜드로 남을 수 있다”며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중장기적 마케팅 캠페인을 지속해 소비자의 꿈과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브랜드가 되겠다”고 밝혔다. 


“맨눈으로 감상하는 3D 디스플레이 기술 구현, 머지않았습니다” 삼성전자 최고 ‘광학 설계 전문가’ 이홍석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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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신년 특별 기획 삼성전자 신임 마스터를 만나다. 삼성전자 최고 광학 설계 전문가 이홍석 마스터.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홀로그램 스토리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홍석 마스터는 지난 2012년부터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 연구에 집중해오고 있다▲'홀로그램 스토리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홍석 마스터는 지난 2012년부터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 연구에 집중해오고 있다

동화 '피터팬'의 원작이기도 한 스코틀랜드 작가 J.M.배리(James Matthew Barrie, 1860~1937)의 1911년작 소설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악한 선장 '후크'는 '피터팬'이 아이들과 사는 네버랜드의 한 동굴을 발견한 후 피터팬이 마실 감기약에 독(毒)을 탄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요정 '팅커벨'은 피터팬의 약 복용을 말리지만 피터팬이 믿지 않으려 하자, 자신이 그 약을 대신 마시고 죽어간다. 그제야 모든 정황을 이해한 피터팬은 팅커벨을 살리기 위해 큰 소리로 기도하며 온 세상 아이들에게 호소한다. "요정이 있다는 걸 믿으신다면 박수를 쳐주세요!" 그러자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진다. 마침내 팅커벨은 환한 빛을 내며 다시 살아난다.

 

팅커벨, 100여 년 만에 '헬레나'로 부활하다

피터팬과 팅커벨의 사연에 전 세계 어린이가 열광한 지 100여 년이 흐른 지난해 11월 초, 삼성전자 나노시티 기흥캠퍼스에서 삼성기술전이 개최됐다. 삼성그룹 관계사의 미래 신기술이 한데 모인 이 행사장에선 '2015년형 팅커벨'을 연상케 하는 요정이 등장,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 요정을 보려면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장치의 생김새는 이랬다. 어깨 높이 정도의 대형 블랙박스 앞에 의자가 하나 고정돼 있다. 박스 윗면 뒤쪽으론 인조 잔디가 깔려 있다. 의자에 앉아 전방을 주시하면 잔디 한쪽에서 별안간 예쁜 요정이 튀어나온다.

'헬레나'란 이름의 이 요정은 마치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타듯 잔디 정원 위를 빙그르르 돌다 갑자기 의자에 앉은 사람 쪽으로 쓱 날아온다. 3D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맨눈으로 관찰하는 행위만으로 요정을 '손에 잡힐 듯'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기술전에서 공개된 헬레나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의 작품이다. 이들은 '(요정처럼) 실재하지 않는 존재까지 실감 나게 재현해내는' 기술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그 구현에 승부수를 띄웠다. 흔히 홀로그램(hologram), 혹은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holographic display)로 불리는 기술이다.

올 초 삼성전자 뉴스룸이 이홍석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디바이스랩 마스터와의 인터뷰를 추진한 건 이 신기한 기술의 개발 과정이 궁금해서였다. 이홍석 마스터는 '헬레나' 팀을 이끄는 리더. 차세대 3D 디스플레이 개발로 삼성전자의 미래형 디스플레이 기술 기반을 마련, 지난해 말 삼성전자 신임 마스터가 된 주인공이기도 하다.

 

빛, 세기∙위상 둘 다 완벽 제어하는 게 '관건'

이홍석 마스터는 취재진에게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의 개념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별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오는 등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이홍석 마스터는 취재진에게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의 개념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별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오는 등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도 3D 디스플레이의 일종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입체감 있게 보여준다는 점은 기존 3D 디스플레이와 동일하죠. 다만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나 3D 안경 같은 장치 없이도 동일한 광경을 자연스레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단순히 도드라져 보이는 느낌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모습까지 달라진다는 것 등은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의 고유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홍석 마스터에 따르면 홀로그래픽 디스플레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형상을 마치 눈앞에 있는 사물인 것처럼 볼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적용 원리는 소리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된다.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그 사물이 지니는 시각 정보가 눈으로 들어와 뇌에서 인지되기 때문이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특정 사물이 내는 소리의 정보가 귀로 들어와 뇌에서 인지될 때 비로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빛이나 소리의 정보를 저장해뒀다가 특정 장치를 통해 재생할 수 있다면 빛이나 소리를 내는 실물이 그 자리에 없어도 충분히 보고 들을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배경 지식이 없는 이에게 헬레나의 날갯짓은 그저 신기한 요술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20세기 초 축음기(蓄音機, 원통형∙원판형 레코드에 기록해둔 음향을 재생하는 장치)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몹쓸 마법에 걸려) 아주 작아진 사람들이 기계 속에 직접 들어가 음악을 연주하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축음기를 향했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어느덧 홀로그램 쪽으로 옮겨진 셈이다.

"종종 매스컴에서 '홀로그램 효과'로 소개되며 나오는 장면 중 상당수는 진짜 홀로그램 기술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게 '플로팅(floating) 이미지'로 불리는 일명 '페퍼의 유령(Pepper's Ghost)' 기법이죠. 관련 기술을 정식으로 선보인 19세기 극 연출가 존 헨리 페퍼의 이름을 딴 건데, 무대 공연에서 자주 이용됩니다. 국내에서도 소녀시대나 싸이 공연에서 선보인 적이 있어요. 가수가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무대 위쪽 허공에 떠오른 형상으로 보이는 식이죠.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거울로 반사시켜 마치 공중에 떠오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이어서 '공간에 떠 있는(floating) 2D 이미지'라고 정의하는 게 정확합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선 간단한 원리가 적용된 홀로그래픽 구현 장치를 여럿 만날 수 있다▲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선 간단한 원리가 적용된 홀로그래픽 구현 장치를 여럿 만날 수 있다

사실 이미지를 2D로 보여주는 기술은 비교적 쉽다. 휴대전화나 노트북, TV 등이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원리와 같이 2D 이미지는 빛의 세기만 조절하면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의 원리를 응용, 원하는 형상을 특정 공간에 3D 형태로 재생해 보여주는 데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홍석 마스터에 따르면 빛의 세기는 인간의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빛엔 '세기' 외에 '위상'도 존재한다. 이 두 성질을 조정, 간섭시키면 원하는 공간적 위치에 빛을 만들거나 없앨 수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사물이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빛의 세기와 위상을 전부 제어(control)할 수 있어야 한다. 홀로그램 기술의 성패 역시 '빛의 세기와 위상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는가?'란 문제 해결 방식에 달려 있다.

"사물을 입체적으로 인지하려면 네 가지 생리적 정보가 필요합니다. 첫째, 양안시차(兩眼視差)입니다. 두 눈으로 보이는 게 조금씩 달라진다는 뜻이죠. 둘째, 양쪽 눈이 어떤 각도로 모이는지 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물체와의 거리를 감안한 초점 조절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지해야 할 정보는 운동시차입니다. 보는 이가 이동할 때, 이를테면 달리는 기차 안에서 가까이 있는 건 빨리 움직이고 멀리 있는 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차이를 일컫죠."

극장이나 TV에서 어렵잖게 접할 수 있는 '안경형 3D 디스플레이'는 위 네 가지 정보 중 양안시차를 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정보 중 일부만 제공하는 셈이다. 하지만 네 가지 정보가 다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의 뇌는 혼란을 느낀다.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초점 위치와 머릿속에서 인지하는 초점 위치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 경우, 눈의 초점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눈이 쉬 피로해지고 사람에 따라선 어지럽거나 메스꺼운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움직이는 모습을 재현하려 해도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극복해 제대로 된 홀로그램을 만들려면 빛의 위상과 세기를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홍석 마스터가 이끄는 팀원들은 사무실과 실험실을 부지런히 오가며 연구를 진행한다. ▲이홍석 마스터가 이끄는 팀원들은 사무실과 실험실을 부지런히 오가며 연구를 진행한다. 

"지난해 삼성기술전에서 선보였던 (헬레나) 홀로그램은 꽃밭에서 요정이 튀어나와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구성됐는데요. 이때 꽃밭은 실물, 요정은 홀로그램입니다. 홀로그램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원하는 공간에 실제 물체가 있는 것처럼 상(像)이 맺히게 하는 일명 '시스루(see-through)' 방식을 채택했죠.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3D'란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D 디스플레이가 가장 발전된, 궁극의 형태라고 할 수 있거든요."

홀로그램 기술이 실용화되려면 관련 기기들의 성능 향상은 필수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해상도와 구동 속도를 높이는 쪽으로 개발돼야 하고, 카메라의 시점 추적 기능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 정확한 홀로그램 효과 구현을 위해 프로세서나 메모리칩의 성능도 향상돼야 한다. 여기에 홀로그램의 장점을 활용한 응용 서비스 시장까지 형성되면 금상첨화다. 삼성전자의 모든 기술이 집대성돼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홍석 마스터는 대학에서 광(光)공학의 일종인 '홀로그램 스토리지'를 전공했다. CD나 DVD에 소리나 2D 이미지 정보를 기록하듯 홀로그램으로 구현시킬 광저장장치를 연구, 개발하는 분야다. 박사 과정을 마친 후 "하루 빨리 홀로그램 기술을 상용화하겠다"는 꿈을 안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현재에 이르렀다. 

"회사가 제게 마스터 자리를 준 건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금처럼 성실하게 연구를 계속해나간다면 머지않아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 이끄는 '기술원의 멀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 이끄는 '기술원의 멀린' 이홍석 마스터의 모습입니다.

홀로그램은 '온전하다'는 의미의 접두어 'holo-'에 '기록'이란 의미의 '그램(gram)'이 붙여져 형성된 단어다. 직역하면 '빛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일' 정도가 될까? 하지만 빛은 소리와 달라서 (제어가 비교적 쉬운) 파동으로 바꾸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다양한 접근 방식이 필요한 이유다.

홀로그램 상용화는 대다수가 "불가능한 일"이라며 지레 포기해버리는 과제다.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만큼 매력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현실적 난관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차분하고 끈기 있게 핵심을 파고드는 한편,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팀원들을 이끄는 이홍석 마스터. 그의 모습에서 문득 '아서왕의 참모'로 잘 알려진 현자(賢者) '멀린(Merlin)'이 떠올랐다. 홀로그램 기술 특유의 환상적 효과가 낳은 오라(aura)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집적∙고성능∙저전력∙저비용 네 마리 토끼 잡는 게 저 같은 사람의 ‘미션’이죠” 삼성전자 최고 ‘낸드 플래시 메모리 회로설계 전문가’ 임정돈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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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SUNG NEWSROOM 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스페셜 리포트 신년 특별 기획 삼성전자 신임 마스터를 만나다 5편 임정돈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메모리사업부 마스터<연재 끝>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삼성전자 임정돈 마스터의 인터뷰 사진입니다. ▲여러 기업을 거쳐 2004년 9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임정돈 마스터는 “삼성전자의 최대 강점은 탄탄한 조직”이라며 “특히 나 같은 엔지니어가 자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주는 점이 가장 든든하다”고 말했다

“제가 담당하는 업무는 IO 기술 개발입니다. ‘IO’는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을 합친 용어죠. 쉽게 말해 메모리 셀(cell) 데이터를 외부와 통신하도록 하는 기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말엔 다른 의미도 있어요. ‘재미(Interesting)’와 ‘탁월함(Outstanding)’을 뜻하는 영단어 머리글자를 합쳐도 ‘IO’가 되거든요.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하죠?”

상대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이 대목에서 임정돈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메모리사업부 플래시설계팀 마스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임정돈 마스터는 낸드(NAND)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초고속 회로 설계 기술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 실력자.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삼성전자가 지난 2013년 세계 최초로 3차원 V낸드를 개발, 업계 내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구축한 영역이다. (삼성전자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개발사 관련 내용은 지난해 1월 14일 발행된 ‘메모리 산업 30년사 빛낸 삼성 반도체 신화의 순간들’ 참조)

“탁월함은 즐겁게 일하지 않으면 생겨날 수 없어요. 월급 받고 하는 일, 무슨 재미가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같은 일을 해도 충분한 동기가 부여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면 얼마든지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과는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이에요.” 시종일관 진지하던 그의 표정은 이 얘길 하며 밝고 환하게, 흡사 장난꾸러기의 그것처럼 바뀌었다. ‘탁월함과 재미의 공존은, 어쩌면 그의 업무가 아니라 그란 인물 자체에 관한 설명일 수도 있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Interesting & Outstanding 즐거움 속의 탁월함 ▲삼성전자 나노시티 화성캠퍼스에 위치한 임정돈 마스터의 사무실 벽엔 ‘즐거움 속의 탁월함(Interesting&Outstanding)’이란 문구가 현판 형태로 걸려 있다. 그의 주된 업무인 ‘IO(Input&Output)’의 머리글자를 활용, 재치 있게 만든 슬로건이다

 

“즐거움 속에서 탁월함 추구하는 게 우리 팀 경쟁력”

임정돈 마스터에 따르면 반도체 제작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그는 이를 건축에 빗대어 설명했다. “우선 소자(素子∙element)를 만들어내는 ‘공정’이 있습니다. 건물 짓는 일에 비유하자면 벽돌이나 기와 따위를 굽는 것에 해당해요. 다음 단계는 공정을 거쳐 생성된 재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설계’입니다. 설계도면대로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의 완성도를 ‘검사’하는 단계가 마지막이에요. 이중 제 일은 중간 단계, 즉 설계 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소자를 이리저리 조합, 반도체가 의미 있는 동작을 할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죠. 이때 소자의 연결 정도나 상태에 따라 메모리∙중앙처리장치(CPU) 등 다양한 형태의 반도체가 탄생하게 됩니다.”

반도체 메모리 성능을 향상시키려면 세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제한된 면적에 데이터 저장 셀을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하는 '고집적(高集積)' 기술 △셀 데이터의 읽기·쓰기 속도를 높이는 '고성능' 기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저전력' 기술이 그것. 오늘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크게 D램과 낸드 플래시 등 두 분야로 나뉜다. 둘의 결정적 차이는 ‘데이터 저장 여부’에 있다. D램 메모리는 저장돼 있던 데이터가 전원을 끄자마자 소멸되는 특성 때문에 ‘휘발성 메모리’로 불린다. 반면,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비(非)휘발성 메모리’로 통한다. 전원을 꺼도 저장된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 D램 방식은 데이터 저장 성능이 취약한 대신 속도가 빠르고 용량 부담이 비교적 낮다. 낸드 플래시 방식은 반대로 용량이 크고 데이터를 계속 저장해야 하는 만큼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좋은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용량이 크면서도 속도가 빠릅니다. 삼성전자 메모리가 업계 최고를 유지하는 비결 역시 ‘세계에서 가장 속도가 빠르면서도 초고용량화(化)에 유리한’ 수직 적층 기술을 다른 기업보다 한발 앞서 개발한 데 있습니다. 사실 메모리 속도를 높이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같은 양의 데이터를 같은 속도로 처리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배터리가 얼마나 차이 나는가, 그게 중요하죠. 특히 스마트폰처럼 충전기에 잠깐 꽂았다 계속 갖고 다니며 쓰는 모바일 기기는 1회 충전으로 얼마나 오래 사용하는지가 사용 편의성 측면에서 최대 관건일 수밖에 없어요.”

삼성전자 임정돈 마스터의 인터뷰 사진입니다. ▲임정돈 마스터는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매사 의문을 품는 자세, 그리고 오랜 공부를 통한 통찰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정돈 마스터는 “반도체 메모리에서 용량이나 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게 비용”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입장에서 볼 때 비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관련성을 지닙니다. 배터리를 적게 쓰고 속도를 내면 비용도 낮출 수 있죠. 그런 방식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게 핵심 중 하나예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산 단가는 최대한 절감해야 합니다. 동일한 성능의 기계를 만든다 해도 칩 하나 만드는 데 A사는 100만 원을, B사는 10만 원을 각각 쓴다면 더 큰 이윤을 남기는 건 B사일 겁니다. 실제로 저 역시 면적이나 소자 개수, 전류 등 설계 시 원가 절감 요인을 두루 고려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죠.”

 

회로 하나 설계할 때도 분신 만들 듯, 혼을 담아서!

삼성전자 임정돈 마스터의 인터뷰 사진입니다. ▲일에 빠져 사느라 ‘늦깎이 결혼’한 임정돈 마스터의 보물 1호는 올해 네 살이 된 딸이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올해는 딸아이와 좀 더 많이 시간을 보낼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성능은 최고로, 에너지와 비용은 최저로’. 사실 이는 비단 반도체 메모리뿐 아니라 세상 거의 모든 상품에 해당하는 목표다. 하지만 임정돈 마스터처럼 현장에서 기술 개발 업무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 그렇게 뚜렷한 경영 철학을 지니기란 결코 간단찮다. 설사 그런 신조를 품고 있다 해도 제조업 중에서도 신제품 교체 주기가 빠른 편인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며 이를 지켜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엔지니어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마다 ‘이건 무조건 성공시킨다’는 각오로 머리 싸매고 밤 새워가며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에게 ‘실패한 프로젝트’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프로젝트별 성공률 차이를 따질 순 있겠죠. 특히 동종 업계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성과 부문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그런 차이를 만드는 건 ‘열정의 정도’입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와 선후배는 회로 하나를 설계할 때도 자신의 혼(魂)을 불어넣어, 또 하나의 분신(分身)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사명감을 갖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습니다. 그러면 성공은 자연스레 따라오죠. 동고동락하며 팀워크도 좋아지고요.”

임정돈 마스터가 팀원들과 소통하는 모습입니다. ▲임정돈 마스터는 수시로 팀원들과 소통하려 애쓴다.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한 팀원은 그를 향해 “소프트 카리스마형 리더”라고 귀띔했다

사실 팀워크는 임정돈 마스터가 업무 도중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다. “평소 후배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을 살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즐거운 업무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크고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팀 내 분위기를 밝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죠.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제일 중요한 건 팀원 본인이 일 자체를 재밌어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고심 끝에 임 마스터가 택한 방식은 말하자면 ‘관심법’이었다. “일단 팀원 개개인이 뭘 잘하는지, 어느 분야에 관심과 소질이 있는지, 업무 역량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면밀히 파악했습니다. 그런 다음, 팀원의 능력보다 약간 높은 업무 과제를 부여해 그가 해당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본인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믿고 맡겼는데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물론 있죠. 그럴 땐 덮어놓고 지적하고 나무라기보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친구가 자신의 일을 더 잘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살폈어요.”

임정돈 마스터와 팀원들의 단체 사진입니다. ▲촬영 당시 사무실에 있던 팀원들과 “파이팅!”을 외치며 포즈를 취한 임정돈 마스터. 실제 팀원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반도체 설계와 같은 최첨단 기술 개발, 그 선봉에 서서 ‘고독한 1등’의 길을 걷고 있는 임정돈 마스터가 꼽는 성공의 비결은 뭘까? 그가 내놓은 대답은 의외로(?) 싱거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에요. 본인의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수준의 실력을 갖추려면 매사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해 신입사원 공개 채용 당시 면접관으로 참여했던 경험담을 들려줬다. “다들 이른바 ‘스펙’이 대단하더군요. 영어 시험 성적에, 각종 자격증에, 쟁쟁한 인턴 경력에, 해외 연수 경험까지…. 하지만 그 친구들과 함께 일하게 될 제 입장에선 솔직히 그런 프로필보다 ‘전공지식 역량’이 훨씬 더 와 닿았습니다. 실제로 면접 당일 그와 관련된 질문을 꽤 던졌는데 의외로 대답이 서툰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약 삼성전자에 ‘엔지니어’ 자격으로 입사하고자 하는 젊은이라면 ‘전공 공부에 좀 더 주력하라’는 얘길 들려주고 싶어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

삼성전자 임정돈 마스터의 인터뷰 사진입니다. ▲자신을 “천생 기술자”라고 지칭하는 임정돈 마스터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끊임없이 발전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임정돈 마스터는 시쳇말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람이다. 대학 졸업 후 반도체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국내 주요 기업을 두루 거쳤고 2000년대 초반 벤처 기업 붐이 일 땐 벤처 쪽에도 잠시 몸을 담갔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건 2004년 9월. 처음부터 낸드 플래시 쪽 연구만 파고든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 내에서도 불과 사오 년 전까지 D램 설계 업무를 담당했었다. 넓게 겪어 깊이 볼 수 있는, 바로 그 점이 경쟁력인 (본인 말마따나) “천생 기술자”다.

한동안 일과 결혼하다시피 했던 그는 남편도, 아빠도 한참 늦게 됐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요즘도 매일 일에 쫓기는 신세여서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늦둥이 딸과 좀 친해지는 것”이다. 딸 얘길 꺼내며 소년처럼 활짝 웃는 그의 표정에 문득 미국 출신의 전설적 카레이싱 선수 마리오 안드레티(Mario Andretti, 76)가 겹쳐졌다. 유고슬라비아 난민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스포츠 스타로 거듭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목표는 열망이 있어야 생긴다. 하지만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게 해주는 건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다.”

인터뷰 말미, 임정돈 마스터는 향후 목표에 관한 질문을 받곤 곰곰이 생각하더니 “스스로 호기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바둑계의 거물이신 조훈현 9단께서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이라고요. 어디선가 그 얘길 듣고 진심으로 공감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학교 다닐 땐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을 유지하다가도 막상 취직한 후부턴 주어진 일 이상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 꽤 많더군요. 반면, 무슨 일을 맡기건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하루 하루 지날수록 조금씩 벌어져 나중엔 돌이킬 수 없는 정도가 되죠.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는 “늘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함께 연구∙토론할 수 있는 동료가 있고 즐거운 맘으로 일터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가족이 있는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며 활짝 웃었다.

‘100년 만의 빅뉴스’ 중력파 최초 탐지, 그 이면엔 IT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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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100년만의빅뉴스 중력파 최초 탐지, 그 이면엔 IT가 있다?!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A: 뭘 그리고 있어?

B: ‘평행우주로 가는 관문’ 웜홀(wormhole)을 만들어줄 가상 봉쇄장(containment field)이야.

 

위 대화의 출처가 어딜까? 정답이 금세 떠올랐다면 당신은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Big Bang Theory)'의 열혈 시청자일 가능성이 높다. 젊은 우주물리학자와 우주과학기술자 4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시트콤 대사의 상당수는 실제 학계에서 사용되는 첨단 우주물리학 용어로 구성된다.

언뜻 몇 분만 보고 있어도 골치가 아플 것 같은 이 작품은 지금껏 총 9개 시즌이 방영됐다. 에피소드 수로만 따지면 180편을 훌쩍 넘긴다. 미국 내 인기도 상당하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18세부터 49세까지) 시청자가 꼽은 '베스트 시트콤 3'에 들었을 정도다.

 

美 시트콤 '빅뱅이론'의 인기, IT 산업 덕분?

‘빅뱅이론’의 성공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차별화되는 건 20세기 후반부터 급격히 발달한 우주물리학을 대중문화 장르 속으로 영민하게 들여와 주요 소재로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중력파를 나타낸 이미지

실제로 오늘날 우주의 출발점이 된 빅뱅은 물론, 평행우주나 웜홀 같은 개념도 상당히 대중화됐다. 트렌드에 밝은 사람이라면 대중문화를 접하며 이런 용어를 수 차례 접해왔을 것이다. 올 초 재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인터스텔라(2014)'의 주인공은 태양계 내 웜홀을 통해 아주 먼 우주로 떠난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국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SBS, 이하 '별그대')의 결말 부분에서도 외계인인 주인공은 웜홀을 이용해 수천만 광년 떨어진 지구로 올 수 있게 된다.

지난해 삼성전자 뉴스룸이 연재했던 6부작 기획 'IT로 문화 읽기'에선 IT의 발달이 바꾸고 있는 문화지도의 현주소를 짚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비단 문화계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IT'로 통칭되는 컴퓨터와 인터넷은 정치·경제·사회 할 것 없이, 그리고 일상적 소통에서 학문적 탐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생활을 온통 바꿔놓았다.

우주물리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컴퓨터를 매개로 한 각종 연구와 데이터 저장·처리·공유 방식은 불과 한두 세대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빅뱅이론처럼 전문성이 강한 우주물리학 소재 시트콤이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건 이 같은 IT 산업 약진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세기 전 아인슈타인의 예언, 현실이 되다

지난달 11일(이하 현지 시각), 국제 물리학계에 큰 경사가 있었다. 미국∙한국∙독일∙영국 등 13개국 과학자 1000여 명이 참여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LIGO) 연구단’이 미국(워싱턴)∙영국(런던)∙이탈리아(피사) 등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중력파(重力波) 검출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

중력파란 별이 폭발하거나 블랙홀이 생성되는 등 우주에 초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 그 중력이 지닌 에너지가 마치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번에 탐지된 중력파는 지구에서 약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두 개의 거대한 블랙홀이 합쳐지며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소재 ‘내셔널 프레스 클럽(National Press Club)’에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연구소(LIGO) 소속 과학자들이 중력파 검출 성공 소식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소재 ‘내셔널 프레스 클럽(National Press Club)’에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연구소(LIGO) 소속 과학자들이 중력파 검출 성공 소식을 발표하고 있다(사진 출처: 연합뉴스)

중력파의 최대 특징은 진행 과정에 있는 물질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퍼져나간다는 데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현재까지 정보 전달 매체에 주로 쓰이는) 전자기파(전자파)와 뚜렷이 구별된다. 같은 이유로 중력파는 아주 먼 옛날, 즉 초기 우주의 모습 등에 대한 정보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꼭 100년 전인 1916년, 독일 태생의 미국 이론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우주의 확산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중력파의 존재를 예언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중력파가 탐지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력파가 발견되며 그간 이론상으로만 밝혀졌던 블랙홀의 실재(實在) 사실이 분명해졌다. 초기 우주의 상태도 상당 부분 밝혀졌다.

 

'130년 만의 환골탈태' 전자파, 중력파도…?

이쯤 해서 궁금해지는 건 중력파 최초 발견 사실이 우리 일상에 끼치게 될 영향이다. 이번 발견에 기여한 과학자들은 이와 관련, 구체적 답변을 아끼고 있다. LIGO 프로젝트를 이끈 킵 손(Kip Thorne)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CalTech) 명예교수는 "중력파 관측 사실 자체가 우릴 당장 시간 여행으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면서도 "그러길 바란다"며 여운을 남겼다.

학계나 업계의 관측에 따르면 이번 일은 향후 인간의 삶을 상당히 바꿔놓을 전망이다. 전자파가 처음 발견됐을 때의 경우를 떠올리면 특히 그렇다. '전기가 흐르는 곳에 에너지 파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인지된 건 1800년대 전반이었다. 실제로 기구를 사용, 이 파동을 확인한 건 1885년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였다. 당시 한 제자가 그에게 이 파동, 즉 전자파의 용도를 물었다. 헤르츠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하지만 13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린 전자파를 이용한 기기 없인 단 하루도 살아가기 힘들다. 그 중심엔 (말할 것도 없이!) 휴대전화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 중력파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에선 웜홀 시간 여행이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행성 간 순간 이동'도 더 이상 공상과학 얘기가 아니다. 별그대 속 남녀 주인공처럼 우주 공간을 초월한 사랑까지 기대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계와의 교류는 훨씬 더 현실에 가까워지게 되지 않을까? 일단 그에 앞서 중력파에 담긴 정보를 읽어내려는 시도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를 둘러싼 우주 환경에 대한 이해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전 세계 과학계가 이번 성과에 대해 "우주 탄생과 진화 과정을 알려줄 금세기 최고의 발견"이라며 환호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이번에 탐지된 중력파는 태양 질량 기준 각각 36배와 29배 규모인 블랙홀 두 개가 한데 합쳐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만약 지구 가까이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면 인간을 포함, 모든 지구 생명체는 사실상 전멸할 것이다. 지구의 시∙공간도 그 영향으로 심하게 왜곡될 수 있다. 우리가 이 뉴스를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모닝 커피 한 잔을 곁들여 편안한 환경에서 인터넷 웹 서핑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건 이 사건이 까마득하게 먼 시·공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LIGO 리빙스턴 관측소 전경 ▲LIGO 리빙스턴 관측소, 리빙스턴 루이지애나주, 미국(사진 출처: 한국 중력파 연구 협력단)

보도에 따르면 LIGO 관측소에서 탐지된 중력파는 폭 4㎞의 레이저 빔에 10의 21제곱분의 1 정도 규모로 아주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며 0.25초 만에 지구를 통과했다. 중력파의 존재 사실이 확인됐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걸 정확하게 탐지해낸 방법도 신기할 따름이다. 인간의 통상적 감각에 기댄 인지 능력은 물론, 상상력으로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규모의 변화를 읽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의문을 풀려면 이번 발견의 구체적 면면을 차근차근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획기적 사건의 한복판엔 최첨단 IT 기술이 어엿한 '구원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발단은 미국서 독일로 날아든 이메일 한 통

지난해 11월 14일 11시 53분(현지 시각), 독일 하노버시 소재 '막스플랑크 연구소 중력물리학부' 소속 물리학자 마르고 드라고(Margo Drago)의 컴퓨터에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드라고가 본문 속 링크를 누르는 순간, LIGO에서 관측된 결과를 보여주는 화면이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화면 속 형상은 아주 미세하긴 해도 시끄러운 배경에서 갑자기 나타난 새의 지저귐 소리 같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LIGO 핸포드 관측소 전경▲LIGO 핸포드 관측소, 핸포드 워싱턴주, 미국(사진 출처: 한국 중력파 연구 협력단

LIGO는 지난 2002년 중력파를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대규모 물리학 실험실 겸 관측소다. 미국 루이지애나주(州) 리빙스턴과 워싱턴주(州) 핸포드 등 두 곳에 거점을 마련한 LIGO의 인력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천문학적 관점에서 중력파를 연구하는 과학자만 전 세계에 1000명가량 분포하며, 이와 별도로 인터넷에선 중력파 프로젝트 웹사이트 이용자 4만4000명이 연구를 돕고 있다. 이들 ‘추가 투입’ 인력은 이메일을 통해 LIGO 측이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관측 결과를 받아보고 분석한 후 그 결과를 놓고 온라인 상에서 활발한 토론을 벌인다.

LIGO는 지난해 약 25억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레이저 탐지 장치도 개선됐지만 가장 큰 변화는 빅데이터(big data) 기술 발달에 따른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의 혁신이다. 엄청난 양의 관측 정보와 세계 각지 연구자들이 보내오는 분석 자료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그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갖춰진 것. 실제로 독일 물리학자 드라고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에서 보내온 관측 결과를 자신의 책상에 앉아 실시간으로 포착한 건 이 업그레이드 작업이 완료된 지 불과 한두 달 만의 일이었다.

“뭔가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확 왔습니다.” 연구소 동료와의 상의 끝에 '분명 평소와 다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드라고는 이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과학자 1000여 명에게 이메일을 발송했다. 그들에게서 반응이 도착하기까진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LIGO 프로젝트를 처음 주도했던 라이너 바이스(Rainer Weiss)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MIT) 교수는 “드라고의 이메일을 받고 파동의 유형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며 “나 역시 뭔지 모르게 웅장한 규모의 움직임을 감지했다”고 말했다.

중력파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그날 드라고의 메일을 수신한 연구자들은 하루 종일 이메일을 통해 이 놀라운 사실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런 다음, 이 주제에 관심 가질 만한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그 결과를 통보했다. 이후 탐지된 파동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본격적으로 분석하는 작업, 중력파에 담긴 정보를 최대한 빼내기 위한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보고서 작성 작업이 시작됐다. 1000명에 이르는 연구자가 5000통 이상의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합의 절차가 거듭됐다. 완성된 보고서가 세상의 빛을 본 건 올 1월 21일, 데뷔 무대는 미국물리학회(American Physical Society)가 발간하는 학술지 ‘피지컬 리뷰(Physical Review)’였다.

 

우주와의 '인터랙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인류는 오랜 세월 밤하늘을 쳐다보며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공간'인 외계 우주의 비밀을 무한히 상상해왔다. 천문학과 망원경이 발달하며 우주는 그 베일을 한 겹씩 벗어왔지만 20세기 말부터 IT 기술로 지원되는 집단지성이 날개를 달며 발견 진행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그 과정에서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발견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IT 기술 자체도 한층 실용적으로 다듬어졌다. 예를 들어 태양풍 등 우주 광선(cosmic ray)이 컴퓨터 메모리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방법에 대해선 이미 1980년대 초부터 활발한 연구가 진행돼왔다. 이번에 탐지된 중력파는 지금껏 연구된 우주 방사선과는 또 다른 성격의 에너지인 만큼 중력파가 인류의 삶, 특히 (외부 에너지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IT 소통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중력파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우주와 관련, 지금까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간주돼온 근본적 의문을 해소하는 데도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외계 우주의 더 큰 존재들이 조작하는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아닐까?' 같은 질문이 대표적. 실제로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 비롯된 이 질문은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 소설 '유리알 유희'나 짐 캐리 주연 영화 '트루먼 쇼'(1998) 같은 픽션에선 물론, 물리학에서도 꾸준히 호기심의 대상이 돼 왔다.

'중력파 최초 탐지' 성과는 1세기 전 아인슈타인이 시작한 이야기에 드라고와 바이스를 포함한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조금씩 살을 붙여 완성한, 아름다우면서도 놀라운 결말이다. 100년을 앞서간 아인슈타인의 천재적 통찰력이 IT 기술 발달과 전 세계 과학자의 집단지성 덕에 이제야 뿌리 내리게 된 셈이다. 이 같은 지식의 비약은 앞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현재로선 그 구체적 면면을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이로 인해 새로워진 생각이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IT 기술은 항상 우릴 도와주리란 사실이다.

[뉴스룸 픽션] IoT 포에버! (부제: 서기 2100년, 김성실 삼성전자 대리의 커넥티드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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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픽션] IoT 포에버! (부제: 서기 2100년, 김성실 삼성전자 대리의 커넥티드 라이프)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영국 현지법인(UK MD Samsung SmartThings)은 최근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으로 연결된 미래의 삶’에 대한 보고서<아래 사진>를 발표했다. ‘향후 100년 내에 구현될 수 있으리라 예측되는 IoT 기술이 바꿀 인류의 삶’이 주요 내용이다. 이 문서에서 우주과학자이자 과학저술가 겸 방송인 에이드린-포콕 박사(Dr. Maggie Aderin-Pocock)를 비롯한 5인의 전문가는 △주거·업무 △과학연구·의료 △노령화·여가·우주에서의 삶과 관련, 탄탄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이 보고서 내용을 독자들에게 보다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픽션(fiction) 형태로 재구성했다. 서기 2100년, 즉 85년 후 IoT로 연결된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이 ‘미니 소설’의 주인공은 28세 미혼 여성 김성실 삼성전자 대리(물론 가상 인물이다), 시간적 배경은 2100년의 어느 날이다.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영국 현지법인이 펴낸 '스마트싱스 퓨처 리빙 리포트' 표지(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문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영국 현지법인이 펴낸 '스마트싱스 퓨처 리빙 리포트' 표지(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문을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1인승 드론, 마천루 피해 ‘자율 운행’

제주에서 출발한 1인승 드론(drone, 무인 항공기)이 서울 상공에 근접했다.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모여 있는 마천루(skyscraper)들, 모두 100층 전후의 초고층 건물이다. 복잡한 도심을 피해 서귀포 근처 바닷가에 살며 주 1회가량 수원 본사로 출근하는 내게 ‘거대 도시’ 서울의 경관은 너무 오랜만이라 반갑기까지 하다.

오늘은 모처럼 강남 사는 친구 A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미리 설정해둔 내비게이션 정보대로 자율 운행되는 드론이 A 집이 위치한 99층짜리 건물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홀로그램으로 운행 정보가 표시되는 앞 유리 너머, A의 얼굴이 떠올랐다. 역시 홀로그램이다.

“성실아, 진짜 오랜만이다! 베란다 열어놓을게.” 잠시 후, A가 살고 있는 ○○아파트 72층 15호 베란다 유리문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내가 탄 드론 엔진이 서서히 꺼지며 자기유도 원리에 의해 정확히 드론 포트에 내려앉았다.

1인승 드론으로 공중을 운행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건강 상태, ‘모니터 캡슐’로 초간단 점검

“약은 먹었어? 오늘 아침 컨디션은 좀 어때?” 핼쑥한 A의 얼굴이 걱정돼 다그치듯 물었다. “아니, 아직. 이제 막 일어났어. 말 나온 김에 한 번 점검해볼까?” A가 거실 한쪽 방문을 열자, 좁은 방 안 가득 ‘건강 모니터 캡슐’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메디포드(medi-pod)’로 불리는 기기인데 사람 하나가 겨우 서서 걸어 들어갈 만한 크기다. A가 목걸이처럼 걸고 있던 웨어러블 기기를 살짝 누르자, 방 벽이 거실 쪽으로 밀려나며 순간적으로 공간이 넓어진다. 그와 동시에 벽지가 팽창, 돌출되더니 소파를 만들었다.

“여기 잠깐 앉아 있어.” A는 내게 권하더니 메디포드 앞에 섰다. 발로 딛고 있던 부분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몸 전체가 서서히 캡슐 안을 통과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소파 옆쪽 벽면에 A의 신체∙심리 상태가 인포그래픽 형태로 투사됐다. “혈압이 좀 낮네. 다른 건 대충 정상 범위고…. 위액 분비가 원활하지 않은 편이야. 심리적으론 우울증 범위에 근접하고 있는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A에게 말했다. “실은 어젯밤 내내 고열로 고생했거든. 근데 아침 일찍 오겠다는 네 전화 받고 나서 기분이 좋아져서 푹 잤어. 그랬더니 많이 나아진 거야.” A가 희미하게 웃었다.

목걸이형 웨어러블 기기를 한 차례 더 ‘터치’하자, 이번엔 캡슐 앞 부분이 열리며 작은 구멍이 하나 생겼다. 그곳에서 A 상태에 맞춰 자동으로 조제된 약 세 봉지가 포장된 채 나왔다. 재빨리 약을 꺼내며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약은 그 다음. 그러고 나선 둘이 어디 좋은 데 가서 좀 쉴까?”

 

#요리도 ‘스마트 쿠커’가 포트별로 척척!

오늘 아침 요리사는 나, 김성실이다. ‘모처럼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일단 빌트인 컴퓨터를 활용, 방금 점검한 A의 건강 상태 정보를 무선으로 전송했다. 수신처는 평소 즐겨 이용하는 치유 식단 전문 웹사이트. 그와 동시에 맞춤형 메뉴와 레시피가 다운로드, 벽면에 투사됐다. 식사를 준비하는 손길이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한다.

베란다엔 수경재배 공법으로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다. 에너지원은 A가 키우는 관상어 어항에서 나오는 폐수와 태양열. 레시피 권장 분량만큼 채소를 뜯어 3개 포트로 구성된 ‘스마트 쿠커(smart cooker)’ 가운데 하나에 넣었다.

베란다엔 수경재배 공법으로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다. 에너지원은 A가 키우는 관상어 어항에서 나오는 폐수와 태양열. 레시피 권장 분량만큼 채소를 뜯어 3개 포트로 구성된 ‘스마트 쿠커(smart cooker)’ 가운데 하나에 넣었다.

레시피 데이터를 쿠커에 업로드하자, 채소가 든 포트에선 쇠고기와 달걀에서 채취한 고단백 엑기스와 철분이 더해진 후 열이 가해진다. 이내 ‘영양 만점’ 미네스트로네(minestrone, 파스타나 쌀을 넣어 걸쭉하게 끓여 내는 이탈리아 채소수프)가 완성됐다. 다른 쪽 포트에선 ‘전분 푸딩’ 조리가 한창이다. 쌀가루에 미네랄 성분을 보강한 게 특징인 메뉴다. 마지막 포트에선 비타민 C가 듬뿍 든, 석류를 베이스로 한 디저트가 따뜻하게 익어가고 있다. 소화 기능이 떨어져 균형 잡힌 영양을 취하기 어려운 A를 위한 ‘맞춤형 치유 식단’이다.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퍼지자, 소파에 앉아 있던 A가 다시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조작했다. 그러자 소파 맞은편 벽이 뒤로 물러나면서 벽지를 이루던 소재가 금세 식탁과 의자로 ‘변신’했다. 보통은 스마트 쿠커 내 포트에서 자동으로 1회용 식기가 나오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A를 즐겁게 하기 위해 전날 밤 ‘프랑스 식기(食器) 디자인 거장’ 미셀 페르망의 디자인 파일을 구입, 다운로드해 집에 있던 3D 프린터로 식기 한 세트를 만들어온 것. 세련된 곡선이 독특한 접시와 볼(bowl)에 담긴 음식들 앞에서 A는 모처럼 활짝 웃었다.

 

#설악산 오색약수터서 ‘글로벌 홀로그램 회의’

오전 11시, A와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 도착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설악산을 유난히 좋아하는 A를 위해 큰맘 먹고 ‘둘만의 드론 여행’을 감행한 것. 방법은 간단하다. 둘의 1인승 드론을 연결, ‘2인승 모드’로 바꾼 후 운행 정보를 입력해주면 끝. 서울을 출발, 드론의 투명 창 너머 서로의 모습을 보며 마이크로 수다를 떨다보니 60분 남짓 이동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정상 인근에 설치된 소형 포트에 드론을 착지시킨 후 대청봉 전망대 벤치에 A와 나란히 앉아 산바람을 맞았다. “와, 좋아! 아픈 기운이 싹 날아가버린 것 같아.” 행복해하는 A의 목소리를 들으니 내 기분도 한결 가벼워진다.

오전 11시 30분, 차고 있던 시계형 웨어러블 기기에서 알람음이 울렸다. “30분 후, 오후 12시 정각부터 홀로그램 회의가 시작됩니다.” 모처럼 마주친, 가슴이 탁 트이는 경관을 떠나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일은 일. 다시 A와 드론을 타고 인근 오색약수터에 위치한 컨벤션센터로 향했다. 도보로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등산로를 단 15분 만에 날아 예약해둔 회의실 의자에 앉았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55분, 회의 시작 5분 전이다.

최첨단 화상 회의 기술로 시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회의가 가능합니다

12시 정각, 회의실에선 마치 유령이 출몰하듯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내 앞쪽 좌석을 차지한 건 삼성전자 브라질지부에서 차세대 커뮤니케이션 디바이스 개발팀장을 맡고 있는 루까스 알바레스 박사. 그의 오른쪽 옆으로 중국총괄 IoT 개발팀장 탕웨이민 박사와 노르웨이총괄 스마트앱 개발팀장 토르 우겔슈타트 박사 등이 차례로 앉았다. 총 6명, 하나같이 IoT 아이템 개발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브레인(brain)’이다. 물론 실물이 아니라 한국 시각 기준 정오에 맞춰 실시간으로 촬영된 홀로그램 이미지다.

다들 영어에 능통하지만 마음이 바빠 자신도 모르게 모국어가 튀어나오더라도 회의 진행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스마트 헤드셋이 설정해둔 언어로 ‘직독직해’가 가능하기 때문.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근황을 가볍게 주고받은 후 12시 15분에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오늘 회의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말하자면 사회자(moderator). 2100년도 분기별 개발 아이템의 중간 점검 역할을 맡게 된다. “이렇게 다시 뵙게 돼 반갑습니다…(하략)”

약 2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무사히 끝낸 후 시계형 웨어러블 기기로 컨벤션센터 근처에서 산책 중이던 A를 다시 만났다. “홀로그램 회의를 했더니 멀리 사는 친구들이 생각나네. 우리 다음에 만났을 땐 ‘홀로그램 동창회’도 한 번 기획해보자.” A도 반색했다. “좋은 생각! 결혼하고 남편 따라 달나라 한국 커뮤니티에서 살고 있는 명지 불러내면 되겠다. 아프리카 서해안 대서양 해중(海中) 커뮤니티에서 파견 근무 중인 혜승이도 빼놓으면 섭섭하지!” 둘은 고교 동창 4인의 즐거운 ‘막간 수다’를 고대하며 저녁 식사 장소로 향했다.

 

#뇌파까지 해석한다, ‘올인원 수트형 컨트롤 기어’

목요일 저녁, 남자친구 B가 집에 오기로 했다. 서귀포 앞바다에 정박된 해상 주택 주방에서 며칠 전 설악산 여행 당시 사온 버섯을 재료로 요리를 시작했다. 주 3일, 본사에 가지 않는 날엔 재택 근무 형태로 일하는 내게 목요일은 사실상 휴일의 시작이다. 오후 6시 30분,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느라 저녁 준비가 늦었다. 청소에, 꽃꽂이 장식에, 음식 장만까지…. 산더미 같은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기 위해 오랜만에 ‘컨트롤 기어(control gear)’를 꺼내 입기로 했다.

1세기 전, 자동차 정비소 직원이 입었을 법한 올인원 수트(all-in-one suit)형 컨트롤 기어는 말 그대로 ‘만능 의상’이다. 안쪽 면 여기저기 센서가 장착돼 있어 착용자가 움직일 때마다 필요한 정보가 생성된다. 머리 부분의 컨트롤 캡(cap)은 뇌파 변화를 읽어 착용자가 마음 먹은 대로 주변 스마트 기기를 작동시킨다.

컨트롤 기어 차림으로 손가락을 들어 베란다 유리문을 가리키자, B가 타고 올 드론 정보가 설정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요리 도중 필요한 조리 도구와 식기들이 내 시선과 뇌파가 보내는 정보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여 제자리에 놓인다.

컨트롤 기어 차림으로 손가락을 들어 베란다 유리문을 가리키자, B가 타고 올 드론 정보가 설정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요리 도중 필요한 조리 도구와 식기들이 내 시선과 뇌파가 보내는 정보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여 제자리에 놓인다. 주방 벽면에 투사된 인포그래픽도 시시각각 바뀐다. 한 가지씩 준비를 마칠 때마다 기존 작업은 지워지고 새 작업이 ‘하이라이트(highlight)’ 처리돼 떠오르기 때문. 그 옆 벽면에선 B가 탄 드론의 도착 현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출발이 늦었네. 준비 시간을 좀 벌 수 있겠어!’

 

#버튼 하나 누르니 거실이 스위스로 ‘깜짝 변신’

간신히 모든 준비를 마친 건 오후 7시 45분, 드론을 타고 집 가까이 도착한 B의 모습이 벽면에 투사되며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제 접근합니다.” 미리 등록해둔 B 드론의 접근을 감지한 스마트 주택 베란다가 자동으로 열리고 B를 태운 드론이 자연스레 착지한다.

“이렇게 맛있는 버섯요리를 먹으니 나도 산에 가고 싶다. 그러려면 주택 이동 드론을 신청해야 할 텐데 시간이 너무 늦었네.” 아쉬워하는 B를 달랬다. “지금 신청해두면 내일 아침 일찍 올 거야. 그동안 우린 ‘산 속 분위기’로 설정해놓고 저녁 먹자.”

만찬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예쁜 드레스로 갈아입은 후 목걸이형 웨어러블 기기를 조작, ‘알프스 산장에서 내다 보이는 경치’를 선택했다. 순식간에 거실 전체가 3D 홀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로 변신! 그 분위기에서 만찬을 즐기니 정말 스위스 알프스로 관광이라도 온 기분이다. 다시 웨어러블 기기를 ‘터치’해 음향 효과를 추가했다. 창 밖에선 마을 악사들이 연주하는 세레나데 소리가 나지막한 이웃들의 대화 소리를 곁들여 공간을 가득 채운다. 바이올린 선율에 와인 향기까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스위스 산장의 저녁이다. “내일 아침 굳이 설악산까지 날아갈 필요 없겠는데?” B가 날 보며 환하게 웃었다. 찡긋, 눈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저널리즘 분야까지? VR의 ‘거침없는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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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이제 저널리즘 분야까지? VR의 ‘거침없는 하이킥’

“1871년 10월 8일 시카고 대화재. 당신은 거기 있다(You are there)!”

마치 (사건∙사고) 현장의 한복판에 있는 듯 듣는 이를 두근거리게 하는 이 문장은 1953년부터 1971년까지 방영된 미국 CBS 방송국의 역사 재현 TV 다큐멘터리 ‘당신은 거기 있다’의 오프닝이다. ‘스타 앵커맨의 원조’로 꼽히는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 1916~2009)가 진행했던 이 프로그램은 여러모로 유명했다. 특히 “당신은 거기 있다!”는 비장한 목소리로 시청자를 단숨에 빠져들게 했던 서두는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저널리즘 업계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당신은 지금, 뉴스의 현장에 있다!”

TV 다큐멘터리 제작 장면▲미국 CBS TV 다큐멘터리 '당신은 거기 있다' 진행자로 인기를 끌었던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는 현장감 있는 진행 방식으로 시청자의 몰입감을 높였다

성공적 스토리텔링의 주요 비결 중 하나는 시청자를 해당 콘텐츠로 끌어들여 그 세계를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저널리즘 종사자들이 ‘어떻게 하면 시청자를 좀 더 몰입시킬 수 있을까?’ 백방으로 고민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그 방법은 시대가 바뀌고 문화∙기술이 발달하며 조금씩 진화돼왔다. 재현 다큐멘터리 형식 도입, 컴퓨터 그래픽 기법 채택 따위는 모두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16년 3월, 그 꼭대기에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이 자리 잡고 있다.

 

#‘온몸이 반응하는’ 스토리에의 유혹

“스토리의 아름다움과 힘은 사람들을 움직여 변화를 만드는 것, 사람들이 세계를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은 ‘지구촌 시민’이 되게 하는 겁니다.”

노니 드 라 페나(Nonny de la Peña) 엠블메틱 그룹(Emblematic Group) 최고경영자(CEO)에겐 ‘VR 보도(혹은 몰입 저널리즘)의 대모(代母)’란 별명이 늘 따라다닌다. 지난 2013년 8월 그가 제작, 발표한 VR 활용 보도물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굶주림(Hunger in Los Angeles)’은 공개 당시 수많은 이를 충격에 빠뜨렸다. (노니 드 라 페나의 TED 강의 영상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삼성 기어 VR 착용 모습▲VR 저널리즘의 대표작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굶주림’은 VR 고글을 착용한 관람자에게 빈곤층의 참상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듯한 체험을 제공,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전 언론인으로 살아오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만드는 얘길 구성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또 그렇게 일해왔습니다. 신문과 잡지에서 일했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며, 방송 분야에도 종사했습니다. 하지만 VR로 작업하면서부터 비로소 사람들이 진정으로 치열한 반응을 보이는 걸 봤고 거기에 매료됐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는 미국 내 빈곤층의 참상을 시청자에게 직접 체험하게 하는 형식의 미니 VR 다큐멘터리다. 시청자가 VR용 고글(VR 기어)을 쓰면 눈 앞에 급식 배급소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피곤에 찌든 사람들은 몸을 겨우 가눈 채 하염없이 서 있다. 그 순간, 갑자기 앞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당뇨성 저혈당증으로 쓰러지고 그의 몸은 경련으로 뒤틀리기 시작한다. 혼란에 빠진 이들은 남자를 둘러싸고 그 틈을 타 일부는 새치기를 시도한다. 보안요원들은 질서를 잡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이 모든 광경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된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VR 기어를 착용하고 그걸 체험한 이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쓰러진 남자를 밟지 않으려 황급히 물러서는가 하면 눈물을 흘리며 “저 남자 좀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일부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그의 다음 작품 ‘프로젝트 시리아(Project Syria)’ 역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리아 내전 상황과 난민 캠프의 참상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오랜 전투로 황폐해졌지만 잠시나마 평화가 깃든 듯 보이는 거리, 어린 소녀 하나가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그 순간, “쾅!” 하고 로켓포가 터진다. 흙먼지가 이는 가운데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거나 흩어지는 사람들…. 모두 눈 앞에서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다.

내전 모습▲VR 기어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가상현실로 접한 이는 동일한 뉴스를 활자나 단순 영상으로 접한 이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사실을 신문(이나 잡지) 기사로 접했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무심한 표정으로 지면을 넘겼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동일한 장면을 VR로 접한 이들은 (비록 TV보다 화질이 낮아 사실감은 좀 떨어진다 해도) 깊이 공감하며 뭔가 행동을 취하려 노력했다. 이와 관련, 영화 제작가 겸 저술가이며 비디오 큐레이션 전문 기업 웨이와이어(waywire.com) CEO이기도 한 스티븐 로젠바움(Steven Rosenbaum)은 “VR 저널리즘의 위력은 체험자(독자)의 역할을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20조 원 시장’ 선점 경쟁 이미 시작

지난해 6월 미국 마케팅 조사 전문지 마켓앤드마켓(Markets and Markets)은 “오는 2020년이면 VR 저널리즘 시장 규모가 약 160억 달러(2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 로열티는 포함해 장비와 구성 요소(센서∙디스플레이∙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분야까지 망라한 수치다.

새로운 ‘블루오션’의 등장에 관련 업계는 이미 들썩이고 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통신사(AP 등)와 신문사(뉴욕타임스 등), 방송국(NHK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국내에서도 한국경제신문사∙조선일보사 등이 앞다퉈 VR 저널리즘 영역 개척에 나섰다.

VR 조선이 국내 최초로 공개한 360도 영상 콘텐츠 ‘자연이 바꾼 산업의 미래’ 중 한 장면▲VR 조선이 국내 최초로 공개한 360도 영상 콘텐츠 ‘자연이 바꾼 산업의 미래’ 중 한 장면. 미국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이 제작한 것이다

오늘날 ‘VR 저널리즘 콘텐츠’라고 하면 대개 360도 촬영 영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360도 영상이 모두 VR 저널리즘 콘텐츠인 건 아니다. 가상현실은 어디까지나 실제 있는(있었던) 일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상’의 일이므로 원칙적으론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이미지만 해당된다. 생생한 현장을 360도로 촬영한 후 전용 기기를 통해 관람하게 하는 경우, 이는 360도 영상일 뿐 가상현실이라고 하긴 어렵다.

반면, 언론 보도에서 ‘VR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가상현실 보도와 360도 영상을 한데 묶어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현 단계에선 앞서 소개한 노니 드 라 페나의 작품 같은 것보다 360도 영상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 사례를 살펴봐도 한국경제 TV가 도입한 ‘360이 간다’나 조선일보가 제공 중인 VR 콘텐츠 서비스 ‘VR 조선’은 대부분 360도 촬영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가끔은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가 내놓은 전쟁 난민 어린이 관련 보도 영상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The Displaced)’은 실제 촬영분과 가상현실을 절묘하게 조합, 몰입도를 높였다.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떠나지 않을 것”

저널리즘의 탄생과 진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그 관계망 안에서 크고 작은 전략을 결정하는 존재란 뜻이다. 인간이 오랫동안 새로운 것, 즉 ‘뉴스(news)’에 목말라 해온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실제로 인류는 글자가 없던 시대엔 입소문이나 이미지(조각∙회화 등)로, 글자가 생긴 이후부턴 포고문의 형식으로 주요 사항을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전달해왔다.

소식지가 등장한 건 ‘교역’이 경제 활동의 주요 근거로 자리 잡으면서부터였다. 최초의 소식지는 1556년 무렵, 베니스공국에서 만들어졌다. 그 시절 베니스공국은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근동(近東, 유럽의 관점에서 유럽과 가장 가까운 아시아의 서쪽 지역을 일컫는 말) 교육의 중심지였다. 당시 소식지 한 부 가격은 베니스 화폐로 1가제타(gazetta). 현대 서구 신문 매체명 가운데 종종 ‘가제트(Gazette)’란 용어가 눈에 띄는 이유다.

이후 과학기술과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며 소식을 전하는 형태와 방법도 빠르게 진화했다. 위 그래픽에서 알 수 있듯 19세기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약 150년간 저널리즘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20세기 말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터넷 뉴스가 등장하면서부터 저널리즘은 한층 빠르고 과격하게, 그리고 예측 불가능하게 변해왔다. 분명한 건 뉴스 콘텐츠와 그 소비자 간 상호작용(interaction)이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몰입도도 날로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VR 저널리즘은 그 첨단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ONLINE 저널리즘의 확산▲인터넷 보급 이후 한층 더 빠르게 진화해온 저널리즘, 그 첨단엔 VR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VR 저널리즘에서 ‘강력한 몰입도’는, 말하자면 양날의 검이다. 기대 효과가 큰 만큼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소비자가 현실과 가상 간 경계를 불분명하게 여기도록 할 수 있다”는 걱정이 대표적이다. 직업 윤리를 엄격하게 교육 받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보도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VR 저널리즘 환경에선 누구든 콘텐츠를 만들어 관객을 현장으로 이끌 수 있다. 비윤리적 보도가 횡행할 경우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는 구조다. 일부에선 “VR 보도물을 제작하려면 상당한 제작비를 감수해야 하므로 결국 ‘돈 있는 소수’를 위한 메시지만 제작, 소비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VR 저널리즘은 더더욱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문제를 낳을 것이다. 아울러 한층 강력해지고 생동감 있어질 것이다. 스티븐 로젠바움의 말마따나 VR 저널리즘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으며,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인공지능의 미래가 두렵다”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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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미래가 두렵다”는 당신에게.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의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 15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의 마지막 대국이 끝났다. 결과는 4대 1,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이번 승부는 '세기의 대결'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처음 성사됐을 때부터 화제를 모았고, 다섯 차례 대국이 진행되는 1주일 내내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바둑 애호가는 물론, 바둑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대국 중계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 정도였다. 자연히 알파고의 최종 승리는 세간의 관심을 '인공지능'이란 화두로 쏠리게 했다. 오죽하면 교육열 높은 한국의 '극성 맘(mom)' 사이에서 "알파고가 대체 어디 있는 고등학교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의 세 번째 대국을 마친 후 복기(復棋) 중인 이세돌 9단(사진 출처: 연합뉴스)▲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의 세 번째 대국을 마친 후 복기(復棋) 중인 이세돌 9단(사진 출처: 연합뉴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번 대국이 촉발한 호기심은 단연 '인공지능의 정의(와 영향력)'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해답의 실마리는 '알파고의 정체'를 확인하는 작업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프로그래밍계의 난제: '단순 계산 능력'을 넘어서라!

알파고의 핵심 알고리즘은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딥러닝이란 인간과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판단, 학습할 수 있도록 고안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일컫는 용어.

알파고의 핵심 알고리즘은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딥러닝이란 인간과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판단, 학습할 수 있도록 고안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일컫는 용어. 사실 초창기 컴퓨터는 '복잡한 수식을 착오 없이 계산하도록(compute) 고안된 기계'였다. 그런 만큼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단순 계산과 통계 등 특정 영역에 관한 한 인간 두뇌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효율적으로, 또 정확하게 발달해왔다. 문제는 이 같은 '단순 계산 능력'이 인간의 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지극히 낮다는 사실. 이 때문에 일찍이 컴퓨터공학자들은 '인간 두뇌가 보유한 능력 중 기계로 구현할 수 있는 분야의 한계'를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거듭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로 구현되는) 인공지능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두 가지 부문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무수한 정보 가운데 자신의 판단에 필요한 걸 순간적으로 선택하는 능력이 하나, 시시때때로 입력되는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저장하는 능력이 다른 하나다. 

 

뇌과학 분야가 발달하면서 인간 두뇌의 정보 처리 과정을 모방한 컴퓨터 알고리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뇌과학 분야가 발달하면서 인간 두뇌의 정보 처리 과정을 모방한 컴퓨터 알고리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출생 당시 인간의 뇌는 미숙한 상태다. 이후 성장 과정을 거치며 자극을 받고 정보를 취사선택, 조합하는 일명 '자기조직 원리'에 의해 점차 완성돼간다. 이때 판단과 선택, 조직의 과정은 대단히 빠르고 신축성 있다. 일례로 갓 태어난 아기도 누군가의 얼굴을 접하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인지 여부를 즉각적으로 판단한 후 반응한다. 수 백만 년, 아니 수 억 년 이상 인간 DNA에 축적된 유전자 정보 덕분이다.

바로 그 때문에 학계에선 "(인간 두뇌처럼 유전자 정보를 DNA에 축적할 수 없는) 기계가 정보를 취사 선택, 판단하도록 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한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1980년대 후반 제기된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 대표적이다.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쉽게 해내지만 인간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오히려 어려워하는(hard problems are easy and easy problems are hard)" 컴퓨터의 특성을 간파한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의 이 지적은 비교적 최근까지 인공지능에 관심 있는 컴퓨터공학자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인간 두뇌의 정보 저장 용량은 엄청나지만 선택 저장 능력은 더 놀랍다. 인간의 뇌 속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그리고 이 신경세포는 다시 100조 개의 시냅스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인간 두뇌의 정보 저장 용량은 엄청나지만 선택 저장 능력은 더 놀랍다. 인간의 뇌 속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그리고 이 신경세포는 다시 100조 개의 시냅스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사람의 뇌에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2.5페타바이트(PB) 수준인 걸로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가변적 취사선택 과정을 거쳐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편에선 "아무리 정보의 홍수 시대라 해도 하나의 프로그램이 인간 두뇌 수준의 정보를 감당하기엔 기술적으로 역부족"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알파고, 딥러닝과 빅데이터의 '환상적 콜래보레이션'

알파고에 적용된 '몬테카를로 트리 서치(Monte Carlo Tree Search)'는 그중 게임에 적합하도록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바둑알 두는 방법을 무작위로 샘플링, 각각의 방법이 이길 확률을 계산해내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여기에 △사업성 분석 기법의 하나인 '밸류 네트워크(value network)' △정책 타당성 분석에 주로 활용돼온 '폴리시 네트워크(policy network)' 기법이 더해지며 '바둑 둘 때 인간 뇌가 움직이는 방식'을 모방한 알파고식 알고리즘이 탄생한 것이다.

정보의 취사선택과 적정 조합. 컴퓨터공학자 사이에서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이 두 과제는 21세기 들어 거의 동시에 해소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실마리를 제공한 건 20세기 말부터 급격히 발달해온 뇌과학 분야 연구 성과다. 뇌의 특정 부분과 신경세포들이 어떤 연관선상에서 정보를 처리해가는지 밝혀지며 이를 모방한 컴퓨터 알고리즘들이 시도돼온 것.

알파고에 적용된 '몬테카를로 트리 서치(Monte Carlo Tree Search)'는 그중 게임에 적합하도록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바둑알 두는 방법을 무작위로 샘플링, 각각의 방법이 이길 확률을 계산해내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여기에 △사업성 분석 기법의 하나인 '밸류 네트워크(value network)' △정책 타당성 분석에 주로 활용돼온 '폴리시 네트워크(policy network)' 기법이 더해지며 '바둑 둘 때 인간 뇌가 움직이는 방식'을 모방한 알파고식 알고리즘이 탄생한 것이다.

바둑에서 어디에 돌을 놓을지 결정하는 일은, 다소 거칠게 설명하자면 '바둑돌을 움직였을 때 얻어지는 이득을 계산하는 일'과 같다. 오랜 훈련을 거쳐 바둑에 숙련된 인간은 반복 경험과 학습, 직관에 가까운 감각, 상대의 반응을 읽어내는 눈치 등을 종합해 이 계산 과정을 단축시킨다.

바둑에서 어디에 돌을 놓을지 결정하는 일은, 다소 거칠게 설명하자면 '바둑돌을 움직였을 때 얻어지는 이득을 계산하는 일'과 같다. 오랜 훈련을 거쳐 바둑에 숙련된 인간은 반복 경험과 학습, 직관에 가까운 감각, 상대의 반응을 읽어내는 눈치 등을 종합해 이 계산 과정을 단축시킨다.

컴퓨터가 이 같은 인간의 두뇌 작동 방식을 똑같이 따라 할 순 없다. 하지만 바둑돌을 움직이는 '경우의 수' 중 가장 짧은 시간 내에 가장 큰 이득을 내는 수를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경우별 가치 함수 계산 과정을 반복적으로 학습시킨다면? 일단 학습된 내용에 대해선 착오 없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컴퓨터의 특성상 '바둑 잘 두는 컴퓨터'의 탄생 가능성도 얼마든지 점쳐볼 수 있다.

다만 바둑에서 경우의 수란 제아무리 컴퓨터라 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므로 포지션 평가나 확률 분포 정책 등의 추가 알고리즘을 통해 경우의 수를 대폭 축소시켜 계산 시간을 줄여야 한다. 또한 그 과정을 거친 데이터의 양도 엄청난 만큼 이를 빨리 저장,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동반돼야 한다.

업그레이드 된 몬테카를로 트리 서치에 따른 알파고의 바둑 진행 예측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준 건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같은 정보 저장∙처리 기술이다. 최근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잇따라 등장하며 빅데이터를 확보,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졌다. 딥러닝 기술 역시 이 과정에서 발달하게 된 것이다. 요컨대 알파고는 인간의 신경망 구조를 모방한 기계 학습법인 딥러닝 알고리즘, 여기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끌어들여 빠르게 처리하는 빅데이터 기술 발달이 더해지며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신약 실험, 자동차 자율 운행 등 활용도 '무궁무진'

'아이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딥러닝이 컴퓨터를 바로 이 방식으로 학습시킨다. 다시 말해 목표 내용을 직접 주입하기보다 무수한 데이터를 걸러내는(filtering) 과정에서 그 내용을 컴퓨터가 알아서 찾아내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방대한 경우의 수를 탐색, 가장 주도적인 관련성을 찾아내는 작업이 딥러닝의 핵심이다.

이런 방식으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게 얼굴 인식 등 컴퓨터 비전(vision) 분야다. 2014년 현재 이 기술은 얼굴 인식률 측면에서 평균적인 사람(97.5%)과 유사한 수준(97.4%)에 이르렀다. 이뿐 아니다. 음성 인식, 손 필기 인식 등 '기본 유형(pattern) 인식 능력에 기반한' 기술은 모두 딥러닝 기법 덕에 일취월장하고 있다. 최근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인공신경망 기계 번역 역시 이 같은 딥러닝의 특성을 응용한 분야다.

단순히 외관(얼굴)이나 음성 인식에 그치지 않고 체온∙호흡∙맥박∙혈압 등 다양한 생체 신호를 지속적으로 측정,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이 같은 신호를 본인 인증뿐 아니라 헬스케어 같은 서비스에도 활용할 수 있다.

딥러닝이 사물인터넷 확산 추세와 맞물리면 인류의 삶을 더없이 편리하게 바꿀 수 있다. 단순히 외관(얼굴)이나 음성 인식에 그치지 않고 체온∙호흡∙맥박∙혈압 등 다양한 생체 신호를 지속적으로 측정,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이 같은 신호를 본인 인증뿐 아니라 헬스케어 같은 서비스에도 활용할 수 있다.

가정에서의, 혹은 범위를 좀 더 넓혀 산업계나 도시 환경 관리 측면에서의 응용도 가능하다. 사물인터넷 시스템에서 데이터를 받아 효율적이고 안전한 에너지 관리에 쓸 수 있기 때문. 그 밖에도 △신약의 효과 측정과 부작용 확인 △기업의 고객 관리 △자동차의 자율 운행 등 딥러닝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의 쓰임새는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영화 '채피(Chappie)' 속 다정다감한 로봇이 실제 인류의 동반자가 될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인간 대(對) 컴퓨터', 승패 관계로 규정할 수 없어

지난 201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올해를 빛낼 10대 혁신 기술' 중 하나로 딥러닝을 꼽았다. 이듬해 미국 마케팅 조사 전문 기업 가트너(Gartner, Inc.)는 딥러닝을 '2014 세계 IT 시장 10대 주요 예측'에 포함시켰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IDC는 오는 2017년 전 세계 인공지능 시장 규모를 1650억 달러로 전망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ensey)는 오는 2025년 '인공지능을 통한 지식노동의 연간 자동화' 가치를 5조2000억 달러로 내다봤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인공지능 관련 전망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슬며시 걱정 하나가 고개를 든다. '이러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게 되는 건 아닐까?'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돼 응용 분야가 확산되면 사람이 하는 일에서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사람을 쫓아내는(혹은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기계'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주체도, 작동시키고 점검해야 하는 주체도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첫 번째 대국이 열리기 직전인 지난 9일,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구글 회장은 개막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대국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승자는 결국 인간입니다." 사실 더 크게 보면 '인간 대 컴퓨터'의 관계는 승패로 규정할 수 없다. 인간은 컴퓨터를 포함, 다양한 도구와 기계를 만들어 활용하며 자신들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역시 그 '도구와 기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결국 미래의 인공지능은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할 테고, 그러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지금보다 한층 늘어날 것이다.

 

가상현실∙드론∙인공지능… ‘21세기 IT 걸작’을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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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가상현실 드론 인공지능... 21세기 IT 걸작을 만든 사람들, 스페셜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IT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10년 전, 2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술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인류의 삶을 전면적으로 바꿔놓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어느 날 갑자기’는 사실과 다르다. 모든 혁신적 기술은 과거 어느 순간, 누군가가 품었던 꿈에서 비롯된 것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드론, 그리고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2016년 3월 현재 전 세계 IT 지도를 대표하는 첨단 기술들이다. 맨 처음 이 기술을 꿈꿨던 이는 누굴까? 단순한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그들의 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실현됐고, 또 세상을 바꾸기에 이르렀을까?

미래의 도시 모습

 

재런 래니어 X VR_현실과 가상 오가는 ‘천재형 보헤미안’

재런 래니어(Jaron Lanier, 57)는 VR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저술가∙미술가∙작곡가 등 여러 직업을 종횡무진하며 활약 중인 그는 VR의 대중화에 힘써온 인물이기도 하다. VR은 자칫 ‘실제가 아닌 현실’로 해석될 수 있지만 원래 의미는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과 가까우며 거의 현실 같은 효과를 지니는 현실’이다. 어원이 주는 인상 때문에 ‘현실보다 더 (이상에 가깝게) 아름다운 현실’이란 의미가 더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VR엔 “외롭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버티게 해준 상상의 힘이 보다 많은 이에게 전파되길 바랐던” 재런의 속마음이 반영돼 있다.

가상현실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 ▲가상현실 기반 웨어러블 기기 '삼성 기어 VR'이 두려움 극복 수단으로 활용됐던 '비피어리스(#BeFearless)' 캠페인의 한 장면

1972년의 어느 날, 미국 남부 뉴멕시코주(州) 소재 작은 마을 메실라(Messila). 황량한 변두리 공터 한쪽, 낡고 초라한 텐트 앞에서 작은 체구의 소년 하나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소년은 추웠고 배가 고팠다. 무엇보다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원래부터 몽상가였던 아버지의 기행은 점점 더 심해졌다. 집세를 내지 못해 텐트를 치고 사는 형편이면서도 돈이 모일 때마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돔(dome)형 주택을 조금씩 완성해갔다.

열세 살 소년 재런은 이 모든 현실이 싫었다. 더울 땐 땀이 절로 흐르고 추울 땐 뼛속까지 얼어붙는 반(半)사막지대 외곽 텐트에 사는 처지도, 학교에 가기는커녕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일조차 호사스럽게 느껴지는 가난도, 함께 놀 친구 하나 변변히 사귀지 못한 채 외롭게 보내야 하는 시간도 지긋지긋했다. 가장 끔찍했던 건 “그저 남들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들을 향해 “너무 상식적이어서 뛰어난 데라곤 없다”는 구박을 일삼던 괴짜 아버지와 지내는 일이었다.

그 시절, 재런의 유일한 낙은 집 근처 나무 밑동에 기대 앉아 공상에 빠지는 거였다. 상상 속에서 그를 둘러싼 환경은 완벽했다. 푸른 숲을 병풍처럼 두른 도시, 네 벽이 반듯하게 설계된 집, 푸른 잔디 위에서 친구들과 맘껏 공을 차는 자신,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놓고 다정한 목소리로 아들을 부르는 어머니….

재런은 중∙고교 교육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10세 때까지 문화∙교양 수준이 높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그런지 또래보다 훨씬 조숙하고 영특했다. 그 시절, 재런을 만난 지식인은 하나같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재런은 14세 되던 해 뉴멕시코대 총장을 만나 “내가 이 학교에 장학금 받으며 입학해야 하는 이유”를 주장했고, 학교 측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미국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며 ‘디지털 그래픽 학습법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접한 ‘컴퓨터 비주얼’ 세계는 그에게 어린 시절 나무 밑동에서의 공상을 떠올리게 했다.

재런 래니어▲세계 최초로 가상현실 기술 상용화에 성공한 재런 래니어(사진 출처: 연합뉴스)

20대 초반, 캘리포니아로 건너간 재런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가상현실 개발에 몰두했다. 그리고 마침내 VPL(Visual Programming Language)이란 회사를 차려 세계 최초로 가상현실 기술과 부대 장비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그는 다양한 경력을 거치며 VR 기술 개발∙홍보의 선구자로, 더 나아가 컴퓨터 예술가 겸 철학자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재런은 지난 2002년 제작된 톰 크루즈 주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의 시나리오 작성과 기계 소품 제작 작업에 참여했고, 2007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을 작곡했다. 2013년 뉴욕타임스는 ‘올해 최고의 책’으로 재런의 저서 ‘누가 미래를 소유하는가(Who Owns the Future)?’를 선정했다. ‘타임’ 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그를 꼽았다.

“외롭다는 건 뭘 의미할까요?” 재런은 말한다. “전 오랜 시간에 걸쳐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왔습니다. 음악과 기술, 글쓰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말이죠. VR은 그 모든 걸 총체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입니다. 현실의 확장이자 누구든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죠. 세상 모든 사람들과 보다 폭넓게 소통하기 위한 창구이기도 하고요.”

 

에이브러햄 카렘 X 드론_‘무인 전투용 비행기’ 향한 갈망

‘무인(無人) 비행체’를 의미하는 드론(drone)은 요즘에야 일반인에게도 꽤 친숙하지만 최초 발상에서부터 우여곡절을 유난히 많이 겪은 기술이다. 그리고 드론의 실용화에 공헌한 이를 딱 한 명만 꼽으라면 누구나 이스라엘 출신 미국 항공기술자 에이브러햄 카렘(Abraham Karem, 80)을 떠올릴 것이다.

“온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이었는데 어느 순간, 저 아래 땅에서 희미한 불빛 덩어리가 시야에 들어오는 거야. 우린 무전을 주고받으며 목표물을 향해 접근해갔지….” 1951년 이스라엘 키부츠 공동체 내 작은 교실. 젊은 교사가 10여 명의 아이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유럽 연합군이 보유한 최고 사양의 공격용 폭격기 ‘랭커스터(Lancaster Bomber)’를 몰고 독일군과 싸운 무용담이었다. 아이들 중엔 작은 체구와 주근깨투성이 얼굴, 빛나는 눈을 지닌 한 소년이 끼어 있었다. 소년은 유난히 손에 땀을 쥐며 교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였다.

드론 이미지▲오늘날 급격히 대중화되며 적용 분야가 확장되고 있는 드론은 '전투용 항공기 대체물'로 처음 고안됐다

유태인이면서 성공한 바그다드 상인이었던 에이브러햄의 부모는 1951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어릴 때부터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던 에이브러햄은 공군 조종사 출신 교사의 영향으로 비행기에 매혹됐다.

19세 때 명문 이스라엘 테크니온공과대학교(Technion 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 항공과에 입학한 그의 관심 분야 역시 전투용 항공기였다. 하지만 불가피한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공중전(空中戰)의 현실 앞에서 에이브러햄은 늘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실제로 공중전에선 고도로 훈련된 엘리트 조종사가 한 순간의 실수나 패배로 처참하게 죽게 마련이다. 키부츠에서 뜻 맞는 친구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자란 그에게 그건 용납하기 어려운 손실이었다.

자연히 그는 항공기 개발에 대한 꿈을 키우는 한편, ‘전투용 비행기는 무인비행체(UAV, Unmanned Aerial Vehicle)여야 한다’는 지론을 갖게 됐다. 당시엔 누구도 공감하지 않는 망상처럼 보였지만 그는 자신이 이끄는 팀과 함께 UAV 개발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벌어진 욤 키푸르(Yom Kippur) 전쟁에 최초의 UAV를 투입하는 데 성공했다.

남자가 드론을 조종하는 이미지 ▲IT 기술자가 아니면서도 평생 드론 개발에 매진해온 에이브러햄 카렘은 끝까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977년 미국으로 이주한 에이브러햄은 무인항공기 제작 회사 설립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겼다. “난 차고(車庫) 딸린 집을 보고 싶은데 당신은 집 딸린 차고를 찾고 있군요.” 그는 아내의 핀잔을 무릅쓰고 2층 규모의 대형 창고가 있는 집을 구입했다. 그곳에서 모형 드론 제조용 재료를 구입해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한편, 자신과 뜻을 함께할 협력자 물색에 골몰했다.

컴퓨터공학자 프랭크 페이스(Frank Pace, 67)는 에이브러햄이 세운 리딩 시스템즈(Leading Systems)에 입사한 일곱 번째 직원이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종합 제조업체 브런스윅(Brunswick)의 국방용품 부서에서 일하던 그의 합류로 리딩 시스템즈의 컴퓨터 기반 드론 조종술 수준은 급격히 향상됐다. 이후 프랭크는 줄곧 에이브러햄 곁에서 드론 개발 계획을 함께해오고 있다.

1∙2호 드론인 ‘앨버트로스(Albatross)’와 ‘앰버(Amber)’에 이어 비행 시간이 현저하게 길어지고 운행도 정확해진 3호 드론이 완성될 무렵, 리딩 시스템즈는 파산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새로 개발된 드론의 탁월한 성능을 눈 여겨본 미국 국방 산업체 제너럴 아토믹스(General Atomics)가 에이브러햄과 그의 팀을 인수했다. 이 일로 위기를 넘긴 에이브러햄은 최초의 미 군용 UAV ‘프레데터(Predator)’ 개발에 성공했다.

“전 장난감 놀이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런 제가 세상에 도움 될 새로운 일을 해낼 수 있었다면 그건 전부 ‘끊임없이 꿈을 꾸며 뭔가 뚝딱거려 만들어내는’ 제 곁의 개발자들 덕분입니다.” 정작 자신은 IT 기술자가 아니면서도 IT 산업이 빚은 걸작 중 하나인 드론 개발을 선도해온 에이브러햄의 성공 비결은 평생 소중히 여겨온 자신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데 있었다.

 

데미스 하사비스 X AI_계임계의 ‘자타공인 차일드 프로디지’

영단어 ‘차일드 프로디지(child prodigy)’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신동(神童)’이 된다. 음악계로 치면 모차르트 정도 돼야 붙일 수 있는 영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알파고(AlphaGo)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41)는 어릴 적 ‘게임계의 차일드 프로디지’로 꽤나 명성을 날렸다.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와 딥마인드 본사 건물 ▲데미스 하사비스(왼쪽 사진)와 영국 런던 소재 딥마인드 테크놀로지 본사 건물. 바로 이곳에서 '인공지능 바둑 로봇' 알파고가 탄생했다(사진 출처: 연합뉴스)

데미스는 네 살 때 시작한 체스로 청소년 체스 부문 세계 2위에 올랐고 컴퓨터 게임 분야에서도 종류를 막론하고 세계 정상급 실력을 뽐냈다. 그랬던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인공지능의 수준을 확 바꾼 컴퓨터공학자 겸 뇌신경과학자가 됐을까?

영국 런던 북부 출신인 그는 그리스 키프로스섬 출신 아버지와 중국계 싱가포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머리 쓰는’ 분야에서 발군의 천재성을 보인 그는 어떤 게임을 접하든 금세 익혀 최고 단계에 이르렀다. 학교 성적도 뛰어나 중∙고교 과정을 또래보다 2년 앞당겨 16세 때 졸업했고, 이듬해엔 영국 게임 개발사 불프로그(Bullfrog) 프로덕션에 입사해 전설적 게임 디자이너 피터 몰리노(Peter Molyneux)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 ‘테마파크(Theme Park)’를 개발했다. 23세 되던 해엔 대학(케임브리지대 컴퓨터공학 전공)을 수석 졸업한 후 세계적 두뇌 게임 경연 ‘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드(Mind Sports Olympiad)’에 처음으로 참가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남들은 평생 가도 한 번 이룰까 말까 한 성취를 줄줄이 달성한 그가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경험’으로 꼽는 건 컴퓨터와의 첫 만남이다. “일곱 살 때였나, 한 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스펙트럼 ZX(1982년 영국 기업 싱클레어 리서치가 출시한 8비트 가정용 PC)를 샀어요. 마치 마법상자를 얻은 것 같았죠. 어린 맘에도 ‘자동차가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확장시키는 기계라면 컴퓨터는 인간의 지성을 확장시켜주는 기계’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데미스 하사비스는 "인간의 지성으로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공지능이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사진 출처: 연합뉴스)

이후 그의 삶은 줄곧 ‘스펙트럼 ZX가 안겨준 깨달음’을 실천해가는 과정이었다. 게임 디자이너 겸 개발자로, 컴퓨터공학자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그는 2009년 런던대학에서 뇌신경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 스타트업인 딥마인드 테크놀로지(DeepMind Technologies, 이하 ‘딥마인드’)를 창업한 건 그 이듬해였다.

2014년, 구글이 딥마인드를 4억 파운드(약 6600억 원)에 인수하며 데미스 하사비스는 일약 전 세계 IT 업계와 경제학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됐다. 그리고 올해 자신이 만든 알파고를 이세돌과 대국시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구글에 인수될 당시 75명이었던 딥마인드 인력은 몇 년 새 120명을 넘어섰다. 출신 국가도, 전공도 다르지만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드림팀’이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그가 자신의 팀과 함께 진행하려는 ‘차기 프로젝트’는 뭘까? “현대 사회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과제 해결에 도전하게 되지 않을까요? 우린 지금껏 상당히 많은 분야에서 진보를 이뤄왔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많으니까요. 기후 변화와 거대 경제 침몰, 암∙알츠하이머 등의 난치병 치료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죠.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인간의 지성만으로 풀기엔 역부족인 이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데 인공지능이 반드시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입체영상 맘껏 감상할 수 있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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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폐셜 리포트 '입체영상게의 유튜브를 꿈꾼다' 삼성전자 출신 유망 스타트업 탐방기_1모픽, 스페셜 리포트는 풍부한 취재 노하우와 기사 작성 능력을 겸비한 뉴스룸 전문 작가 필지니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콘텐츠입니다. 최신 업계 동향과 IT 트렌드 분석, 각계 전문가 인터뷰 등 다채로운 읽을거리로 주 1회 삼성전자 뉴스룸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스타트업(startup). ‘규모는 작지만 혁신적 DNA로 무장한 신예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다. ‘21세기형 기업 패러다임’으로 불리며 최근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효율성 중심 기업 형태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 도입한 ‘C랩(Creative Lab)’ 제도를 기반으로 지난해부터 창의력 있는 사내 인재를 발굴, 자체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으로 독립시키는 일명 ‘스핀오프(spin-off)’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출범 1년도 안 돼 괄목할 성과를 하나둘 내놓고 있는 C랩 출신 유망 스타트업 네 곳을 차례로 방문, 그들의 얘길 들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아래는 어쩌면 당신이 미처 모르고 있을 스타트업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이다.

 스타트업이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 이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소규모 기업을 말한다

● 스타트업과 스핀오프의 관계는 이렇다. 스핀오프는 큰 회사에서 특정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부분을 독립시켜 작은 회사로 서게 해주는 과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큰 회사 입장에서 특정 조직을 스핀오프 처리하면 해당 조직 입장에선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스핀오프로 출발하는 건 아니다

● 시장조사 전문 기관 ‘글로벌 앙트러프러너십 모니터(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의 추산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서 약 4억7000명이 연간 3억5000만 개의 스타트업을 차리고 있다. 매년 약 1억 개 업체가 새롭게 등장하지만 같은 기간 그에 버금가는 수만큼의 업체가 사라진다

●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IT 기업이 스타트업 인수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구글은 런던∙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도시에 ‘구글캠퍼스’란 이름으로 스타트업 지원 센터를 운영하며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문제 없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 삼성전자 C랩은 출범 후 3년간 110여 개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했다. 이중 이미 완료된 건은 70개. 40여 개는 아직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70개 완료 과제 중 10개에 한해 스핀오프를 결정, 스타트업으로 독립시켰다(단, 2개 완료 과제를 다루는 업체가 한 곳 존재해 업체 수는 9개). 나머지 완료 과제는 사업부별로 상품화에 착수했거나 선행 개발 중이다

 

 

3D 입체 영상, 안경 없이 즐긴다고?

모픽 구성원들이 개발품을 들고 찍은 사진, (왼쪽부터)신윤철 이사, 고은별 디자인팀장, 김기영 개발팀장, 신창봉 대표 ▲모픽 구성원들. (왼쪽부터)신윤철 이사, 고은별 디자인팀장, 김기영 개발팀장, 신창봉 대표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경기 수원시 장안구) 내 산학협력센터 3층. 66㎡(약 20평) 남짓 규모의 공간에 옹기종기 앉은 네 명이 저마다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무안경 360도 입체영상 플랫폼 개발 스타트업 ‘모픽(Mopic)’ 사무실 풍경이다.

모픽은 삼성전자 DMC(Digital Media & Communication)연구소 출신 신창봉(39) 대표와 신윤철(43) 이사가 함께 창업한 회사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C랩에서 독립한 후 김기영 개발팀장과 고은별 디자인팀장이 합류하며 현재의 진용을 갖췄다.

모픽의 주력 사업 아이템은 모바일 기기용 무(無)안경 3D 커버, 그리고 이를 활용해 입체 영상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아직 이렇다 할 이름조차 없지만 사용성 측면에선 단연 ‘될성부른 떡잎’이다. 평소엔 스마트폰 후면에 씌워 케이스처럼 사용하다가 모바일 3D 영상을 보고 싶을 때 전면으로 돌려 끼우면 끝. 전용 고글 같은 보조 도구 없이도 스마트폰 화면에서 3D 입체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모픽의 무안경 3D 커버를 씌우는 장면을 단계 별로 찍은 사진 ▲모픽의 무안경 3D 커버를 씌운 스마트폰. 이 커버를 후면으로 돌려 끼우면 스마트폰 케이스가 된다

신창봉 대표의 안내에 따라 무안경 3D 필름이 부착된 커버를 스마트폰에 씌운 후 모바일3D 영상을 감상했다. 평면적 배경 위에 키 이미지(key image)가 마치 모형처럼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평소 3D 영상 콘텐츠에 대한 피로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모픽 제품은 눈이 덜 피곤했다. 그래서일까, 웬만한 3D나 VR 전용 기기보다 훨씬 더 화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양질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공급된다, 는 전제만 있다면 이렇게 보는 쪽이 몰입감이나 즐거움의 수준 측면에서 훨씬 좋을 것 같네요.” 칭찬을 건넸더니 신 대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럼요. 우리 제품의 또 다른 장점은 강력한 휴대성입니다. 스마트폰 자체가 어디든 갖고 다니는 기기인데 우리 제품은 바로 그 스마트폰 케이스로도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디어의 상품화, 그 지난했던 과정

신창봉 대표에 따르면 모픽은 ‘3D 영상 특유의 몰입감을 언제, 어디서나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이다. “처음엔 태블릿 PC용 커버를 만들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최근 스마트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지금은 스마트폰에 장착할 수 있는 형태 쪽에 역점을 두고 개발 중입니다.”

모픽이 만든 태블릿 PC용 커버를 씌워 3D 영상을 감상하는 모습 ▲모픽이 처음 떠올린 아이템은 태블릿 PC용 커버였다. 사진은 모픽이 만든 태블릿 PC용 커버를 씌워 3D 영상을 감상하는 모습

신 대표와 신윤철 이사는 삼성전자 C랩에서 잉태된 무안경 3D 기술의 가능성을 믿고 동료들의 격려와 회사의 지원 속에 스타트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당초 아이디어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으로 완성하기까진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가장 까다로운 작업은 아이트래킹(eye-tracking)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VR 전용 기어 같은 안경형 3D 기기는 눈 앞 일정 거리에 고정돼 시청 거리와 각도를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맨눈으로 스마트폰 3D 영상을 볼 땐 눈과 스마트폰 간 간격이 수시로 달라지는 탓에 시청 거리도, 각도도 그에 맞춰 바뀐다. ‘눈동자의 움직임까지 감안해 편안하게 보이도록 보정하는’ 기술 자체는 모든 3D 영상 관람 환경에 필요하지만 스마트폰의 경우, 그 수준이 한층 강화돼야 하는 것이다.

좌측에 최초 제작품인 테두리가 흰색인 형태의 제품, 우측에 스마트폰에 어울리도록 테두리 없이 전면이 투명한 제품 ▲초기 커버<왼쪽 사진>는 테두리를 흰색으로 처리하고 액정 부분에 필름을 입힌 형태로 제작됐다. 하지만 현재 디자인은 최신 스마트폰에 어울리도록 테두리 없이 전면이 투명한 게 특징이다

일명 ‘크로스토크(cross-talk)’ 감소 기술 개발도 풀기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다. 3D 영상을 구현하려면 왼쪽과 오른쪽에 각기 다른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 문제는 눈동자 움직임이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상(像)이 잘 맞지 않아 두 그림이 종종 섞여 보인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크로스토크라고 한다. 모픽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체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양쪽 눈에 비치는 영상을 분리해 상이 선명하게 유지되도록 해주는 게 골자. (모픽 측은 “더 자세한 설명은 대외비라 곤란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마지막 기술적 난제는 해상도 저하를 막는 일이었다. 앞서 설명했듯 영상을 3D 형태로 감지하려면 두 눈에 비치는 화면이 서로 달라야 한다. 하지만 하나의 화면을 두 개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각각을 세부적으로 그려내긴 결코 쉽지 않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지난해 6월 24일자 스페셜 리포트 “가상현실, 또 한 번의 부활을 꿈꾸다” 내용 참조) 신 대표는 “다행히 올 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냈고, 그 덕에 2D 화면 속 대상이 밖으로 튀어나오듯 생동감 있는 영상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이로센서를 활용, 360도로 촬영된 입체 영상 감상도 가능하게 했다. “움직이는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는 것 같은 실재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 게 신 대표의 귀띔이다.

 

5개월 만에 ‘성과’… “삼성 덕분이죠”

사실 이 모든 성과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5개월도 채 안 돼 이뤄졌다. 신생 업체로선 상당한 쾌조인 셈이다. 이에 대해 신창봉 대표는 “삼성전자에 근무했던 당시 개발된 기술이어서 그만큼 출발이 수월했다”고 말했다. “저와 신윤철 이사 둘 다 삼성전자 근무 경력이 13년에서 14년 사이쯤 돼요. DMC연구소 시절 이 분야 과제를 맡았는데 2년가량 연구해본 후 ‘장래성이 크다’고 판단해 C랩으로 옮겨 진행했죠. 그게 지난해 7월이었으니 속도가 상당히 빠른 건 사실입니다.”

신창봉 대표의 인터뷰 모습 사진입니다. ▲신창봉 대표는 “삼성전자에 근무하며 이번 과제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런 성과를 거두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삼성전자가 모태인 기업이란 점에서 기본적으로 안고 가는 장점이 상당했다”고도 말했다. “일단 초반 세팅(setting)이 꽤 안정적이었어요. 솔직히 대부분의 신생 스타트업이 초기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 고전하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삼성전자의 지원으로 이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했죠. 그 덕에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할 수 있었고요.”

실제로 삼성전자는 C랩 과제가 종료될 즈음, ‘자사 사업부 이관’과 ‘스핀오프’ 사이에서 자체적 판단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회사 내부에 남겨두는 것보다 외부로 내보내 사업화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결론이 나면 사내∙외 전문가 심사 등 엄격한 전형을 거쳐 초기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한다.

이 같은 삼성전자의 초기 투자는 해당 스타트업에 재정적 안정성을 안겨주는 동시에 “(삼성전자와 같은) 굴지의 대기업에서 사업성을 인정 받았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싹수 보이는 씨앗’을 일찌감치 선별, 비옥한 토양과 충분한 물을 주는 방식이다. 이 같은 형태는 모픽 사례만 봐도 일단 합격점을 줄 만하다. 신창봉 대표도 이에 동의했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삼성 출신’이란 사실만으로도 적지 않은 파괴력을 갖는다는 거예요. 자신감은 말할 것도 없고 인적 네트워크 형성 측면에서도 무척 도움이 됩니다. 벤처 업계나 주력 기술 등 연관 분야에 포진한 삼성 출신도 많거든요.”

신 대표에 따르면 “가장 고마운 부분은 삼성전자의 자체 기술을 안정적으로, 이어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라이선스 비용은 지불하고 있어요. 사실 아무리 작고 간단해 보이는 아이템도 ‘시각적으로 자연스레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꽤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거든요. 작은 스타트업이 그런 기술을 모두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저희는 이 같은 부분을 삼성전자 근무 당시 어느 정도 해소한 후 독립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큰 문제 없이 올 수 있었습니다.”

신 대표에 따르면 삼성전자에서 쌓은 업무 노하우도 큰 도움이 됐다. 짧은 기간에 명확한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성취해내는 ‘삼성 스타일’이 몸에 밴 덕분이다. “삼성에서 3개월은 엄청나게 긴 시간입니다. 전 지금도 삼성에서처럼 일하고 있는데요. 해야 할 일과 완성 기한을 정한 후 일정을 역순으로 짜나가죠. ‘언제까지 뭘 하고 언제까지 뭘 한다’는 식으로요. 삼성 근무 당시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데 익숙해진 덕분에 지금도 업무 효율성 측면에선 자신 있습니다.”

 

‘친절한 모픽씨’가 되겠습니다!

신 이사가 창업 후 새롭게 합류한 김기영 개발팀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신윤철 이사(사진 왼쪽)는 삼성전자 동료였던 신창봉 대표와 의기투합, 모픽을 이끌어오고 있다. 사진은 신 이사가 창업 후 새롭게 합류한 김기영 개발팀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신창봉 대표와 신윤철 이사에 따르면 모픽은 ‘플랫폼 업체’다. “현재 개발 중인 무안경 3D 액세서리는 향후 우리가 제공할 3D 입체영상 플랫폼을 사용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게 두 사람의 설명. “오큘러스사(社)도 동명의 기기를 팔지만 수익 모델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콘텐츠입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앞으로도 이런저런 3D 관련 기기를 개발하겠지만 우리의 최종 타깃은 3D 영상에 특화된,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에요.”

‘모픽 4인방’의 좌우명은 ‘(소비자에게) 친절한 모픽씨(氏)가 되자’다. “개발자 차원에서 ‘이 정도면 됐다’는 것과 소비자가 ‘사용하기 편하다’고 느끼는 것 사이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하죠. 저희는 이 간격을 어떻게든 최소화하려 합니다. 칠순 어르신도 쉽게 이해하고 즐겨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개발은 복잡하게, 사용은 편리하게’라고나 할까요?”

 

“스타트업, 열정보다 중요한 건 경험”

대형 기업과 소규모 스타트업 간 협업(collaboration) 사례는 21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서로에게 필요한 자원을 원활하게 공급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규모 확장 없이도 효율적으로 이윤을 창출, 나눠 가질 수 있어 말 그대로 ‘윈윈(win-win)’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C랩을 주축으로 한 삼성전자의 스핀오프 전략이 기대를 모으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신윤철 이사(사진 왼쪽)와 신창봉 대표의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신윤철 이사(사진 왼쪽)와 신창봉 대표가 꿈꾸는 모픽의 미래는 ‘3D 영상 분야에서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신윤철 이사와 신창봉 대표에게 ‘스타트업 도전’을 꿈꾸는 직장 동료나 후배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을 부탁했다. “요즘은 청년 창업을 꿈꾸는 분도 많더라고요. 하지만 사회 경험 없이 곧장 창업에 뛰어들면 실패 확률도 높아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창업은 열정이나 혈기만 갖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 이상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수죠. 다양한 사회 경험을 거치며 스스로 철저한 훈련 과정을 거친 후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신윤철)

“제 생각도 신 이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개인에게 필요한 항목을 쭉 쓴 후 순서를 매겨보면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는 게 ‘열정’이에요. 앞 쪽에 놓이는 항목은 경험과 사회적 관계망, 실질적 업무 능력 같은 거죠. 준비 과정 없는 스타트업은 겨울이 길 겁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성공한 스타트업’ 아래쪽엔 셀 수 없이 많은 실패 사례가 있어요. 아, 물론 잘될 수도 있습니다(웃음). 그래서 해볼 만한 거죠.”(신창봉)

 

걸어라, 그만큼 보상 받을지니… 이색 헬스 트래킹 앱 ‘워크온’이 탄생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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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스페셜리포트스왈라비_도비라

크기변환_01 ▲가로 폭이 좁은 직사각형 공간에서 매일 동고동락 중인 스왈라비 식구들. (왼쪽부터)이상재 이사, 유현조∙고영태 매니저, 정해권 대표, 오인창∙우승우 매니저. 이상재 이사와 정해권 대표가 들고 있는 건 지난해 8월 삼성전자에서 독립할 당시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에게 받은 격려 메시지다

스왈라비(Swallaby). 삼성전자 C랩 프로젝트에서 출발, 지난해 9월 스핀오프 절차를 밟은 스타트업이다. 주요 사업 품목은 고객의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헬스케어 플랫폼. 지난 5일엔 그중에서도 주력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워크온(WalkOn)’을 출시했다. 이날 오후, “앱 출시로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정신이 없다”는 스왈라비 사무실(서울 서초구 서초동)을 찾았다.

 

‘건강 관리의 숨은 1인치’ 동기 부여에 주목

워크온은 일종의 헬스 트래킹 앱이다.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에 설치만 해두면 사용자의 움직임을 분석, 관련 기록을 제공한다. 여기엔 걸음 수와 이동 거리∙경로 등의 활동은 물론, 멈춘 상태나 수면 등의 비(非)활동도 포함된다. 얼핏 ‘그냥 좀 똑똑한 만보기’쯤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확실한 차별화 지점이 존재한다. ‘동기 부여’다.

‘움직인 만큼 보상 받는다.’ 워크온의 기능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정해권(34) 대표는 사무실을 찾아온 취재진을 앞에 놓고 워크온을 직접 실행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연령과 성별 등 사용자의 신체정보를 입력합니다. 그럼 개개인의 조건에 맞춰 우리가 설정한 1일 목표 걸음 수가 뜨죠. ‘1만 보’ ‘800보’ 하는 식으로요. 그런 다음, 사용자는 ‘보상’을 선택합니다. 워크온 플랫폼의 파트너들이 제공하는 혜택 중 고르실 수 있어요. 이때 혜택은 커피전문점 할인 쿠폰, 유용한 생활 ‘꿀팁’ 등 다양하고 폭넓습니다. 목표치를 달성하면 각자 선정한 혜택을 획득하게 되죠. 일종의 게임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친구들과 비교해가며 즐길 수도, 다른 사용자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어요.”

크기변환_02 ▲취재진이 스왈라비 사무실을 찾은 건 지난 5일. 때마침 이날 ‘워크온’ 베타버전이 정식 출시됐다. 워크온은 사용자의 걸음 수만큼 쿠폰 등 각종 혜택을 돌려주는 ‘보상형 헬스케어 플랫폼’이다

워크온은 사용자의 시간대별 동선과 걸음 수 로그 등을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한다. 일명 ‘TPO(Time-Place-Occasion)’에 맞는 콘텐츠와 이벤트 정보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사용자 입장에선 더 많이 걸을 수 있는 동기 부여 수단이, 제공자 입장에선 자신의 기업(이나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광고 창구가 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윈윈(win-win)’이다.

 

“작심삼일 운동족(族) 제 경험 반영했죠”

“제가 그랬어요. 운동 좀 해야겠다 싶어서 피트니스센터 회원권을 끊어놓곤 한 달도 채 못 가곤 했죠. ‘언제든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뭘까?’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게 ‘걷기’였어요. 운동 효과가 있는 건 물론, 스트레스 해소도 되잖아요.”(정해권)

공동창업자인 정 대표와 이상재(31) 이사의 고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걸으면서 더 좋은 가치를 만들어낼 순 없을까?’로 이어졌다. “칼로리 소모량이나 걸음 수를 측정해주는 앱은 워크온 이전에도 많았거든요. 저희는 여기에 재미 요소를 더해주고 싶었어요. 타인과 연계돼 있다면 혼자일 때보다 더 쉽게, 지속적으로 운동할 수 있을 테니까요.”

크기변환_03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는 정해권 대표는 “일단 나부터 재밌게 운동하며 쓸 수 있는 앱을 개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립해 나온 후부턴 일과 삶이 통합돼버렸어요. 요즘은 걸으면서도, 자려고 누워서도 온통 워크온 생각뿐입니다.”

두 사람은 이내 ‘건강 관리’를 주제로 한 최신 논문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퍼뜩 눈에 들어오는 트렌드를 찾았다. ‘병에 걸린 후 약을 먹고 치료하기보다 평소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 병을 예방하는 게 낫다’는 흐름이 그것. 미국 내셔널아카데미의료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 of National Academies)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예방 정책 정립에 기여해온 마이클 맥기니스(J. Michael McGinnis) 박사의 논문도 그중 하나였다.

맥기니스 박사는 “신체 활동을 적절히 늘리는 것이야말로 질병 예방과 건강 유지의 최선책이며, 그러려면 정부와 기업 등 공적(公的) 행위자들의 발상 전환과 협력이 절실하다”는 주장을 관련 연구 성과와 함께 꾸준히 제기해왔다. 그와 별도로 지난 2008년 미국 국립만성질환예방및건강증진연구소(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선 “평소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 성인에게 규모가 작더라도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그들의 건강 증진에 효과적”이란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정해권 대표는 이런 접근과 관련, 스마트폰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리란 사실에 착안했다. ‘요즘 스마트폰 안 쓰는 사람 없잖아. 하루 종일 몸에 지니고 다니니까. 게다가 사용자 개개인을 사회적 시스템과 언제 어디서든 연결시켜주고. 그래, 이거다!’ 워크온의 초기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건강, ‘무거운 명제’에서 ‘즐거운 게임’으로

“힌트를 얻은 후 저흰 스마트폰 하나에 집중했습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걷기가 즐거워지고 건강 관리에도 도움 받을 수 있는 독자적 솔루션을 만들고 싶었죠. 그러려면 사용자에게 실질적 이득이 되는 인센티브 적용 방식을 찾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고심 끝에 나온 결과가 ‘쿠폰 제시 방식’이었다. 정 대표는 “여러 연구 성과를 종합해본 후 ‘걷기 목표를 달성한 사용자에게 쿠폰을 주면 실제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서더라”고 말했다.

크기변환__MG_4567 ▲워크온은 정해권 대표(사진 왼쪽)와 이상재 이사가 오랜 연구와 고심 끝에 내놓은 작품이다. 사진은 이번 취재를 위해 기꺼이 '거리 모델'로 나선 두 사람의 익살스런 모습 

“몸을 적절히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건강 증진의 기본이죠. 또한 몸을 움직이게 하려면 대단하진 않아도 금전적 보상이 제공되는 게 효과적일 거라고 봤습니다. 원래 사람은 혼자 있으면 ‘비활성’ 상태에 머무르지만 집단으로 묶일수록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분주한 현대사회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누군가와 연계되는 느낌을 받으면 누구라도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확신했고 관련 연구도 진행했죠. 워크온은 그 과정의 산물인 셈입니다.”

건강에 대한 정해권 대표의 지론 역시 명료하다. ‘(건강은) 무겁고 심각한 방법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라 즐겁게 활동하는 과정에서 강화될 수 있다’는 것. 그는 “걷기처럼 단순하고 경우에 따라선 대단히 즐거울 수 있는 운동도 좀처럼 안 하게 되는 게 현대인”이라며 “그런 생활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려면 작지만 꾸준한 인센티브의 존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스왈라비 임직원들은 요즘 바로 이 인센티브의 ‘양’과 ‘질’을 강화하기 위해 분주하다. 일단 서울시와의 협업을 확정 지었고 대학교나 커피전문점 브랜드 등과도 활발하게 논의를 진행 중이다.

“최대한 여러 기관이나 업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폭넓게 구축, 우리 회원들만 누릴 수 있는 쿠폰 혜택을 늘리려 합니다. ‘단순 1회 클릭’의 가치를 뛰어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저희에게 주어진 숙제죠.” 정 대표에 따르면 스왈라비 측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업체 입장에서도 얻을 게 많다. 무엇보다 “목표 걸음 수에 도달하는 기간 동안 사용자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게 되는 만큼 ‘우호 고객 확보’ 차원에서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사가 만사… 생사고락 함께할 이들과 일한다”

“삼성전자 입사 직후 사내 공모전에 여러 차례 도전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0년 증강현실(AR) 아이디어 관련 공모전에서 SNS와 접목해 제안한 작품이 채택된 후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일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죠.”(정해권)

스핀오프 직후였던 지난해 9월 스왈라비의 구성원은 정 대표와 이상재 이사 둘뿐이었다. 이후 고영태 엔지니어가 합류하며 식구가 하나둘 늘어 지금에 이르렀다. 삼성전자 근무 당시 말 그대로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이들의 사업 아이템은 독립한 후 비로소 앱 개발로 본격화됐다. 물론 정 대표의 말마따나 워크온처럼 파트너십 연계가 중요한 앱에서 기술 개발은 어디까지나 첫걸음에 불과하다.

크기변환_04 ▲정해권 대표(사진 오른쪽)와 이상재 이사는 지난 2010년 삼성전자에 나란히 입사했고 지난해 스왈라비를 공동으로 창업했다. 둘은 서로를 향해 “삼성 근무 당시엔 다른 부서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뜻이 잘 맞는 동료”라고 입을 모았다

“워크온은 기본적으로 건강 증진 플랫폼이거든요. 다른 제품과 차별화되는 점 중 가장 중요한 게 ‘(동기 부여 수단이 되는) 인센티브’고요. 그러려면 각 분야의 이해관계자가 잘 엮여 일종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결국 저희 입장에선 경쟁력 있는 파트너를 어떻게 소싱(sourcing)하느냐, 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운 과제예요.”

이와 관련, 정 대표는 비교적 확고한 사업 철학을 갖고 있다. ‘매사 길게 보고, 비전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운영해가야 한다’는 것. 그 중심엔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 있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은 회사 밖에서 작은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부대끼며 동고동락해야 하는 경우가 잦죠. 그런 만큼 생사를 함께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리하고 활기찬 왈라비처럼 뛰겠습니다”

워크온은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삼성전자 내에서 “사업화 가능성 높은 우수 과제”로 평가 받으며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스핀오프 과제로 채택됐다. 스왈라비란 사명으로 독립한 후에도 꾸준히 사업 모델 개선을 거듭했고, 마침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할 채비를 마쳤다.

크기변환_05 ▲스왈라비는 삼성전자를 뜻하는 머리글자 ‘S’에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긴 ‘왈라비(wallaby)’를 더해 만들었다. 왈라비는 온화하고 영리하며 평소엔 게으른 듯하지만 이동할 땐 씩씩하게 뛰는 모습이 특징적인 동물. 개발할 땐 연구실에 틀어박혀 꼼짝 않다가 완결된 사업 아이템을 대외적으로 알릴 땐 누구보다 활기를 띠는 IT 스타트업의 특성을 닮은 사명이다

2016년 4월 현재 스왈라비의 최대 파트너 중 하나는 서울시다. “일단 ‘시민의 건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울시와 우린 비전을 함께합니다. 당장 25개 자치구 중 자체적으로 걷기 대회나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는 곳이 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죠. 서울시를 포함한 초기 파트너들과 계속해서 신뢰를 쌓아가고 비전이 공유되도록 설득해가며 차차 파트너십의 범위를 넓혀갈 생각입니다.”(정해권)

현 단계에서 스왈라비의 1차적 목표는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파트너십을 체결, 사업을 안정화하는 것이다. 이후 빅데이터를 활용한 위치 기반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더 나아가 지역 기반의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통해 소상공인의 가상 고객을 실제 구매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걷기를 통해 보다 많은 현대인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책임지겠다”는 이 자신만만한 스타트업의 미래, 이쯤 되면 기대해봄 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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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앱 생활,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모바일 검색 시간 단축 앱 블루렌즈∙핑고 만든 ‘블루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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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스마트한 앱 생활,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모바일 검색 시간 단축 앱 블루렌즈∙핑고 만든 ‘블루핵’

‘블루핵(BlueHack)’ 사무실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오피스텔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반가운 손님이라도 기다리듯 활짝 열려 있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정면 벽에 걸려 있는 두 개의 시계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오후 3시 40분을, 다른 하나는 오후 11시 40분을 각각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 실리콘밸리의 현재 시각을 나타낸다”는 누군가의 설명에서 “우리의 경쟁 상대는 한국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소재 기업을 포함한) 전 세계에 있다”는 패기가 느껴졌다.

 

‘스마트폰 검색 분야의 지식그래프’가 나타났다!

아닌 게 아니라 삼성전자 출신 스핀오프 스타트업 블루핵은 ‘시간’ 개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주력 아이템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블루렌즈(BlueLens)’와 ‘핑고(Fingo)’부터가 그렇다. 두 제품 모두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앱을 쓸 수 있도록 돕는’ 앱이기 때문. 스마트폰을 한시도 놓지 못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선 시간 절약 측면에서 상당히 효과적일 수 있는 아이템이다.

“네이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단어가 뭔지 아세요? 정답은 ‘다음’ ‘구글’ ‘유튜브’ 같은 인터넷 포털명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특정 검색어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할 때 일단 가장 유명한 포털 A에 접속, 일단 ‘사이트 검색’을 실시합니다. A사이트로 가서 B사이트를 검색한 후 그제서야 B사이트로 넘어가는 식이죠. 자신이 정말 궁금해하는 키워드 검색 작업은 B사이트로 이동한 후 이뤄집니다. 잘 살펴보면 사이사이 생략 가능한 단계가 충분히 존재해요. 스마트폰에서 검색 기능을 자주 쓰는 사용자라면 그 시간만 아껴도 훨씬 효율적일 겁니다.”

윤영복 블루핵 대표에 따르면 블루렌즈는 이 같은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된 앱이다. 블루렌즈를 다운로드하면 뭔가를 검색하고자 할 때 앱 첫 화면에 키워드만 넣으면 된다. 블루렌즈 초기화면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10개 사이트가 노출된다. 사용자가 이중 자신이 검색하고 싶은 사이트를 선택한 후 검색어를 입력하면 곧바로 해당 사이트에서 검색 결과가 떠오른다. 네이버를 택하면 네이버에서, 유튜브를 택하면 유튜브에서, 지도를 택하면 지도에서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키워드가 검색돼 나오는 식이다.

블루렌즈가 제공하는 검색 기능은 비단 ‘웹(web)’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 스마트폰에 보유된 앱·연락처·바로가기 검색도 가능하다. 사용법도 전혀 복잡하지 않다. 초기화면 내 입력창에 ‘○○은행’이나 ‘△△톡’ 같은 특정 상호(브랜드)명, 사람 이름 등의 키워드만 입력하면 된다. 스마트폰 보급이 대중화되면서 스마트폰 사용자 1인당 보유 앱 개수가 대폭 증가한 걸 염두에 둔 상품인 셈이다.

2016년 4월 현재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가 단말기에 다운로드한 앱은 대략 70개에서 100개 사이다. 그 수가 너무 많다보니 ‘당장 필요한 앱’을 찾으려면 한참 헤매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탑재된 검색 기능을 사용하면 그나마 쉽지만 이 경우에도 한글∙영문 표기와 띄어쓰기 등을 정확히 반영해야 제대로 검색된다.

스마트폰 화면에 블루렌즈 앱을 실행시킨 모습. 앱 명칭은 ‘세상을 투명하게 내다보는 창’이란 뜻이다. 윤영복 대표는 “내가 삼성 출신이라 그런지 파란색(blue)을 워낙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블루렌즈 앱을 실행시킨 모습. 앱 명칭은 ‘세상을 투명하게 내다보는 창’이란 뜻이다. 윤영복 대표는 “내가 삼성 출신이라 그런지 파란색(blue)을 워낙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반면, 블루렌즈에선 일반적인 키워드만 넣고 검색해도 미리 설정해둔 데이터베이스 분류에 따라 관련 앱이 줄줄이 검색돼 나온다. ‘인터넷으로 연결돼 외부에서 끌어오는’ 정보와 ‘스마트폰 단말기 내부에 저장된’ 정보를 동시에 검색, 사용자의 눈앞에 펼쳐 보인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스마트폰 내∙외부를 아우르는, 진정한 ‘통합 검색’이 가능한 것이다. 쉽게 말해 ‘정보 검색의 대명사’로 불리는 구글 ‘지식그래프'[1]의 개념을 스마트폰 안으로 옮겨온 셈이다.

(10의 18제곱인) 엑사바이트를 넘어 (10의 21제곱인) 제타바이트 규모로 온라인 정보가 소통되는 시대, 정보가 너무 많아지며 정작 필요한 정보는 찾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기 십상이다. 지식그래프가 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검색자의 경험과 대중이 많이 찾는 정보 관련 자료를 통합, ‘사용자 맞춤형 지식’을 제공하는 알고리즘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블루렌즈는 ‘스마트폰 검색 분야의 지식그래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블루핵의 또 다른 상품인 핑고는 일종의 ‘즐겨찾기’다. 앱을 포함, 사용자가 자주 쓰는 스마트폰 기능을 초기화면 속 팔레트에 숨겨둘 수 있도록 한 게 골자.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필요 시 왼쪽(혹은 오른쪽) 화면 속 반투명한 원을 손가락으로 튕겨내면 화면 위로 사용자가 담아둔 기능이 좍, 펼쳐진다.

스페셜리포트블루핵2▲핑고 앱을 실행시킨 모습. 핑고는 ‘손가락(finger)으로 화면을 가볍게 튕기면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으로 곧장 이동할(go)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스마트폰 쓰며 허비되는 시간, 차곡차곡 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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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도널드 웨트모어(Donald Wetmore) 미국 생산성연구소(Productivity Institute) 박사의 계산을 정리한 것이다. 블루핵 사무실 한 편을 나란히 장식한 포스트잇 속 글귀 (“작은 행동이 큰 생각을 만든다”)를 보다 문득 웨트모어 박사의 주장이 떠올랐다.

블루렌즈와 핑고는 ‘티끌 모아 태산’이란 옛 속담의 지혜를 21세기 한복판으로 끌어왔다. 두 앱 모두 몇 초에서 몇 분까지의 짧은 시간을 절약해준다. 하지만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자 취미인 사람들에게 이 시간의 총합은 결코 만만찮다.

물론 “촌각을 다퉈가며 빡빡하게 살자”는 게 블루핵의 기업 철학은 아니다. 실제로 접한 블루핵 사무실은 윤영복 대표의 넉넉한 미소 덕분인지, 곳곳에 놓인 간식거리 덕분인지 적당히 여유롭게 느껴졌다. 세상 편한 자세로 의자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인터뷰에 응하는 윤 대표의 태도도 그런 첫인상 형성에 단단히 한몫했다.

윤영복 블루핵 대표는 ‘긍정왕’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시종일관 싱글벙글 웃으며 “이 사업은 당연히 잘될 거고 성공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윤영복 블루핵 대표는 ‘긍정왕’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시종일관 싱글벙글 웃으며 “이 사업은 당연히 잘될 거고 성공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핑고를 처음 만든 건 지난 2013년이었어요. 당시 제 스마트폰은 갤럭시 S3였는데 화면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데이터도 한 손으로 다루기엔 너무 방대해 보이더라고요. 사실 그중 늘 쓰는 건 몇 개 되지도 않는데 말이죠. ‘화면 한쪽에 자주 쓰는 기능을 아주 작은 아이콘 형태로 만들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팝업 형태로 튀어 오르게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알고리즘은 2012년 말부터 고민했고 이듬해엔 혼자 포토샵 기능을 익혀가며 아이콘을 조금씩 다듬었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이내 흥미를 갖더군요. ‘함께 해보자’는 이도 하나둘 생겨났고요.”

 

앱과 앱 사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다리’를 놓다

일반적으로 ‘해커톤(hackathon)’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프로젝트 디자이너 등 분야별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개발자들이 협력해 기량을 겨루는 행사를 뜻한다. 삼성전자도 자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연 2회 해커톤을 개최한다. 이름 하여 ‘블루핵 해커톤’이다. 지난 2012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2014년부터 그 규모가 ‘1박 2일 그룹 행사’로 확대됐다.

스페셜리포트블루핵6 ▲지난 2014년 7월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블루핵 해커톤에 참여한 삼성전자 개발자가 밤새 구현한 프로토타입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하고 있다

사내 해커톤 명칭과 윤영복 대표가 이끄는 스타트업 이름이 같은 건 우연이 아니다. 윤 대표 자신이 블루핵 해커톤 초기 멤버로 ‘작명 과정’에 관여했기 때문. “무선사업부에 근무하다 2014년 소프트웨어센터로 부서를 옮긴 후 기획 업무를 많이 했어요. ‘언젠가 홀로 서게 될 텐데 기술 측면만 알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회 명칭도 초기 멤버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던 중 떠올렸죠. 삼성을 상징하는 색 ‘블루’를 붙이고 ‘블루를 해킹할 수 있는 기술력을 키우자’는 취지에서요.”(웃음)

2012년 제2회 블루핵 해커톤에서 1등을 차지한 윤 대표는 이 즈음부터 창업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일단 사내 크리에이티브랩(Creative-Lab, 이하 ‘C랩’)에서 출발했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스핀오프 대상으로 선정, 독립했다. 당초 ‘메인 아이템’은 핑고였다.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깔린 무수한 앱 중 자주 쓰는 몇 가지를 해당 앱 실행 없이 사용한다?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해 보이는 서비스 같지만 사실 여기엔 모바일 앱 간 ‘딥링크(deep link)’ 기술이 숨어 있다. 딥링크는 특정 웹사이트 내에서 특정 콘텐츠로 곧장 연결해주는 기능을 일컫는 용어. 웹상에선 이미 구현돼 사용 중인 기술이어서 그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핑고의 경쟁력은 이를 스마트폰에 채택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신개념 모바일 소프트웨어 2종(種)을 들고 세상 앞에 선 블루핵 구성원들. (왼쪽부터)이선혜∙김성환∙김희중 팀원, 윤영복 대표, 이건우∙신승영 팀원 ▲신개념 모바일 소프트웨어 2종(種)을 들고 세상 앞에 선 블루핵 구성원들. (왼쪽부터)이선혜∙김성환∙김희중 팀원, 윤영복 대표, 이건우∙신승영 팀원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대체 그게 무슨 기능이지?’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https://news.samsung.com/kr/’은 삼성전자 뉴스룸 메인 화면의 링크다. 반면, ‘https://news.samsung.com/kr/%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ec%86%8c%ed%94%84%ed%8a%b8%ec%9b%a8%ec%96%b4-%ec%84%b8%ec%83%81%ec%9d%84-%eb%b0%94%ea%be%b8%eb%8b%a4_%e2%91%a0-%ea%b2%80%ec%83%89%ec%8b%9c’는 삼성전자 뉴스룸 내 ‘스페셜 리포트’, 그중에서도 지식그래프를 다룬 회차 포스트로 연결해주는 딥링크다. 모바일 앱은 대개 부여된 권한이 명확하고 한정적이어서 다른 앱엔 관여할 수 없는 구조로 설계된다. 초기 모바일 앱에서 딥링크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구글에서 최초로 ‘모바일 앱 사이에서 다른 앱의 프로토콜을 불러올 수 있는’ 기능이 상용화됐다. 이후 앱 속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한 기술은 빠르게 개발되고 있다. 이 속도로 계속 간다면 머지않아 모바일 환경에서도 앱 단위로 즐기던 콘텐츠 일체를 단말기 안에서 통합적으로 오가며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통합 검색 창을 통해 기기와 연결된 모든 링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핑고에 적용된 딥링크 기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태다. 앱 내 콘텐츠를 단순히 불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앱 내 특정 기능을 꺼내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 원격 절차 호출, 즉 RPC(Remote Procedure Call)를 이용해 앱과 앱 사이에 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앱과 앱 간 경계도 완전히 허물어질 전망이다.

 

“현대인에게 여유와 지혜 선사하는 기업 될 터”

세상 모든 정보를 작은 스마트폰 하나로 좌우할 수 있는 세상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술 혁신’이며 ‘생활 혁명’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종 블루렌즈나 핑고처럼 작은 서비스에 열광한다. 이유가 뭘까?

너무 바빠 잠깐의 시간이라도 아껴야 하는 사람,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린 되도록 불필요한 시간을 쓰지 않으려 한다. 불편한 방식으로 일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있다. 요컨대 조금씩 절약한 시간도 한데 모으면 제법 많은 시간이 되고, 그건 (활용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분명 자기계발에 유용한 토양으로 쓰일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최고 석학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생각을 즐길 여유가 있다면 우린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지혜를 갖게 될 것이다.”

블루핵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과제를 접하는 내내 그런 지혜의 아우라 같은 게 느껴졌다. ‘삼성을 해킹한다’는 발칙한 발상 아래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채 모인 구성원들, 그리고 이제껏 만나본 그 어떤 스타트업 대표보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었던 대표…. 블루렌즈와 핑고는 이들이 힘을 합쳐 빚어낸, 작지만 큰 성과였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 달라”는 요청에 멋쩍게 웃고 있는 블루핵 멤버들. 윤영복 대표는 “이 친구들 아니었으면 스타트업 만들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 달라”는 요청에 멋쩍게 웃고 있는 블루핵 멤버들. 윤영복 대표는 “이 친구들 아니었으면 스타트업 만들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루렌즈핑고, 여러분도 이용해보실 수 있습니다(단, 핑고는 오픈 베타 버전)

 


“맞춤형 전문 진료, 누구나 자유롭게 누리는 세상 머지않았죠” 원격 질병관리 서비스 개발하는 E2E 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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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맞춤형 전문 진료, 누구나 자유롭게 누리는 세상 머지않았죠” 원격 질병관리 서비스 개발하는 E2E 헬스

“책상 앞에 앉아 세상을 보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A desk is a dangerous place from which to view the world).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영국 스파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John le Carré)가 남긴 얘기죠. 사실이 그래요. 진짜 중요한 정보는 결코 구글링으로 찾아지지 않습니다. 실체에 접근하려면 무조건 현장에서 뛰어야 해요. ‘앉아서 방향을 찾을 순 없다, 달리자!’ 저희가 삼성전자에서 독립하며 품은 일종의 만트라(mantra, 기도나 명상을 할 때 외는 주문)였어요.”

지난달 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E2E 헬스’ 사무실을 찾았을 때 오정택 태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 건 추가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해외 로밍 서비스 연결음 때문이었다. 오 대표는 ‘고객 관리’ 목적으로 한 달에 한두 번은 미국에 간다. 고객과의 지속적 스킨십을 통해 신뢰관계를 형성해가는 그의 업무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한 E2E 헬스 임직원들. 넓지 않은 곳이지만 면적당 효율만큼은 ‘대한민국 1위’를 자부한다▲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한 E2E 헬스 임직원들. (왼쪽부터)원재관 실장, 오정택 대표, 백인걸 팀장, 이재철씨. 네 사람에 따르면 E2E 헬스 사무실은 그리 넓지 않지만 면적당 효율만큼은 ‘대한민국 1위’를 자부한다

 

합리적 비용으로 ‘온라인 주치의’ 둘 순 없을까?

E2E 헬스의 핵심 아이템은 ‘원격 질병관리 서비스 플랫폼’이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기록, 주치의가 그 결과를 바탕으로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골자. 의료진은 E2E 헬스가 구축해놓은 플랫폼 안에서 질병을 진단하거나 질환을 관리할 수도, 환자에게 일상적 건강 관리 요령을 제공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의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 ‘S헬스’가 사용자(환자) 주도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E2E 헬스는 전문 의료진과 환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페셜리포트E2E2▲E2E 헬스는 PC와 스마트폰 내에 일종의 생태계를 구축, 의료진과 환자가 직접 만나지 않고도 실현 가능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정택 대표에 따르면 E2E 헬스 서비스의 핵심은 ‘의사와 환자가 대면 접촉 과정 없이 모든 의사소통을 원격으로 진행한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선 개별성과 보편성 등 서로 다른 두 가치가 중시된다. 환자 개개인에게 맞춤형 의료 컨설팅이 이뤄지는(개별성)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보편성) 게 창업 목적이기 때문.

“원격진료 하면 흔히 ‘특별 계층을 위한 고급 맞춤형 서비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 반대입니다. 요즘 부자들은 시간과 돈을 충분히 들여 자신에게 맞는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죠. 하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자신에게 맞는 의료 서비스를 찾아볼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어요. 원격진료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낮은 가격으로 좋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술 발달이 ‘누구나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 구축을 가능케 하는 셈입니다.”

스페셜 리포트 E2E
▲E2E 헬스가 제안하는 건강관리 서비스 플랫폼 개념도. IT 기기를 활용, 환자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사에게 전달하면 의사는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컨설팅 메시지를 작성·전송하는 구조다

당뇨병·고혈압·위장병·뇌졸중·암…. 한때 ‘성인병’으로 불렸던 이들 질환은 요즘 비단 성인이 아닌 연령대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실제로 지난 2003년 대한내과학회는 이런 병을 ‘생활습관병’이라고 명명하며 “평소 생활 습관에 따라 걸릴 수도, 나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오정택 대표는 “몸에 안 좋은 생활 습관을 바로잡기 위한 자극이 적절히 주어진다면 건강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E2E 헬스 플랫폼을 활용하면 의사가 자기 환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수시로 점검하며 컨설팅 메시지를 보내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공략 시장은 ‘법적 규제서 자유로운’ 미국

삼성전자 크리에이티브랩(Creative Lab, 이하 ‘C랩’) 과제로 출발, 지난해 11월 스핀오프 절차를 거쳐 세상 밖으로 나온 E2E 헬스의 주요 무대는 미국이다. 한국인 넷이 회사 구성원의 전부인 소규모 스타트업, 게다가 공동 창업자 세 명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글로벌 기업에서 독립하긴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나라다. 이래저래 E2E 헬스에 미국 시장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만큼이나 무모한, 난공불락의 영역이다.

메디칼01 ▲E2E 헬스는 창업 초기부터 한국보다 전자의료 시장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미국을 공략, 사업을 펼치고 있다

E2E 헬스가 미국을 첫 번째 공략 대상 국가로 삼은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E2E 헬스 서비스 플랫폼은 클라우드(cloud)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한국은 현행법상 의료 정보의 클라우드 공유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전자의료 시장이 한국에 비해 활성화된 미국과의 차이점이다. 실제로 미국은 의료용 클라우드에 대한 법적 제약이 없을 뿐 아니라 원격진료의 수요도 높다. 오정택 대표는 “사업하는 입장에서 국내 의료용 클라우드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해제되기만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어서 자연스레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준비 중인 첫 번째 서비스는 전담 주치의가 맡는 게 일반적인 ‘1차 진료(primary care)’ 영역이다.

“제가 삼성전자를 퇴사한 날짜가 지난해 10월 31일이었습니다. 그날 저희 주요 고객 중 하나인 미국의 한 임상병원에서 행사가 있어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날짜가 딱 11월 1일로 변하더군요. 그 순간, 처음으로 ‘아! 내가 무모하게 일을 저질렀구나’ 싶었습니다. ‘앞으로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한참 걱정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시작했잖아, 고민할 시간에 방법을 찾는 거야. 그냥 가자!’

오정택 대표는 삼성전자 근무 당시 DMC(Digital Media & Communication)연구소에 몸담았다. 창업 아이템 역시 연구소 시절, 과제 형태로 병원과 협업하던 내용을 발전시킨 것. 매해 성장세를 거듭하는 전자의료 서비스 시장에 내놓을 만한 품목이기도 했다.

오 대표는 결국 지난해 4월 아이디어를 C랩 과제로 들고 나온 후 7개월 만에 스핀오프를 결정했다. 그는 "나 같은 삼성전자 출신 서비스 사업자가 시장에 먼저 진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가 삼성전자의 우수한 하드웨어 경쟁력과 결합하면 한층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독립 5개월째… “엄혹한 현실 차근차근 헤쳐갈 것”

창업은 익숙한 환경에서 시작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것 하나 익숙지 않은 외국에서 출발하는 건 더더욱 간단찮은 선택이었을 터. 오정택 대표는 말할 것도 없고 공동창업자인 원재관 실장과 백인걸 팀장도 막막하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세 사람은 2주가량 치열하게 고민한 후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삼성전자에서 일할 때도 미래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어느 순간, 제 눈앞에 두 가지 ‘옵션’이 놓였죠. 창업 후 사업가로 새롭게 출발할 것이냐, 회사에 계속 남아 그 다음 단계를 밟을 것이냐…. 정말 솔직히 말씀 드릴까요? 회사에 계속 남아 임원이 되는 것보다 창업에 제대로 도전해 과제를 성공시키는 게 확률적으로 나은 싸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무한경쟁’이 기본 생리인 스타트업 정글로 뛰어든 지 5개월째, 오정택 대표는 “시장의 엄혹한 현실을 매일 체감한다”고 말했다. 독립하기 전부터 현실적 가능성을 철저히 따졌지만 실제로 부딪친 현실 세계의 체감 온도는 상상 이상으로 싸늘했기 때문. “창업을 하고 나니 더 절박해졌습니다. 시장을 바라보는 방법, 생존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어요. 일단 대기업 울타리 안에 있을 때와 비교해 절 만나주는 시장 자체가 줄었습니다. 사업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막연했던 일의 장막이 걷히며 오히려 더 두려워지는 부분도 있어요. 결국 모두 저희가 극복해야 할 과제겠죠.”

▲E2E 헬스 구성원은 모두 네 명. 한 명 한 명이 ‘일당백’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정택 대표는 삼성전자 입사 이후 줄곧 웨어러블 의료 기기 한 분야 연구에 매진해온 ‘의료기기 알고리즘’ 전문가다.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는 원재관 실장은 국내 굴지의 포털 업체에서 삼성전자로 스카우트된 ‘백엔드(back-end)’ 전문가. 운영팀을 맡고 있는 백인걸 팀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 두루 능통하다. 창업 이후 새롭게 합류한 이재철씨는 유명 음악 서비스 기업 출신 프론트엔드(front-end) 엔지니어다▲E2E 헬스 임직원은 한 명 한 명이 ‘일당백’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정택 대표는 삼성전자 입사 이후 줄곧 웨어러블 의료 기기 한 분야 연구에 매진해온 ‘의료기기 알고리즘’ 전문가다.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는 원재관 실장은 국내 굴지의 포털 업체에서 삼성전자로 스카우트된 ‘백엔드(back-end)’ 전문가. 운영팀을 맡고 있는 백인걸 팀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에 두루 능통하다. 창업 이후 새롭게 합류한 이재철씨는 유명 음악 서비스 기업 출신 프론트엔드(front-end) 엔지니어다

요즘 오 대표를 비롯한 E2E 헬스 구성원은 ‘머릿속 계획이나 책상 앞 펜 놀림만으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실감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급변하는 시장과 제한된 자원 앞에서 자칫 무기력하게 도태되기 십상인 게 스타트업 시장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삼성전자 출신’답게 자신감과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았다.

“세상은 결국 계단인 것 같아요. 하나하나 올라야 위아래가 보이죠. 지금 시점에서 몇 년 뒤를 건너뛰어 내다봐야 그건 허상일 뿐이에요. 시선은 멀리 두되, 개발·마케팅·고객관리 등 현 단계에서 해야 하는 일에 우선 집중할 생각입니다. 성공 여부는 지금 따져봐야 소용없어요. 시장이란 계속 바뀌게 마련이고 성패를 좌우하는 건 결국 내부 참여자(actor)들일 테니까요. 소비자가 정말 필요로 하는 걸 만들어가면 저희 앞에 놓인 미래도 긍정적이지 않을까요?”

올가을, ‘스타트업 네이션’ 이스라엘의 매혹적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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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올가을, ‘스타트업 네이션’ 이스라엘의 매혹적 초대장

“아침은 뉴욕타임스 출판인과, 점심은 러시아의 인터넷 백만장자와 함께 먹으며 저녁엔 아이슬란드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밤엔 숀 파커 페이스북 초대 대표가 사는 술을 마실 수 있는 회의란 전 세계를 통틀어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기조 연설, 제임스 머독 20세기폭스사(社) 사장과 앤드루 메이슨 그루폰 창업자의 인터뷰, 더피(영국 웨일즈 출신 뮤지션)의 라이브까지 들을 수 있다면….”

 

#1. ‘디지털 혁신’ 겨냥한 지구촌 공동체 DLD

위 글의 필자는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를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로완 편집장이다. 그가 묘사하는 회의는 다름 아닌 DLD. ‘디지털과 라이프, 디자인(Digital, Life & Design)’을 뜻하는 이 단어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핫(hot)’한 회의 네트워크다.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둔 이 네트워크는 유럽 최대 미디어 그룹 부르다(Burda)의 중역 스테파니 체르니(Stephanie Czerny)와 유럽 제1의 인터넷 미디어 베르텔즈만(Bertelsmann) 부사장 마르셀 라이하르트(Marcel Reichart)가 지난 2005년 창립했다. 최대 후원자는 부르다 미디어 소유주 후베르트 부르다(Hubert Burda), 그리고 이스라엘 기업가 겸 투자자 요시 바르디(Yossi Vardi)다.

MUNICH/GERMANY - JANUARY 17: Steffi Czerny (DLD Media) welcomes the participants of the DLD16 (Digital-Life-Design) Conference at the HVB Forum on January 17, 2016 in Munich, Germany. DLD is a global network of innovation, digitization, science and culture, which connects business, creative and social leaders, opinion formers and influencers for crossover conversation and inspiration. (Photo: picture alliance / Jan Haas)/picture alliance ▲DLD는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둔 신개념 회의 네트워크다(사진 출처: 연합뉴스)

DLD의 본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디지털 혁신에 초점을 둔 지구촌 공동체’다. DLD 운영진은 디지털 문화에 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혁신을 통해 과학∙문화 네트워크를 창출한다”는 사명감으로 세계 각지에서 일하는 이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회의할 수 있도록 장(場)을 마련해준다. 2005년 뮌헨에서 열린 첫 모임 이후 뉴욕∙베이징∙샌프란시스코∙런던∙모스크바∙뉴델리∙리우데자네이루∙홍콩∙텔아비브∙뮌헨 등에서 회의가 열렸으며, 매년 800여 명의 엄선된 참가자가 초대돼왔다.

참가자는 대부분 “디지털 문화를 창의적으로 이끌어왔거나, 그럴 잠재력이 크다고 여겨지는” 국제사회 지도자와 디지털 문화 선도자들이다. 기업∙언론∙기술∙디자인∙정치∙사회∙예술 등 다방면에서 디지털 혁신 관련 활동을 펼쳐온 이들도 포함돼 있다. 그 밖에 학생과 과학자, 시민단체 활동가 중에서도 디지털 혁신 관련 잠재력을 입증한 이에겐 입장권이 주어진다.

본 회의는 매년 1월, 세계경제포럼(WEF) 개최 직전 사흘간 이어지며, 이때 라이브 스트리밍과 블로깅 서비스도 제공된다. 연사들은 주제별 모임에서 패널로 참석하거나 직접 강연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친다. 지정 연사가 아니라 해도 누구나 핵심적 혁신 패러다임을 통해 오늘날 시장과 사회, 생활양식 발전상에 대한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다.

텔아비브01▲ DLD 네트워크 조직과 행사 관계도

DLD 텔아비브는 DLD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매년 가을 이스라엘 텔아비브(Tel Aviv)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딱딱한 회의 형식이 아니라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진행돼온 게 특징이다. 주요 내용도 회의뿐 아니라 전시 부스 운영, 문화 공연 등 다양하다. 전 세계 정상급 기업 관계자와 디지털 미디어 분야 인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DLD 정상회담(summit)도 열린다.

 

#2. 올 9월, 이스라엘은 스타트업 축제 한마당!

“인구 710만, 고작 60년의 역사, 적들에 둘러싸인 환경, 건국 이래 끊임없이 지속되는 전쟁 상태, 천연자원 전혀 없음…. 이런 이스라엘이 어떻게 일본∙중국∙인도∙한국∙캐나다∙영국보다 더 많은 스타트업을 창출할 수 있었을까?”

미국 언론인 댄 세너(Dan Senor)와 솔 싱거(Saul Singer)가 공동 집필한 책 ‘스타트업 네이션(Startup Nation)’(2009)의 첫머리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이 책이 출간된 이래 ‘스타트업 네이션’은 이스라엘의 별명이 됐다.

높은 교육 수준과 근면성으로 다져진 우수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오늘날 이스라엘은 다른 기술 강대국보다 훨씬 많은 스타트업 업체를 육성하고 있다. 인구 수 기준으론 미국의 2배, 다른 EU 국가의 30배에 해당하는 벤처 캐피탈 투자를 유치하고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경제 수도’로 꼽히는 텔아비브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인재와 다국적 기업, 테크 스타트업들로 구성된 창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유럽을 선도하는 기술 허브’ ‘세계에서 창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 2위’ ‘샌프란시스코, 오스틴과 더불어 세계 3대 기술 창업 도시’…. 전 세계 미디어는 텔아비브를 이런 수사로 정의하고 있다.

DLD 네트워크의 최대 후원자인 이스라엘 사업가 요시 바르디와 그의 동료들은 딱딱한 회의 구조인 DLD에 생기를 불어넣고 더 많은 이를 디지털 혁신 과정에 끌어들이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DLD 텔아비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참석자는 4000명이 넘는다. 수백 개 규모의 스타트업과 벤처 캐피탈, 에인절 투자자(angel investor, 기술력은 있지만 창업 자금이 부족한 초기 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개인)와 유명 글로벌 기업이 한자리에 모여 한편으론 자신의 잠재력을 뽐내고, 다른 한편으론 적당한 투자처를 물색하는 자리다. 인텔∙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페이스북 등 주요 IT 기업 관계자를 아주 가까이서 만나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하이테크 허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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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DLD 텔아비브 페스티벌은 오는 9월 23일부터 1주일간 하타차나(Hatachana) 컴파운드에서 열린다. 1857년 완공된 하타차나 컴파운드는 1948년까지 기차역으로 쓰이다가 이후 집회장∙쇼핑센터 등 대중용 공간으로 리노베이션, 지난 2010년 재개관했다.

행사 내용은 모이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하다. 텔아비브 시장 등 현지 주요 인사의 환영 만찬으로 시작해 40여 개 주제별로 워크숍과 회의가 이어질 예정. 기간 중 아침 행사는 참석자들이 바닷가에 모여 수영을 하거나 행사장이 위치한 공원을 조깅하는 일정으로 시작된다. △도시별 대표가 모이는 정상회담 △삼성전자를 비롯, 구글·페이스북·IBM·아마존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의 사업 설명회 △프로그램 개발 해커톤 △텔아비브 스트리트 아트 투어 △IT 사업 관련 법률 상담회 △국가별 스타트업 이벤트 등 본 행사가 착착 진행되는 동안 다른 편에선 다양한 국가와 기업, 개인이 운영하는 전시 부스와 공연 등의 활동이 펼쳐진다.

 

#3. DLD 텔아비브의 ‘꽃’ 스타트 텔아비브로 가려면

스타트업 분야에서 성비(性比) 불균형은 오랫동안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왔다. 올 초 국내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플래텀이 발간한 ‘2015 스타트업 투자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이뤄진 투자 유치 233건(210개 기업) 중 여성 창업 기업이 주도한 사례는 12건에 불과했다. 이들 업체의 평균 투자액은 전체 유치 금액의 20%(9.1억 원) 수준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시선을 해외로 돌려도 다르지 않다. ‘스타트업 선진국’ 미국에서조차 여성 창업 비율은 35%를 넘지 않는다(지난해 실리콘밸리 내 여성 창업 비율은 24% 선이다).

스타트 텔아비브(Start Tel Aviv)는 이스라엘 외교부와 ‘텔아비브 글로벌’이 공동 개최하는 창업 경연대회다. DLD 텔아비브 행사의 ‘꽃’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행사엔 전 세계 21개국 유망 스타트업이 참가한다. 이에 앞서 세계 각국에선 그해 스타트 텔아비브에서 경연할 스타트업 선발 행사가 봄부터 차례로 열린다. 국가별 선발 행사는 현지 파트너와 이스라엘 대사관이 주관하는데 올해 한국 대회의 경우, 삼성전자와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가 현지 파트너로 선정됐다. 창조경제 보육 업체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일종의 지원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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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참가 대상은 ‘20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으로 한정됐다. 그간 IT 분야에서의 활약이 미진했던 여성 인력의 해당 부문 진출을 장려하려는 의도다. 한국대회는 지난 9일 이미 시작됐다. 약 8주에 걸쳐 △설명회(5월 10일) △후보 업체 추천(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6월 3일 마감) △본선 진출 팀 선정(6개, 6월 13일) △최종 선발 팀 확정(7월 5일) 등 숨가쁜 일정이 이어질 예정이다.

7월 5일 열리는 본선은 영어 발표와 질의∙응답(각 15분) 형태로 진행되며 주한 이스라엘 대사와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등 다섯 명의 심사를 거치게 된다. 최종 우승 1개 팀엔 미래부장관상과 상금, DLD 텔아비브 공식 초청 권한이 주어질 예정. 행사 참가에 필요한 여비와 체제비는 전액 DLD 텔아비브 측이 지원한다. 준우승 팀(2개)엔 주한 이스라엘 대사상과 상금이, 우수 팀(2개)엔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협의회장상과 상금이 각각 주어진다.

‘스타트업 네이션’ 이스라엘에서 닷새간 세계 최고 수준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 현지 창업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각종 강의와 워크숍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 바로 당신 눈앞에 있다. 지원 자격 등 보다 자세한 정보는 2016 스타트 텔아비브 한국대회’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거의 모든 것의 인터랙션’ 시대, 최후의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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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인터랙션’ 시대, 최후의 승자는?

지난 2012년 1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 에이브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 앨런 길버트(Alan Gilbert)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의 지휘 아래 말러(Mahler) 교향곡 9번이 연주되고 있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듯 장중하면서도 비감하게 잦아드는 마지막 부분. 청중은 숨죽인 채 연주에 몰입하고 있었다.

 

클래식 애호가, 뉴욕필 공연서 ‘민폐 관객’ 되다

바로 그때, 별안간 휴대전화 전자 알람(alarm)음이 울렸다. “딩동 따당당 따당당!” 빠르면서도 경망스러운, 누가 들어도 스마트폰 알람이란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그 소린 반복되며 점점 커졌다. 명곡의 연주를 마무리 짓기 위해 이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지휘를 계속하던 길버트는 결국 연주를 중단시켰다.

여기저기서 성난 청중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 보며 스마트폰을 켜두면 어떡해요?” “누구 겁니까? 당장 끄세요!” 말썽을 일으킨 기계음의 진원지는 링컨센터의 오랜 후원자 중 한 명인 70대 남성이었다. 그는 모든 이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후에도 한참 지나서야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점점 더 시끄러워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공연일 하루 전 구입한 제품이었다.

신사는 연주 시작 직전 분명히 기기를 무음(無音) 상태로 전환시켰다. 아니, 전환시켜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다만 그가 한 가지 놓친 게 있었다. 해당 모델에서의 ‘무음’은 전화 착신음에 적용될 뿐 알람음엔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건은 공연 이튿날 뉴욕타임스를 비롯, 미국 주요 일간지에 앞다퉈 소개됐다. 그에 관한 인터넷 댓글도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대부분은 ‘무음 전환 시 알람음도 함께 음 소거 처리가 돼야 하는지 여부’에 관한 갑론을박(甲論乙駁)이었다.

 

클릭·터치·스크롤… 이 모든 게 ‘마이크로인터랙션’

이 해프닝은 댄 새퍼(Dan Saffer)의 2014년 저서 ‘마이크로인터랙션(Microinteraction)’ 서두에도 등장한다. 가정용 로봇 제조 기업 ‘메이필드 로봇(Mayfield Robotics)’ 부사장인 동시에 저술가와 디자이너로도 활동 중인 그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마이크로인터랙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디자이너(혹은 소비자) 입장에서 마이크로인터랙션의 적절한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동명의 키워드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새퍼가 언급한 마이크로인터랙션은 쉽게 말해 ‘특정 기기(device)를 쓸 때 사용자가 실제로 행하는 움직임 일체와 관련된 요소’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 △설정(setting)을 바꿀 때 △서로 다른 기기 간 데이터를 동기화할 때 △알람을 맞추거나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로그인(로그아웃)할 때 △‘좋아요(like)’ 따위의 상태 메시지를 넣을 때 사용자는 해당 기기와의 마이크로인터랙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인터랙션은 비단 스마트폰뿐 아니라 어느 기기에든 존재한다. 크고 작은 기계(장치)와 PC, 심지어 주거∙업무 환경에도 숨어있다. PC용 음악파일 재생장치 ‘곰플레이어’를 예로 들어보자. 바탕화면에서 마우스 왼쪽을 활용, ‘곰플레이어’ 아이콘을 클릭하면 곰플레이어 실행 화면이 떠오른다<아래 사진 참조>. 곰플레이어 아이콘을 선택, 클릭하는 사용자의 행동에 PC가 반응하는 과정 일체가 바로 마이크로인터랙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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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례에서 사용자와 컴퓨터 간 상호작용은 말 그대로 그 규모가 지극히 작다(micro). 각종 IT 기기가 범람하는 요즘, 우린 도처에서 시시각각 다양한 용도로 마이크로인터랙션과 마주한다.

스페셜리포트IoT포에버_02 ▲갤럭시 S7 엣지 바탕화면 하단의 연한 파란색 선을 위로 스크롤해 올리면(왼쪽 사진) 사용자가 미리 등록해둔 신용카드 이미지가 떠오르며 ‘삼성 페이’ 모드로 전환된다. 이 역시 사용자와 스마트폰 간 마이크로인터랙션의 한 예다

오늘날 사용자는 일상에서 일일이 세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마이크로인터랙션을 경험하고 있다. 때론 너무 미세해서, 때론 너무 자주 접해서 대부분 그 실체를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말러 교향곡 해프닝’에서 알 수 있듯 마이크로인터랙션은 자칫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마이크로인터랙션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자타공인 클래식 애호가’ 노(老)신사가 새해 벽두부터 온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처럼.

 

사용자 “어려운 건 싫다… 무조건 직관적으로, 쉽게!”

기기 제작자가 마이크로인터랙션 영역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으면 해당 기기 사용자는 쉬 짜증을 내고 싫증을 느끼게 마련이다. 마이크로인터랙션은 기기의 기능과 특성을 사용자와 연결 짓는 ‘실행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댄 새퍼는 “당신이 ‘사랑하는’ 제품과 당신이 ‘하는 수 없이 쓰는’ 제품의 차이는 대부분 각 제품이 지닌 마이크로인터랙션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새퍼에 따르면 마이크로인터랙션은 △트리거(trigger) △룰(rule) △피드백(feedback) △모드와 루프(mode & loop) 등 크게 네 요소로 구성된다. 트리거는 마이크로인터랙션이 시작될 수 있도록 방아쇠(trigger)를 당겨주는 단계다. 컴퓨터 메뉴 바(bar)와 스마트폰 화면의 수많은 아이콘, 하나의 아이콘을 클릭하면 나타나는 또 다른 아이콘(들)…. 이런 게 전부 트리거다.

컴퓨터가 상용화되고 스마트폰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이래 무수한 디자이너가 ‘최적의 트리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왔다. ‘어떻게 해야 사용자 이해를 도우면서도 기기를 오류 없이 작동시킬 수 있을까?’ 그들이 찾아낸 방법 중 가장 쉬운 건 ‘그림으로 동작 표시하기’였다. △쓸모없는 파일을 버릴 수 있는 공간은 ‘휴지통’ △그림 작업용 소프트웨어는 ‘(물감 묻은) 화판과 붓’ △스마트폰 통화 관련 기능은 ‘수화기’ △사진 촬영 기능은 ‘카메라’로 각각 형상화하는 식이다<아래 사진 참조>. 이 같은 아이콘은 점차 더 세련되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모양으로 가공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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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가 아이콘 모양만 보고 어떤 기능인지 알아차린 후 해당 트리거를 클릭(혹은 터치)하면 그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사용자의 동작 개시 이후 기기 내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규정하는 이 과정이 바로 룰이다. 피드백은 ‘룰에 따라 소프트웨어가 작동돼 사용자의 눈에 보여지는 단계’를, 모드와 루프는 ‘보다 큰 틀에서 이 모든 과정이 어떤 포맷과 시스템에서 작동될지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새 단계로 나아가게 해주는 단계’를 각각 일컫는다.

마이크로인터랙션은 그 특성상 꽤 미묘하게 작동돼 사용자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 대부분은 기기 구입 시 사양, 일명 ‘스펙’을 꼼꼼히 따지는 데 그칠 뿐 마이크로인터랙션까지 챙기진 않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교보문고 홈페이지 초기화면 검색 창에서 ‘스테디’란 글자를 입력하면 교보문고 측이 제공하는 스테디셀러 안내 화면으로 전환된다<아래 사진 참조>. 이 역시 마이크로인터랙션이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얼마나 많고 복잡한 알고리즘이 맞물려 돌아가는지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저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결과물이 쉽게 나타나는’ 인터랙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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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와 버튼, 서피스… 그 다음 인터랙션 매개 수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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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도구를 만들 줄 아는 동물이다. 호미나 창(槍)처럼 초기 인간이 만들었던 도구는 인간이 일정한 힘을 쓰면 그만큼의 일을 해주는 형태로 작동했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도구 간 ‘마이크로인터랙션’ 개념은 없다시피 했다.

인간이 했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신 해주기 시작한 건 산업혁명기, 즉 ‘기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목화솜을 따서 넣으면 한편에선 씨앗을 빼주고 다른 한편에선 실을 뽑아내는 기계, 매끈한 건반을 누르는 동작만으로 팽팽한 철사(鐵絲)를 힘껏 내리쳐 강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피아노…. 이런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지렛대(lever)였다. 작은 힘을 큰 힘으로 바꿔주는 지렛대야말로 인간과 도구 간 마이크로인터랙션을 증폭시켜주는 매체였던 셈이다.

20세기 들어 전기가 일상에 응용되면서 인간의 작은 몸짓은 한층 큰 힘으로 증폭됐다. 1910년대 초, 손가락 끝으로 딸깍 올리기만 하면 온 방이 환해지는 스위치(switch)의 등장은 마이크로인터랙션의 본격적 대두를 예고했다. 이때 인간과 기계 간 마이크로인터랙션을 매개하는 건 ‘버튼(button)’이었다. 이어 공간 간격을 극복하게 해주는 리모컨(1956), 보다 정교한 마이크로인터랙션을 가능케 하는 컴퓨터 마우스(1963)가 각각 개발됐다.

스페셜리포트06(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푸시클릭터치 블로그)

 

눈앞에 닥친 ‘무한대 자유’, 능히 감당할 수 있는가!

GE디지털 디자이너이면서 저술가로도 활동 중인 빌 드루시(Bill DeRouchey)는 프레젠테이션 공유 커뮤니티 ‘슬라이드셰어(SlideShare)’에 올린 ‘버튼의 역사(History of the Button)’란 글에서 “20세기 물질 문명을 이끌어온 인터랙션 매체 ‘버튼’이 21세기로 접어들며 ‘서피스(surface)’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세대 인터랙션의 중심’으로 꼽히는 서피스 인터랙션, 그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인터랙션을 ‘트리거’ 하는 ‘버튼’은 이제 경계도, 형태도, 언어도, 장식도 벗어던지고 있다. 마침내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상호작용(interaction) 하는’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미래 IT 산업계를 이끌 지도자는 바로 그 자유를 통제(control)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유방암 조기 진단율, 빅데이터로 높인다?! 삼성메디슨 ‘S디텍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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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0524_스폐셜리포트_도비라

“실수하는 건 인간의 속성이다. 용서하는 건 신(神)의 일이다.” 18세기 영국 풍자시의 대가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한 이 말은 지금까지도 영어문화권에서 자주 인용되는 격언이다. 지난 1999년 미국 국립의료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Medicine)의 전신인 의학연구소(Institute of Medicine)는 이 문장을 보고서 제목[1]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실수하는 게 인간 속성이라지만… 진단 오류의 한계 허용치는?

이 보고서는 (상당히 관용적인 제목의 인상과 달리) 온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릴 만한 팩트(fact)를 담고 있었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죽음의 2%, 많게는 4%가 의료사고에 의한 것이다, 그 수는 매년 10만 명에 육박한다(하략)” 이 보고서는 잘못된 의료 시술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여파도 컸다. 당장 그해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보고서에 제기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관련 법률[2]  통과안에 서명했다.

0524_스페셜리포트_01 ▲지난해 미국 국립의료아카데미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진단 오류 사고는 연간 1200만 건에 이른다

지난해 미국 국립의료아카데미는 1999년 보고서와 연계되는, 말하자면 ‘증보판’을 발간했다. ‘건강관리에서의 진단 문제 개선(Improving Diagnosis in Health Care)’으로 명명된 이 보고서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의사의 오진(誤診)이 야기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본문엔 “오늘날 미국에선 매년 1200만 건의 진단 오류 사고가 발생하며, 외래 진료를 받는 성인의 5% 이상이 진단 오류의 피해를 겪는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이 같은) 진단 오류는 병원에서 발생하는 환자 사망 사고 원인의 평균 10%, 심한 경우 17%를 차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실수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란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용납되지 않는 실수가 있다. 인간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분야도 그중 하나다. 의료 문제, 특히 진단의 정확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그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과학기술로 진단 오차 범위를 줄이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시도돼왔다. 19세기 후반 청진기와 엑스레이(X-ray)가 발명된 이래 무수한 임상 경험과 실험 연구를 거쳐 다양한 검사 방법이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하지만 미국 국립의료아카데미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엔 이 같은 검사법의 남용에 따른 문제가 하나둘 제기되고 있다. 카를로스 마틴스(Carlos Martins) 포르투갈 포르토대(University of Porto) 의과대학 교수는 최근 의학 전문 웹사이트 ‘브리티시메디컬저널(BMJ)’ 기고문을 통해 “과도하고 부적절한 의료 검사야말로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진단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면서도 의료 검사 남용에 따르는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묘안, 없을까?

 

딥러닝, ‘초음파 활용 유방 병변 진단’ 분야서 세계 최초 적용

IMG_5809 ▲삼성메디슨이 개발한 ‘S디텍트’(위 사진)는 초음파 활용 유방 진단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딥러닝 알고리즘’이 적용된 기기다

삼성전자 계열사인 삼성메디슨(대표 전동수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사장)은 “영상의학과용 초음파 진단기기 RS80A에 ‘딥러닝(Deep learning)’[3]기술을 접목한 ‘S디텍트(S-Detect)’로 기존 제품의 성능을 대폭 개선했다”고 밝혔다. 초음파를 활용한 유방 병변(病變) 진단 분야에서 딥러닝 알고리즘이 적용된 사례는 이번이 세계 최초다.

딥러닝을 쉽게 풀이하면 ‘기계가 인간 두뇌처럼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학습시키는 기법’이다. 사람이 특정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판단을 내리는 건 그 근거가 되는 기초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때 ‘자료’란 한 사람이 태어나 경험과 학습을 통해 습득한 정보가 뇌세포에 저장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사람의 조상이 오래전 습득해 후손의 염색체 안 DNA에 저장해놓은 자료까지 전부 통합해야 한다. 그렇게 축적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한 정보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절히 출력되며 개개인의 이해와 판단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뇌는 크고 작은 손상에 의해, 혹은 노화에 의해 종종 오작동한다. 이 경우, 한 번 입력됐던 내용이 잊히기도, 다른 정보의 영향을 받아 왜곡된 후 잘못 출력되기도 한다. 컴퓨터를 활용한 ‘전자 두뇌’는 그런 점에서 보완재가 된다. 다만 인간 두뇌와 달리 출발선상에서의 정보가 전무하므로 초기 단계에서 (인간 판단에 쓰이는) 방대한 정보에 맞먹는 값을 입력해줘야 한다. 여느 인간처럼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은 상황이라면 광범위한 주제에 적합한 자료를 일일이, 게다가 충분히 입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0524_스페셜리포트_02 ▲‘반복 학습’ 원리가 적용된다는 점에서 딥러닝 알고리즘은 얼핏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범위를 인간 사고 체계와 같은 수준으로 넓히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학습해야 할 주제’가 한 가지로 좁혀지면 얘긴 좀 달라진다. 클라우드∙빅데이터 등의 최신 기술을 총동원해 해당 분야의 대규모 자료를 입력한 후 이를 심도 있게 학습시킬 수 있다면 기계의 정확성과 인간의 잠재력을 겸비한 ‘생각하는 구조물’, 다시 말해 인공지능(AI) 탄생이 가능해진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은 계산이나 게임 등 비교적 단순한 주제에 한정적으로 사용돼왔다. 의료, 그중에서도 진단 분야에서 딥러닝 기술의 가능성이 타진돼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테면 인체 조직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경우를 떠올려보자. 검사를 통해 조직 상태를 시각적으로 파악했다 해도 곧바로 진단이 내려지는 건 아니다. 해당 조직에 이상이 생긴 건지, 생겼다면 어느 정도로 악화된 건지, 앞으로도 계속 나빠질 가능성이 있는 건지 등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체 조직은 여러 세포의 복합체인 만큼 개개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며, 주변 세포와의 관련성이나 특정 시점의 심신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IMG_5551 ▲성영경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의료영상개발그룹 수석은 “대학에서 의료영상기기를 전공하긴 했지만 실제 기기 사용자인 의사와는 시각이나 지식에 차이가 꽤 있어 제품 개발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고 말했다

성영경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의료영상개발그룹 수석은 인체 진단 장비에 딥러닝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체 조직이 병에 걸리면 일단 모양이 달라집니다. 의료진은 그 형태를 보고 어떤 증상인지, 양성인지 악성인지, 악성이면 진행 속도가 어떤지 등을 판단하게 됩니다. S디텍트는 1만 개에 이르는 유방 조직 진단 사례를 바탕으로 의료진이 유방 병변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삼성서울병원과의 협업을 통해 의료진이 직접 병으로 변질된 조직의 경계를 그려주고, 어느 정도 심각한지 구분해 그 내용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켰어요. 특히 악성과 양성의 경계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이전 모델에 비해 개선됐죠.”

 

‘진단 오류 저감’과 ‘검사 남용 방지’,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간 ‘세기의 대국’은 알파고의 4대 1 승리로 끝났다. ‘인간 이세돌’이 ‘로봇 알파고’를 꺾은 단 한 판에서 이세돌은 예측 불가능한 돌을 여기저기 던지는 일명 ‘난전(亂戰)’ 전략을 구사했다. 이기기 위해 치밀하게 돌을 움직이는 경우의 데이터로 무장한 알파고는 예상치 못한 이세돌의 수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가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 인공지능, 그리고 장구한 세월 동안 축적된 유전자 정보에 입각해 직관력을 발휘하는 인간의 차이였다.

만약 알파고와 이세돌이 한 팀을 이룬다면 어떨까? 그 대국에서 이길 팀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 두뇌와 인공지능 간 협업(collaboration)의 위력은 그만큼 강력하다. S디텍트는 유방 병변 진단 분야에서 바로 그 ‘이상적 콜라보’를 꾀한 결과다.

S디텍트 개발진은 경험 많은 숙련의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유방 조직 사진에 병변 부위를 표시해 넣은 후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그 결과, 의료진이 S디텍트를 진단에 활용할 경우 △유방 조직 이상이 의심되는 환자의 환부를 초음파 스캐너로 촬영하고 △모니터로 해당 조직 영상 결과를 살핀 후 △의심 가는 병변 이미지를 선택하면 학습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부지런히 작동, 해당 부위의 특성과 악성∙양성 여부를 보여준다. 최대 강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단에 쓰이는) 데이터 축적량이 방대해지며 더욱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진다”(성영경 수석)는 사실이다.

IMG_5763 ▲S디텍트를 활용하면 병상에 누운 환자의 유방 부위를 스캔하며 초음파 영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IMG_5737 ▲S디텍트는 환부를 확인한 의료진에게 병변 부위로 볼 수 있는 후보 데이터를 몇 개 제시해준다. 의료진은 이중 좀 더 정확하다고 판단되는 결과를 채택, 그에 관한 정밀 진단을 시행해간다

16. Breast IDC with S-detect ▲S디텍트 진단 모니터에 구현된 화면의 예. 의료진은 환부 촬영 초음파 영상이 화면 중앙에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광경을 지켜보다 필요한 부분에서 영상을 멈춘 후 해당 부위에 대한 정밀 진단을 실시할 수 있다. 사진 속 초록색 선 안이 병변 부위. 화면 왼쪽엔 병변 크기와 깊이 등 기본 정보가, 오른쪽엔 병리적 정보가 각각 떠오른다

딥러닝 알고리즘은 안면인식 기술과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4]. 모든 데이터엔 숙련된 전문의의 판단이 녹아 있다. 병든 조직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판단 역시 모니터에 표시된다. 박문호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의료영상개발그룹 수석에 따르면 병변 검출 단계에서 조직 검사와 S디텍트를 각각 활용해 임상 실험을 진행한 결과, 두 결과의 일치도는 “상당히 높은” 걸로 확인됐다. 박 수석은 “의료진의 권유로 조직 검사를 시행했지만 결국 오진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상당한 게 사실”이라며 “S디텍트는 불필요한 조직 검사를 받지 않고도 아주 간단히,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할 만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IMG_5621 ▲박문호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의료영상개발그룹 수석은 S디텍트 개발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로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는 작업”을 꼽았다. 그는 “특히 지난해엔 메르스 파동으로 병원 쪽과 접촉하는 일 자체에서부터 벽에 부딪쳐 상당히 고전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업그레이드된 RS80A엔 S디텍트 기능 탑재 말고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 많다. △초음파 영상을 CT나 MRI 이미지와 동시에 비교, 분석해주는 ‘S퓨전(S-Fusion)’ 기능 개선 △환자의 호흡 차이 등에 의해 발생하는 이미지 변화 최소화 △혈류∙혈관 표현을 강조, 조영 증강 영상을 구현하는 ‘CEUS(Contrast Enhanced UltraSound)+’ 알고리즘 선명도 제고 △혈관벽 두께와 혈관 내벽 지방성 침전물 크기를 3차원으로 표현, 정량적 분석을 쉽게 만들어주는 ‘S-3D 아테리얼 어낼리시스(Arterial Analysis)’ 탑재 △넓어진 대역폭과 고주파를 기반으로 노이즈를 감소시키는 영상 개선 기능 ‘S하모닉(S-Harmonic)’ 채택 △근골격 부위 진단 시 고해상도 이미지를 제공하는 HQ 비전(HQ Vision) 적용 등이 대표적 예다.

 

“삼성 기술력 바탕으로 프리미엄급 진단기기 시장서 승부수”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 전망과 관련,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미 레드오션인데 삼성메디슨이라 한들 뾰족한 승부수가 있겠느냐”는 얘기다. 이에 대한 성영경 수석의 대답은 차분하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삼성전자의 최신 IT 기술을 적용한 프리미엄급 초음파 진단기기란 점에서 자신 있습니다. 실제로 중저가 초음파 진단기기 시장은 포화 상태예요. 프리미엄급 시장에서도 GE∙필립스∙지멘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버티고 있죠. 하지만 승부수를 띄워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기술을 적용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성능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보다 중요한 건 기술의 의료적 활용 방안이죠. 하지만 그 부문에 관한 한 저희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진단기기는 그 특성상 사용 과정 자체에서 데이터가 생성되고,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진단 결과는 더 정확해지니까요.”

삼성전자의 기술력과 삼성메디슨의 열정이 만나 탄생한 RS80A. 이 ‘세계 최초 딥러닝 적용 의료 기기’에 대한 세계 시장 반응은 일단 ‘합격점’이다. 당장 우리나라를 비롯, 유럽과 중동 지역에선 이달부터 판매가 시작했으며 북미·남미·중국·러시아 등에서도 국가별 인허가 일정에 맞춰 출시될 예정이다.


[1]실수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보다 안전한 건강 시스템의 구축(To Err is Human: Building a Safer Health System)

[2]건강관리연구와품질에관한법률(Healthcare Research and Quality Act of 1999)

[3]딥러닝 기술과 관련, 보다 자세한 설명은 2016년 3월 23일자 스페셜 리포트 ‘인공지능의 미래가 두렵다는 당신에게’ 내용을 참조하면 된다

[4]이 부분과 관련된 내용도 ‘인공지능의 미래가 두렵다는 당신에게’(3월 23일자 ‘스페셜 리포트’)에 소개돼 있다

 


“손으로 밀던 자동차, 운전하는 느낌!” 집단지성의 진화, 그리고 ‘믹스드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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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손으로 밀던 자동차, 운전하는 느낌!” 집단지성의 진화, 그리고 ‘믹스드 탤런트’

“차 안에서 조용히 쉬며 여행하시는데 죄송합니다만….” 독일 베를린 교외를 달리는 유레일(Eurail) 철도 차량 안, 지하철 잡상인이 할 법한 이 말을 꺼낸 건 뜻밖에도 희끗희끗 백발 섞인 갈색 머리에 안경을 쓴 40대 신사였다. 그을린 피부에 지적인 인상을 지닌 그의 옆엔 20대 초반의, 역시 피부가 가무잡잡하고 좀 더 재기 넘쳐 보이는 청년이 서 있었다.

 

‘병들어가는 지구’ 되살리려 뭉친 사람들

“혹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십니까?” 20대 청년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타블로이드 크기의 카드보드 용지 한 장을 가슴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깊고 어두운 공간에서 파란빛을 내뿜으며 오롯이 빛나는 행성,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이었다.

신사는 말을 이어갔다. 인간 삶의 터전인 지구에 이상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대기와 땅과 물이 오염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각 변동이 심해져 지구촌 어느 곳 할 것 없이 화산∙지진∙해일이 잦아지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 현재로선 앞으로의 향방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구에 사는 우린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런 일이 왜 생겼고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릴 맞대고 궁리해야 한다…. 신사의 얘기가 계속되는 동안 청년은 해당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인포그래픽과 사진이 붙은 카드보드 용지를 바꿔가며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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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장면은 지난 2002년 한 해 동안 독일 주요 도시 곳곳에서 진행된 지구과학 교육 캠페인을 글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캠페인을 주도한 건 지구 표면구조 연구와 지원을 전문으로 하는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극지방과 해양연구소 재단(Stiftung Alfred-Wegener-Institutfür Polar- und Meeresforschung)’(이하 ‘베게너 재단’).

1980년대 이후 독일 지구과학자들은 지구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하지만 학문이 전문화되며 세부 분야로 나뉘고, 그 과정에서 대중과도 상당히 단절돼 정확한 현황을 세간에 널리 알리긴 쉽지 않았다. 베게너 재단은 바로 이 점에 주목, 대중을 상대로 한 캠페인을 준비하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대기∙바다 등 광활한 자연 현장에서 관찰되는 변화를 모두에게 알릴 수 있을까?’ 베게너 재단은 “사회 전반의 의식을 바꾸려면 적어도 정부와 언론, 기업과 시민단체 등과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작업은 착착 진행됐다. 우선 라인홀트 올리히(Reinhold Ollig) 당시 독일연방 교육연구부장관이 적극적 지원에 나섰다. 과학 전문 기자와 사진기자를 중심으로 한 저널리스트와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도 초빙됐다. 이들은 전문 연구자와 함께 ‘지구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직접 찾아 눈으로 둘러본 후 기사로, 사진으로 담아냈다. 캠페인 참여를 선언한 작가와 교사는 현장 사진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덧붙여 시각 교육 자료로 완성했다.

몇 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후 마침내 2002년이 됐다. 베게너 재단은 이 해를 ‘지구과학의 해’로 선포한 후 독일과학자협의회 소속 학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캠페인을 함께 준비한 비정부기구(NGO) 스태프들도 동참했다. 이들은 그간 정성껏 준비한 교육 자료를 가방에 담은 후 ‘다수의 사람’이 모인 공간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철도와 버스 안, 백화점 행사장, 초등학교 교실….  그곳에서 부지런히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알리고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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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해나무)

이 캠페인에 쓰인 교육 자료는 ‘불·물·흙·공기(Feuer·Erde·Wasser·Luft)’란 제목의 책으로 선보였다[1].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통해 급격한 지구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이 자료는 이후 수십 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로 퍼져갔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다수의 유럽 도시 지방자치단체가 이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연구∙회의∙교육 구조인 ‘플라세스(PLACES)’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2010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2014년 일단락된 후에도 한동안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토론과 정보 공유의 장(場)’으로서 기능했다.

 

UN의 ‘상전벽해’: 리우환경회의 vs.GFIS 

급변하는 물리적·사회적 상황 때문일까, 21세기 들어 지구촌에선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독일 ‘지구과학의 해’ 캠페인 사례에서 보듯 ‘분야별 전문가의 협력을 통한 솔루션 도출’이 그 해결책으로 떠오르는 추세다. 지구 이상 현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와 언론인, 작가와 교육자가 각자의 재능을 합쳐 사회적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의 ‘1등 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IT 기술, 그리고 그에 기반한 뉴미디어 플랫폼이다. 실제로 오늘날 지구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는 일은 유례 없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 기기 활용 문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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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환경 문제 해결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환경과개발에관한유엔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UNCED)’가 열렸다. ‘리우환경회의(Rio Summit)’ 혹은 ‘지구정상회담(Global Summit)’으로 불린 이 회의는 다양한 UN 협의체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다. 20년 이상 제기돼온 사안을 기반으로 준비위원회를 꾸리는 데만 1년 넘게 걸렸고 본회의 진행에만 2주일 이상이 소요됐다. 총 172개국 대표(116개국은 국가 원수급)를 비롯해 1만7000명 이상의 NGO 스태프와 각계 전문가, 저널리스트 등이 참석했다. 그 결과, ‘아젠다 21’ 등 세 가지 문건이 도출됐다.

리우환경회의는, 전 세계가 미래 지구의 주요 방향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한 ‘거대 집단지성’의 첫 시도였다. 하지만 사반세기가 흐른 오늘날의 시각으로 판단할 때 이는 거북이걸음 수준에 불과하다. 실제로 요즘은 몇몇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행위만으로도 리우환경회의 때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콘텐츠를 얼마든지 쉽게 열람할 수 있다.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도 가능하다.

UN이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하나로 운영 중인 ‘글로벌 퓨처인텔리전스 시스템(GFIS)’만 해도 그렇다. 지구촌의 환경∙경제 문제 관련 정보와 조직, 소프트웨어를 한데 모아놓은 이 공간은 25년 전 리우환경회의의 정신을 계승하는 콘텐츠로 짜여 있다. 지구인이라면 누구든 이 시스템의 모든 요소와 상호작용(interaction)하며 제안하거나 세계 각지 전문가와 온라인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1만여 페이지의 방대한 자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도 있다.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지구촌 현황 관련 백서(白書)를 매년 새로 출간해야 했지만 GFIS에선 매 순간 새로운 정보들이 업데이트된다. 초기 화면에 기재된 GFIS 설명은 이 웹 공간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규명하고 있다. “GFIS는 단순히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방대한 정보, 지구촌 전문가들을 접하는 데 그치는 사이트가 아니다. (중략) 정부와 UN 기관, 기업, NGO, 대학, 미디어가 모두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집단지성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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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재능 ‘믹스’해 해결책 찾아볼까?

21세기를 이끌 주요 저서 중 하나로 꼽히는 책 ‘통섭(Consilience)’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다양하게 분화된 분야별 전문 지식이 인간 삶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려면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생물학자인 그는 이 같은 지식의 (대)통합을 가리켜 ‘통섭’이라고 지칭했다.

이 책엔 실제로 두 가지 이상 분야의 업적이 통합되며 인류 역사상의 전환점에서 돌파구를 만들어온 사례가 다수 소개돼 있다. 온라인 수학 문제 풀이 프로젝트를 처음 성공시켰던 영국의 천재 수학자 티모시 가워스(Timothy W. Gowers)는 IT 기반 집단지성을 경험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반적인 수학 연구가 자동차를 ‘밀어’ 움직이게 하는 거라면 (온라인 수학 문제 풀이) 프로젝트는 자동차를 ‘운전해’ 움직이게 하는 것 같을 정도였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캠페인 ‘론칭피플(Launching People)’은 집단지성을 활용, 난관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인류의 노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술로 소비자의 잠재력을 현실화하고 삶의 가치를 향상시킨다’는 브랜드 철학을 담아 지난 2013년부터 지금까지 총 26개국에서 실시돼온 론칭피플 캠페인, 그중에서도 ‘믹스드 탤런트(Mixed Talents)’ 프로그램은 두 개 이상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협업을 통해 솔루션을 도출해내는 형태다.

‘론칭피플’ 캠페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우리의 기술로 전 세계 인류의 힘찬 출발 돕겠다” 2막 오른 삼성전자 브랜드 캠페인 ‘론칭피플’

호주에선 ‘안전한 운동’이란 과제를 두고 뇌신경학자 앨런 피어스와 산업 디자이너 브래든 윌슨이 뭉쳤다. 오토바이 사고가 잦은 이탈리아에선 ‘사고 없는 오토바이 운행’이란 과제 아래 모터사이클리스트 에도 모시와 ‘유튜브 스타’ 동영상 제작자 카네 세코가 재능을 합쳤다. 36% 이상의 청년 실업률로 시름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컨설팅 기업 경영자 캐럴 커프만과 케이프타운 재개발 프로젝트 담당자 조너선 립먼이 손잡고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 도전했다. 멕시코에선 ‘디지털 접근성 증대’를 목표로 남미 4개국 출신 청년 60여 명이 ‘마라톤 토론’ 끝에 해결책을 내놓았다.

믹스트탤런트_04 ▲삼성전자 현지법인 주도로 진행된 집단지성 기반 사회 문제 해결 프로젝트 ‘믹스드 탤런트’ 남아프리카공화국 편에선 ‘청년 실업률 해소’를 목표로 전문 경영 컨설턴트와 도시 개발 전문가가 손을 맞잡았다

“삼성전자는 지구촌 각지에서 펼쳐지는 사회 문제 해결 노력을 응원합니다. 동시에 개별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IT 기술과 그에 기반한 기기를 지원함으로써 인류의 삶에 보다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의 ‘열린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데 동참하려는 거죠.”

론칭피플 캠페인 진행 전반을 이끌고 있는 지송하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센터 브랜드전략그룹 상무의 설명처럼 믹스드 탤런트 프로젝트는 ‘집단지성을 통한 문제 해결’이란 슬로건 아래 삼성전자가 보유한 첨단 IT 기술과 (이를 위해 모인) 사람들 개개인의 재능이 더해져 구현됐다. (‘재능과 지성이 탄탄한 지원군을 만나 시원하게 주행한’ 국가별 사례는 추후 삼성전자 뉴스룸을 통해 상세하게 소개될 예정이다.)


[1]국내에서도 2007년 동명의 책(장혜경 역, 해나무)으로 번역, 출간됐다

웨어러블 기기, 그 진화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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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스페셜리포트_도비라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이는 도로 위, 바로 앞에 서 있던 신사 한 사람이 갑자기 벨트에서 내려 옆으로 가더니 코트 주머니에서 전화 수화기를 꺼내 뭔가 번호를 말한 다음, 소리쳤다. “거투르드, 나야. 점심 약속 한 시간 정도 늦을 것 같아, 실험실에 가봐야 할 일이 생겼거든. 이따 봐, 내 사랑!” 그는 다시 수화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31년의 ‘판타지’, 1세기도 안 돼 ‘현실’로

이 글은 1931년 독일 작가 에리히 캐스트너(Erich Kastner)가 쓴 판타지 소설 ‘5월 35일, 혹은 콘라트, 남쪽 바다로 가다(Der 35. Mai oder Konrad reitet in die Südsee)’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 소년 ‘콘라트’는 ‘링겔후트 아저씨’와 함께 지내던 어느 날, 말할 줄 아는 데다 기막힌 롤러스케이트 실력까지 갖춘 검은 말 ‘네그로 카발로’를 만난다. 이 말을 타고 아저씨의 오래된 옷장으로 들어간 콘라트는 과거와 미래에서 펼쳐지는 모험에 뛰어들게 된다. 위 상황은 그중 ‘미래의 나라’에 갔을 때의 장면이다. 온통 ‘칙칙한 잿빛’인 그 나라에선 휴대전화와 움직이는 도로(무빙 워크)를 비롯, 당대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의 첨단 기술이 등장한다.

스페셜리포트02 ▲소설 ‘5월 35일(에리히 캐스트너, 시공주니어)’ 표지

일반인이 ‘갖고 다니며 통화할 만한’ 전화기를 갖게 된 건 에리히 캐스트너의 예지적 상상력이 발표된 지 85년이 지난 1973년이었다. 모토롤라사(社)가 만든 이 초기 휴대전화는 약 2㎏ 무게에 23㎝×13㎝×4.45㎝ 크기로 웬만한 사람은 한 손으로 들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배터리 성능도 형편없어서 30분 통화하고 나면 10시간은 충전해야 다시 쓸 수 있었다.

디지털 방식을 채택, 문자 메시지 송∙수신 기능이 더해진 2G 제품이 등장한 건 이후 18년이 흐른 1991년이었다. 10년 후인 2001년엔 인터넷을 사용, 마치 소형 컴퓨터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 3G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네이티브 IP 네트워크(Native IP networks) 방식을 도입, 속도가 10배 이상 빨라진 4G 제품이 나온 건 다시 8년이 지난 2009년이었다. 스마트폰 성능 개선의 가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기분 따라 디자인 바꿔 신는 ‘스마트 슈즈’?

모바일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며 관련 기기(device)의 소형화∙경량화 경향은 자연스레 ‘신체 부착 여부’ 시도로 이어졌다. 실제로 손에 들고 다니는 기기는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릴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 같은 기기를 몸에 고정시킬 수 있다면 훨씬 안정적이면서도 기동력 있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웨어러블(wearable), 즉 옷이나 장신구처럼 몸에 붙이고 다닐 수 있는 기기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건 그 때문이다.

스페셜리포트03 ▲삼성전자는 일찌감치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 진출, 다양한 제품을 선보여왔다. 사진은 삼성전자가 지난 3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공개한 웨어러블 신제품 ‘기어 핏2’(왼쪽 사진)와 ‘기어 아이콘X’

웨어러블 기기의 역사를 논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17세기 중국에서 만들어진, 손가락에 끼고 다니는 주판 반지가 최초의 모바일 디바이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통용되는 모바일 기기의 정의는 ‘몸에 부착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벼우면서 전선 없이도 전기 에너지가 공급돼 작동하는 컴퓨터 응용 기기’다. 이런 관점에서 모바일 기기의 ‘최초 실용화 버전’은 단연 1961년 미국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에 등장한 ‘룰렛 번호 예측 장치’였다. 성능이 꽤 좋았던 이 ‘사기 도박 보조 장치’는 1985년 네바다 주립 정부에 의해 사용이 금지됐을 정도였다.

21세기로 접어들며 스마트폰 발달과 함께 다양한 무선 기기 사용을 가능케 하는 인프라도 안정화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 관련 기술 역시 이 같은 기반에서 가히 폭발적이라 할 정도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시계와 목걸이, 안경 형태 기기는 이미 대중화된 상태. 그 밖에도 ‘몸에 붙일 수 있는’ 방식으로의 개발은 대부분 완료된 상태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심지어 1회용 밴드처럼 생긴 기기도 나와있다. 이 기기를 몸에 부착하면 사용자의 신체 상태 관련 데이터가 스마트폰으로 전송돼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진다. 그뿐 아니다. 의수나 의족, 보청기 등 장애인용 신체 기능 보완 장치도 스마트 기술과 결합돼 ‘(이전과) 차원이 다른’ 성능을 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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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웨어러블 기기는 ‘몸에 붙일 수 있는 모든 형태’로 진화해왔다

안경형 웨어러블 기기는 지난 2014년 제작된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에서 주인공 ‘해리’(콜린 퍼스 분)가 안경을 활용, 상대방에게 필요한 정보를 증강현실로 열람하는 장면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팔목이나 발목에 착용하는) 밴드형 △신발형 △이텍스타일(e-textile)을 포함한 의복형 웨어러블 기기는 신체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옷이나 신발 표면에 LED 기술을 적용, 시각적으로 돋보이면서도 안전성을 높인 제품은 시중에 이미 많다. 최근엔 스마트폰에서 특정 디자인을 선택하면 해당 무늬, 심지어 애니메이션까지 투사되는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매일매일 그날의 기분이나 활동 계획에 따라 디자인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신발이라면 좀 비싸도 장만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애니메이션 기능이 적용된 스마트 슈즈 관련 영상은 여기를 클릭하면 감상할 수 있다)

 

파괴력 갖춘 기술 많아 시장 전망도 ‘맑음’

온라인 시장조사 웹사이트 ‘아이디테크엑스(IDTechEx)’에 따르면 지난해 200억 달러(약 23조8000억 원) 선이었던 웨어러블 기기 시장 규모는 오는 2025년 700억 달러(약 83조3000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의료용 기기다. 다만 최근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는 단순 치료 목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트니스’와 ‘웰빙’ 개념까지 결합한 일명 ‘토탈 헬스케어’를 지향한다. 삼성전자를 비롯, 애플∙액센츄어∙아디다스∙후지쯔∙나이키∙필립스∙리복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이미 이 부문에 진출한 상태다.

‘웬만큼 몸에 부착할 수 있는 형태는 다 나온 것 아닌가’ 싶은 웨어러블 기기 시장에선 지금 이 시각에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 경계가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것 역시 뚜렷한 특징이다. 실제로 빛을 받으면 색깔이 바뀌는 옷, 주변 열을 끌어 간직함으로써 보온 효과를 극대화하는 아웃도어 등은 관련 소프트웨어가 (의복이란) 하드웨어에 통합돼 비로소 탄생한 결과물이다.

기업 입장에서 웨어러블 기기 시장은 ‘매력 포인트’를 충분히 갖춘 블루오션이다. 기존 시장을 단숨에 뒤엎을 수 있는, 파괴력 있는 기술이 많을 뿐 아니라 지적재산권 보호에 용이해 특허 분쟁에 시달릴 염려도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IT 분야에서 특허 분쟁은 종종 선도 기업의 발목을 잡는 방해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관련 내용은 지난해 6월 삼성전자 뉴스룸에 실린 스페셜 리포트 ‘특허가 경쟁력이다’ 시리즈를 참조할 것.) 21세기, 인간과 기계 간 공생의 새로운 유형을 이끌 웨어러블의 세계, 그 향방이 기대되는 이유다.
 

스토리(story), 감동으로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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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스토리(story), 감동으로 연결하다

 

응축된 감동의 경연장, 칸 라이언즈 국제 창의성 광고제

 ‘스토리(story)’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크고 작은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때 적절한 시청각 요소가 어우러진다면 단 몇 분만에 감동의 정도는 몇 배, 몇 십 배 증폭된다.

이는 짧은 영상으로 감정을 극대화해주는 힘을 갖는 비디오 경연장 ‘칸 라이언즈 국제 창의성 광고제(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이하 ‘칸 라이언즈’)’의 본질이기도 하다. 칸 라이언즈는 광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지구적 규모의 축제이다. 지난 1954년 동영상 광고 업계 종사자 중심으로 ‘국제필름광고제’란 이름으로 출범한 이래 매년 6월 프랑스 칸에서 약 1주일 동안 개최된다. 현재 참석 인원 규모는 90여 개국에서 초청된 1만1000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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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라이언즈에 출품되는 캠페인은 광고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큰 파급력을 몰고온다. 이들의 작품을 보면 문화계 동향의 키워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계 최고의 광고 회사 중 하나인 레오 버넷(Leo Burnett)은 2015년 가장 두드러졌던 트렌드를 △감동적인 스토리텔링 △차세대 몰입 콘텐츠 △세계를 더욱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고정관념 깨부수기 △밀어주기의 새 시대 등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지난해 12월 2일자 스페셜 리포트에서 다뤘듯 스토리텔링은 트렌드에 신선한 힘을 불어넣는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레오 버넷 보고서는 스토리텔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올해 칸 라이언즈에 출품된 최고의 얘기들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내재된 열망, 즉 다른 사람들과 연결(connect)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1. 따뜻한 눈 맞춤의 시작 ‘룩앳미(Look At Me)’

‘룩앳미(Look At Me)’ 캠페인은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술을 통해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삼성전자의 노력을 보여준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 1년 동안 달린 많은 사람들의 응원 댓글이 감동의 스토리텔링 기초가 됐다.

작품 액자들이 전시돼 있는 미술관. 한 소년이 소파에 엎드리다시피 앉은 모습이 외부와 마주치기를 거부하는 자세처럼 보인다. 김종현군(11세)은 ‘자폐증’으로 외부 세계와 관계 맺는 걸 어려워했다. 그런 종현군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 여성. “종현이는 엄마인 저와도 눈 맞춤하기 힘들어해요.” 

자막이 뜬다. “세계적으로 자폐를 겪고 있는 6000만의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눈 맞춤을 하지 못하는 등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디지털 기기와 소통하는 걸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야의 교수와 의사, 그리고 UX 디자이너들과 함께 ‘룩앳미’란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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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앳미는 쉽고 재밌게 미션을 해가는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표정을 이해하며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터랙티브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다. 종현군을 포함한 열아홉 명의 아이들이 매일 15분씩 8주 동안 룩앳미 앱을 활용한 결과 그 중 60%의 아이들이 눈을 맞추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증대됐다.

 

#2. 추월 사고 예방하는 획기적 아이디어 ‘삼성 세이프티 트럭(Samsung Safety Truck)’

또 하나의 트렌드로는 ‘브랜드는 세계를 더욱 안전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를 꼽는다. 대표적 사례로 삼성전자가 아르헨티나에서 진행한 ‘삼성 세이프티 트럭(Samsung Safety Truck)’ 캠페인이 있다. 거대한 화물 트럭이 삼성전자의 첨단 기술을 통해 뒤에 오는 작은 차들을 배려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비디오다. “직관과 이해, 그리고 사람들을 삶 속에서 끌어안기- 이런 행동을 통해 브랜드는 그 삶을 개선하고 가치를 더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레오 버넷 보고서의 정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 즉 삼성전자의 지향을 그대로 요약해서 말해주는 듯하다.

황혼이 깔리는 열대우림 사이로 쭉 뻗은 도로가 보인다. 항공뷰로 달리는 도로 위로 자막이 뜬다. “아르헨티나에선 시간당 한 명 정도의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사고는 주로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앞차를 추월하려다 생긴다고. 차들이 쌍방향으로 질주하는 도로 위 큰 트럭들은 속도가 느리니까 뒤를 따르는 승용차 운전자들은 웬만하면 앞지르고 싶어한다.

“2차선 도로가 많은 이 나라에서 삼성전자는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네 개의 커다란 LED 모니터가 뒷면을 가득 채운 삼성 세이프티 트럭, 앞면 카메라가 전방을 비추면 트럭 앞에 놓인 길의 모습이 트럭 뒷면 가득 떠오른다. 트럭이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처럼. 도로를 꽉 채워 시야를 가릴 뿐 아니라 속도를 많이 낼 수 없는 대형 화물 트럭이지만 뒤에 오는 소형차도 도로 앞의 상황을 볼 수 있으므로 안전하게 추월하도록 해줄 수 있다. LED 모니터 덕분에 밤에도 뒤차가 도로 상황을 환히 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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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삼성 세이프티 트럭은 끝없이 뻗은 아르헨티나의 도로를 달린다. 뒤를 따라오던 차들은 불편 없이 적당한 틈을 보아 추월한다. 보는 사람의 감동을 대변해주는 듯한 음악이 깔리며 자막이 뜬다.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대신 삶을 구해주는 아이디어, 삼성 세이프티 트럭’

 

#3. 실패해도 괜찮아! ‘에브리데이 이즈 데이 원(Everyday is Day One)’

레오 버넷 보고서는 동영상 광고의 다섯 번째 트렌드를 ‘밀어주기의 새 시대(New Era in Endorsement)’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밀어주기(endorsement)란 사회적으로 권위와 영향력 있는 사람이 어떤 사항에 대해 인정해줌으로써 여론을 이끌어가는 걸 말한다. 종전까지는 주로 정치적·사회적·학문적 지도급 인사들이 이런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젊은 층은 이런 사람들보단 스포츠나 연예계 유명 인사들의 삶에 더욱 열광한다.

물론 이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특정 상품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대부분 ‘뭐가 어떻게 좋다’ ‘나는 어떤 제품을 즐겨쓴다’ 등 특정 상품을 직접적으로 강조한 표현들이 많이 사용됐다. 이에 비해 최근 칸 라이언즈 출품작들을 보면 그 사람들의 삶 속에서 특정 제품을 쓰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전체적인 비디오의 메시지와 함께 녹아드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는 동시에 제품에 대한 인상도 각인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거리. 한 남자가 신호등이 켜지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뭔가 확인한다. 갤럭시 S5다. 서핑보드 가방을 맨 채 계속 걷는데 석회암 절벽 사이로 해변길이 있는 바닷가로 장면이 연결된다. 남자는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바닷물에 발을 담가본다. 지원 스태프들이 입은 두툼한 점퍼를 보니 추운 날씨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옷을 모두 벗고 가벼운 서핑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손목에 찬 삼성 기어2를 슬쩍 들여다 본다. 스태프들도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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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켈리 슬레이터(Kelly Slater·44세). 세계서핑연맹 주최 대회에서 열한 번이나 우승한 능력자다. 준비 운동을 마치고 백사장에 앉아 입수를 기다리는 그의 등에 ‘슬레이터’란 이름 위로 ‘삼성’ 로고가 잠깐 보인다. 석회암 바위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 앞에서 한동안 숨을 고르다가 절벽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 켈리 슬레이터는 노련하게 균형을 잡으며 바닷물과 하나가 돼 움직인다. 그의 실루엣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화면을 채운다. 물에서 나온 켈리 슬레이터는 젖은 모래에 묻혀 있던 갤럭시 S5를 집어들며 아이들의 사진들 찍어준다.

수압 때문이었을까, 코피가 묻어 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씩 웃는다. ‘해냈다’ ‘참 좋았다’ 그런 메시지가 느껴진다. 화면 가득히 거대한 물벽처럼 밀려오는 파도가 잡히면서 자막이 뜬다. “에브리데이 이즈 데이 원(Everyday is Day One)”

 

삼성전자, 2016년 최고의 창의적 마케터로 선정되다

올해 63회를 맞은 칸 라이언즈는 오는 18일부터 24일까지 펼쳐진다. 조직 위원회는 페스티벌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이전까지의 활동 성과를 평가, 매년 ‘올해의 크리에이티브 마케터’를 선정한다. 2016년 크리에이티브 마케터의 영광은 삼성전자가 안게 됐다. 

삼성전자는 2010년 처음 참가해서 금상 한 개와 은상 세 개를 획득한 이래 점점 더 좋은 성과를 보여 왔다. 특히 2015년엔 ‘론칭 피플’ 캠페인 등 단순히 브랜드 홍보 차원을 넘어 실제로 삼성전자의 기술과 노력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꾸준히 진행한 부분을 인정 받아 △티타늄 1개 △금상 6개 △은상 9개 △동상 11개 등 총 27개 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의 크리에이티브 마케터’ 상은 그동안 하이네켄·맥도날드·코카콜라·유니레버·나이키 등 글로벌 소비 문화를 이끌어가는 기업들에게 주어졌다. 국내에선 삼성전자가 최초의 주인공이 됐다. 테리 세비지(Terry Savage) 칸 라이언즈 조직위원장은 “삼성전자는 뛰어난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마케팅으로 그간 칸 라이언즈의 다양한 부문에서 성과를 보여줬다”며 선정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수상작은 △자폐 아동의 눈 맞춤과 의사소통 개선을 도와주는 ‘룩앳미’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삼성 세이프티 트럭’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감성적으로 조명한 ‘에브리데이 이즈 데이 원’ △대형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매장의 제품 체험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 ‘센터스테이지(Center Stage)’ 등 총 10개 캠페인이다. 대부분 수상 작품은 단순 제품 광고가 아닌 삼성전자의 기술과 제품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기획한 브랜드 마케팅 캠페인이다. 여기엔 ‘기술 혁신이 소비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철학이 담겨 있다. 

김문수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 센터장은 “진정성 있는 마케팅 활동을 펼쳐야 소비자들의 가슴 속에 차별화된 브랜드로 남을 수 있다”며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중장기적 마케팅 캠페인을 지속해 소비자의 꿈과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브랜드가 되겠다”고 밝혔다. 

인간과 로봇, ‘아슬아슬한’ 동거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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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스페셜리포트_도비라

한 노인이 식탁 앞에 앉아 있다. 가정용 로봇이 접시 하나를 그의 앞에 놓아준다. 접시 위엔 반으로 잘린 자몽 위에 허브가 약간 놓여있다. 노인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접시를 내려다보다 내뱉듯 말한다. “시리얼 갖다주게.” “시리얼엔 건강에 좋지 않은 재료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로봇은 맞대꾸한다. “모두 갖다 버렸습니다.” “내 물건 함부로 버리지 마!” “프랭크, 시리얼은 어린애나 먹는 거예요. 자몽 드세요.” “너야말로 어린애 장난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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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 않은 미래, 최고의 효도 선물은 로봇?

시간적 배경은 가까운 미래, 미국 뉴욕주(州) 콜드스프링에 사는 ‘프랭크’는 왕년에 이름깨나 날리던 보석 절도범이었다. 혼자 사는 그는 나이를 먹으며 치매 기운이 심해지고 있다. 현직 변호사로 아버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아들 ‘헌터’는 그런 아버지가 걱정되지만 아직 요양 시설로 보내고 싶진 않다. 고심 끝에 그는 아버지에게 맞는 식이요법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돕는 치료관리 프로그램 탑재 로봇 ‘VGC-60L’(이하 ‘VGC’)을 선물한다. 하지만 자신을 ‘관리’한다는 VGC의 간섭과 잔소리를 참다 못한 프랭크는 폭발하기 직전이다.

VGC와의 ‘열 받는’ 동거를 이어가던 프랭크는 어느 날, 흥미로운 점 하나를 알게 된다. VGC가 ‘재미로 하는, 합법적 일’과 ‘범죄’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 그는 VGC를 끌어들여 다시 ‘한탕’ 할 계획을 모의한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애용해오던 도서관의 재개발 소식을 듣고 마뜩잖았던 프랭크는 재개발의 ‘물주’인 젊은 부호 ‘제이크’의 보석을 훔친다.

제이크를 골탕 먹이기 위해 재미로 계획한 일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제이크가 경찰에 도난 사실을 신고하며 일은 점점 커진다. 경찰은 프랭크를 수상히 여기고 감시하기 시작한다. 궁지에 몰린 프랭크를 향해 VGC는 진지하게 말한다. “프랭크, 제 기억을 삭제(delete)해주세요. 그게 제가 존재하는 이유예요,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

이상은 지난 2012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과학기술 분야를 조명하는 작품’에 주는 알프레드 슬로운 상을 받은 장편영화 ‘로봇과 프랭크(Robot & Frank)’의 줄거리다. 이 영화엔 현대인이 기대하는 ‘가정용 로봇’의 이상형이 잘 그려져 있다. 일상에 필요한 일을 대행해주면서 늘 곁에 있어 정서적 충족감까지 안겨주는 이상적 동반자, 그러면서도 사람과 달리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존재. 더욱이 요즘처럼 ‘노인 밀착 관리’가 중요해진 고령화 사회에서 영화 속 VGC는 더없이 이상적인 삶의 파트너로 비쳐진다.

 

‘사람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 어디까지 왔나

극중에서 프랭크의 둘도 없는 벗이었던 VGC처럼 얼굴∙몸통∙팔다리를 모두 갖춘 인간형 로봇, 즉 휴머노이드(humanoid)는 기술적으로 이미 개발돼 있다. 초기엔 안드로이드(Android)란 조어가 쓰였지만 안드로이드가 ‘스마트 기기에 적용되는 오픈소스 기반 운영 체제’의 브랜드명으로 널리 알려지며 오늘날은 휴머노이드가 더 자주 사용된다. 지난해 세계재난로봇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국산 로봇 ‘휴보(HUBO)’가 대표작이다. 실제로 휴보는 사람처럼 걷고 뛸 수도,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있다. 인사나 악수, 가위바위보를 자유자재로 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악 연주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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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휴머노이드 제작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토피오·에논·나오. 각각 베트남과 일본, 프랑스 기술로 완성된 제품이다(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수준급 휴머노이드의 예는 휴보 말고도 꽤 있다. △베트남 기업 토시(Tosy)가 만든 ‘탁구 치는 로봇’ 토피오(TOPIO) △프랑스 기업 알데바란 로보틱스(Aldebaran Robotics)가 설계한 ‘축구 로봇’ 나오(NAO) △일본 기업 후지쯔(Fujitsu) 작품으로 ‘세계 최초(2005) 상용화 도우미 로봇’ 타이틀을 갖고 있는 에논(ENON) 등이 대표적. IT 기술 발달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기술 진전을 발판 삼아 휴머노이드 개발 작업엔 점점 더 가속도가 붙고 있다.

다만 현재 나와 있는 휴머노이드의 기능은 그리 종합적이지 않다. 인간적 외관과 발성, 상황 대응 능력, 인간과 유사한 동작을 구사하는 행동력 등을 두루 갖춘 로봇은 흔치 않다는 얘기다. 아직은 연구개발(R&D) 비용 수준이 높아 일상화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영화 속 VGC 같은 휴머노이드가 현대인의 일상에 들어오려면 여전히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알게 모르게 일상에 스며든 로보틱스 기술

한편, 인간보다 좀 더 작은 형태로 설계돼 반려동물처럼 기능하는 로봇 시장은 휴머노이드쪽에 비해 개발 속도가 빠르고 상용화 진도도 앞서 있다. 가장 흔한 건 역시 ‘인간의 오랜 친구’인 개 형태 로봇이다. 일본 소니사(社)가 개발한 ‘아이보(AIBO)’나 국내 로봇 업체 다사로봇이 만든 ‘제니보(GENIBO)’ 등은 실제로 사람에게 다가와 짖고 꼬리를 흔들며 뒹군다. 공을 던지면 물어올 뿐 아니라 사용자가 쉴 땐 곁에 앉아 같이 쉬어주기도 한다.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 만족의 상당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일본 고등과학기술원이 선보인 물개형 로봇 ‘파로(PARO)’ 역시 귀여운 외관과 사랑스러운 행동으로 독거 노인이나 자폐증 환자 등의 심리 치료에 널리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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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닮은 ‘애완 로봇’ 시장은 휴머노이드 부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아이보<위>와 파로(이미지 출처: 비메오)

감각에 직접 호소하지 않더라도 현대인의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는 기술은 다양하다. 다만 대개 한두 개의 단순 기능에 집중돼 있고 외관도 평범한 기계처럼 보이는 게 많아 ‘자주 쓰면서도 (그게 로봇 기술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인 게 바닥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흡수하는 청소 로봇이다. 지난 2002년 ‘룸바(Roomba)’란 상표명으로 출시된 최초 청소 로봇은 누적 판매 대수가 수천만 대를 넘기며 전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도 ‘파워봇’ 등의 브랜드명으로 국내 프리미엄 로봇 청소기 시장을 5년 연속 평정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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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출시한 로봇 청소기 ‘파워봇’

로봇 기술 채택이 활발한 집안일은 청소 말고도 많다. 지난 2007년 독일 지멘스사(社)가 출시한 ‘드레스맨(Dressman)’은 밀폐된 공간에 옷을 걸고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어 다리는 기기다. 온라인 모금 웹사이트 킥스타터에서 가장 많은 후원 금액을 달성한 아이템 중 하나인 ‘소마바(Somabar)’는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제어할 수 있는 칵테일 제조기’란 점에서 주목 받았다. 이 밖에 센서가 대상의 무게를 인식해 채로 대소변을 걸러내는 고양이 전용 화장실 ‘리터 로봇(Litter Robot)’,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이상한 낌새가 있을 때마다 사진을 찍은 후 경고 메시지와 함께 휴대전화로 보내주는 홈시큐리티(home security) 시스템 등도 실내용 로봇으로 인기 몰이 중이다.

 

인간과 기계는 ‘공진화’ 중… 전제 조건은?

미국 로봇 제조 업체 인모션(Interactive Motion Technologies)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전 세계 가정용 로봇 시장 규모는 130억 달러(약 15조3000억 원) 수준이었다. 2025년이면 이 수치는 330억 달러(약 38조7000억 원)까지 뛸 전망이다. 로봇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뛰어들 수 없었던 재난 영역에 주로 투입되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 로봇은 인간 스스로 거뜬히 처리할 수 있는 생활 영역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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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일 정도로 세련된’ 휴머노이드가 등장한 2001년도 영화 ‘A.I’, 그리고 조만간 인류가 맞닥뜨릴 현실과 똑 닮은 듯한 2012년도 영화 ‘로봇과 프랭크’를 보며 사람들은 ‘인간과 거의 흡사한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로봇의 등장에 열광한다.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기술의 발달로 ‘로봇과 인간의 공존’ 시나리오는 점차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로봇 재난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윌 스미스 주연의 2004년도 영화 ‘아이로봇’ 같은 영화에서 로봇은 인간을 뛰어넘는 위력을 지녔지만 인간미는 결여된 형태로 등장, 인류를 긴장시켜왔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서 기계는 늘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진화(共進化)해왔다. 로봇 역시 인간에 의한, 인간에 기반한 기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초읽기 들어간 ‘모든 것의 정보(Information of Everything)’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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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 번호 371번부터 380번까지의 응시생 여러분, 자신의 번호 끝자리에 해당되는 방으로 들어가주세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A기업 신입사원 채용시험장, 대기실 곳곳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다.

 

정보의 수집과 분석, ‘빅데이터’ 뛰어넘다

375번 수험 번호를 단 K씨가 5번 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정면 카메라가 그의 모습을 찍고 K씨 가슴에 달린 수험표가 스캔된다. 그와 동시에 K씨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가 중앙 통제실 컴퓨터에 고스란히 입력된다. 본인 여부 확인 절차를 거쳐 △신용카드 사용 내역 △병원 이용 이력 △도서관(DVD 대여점)에서 빌린 책(DVD 타이틀) 목록 △인터넷 TV 시청 프로그램 △유치원부터 대학까지의 출신 학교 전산 시스템 입력 내용 △SNS 활동 현황 등 시시콜콜한 정보가 소상히 인사팀 컴퓨터로 전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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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캐너는 K씨가 사용해온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 등 각종 모바일 기기 내 데이터들과 감응, 이들 정보를 분석한다. K씨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로 등록된 기기 일체와도 상호작용(interaction)한다. 각각의 기기(를 기반으로 데이터 클라우드)에 저장된 정보들도 수집, 읽어들일 수 있다. 일명 ‘모든 것의 정보(Information of Everything, IoE)’ 기술이다.

IoE는 빅데이터로 인해 가능해진 정보 집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단계의 기술이다. 이전까지의 정보는 서로 연결되지 않은 여러 가닥의 흐름을 통해 수집됐다. 수작업으로, 혹은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간 연결을 거쳐 분석된 정보들이었다. 여전히 대다수의 기업과 연구기관은 이런 방법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IoE는 고립되고 불완전한 정보를 연결, 이해와 접근이 쉬운 적정 데이터로 만드는 기술을 통칭한다.

 

게임 태도로 응시자 인성 파악하는 면접?

방대한 양의 K씨 관련 정보는 IoE 기술 덕에 순식간에 수집돼 신입사원 채용을 위해 특별히 배당된 사내 CPU 레지스터에 집적됐다. 이윽고 면접장에 들어선 K씨, 긴장을 풀고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그러자 정면의 대형 화면에서 A기업 CEO이자 ‘성공한 신세대 기업인’으로 명망을 얻고 있는 B 대표의 얼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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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대표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K씨와 인사를 나눈 후 본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모니터 한쪽엔 문항별 대답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초 단위까지 표시되고, 그 시간이 다 소진되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K씨가 각 문항에 간결하고 요령 있게 대답하려 애쓰는 동안, 정면 카메라는 그 모습과 목소리를 담아 중앙통제실 CPU에 저장한다.

화상 인터뷰가 끝나면 K씨가 앉은 책상 위 컴퓨터가 켜지면서 게임 화면이 떠오른다. ‘백화점 매장에서 많은 고객이 몰린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고득점에 성공하려면 물건을 가장 많이 살 고객을 나름대로 예측, 매출을 최대한 올리는 동시에 문제 발생 소지가 있는 사람을 파악해 원만하게 대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고객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세일즈맨’으로 행동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게임이다. K씨가 게임에 몰두하는 동안 △인지 능력 △대인관계에서의 직관력 △정보 기억력 △돌발 상황에서의 대응 능력 등이 자동으로 평가돼 역시 중앙통제실로 보내진다.

이 모든 단계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그야말로 K씨에 대한 ‘모든 것의 정보’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분석하는 주체는 A기업의 면접관도, 임직원도 아니다. K씨 한 명에 관한 정보도 일일이 수작업 하기엔 그 규모가 너무 방대한데 수천, 수만 명 응시생 관련 데이터를 일일이 훑어보는 일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K씨를 둘러싼 ‘모든 것의 정보’는 A기업이 신입사원 채용을 위해 특별히 개발한 일종의 ‘딥러닝(deep learning)’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된다. 이 알고리즘은 다량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K씨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성실하게 사회생활에 임해왔는지, 어떤 직무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정리해낸다. 그의 경험과 인성(personality)이 A기업의 일원으로 근무하기에 적합한지, 채용된다면 어떤 부서에 배정되는 게 적절한지, 그 경우 기존 임직원과의 관계 형성엔 문제가 없을지 등도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특별히 설계된 채용 알고리즘을 통해 A기업은 신규 채용 예정 인원의 10배수를 추려낸다. 인사 담당자들은 선별된 10배수를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 최적의 인원을 선발하게 된다.

 

수작업 영역 없앤 IoE, 적용 범위 ‘무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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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까지의 내용은 가상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절차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확정된다면 대상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부는 “첨단 IT 기술 덕에 채용 절차가 한층 더 공정해졌다”며 반색할 것이다. 반면, 단지 피고용인이란 이유로 채용 단계에서 원치 않는 ‘신상 털이’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게 뭔지 모르게 께름칙한 이도 존재할 수 있다.

비록 아직은 ‘가상’이지만 이런 상황은 좋든 싫든 엄연한 ‘현재진행형’이다. 아직까진 미국 등 선진국에서,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구현되고 있지만 입사 지원자의 인성 측정용 비디오게임이나 온라인 설문조사 도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은 실제로 늘고 있다. 내킷(Knack.it Corp)과 벙글(Vungle Inc.), 이볼브(Evolv Inc.) 등이 대표적 예다.

고용 과정에 빅데이터를 활용하려는 노력은 비단 게임이나 설문조사 형태에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알고리즘 개발이 요구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과 딥러닝, 한 걸음 더 나아가 IoE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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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지난 3월 23일 발행한 스페셜 리포트 ‘인공지능의 미래가 두렵다는 당신에게’에서 ‘이세돌 대(對) 알파고’ 대국이란 유명 이슈를 통해 살펴봤듯 기계학습이나 딥러닝 기술의 가능성은 빠르게, 그리고 다양한 분야로 뻗어가고 있다. 일찍이 조이 이토(Joi Ito)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 소장이 언급했듯 기계는 점점 더 사용자의 인간적 자질을 찾아 분석하도록 학습되고 있다.

딥러닝은 무수한 정보를 한 곳에 수집한 후 필요한 분석 방향을 설정, 그에 따라 걸러내는 알고리즘이다. 빅데이터 기술이 발달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정렬, 선별할 수 있게 되며 실현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딥러닝을 구현할 때도 어느 소스에서 어떤 데이터를 넣어야 하는지 결정하기까진 어느 정도 수작업이 필요하다. 데이터 수집과 필터링 알고리즘을 따로 개발, 적용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IoE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정보의 검색과 수집, 분석 등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IoE의 가능성과 적용 범위는 무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트너, ‘올해 10대 기술 동향’으로 꼽기도

IoE가 IT 업계와 미디어를 흔들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글로벌 정보 기술 연구∙자문 기업 가트너가 ‘2016 10대 전략 기술 동향(Top 10 Strategic Technology Trends for 2016)’ 중 하나로 IoE를 꼽으면서부터다. IoE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기술 발달과 밀접하게 연동돼 있다. 올 3월 9일 스페셜 리포트에서 다뤄진 뉴스룸 픽션 ‘IoT 포에버!(부제: 서기 2100년, 김성실 삼성전자 대리의 커넥티드 라이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래 사회는 모든 구성원의 행동과 경험이 점점 더 디지털화(化)돼 서로 연결되는 IoT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런 세상에선 실로 다양한 기기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집, 사용자에게 제공할 것이다. 실제로 네트워킹 하드웨어∙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 시스코(Cisco)의 추산에 따르면 오는 2020년 서로 연결될 기기 대수는 500억 대에 이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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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각종 기기와 그것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한 연결망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다. 스마트폰에서부터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기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기호(嗜好)를 알아차려 아직 행해지지 않은 행동까지 예견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의 삶 자체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과 동의어로 작용하는 셈이다.

그뿐 아니다. 하나의 기기나 채널에서 수집된 정보는 타인도 이용할 있게 된다. 타인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를테면 특정인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정보는 그 사람 집의 제어 체계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기상청 등 공공기관 시스템 정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명 ‘초(超)스마트홈’ 구현을 가능케 한다. 요컨대 향후 각종 기기는 ‘자율적 대행자’로서 인류의 상호작용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이처럼 개별 기기가 다른 기기와 연계되는 상황을 ‘디바이스 그물망(device mesh)’이라고 일컫는다. 각각의 기기는 이 망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며 엄청난 정보를 쏟아낸다. 실제로 사물인터넷과 디바이스 연결망이 창출하는 자료의 가치는 엄청나다. 시스코의 추산에 따르면 오는 2022년 기업이 활용하게 될 데이터의 가치는 14.4조 달러(약 1690억 조 원)에 이른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다. 데이터 분야에서도 이 표현은 꼭 들어맞는다. 무의미하게 집합된 데이터는 실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대량의 데이터를 웬만한 수작업으로 묶어 의미를 찾아내기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IoE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지는 이유다.

 

“신상 악용 우려” vs “민주적 정보 공유”

근대 이후 인류는 줄곧 거대한 걱정거리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기계와 정보의 역할과 비중 앞에서 ‘비인간적이면서도 강력한 특정 존재가 모든 정보를 손에 넣고 인간에게 불행한 삶을 강요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1949년 발표한 소설 ‘1984년’ 속 ‘빅 브라더’도, 영화 ‘매트릭스’(1999) 속 인공지능도 모두 그런 공포의 산물이다.

IoE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싹트기 시작한 오늘날, 비슷한 맥락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의 신상 정보가 악용될 수 있는 ‘사이버 보안’ 문제가 대두되는 게 대표적 예다. 하지만 정보의 가치가 높아지고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한편에선 “상황 전개가 지난 세기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의 양뿐 아니라 증가 가속도 역시 엄청나 인간이든 기계든 ‘단독적 존재’가 그 모든 걸 장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혹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IoE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관련 인프라를 조성할 정책 결정자와 기술 개발자, 사용자가 상호작용하며 협동해야 하는 만큼 IoE 시대엔 과거 어떤 시기에서보다 정보의 민주적 공유가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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