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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도 콘텐츠, 소통과 공유의 새 차원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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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360도 콘텐츠, 소통과 공유의 새 차원 열다

어느 날, 당신에게 ‘위험하지 않고 육체적 고통과 노고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극한 체험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를테면 아래 예시와 같은 것들이다.

 

‘오감 동원해 즐길 수 있는 3차원 영상’의 등장

영상 속 상황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것 일색이다. 실제로 겪는다면 생명이 위험해질 게 분명하고, 생각처럼 쉽게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100%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이런 체험이 가능하다면? 그 해답을 쥐고 있는 게 요즘 한창 떠오르는 일명 ‘360도 콘텐츠’다.

360도 콘텐츠는 360도 영상 촬영 장비를 활용, 제작된 콘텐츠를 뜻한다. 편의상 ‘360도’란 표현이 쓰이긴 했지만 실제론 ‘사용자가 오감(五感)으로 인지할 수 있는 3차원 공간 전체를 담은 콘텐츠’라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동영상 콘텐츠는 TV와 영화, PC와 스마트폰에서 ‘2차원적으로’ 소비된다. 2차원 콘텐츠 소비자는 일정 거리를 두고 평면 위에서 펼쳐지는 콘텐츠를 감상하며 해당 평면에 투사되는, 입체적으로 보이는 사물을 인지하는 게 고작이다. 반면, 360도 콘텐츠는 공간적 의미에서 ‘3차원’ 영상을 제공한다. 사용자에게 ‘실재하는 것과 거의 흡사한 환경에 놓이는 듯한’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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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도 콘텐츠의 등장으로 인간이 화면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한계는 사라졌다. 지구 어디든 사용자가 속해 있는 시·공간에서, 원하는 체험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정월 초하루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가 석굴암 불상 이마의 보석에 부딪쳐 찬란히 빛나는 모습을 볼 수도, 여름 저녁 시원한 캘리포니아 해변을 걸으며 태평양 바다로 저무는 해를 감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360도 콘텐츠가 제공하는 영상은 단순히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확장만 의미하진 않는다. 체험 시간을 사용자 의지대로 선택, 관리할 수 있는 만큼 4차원으로의 확대로 볼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시·공간 함수가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매트릭스인 5차원 세계에의 연결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카메라 대수 ‘최소 6대’서 ‘1대’로 줄인 기술력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서 사용자에게 ‘안전하면서도 행복한’ 몰입 경험을 제공하는 360도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가 어떤 프레임도 놓치지 않고 360도로 회전하며 촬영하는 데 성공하려면 엄청난 장비와 노력이 들어갔다. 최소한 여섯 대의 기기가 동시에 돌아가며 앞뒤와 좌우, 상하를 찍어야 했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을 정교하게 편집해 짜 맞춰야 비로소 매끈한 3차원 영상이 완성됐다. 올 3월 16일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저널리즘’을 주제로 한 스페셜 리포트 ‘이제 저널리즘 분야까지? VR의 거침없는 하이킥’에 등장했던 뉴욕타임스 제작 360도 VR 콘텐츠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The Displaced)’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촬영된 것이다. 결코 아무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릇 기술은 인간의 창의성에 기초해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는 법. 실제로 (시야각 좁은 카메라를 여러 대 동원하는 대신) 한 지점에서 앞면과 좌우면, 윗면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시야각을 갖춘 카메라를 활용, 전방과 후방만 찍어 연결하는 360도 카메라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상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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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도 카메라는 기존 어안(魚眼)렌즈에서 발달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어안렌즈는 180도가 약간 넘는 시야각을 제공한다. 만약 어안렌즈 두 개를 앞뒤로 붙인 후 거기서 얻어지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편집, 자연스레 연결해주는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어떨까? 한 대의 카메라로도 너끈하게 3차원 영상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누구든 ‘아하, 그렇게 간단한 원리가 있었구나!’ 무릎을 칠 것이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가 그렇듯 어떤 이치를 최초로 깨달아 적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그 이치를 실용화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가공할 수준의 창의력과 기술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4월 출시한 360도 카메라 ‘기어 360’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기기다.

 

시사토론 프로그램도, 영화 예고편도 ‘360도’로

기어 360은 가로와 세로, 높이가 각각 6㎝ 전후다(56.3×66.7×60.1㎜). 무게도 152g에 불과하다. 휴대도, 촬영도 손쉬운 사양이다. 스마트폰과 연계해 쉬운 편집이 가능할 뿐 아니라 삼성 기어 VR과 연동시키면 언제든 손쉽게 촬영한 360 영상을 감상할 수도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적 기술력이 그야말로 집약된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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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콘텐츠가 완성되려면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 기반 마련은 필수다. 하지만 그걸론 충분하지 않다. 양질의 ‘이야기(story)’, 그리고 그걸 완성품 형태로 구현해줄 제작(촬영) 작업이 더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어 360은 좀 특별한 기기다.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시·공간을 담아내 이전까진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시원찮은 대접을 받아온 영역에 대한 관심까지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TV에서 인기를 끌었던 시사 토론 프로그램 형태를 떠올려보자. 제작진은 몇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발언자와 토론 상대방, 청중과 스튜디오 전경을 엇비슷한 분량으로 번갈아 가며 촬영한다. 그런 다음, 그 결과물을 편집해 내보낸다. 토론 주제에 대한 관심이 비상해 대화 자체에 몰입하는 사람이면 몰라도 나머지 시청자에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촬영 방식이다.

동일한 상황에서 기어 360 같은 VR 콘텐츠 촬영 기기가 사용된다고 생각하면 얘긴 좀 달라진다. 기기 한 대를 스튜디오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높이에 적절히 설치한 후 촬영 버튼을 누르면 토론 장소 전체가 구석구석 다 잡히게 된다. 시청자는 자신이 원하는 발언자와 패널을 선택, 그의 발언에 집중할 수 있다. 정면에 있던 사회자가 발언할 땐 그쪽을 바라보다가 뒤쪽 패널이 질문을 던지면 해당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쓱 돌리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몸의 위치를 바꾸기만 해도 그 위치에 있던 출연자의 표정과 몸짓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토론 장소 한복판에 초대 받은 듯 절로 몰입하게 되는 설정이다. 자연히 시청자와 제작진 간 상호작용(interaction)은 한결 활발해진다.

위 시나리오는 360도 콘텐츠 제작 기기가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 중 단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드론 같은 장비와 결합할 때, VR 게임에 활용될 때, 동화나 소설 등을 감상할 때 그 가능성이 어디까지 극대화될 수 있을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실제로 360도 콘텐츠는 최근 다방면에서 급속도로 늘고 있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정글북(The Jungle Book)’은 360도 콘텐츠 형태의 예고편(trailer) 영상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카아의 정글(Kaa’s Jungle)’이란 제목의 이 영상에선 길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보아뱀 ‘카아’가 등장한다. 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북인도 밀림 속 깊숙한 수풀, 화면 한쪽에서 나뭇잎의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긴장감을 숨긴 채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순간, 눈앞을 가로막던 무성한 나뭇잎 사이가 갈라지며 입을 쩍 벌린 보아뱀 한 마리가 정면으로 돌진한다. 관람자는 이 영상을 통해 주인공 소년 ‘모글리’의 시점에서 영화 속 한 장면과 마주하며 본 영화에 흥미를 갖게 된다.

 

1인 미디어 콘텐츠 시장, 폭발적 성장세 ‘초읽기’

가뜩이나 ‘1인 미디어’ 열풍이 거센 요즘, 이를 받쳐주는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그 파급 효과는 메가톤급으로 확산되고 있다. 1인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 아프리카TV에서 BJ로 활동 중인 ‘딴트공<아래 사진>’은 얼리어답터를 위한 제품 리뷰 채널을 운영 중이다. 그는 “기어 360 같은 장비 덕분에 360도 콘텐츠가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면 1인 미디어 판은 확 뒤집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360도 VR 기기를 사용하면 제작자는 너무나 쉽게 새로운 느낌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소비자는 선택적 콘텐츠 소비가 가능해집니다. 1인 미디어 시장에선 해당 분야를 선도하는 개인이 VR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엄청난 몰입감과 인터랙션 기회를 선사할 수 있죠. 다만 인터넷 방송 송출 시스템이 아직 촬영 기기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현행 인터넷 방송은 180도 평면 화면에 맞춰져 있거든요. 결국 1인 미디어가 360도 콘텐츠를 마음껏 시도하려면 그 문제부터 해결돼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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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블로깅과 SNS,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이 제공하는 재미와 정보를 당연한 듯 누리고 있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은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전문가들조차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난 2004년 팀 오라일리(Tim O'Reilly) 오라일리 미디어 대표가 ‘웹 2.0 시대’의 도래를 공표한 이래 인터넷은 누구나 손쉽게 데이터를 생산, 공유할 수 있는 사용자 참여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인 미디어는 이 같은 트렌드 속에서 자연스레 떠오른 문화적 흐름이다.

누구라도 좋다. 카메라 한 대, 그리고 타인과 나누고픈 이야기만 있다면 실내와 야외 할 것 없이 동영상을 촬영해 다양한 플랫폼에 올릴 수 있다. 과거 기획·촬영·편집·송출·조정 등 부문별로 막대한 인력과 장비, 예산이 투입돼야 가능했던 ‘방송(미디어)’ 작업은 어느덧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간단한 장비만으로도 구현 가능한 수준으로 그 규모가 축소됐다. 그리고 이 같은 추세는 1인 미디어가 제공하는 ‘상상 초월 콘텐츠’의 종류와 양을 폭발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무섭게 진화하는 기계, 그 종착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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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스페셜리포트_도비라

앨런 튜링(Alan Turing). ‘컴퓨터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1912년 태어나 한창 나이인 42세 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컴퓨터과학은 물론, 수학∙논리학∙암호학의 귀재로 많은 일을 해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영국 암호 해독기관이었던 ‘정부 암호 학교’에 근무하며 나치스 독일의 중요한 암호들을 해독, “전쟁 기간을 최소 4년은 단축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일생은 지난 2014년 책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Alan Turing: The Enigma>’과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으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movie_image ▲최초의 컴퓨터를 탄생시킨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출처: 미디어로그)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란 질문은 ‘기계는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이 하는 걸 할 수 있는가?’란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논문 ‘컴퓨터와 지능’에서 튜링은 이 같은 주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명제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이세돌 대(對) 알파고’ 바둑 매치로 무성해진 인공지능과 기계학습(딥러닝) 관련 논란에 확실한 선을 긋고 있다. ‘기계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이 기계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는 것과 같은 일을 시킬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어떻게 해서 기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걸까? 사실상 ‘기계 스스로 생각해낸 듯한’ 결과물을 도출하도록 하는 비결은 뭘까?

 

기계도 공부한다, 인간처럼_DNA와 빅데이터

위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인간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게 됐나’에 대해서부터 이해해야 한다. 기계가 그와 비슷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다음 순서다. 단, 여기서 ‘생각’이란 맘속으로 혼자 떠올리는 게 아니라 특정 사안을 판단한 후 그걸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칭한다.

특정 대상을 판단, 표현하기 위해 인간은 대체로 어떻게 할까? 가장 간단한 예에서 출발해보자. 갓난아기가 태어난 후 가장 처음 하는 말은 “엄마”라고 한다. 물론 “엄-마”라고 정확한 2음절어를 말하는 건 아니다. 말하자면 입술을 꽉 닫았다 내뱉듯 내는, “ㅁㅁ-마” 같은 단음절 발성에 더 가깝다. 초보 부모를 감동시키는 이 첫마디를 내기 위해 아기 두뇌 속 지성 관련 구조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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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엄마를 보며 “엄마”라고 말하려면 우선 엄마의 모습을 무수히 접해야 한다. 눈∙코∙귀뿐 아니라 온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기분 좋고 신뢰가 가며 항상 자신과 함께하는 존재인 엄마. 그 모습과 느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아기의 맘속엔 ‘엄마’란 존재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특별한 가치로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엄마’란 말을 여러 차례 들려주면 아이가 그 소리와 실제 자신의 엄마를 연결 지어 판단하는 과정은 한층 단축될 것이다. “엄마가 맘마 줄까?” “엄만 ○○○를(을) 사랑해”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기저귀 갈아줄게” 같은 표현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어른이 입을 움직여 소리 내는 걸 보던 아이는 어느 순간, 발성기관 근육 형성에 힘입어 “음-마” 비슷한 소릴 낼 수 있게 된다. 그 광경을 지켜본 부모는 환호하며 아이를 칭찬해준다. 학습 성과에 대해 일종의 보상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기는 엄마의 존재와 ‘엄마’란 소리 간 연관성을 좀 더 확실히 인지하게 된다. 어른의 발성을 들으며 발음도 점차 분명해진다.

비슷한 과정을 기계에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엄마의 모습과 동작 유형, 음성 등에 대한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기계에 주입하고 △‘엄마’란 단어를 포함, 여러 종류의 기계음을 입력시킨 상태에서 기계가 스스로 다양한 유형의 모습과 소리를 연결하도록 한 후 △특정 모습과 ‘엄마’란 소리를 짝지었을 때 그 성과를 인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넣는 식이다. 기계 역시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의도한 모습을 보며 “엄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상 메커니즘만 잘 구축돼 있다면 성공 확률은 시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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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예시에서처럼 사람이든 기계든 인지∙연상 능력을 가능케 하는 건 ‘경험의 반복’이다. 양자의 차이는 장구한 세월을 두고 진화해온 생명체인 인간, 그리고 정확하긴 하지만 모든 게 ‘제로(0) 베이스’에서 시작되는 기계의 특성 차에서 비롯될 뿐이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조명했던 올 3월 23일자 스페셜 리포트에서 언급했듯 인간은 자신이 전 생애에 걸쳐 경험해온 내용뿐 아니라 자신의 DNA에 축적된 내용까지 실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한다(물론 정확성 측면에선 기계에 비해 뒤처질 수 있지만). 반면, 기계는 일단 접수된 내용을 끝까지 이용하는 대신 데이터를 일일이 입력해줘야 한다. 이 때문에 인간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엔 자료의 양(量) 측면에서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계가 지닌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인터넷(을 활용한 정보 축적), 그리고 (그렇게 쌓은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도구로서의) 빅데이터 기술이다. 인터넷 시대 도래와 빅데이터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인공지능이 ‘정확성’과 ‘데이터 무제한 보유’ 등 두 가지 강점을 겸비하게 된 셈이다. 실제로 글로벌 정보 기술 연구∙자문 기업 가트너는 올해 IT 동향 보고서에서 빅데이터 기반 기계학습을 이전의 단순 입력식 기계학습과 구분, ‘고급 기계학습(Advanced Machine Learning, AML)’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미래의 인공지능? ‘터미네이터’ 아닌 ‘도우미’

오늘날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다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 비중도 점차 느는 추세다. 인류가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의 형식을 빌어 ‘기계가 장악한 부정적 미래’를 염려해온 것과 달리 현대사회의 인공지능은 무자비한 괴력을 지닌 거인이라기보다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작고 친절한 도우미에 가깝다. 이메일 사이트가 스팸 메일을 걸러줄 때, 페이스북이 사용자에게 ‘새 친구’ 목록을 제시할 때, 아마존이 회원들에게 ‘맞춤형 도서 추천 서비스’를 제안할 때 그곳엔 어김없이 기계학습을 거친 인공지능이 작동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 기초해 일정 유형(pattern)을 찾아 통계적으로 예측하는 방식이다.

온라인 쇼핑몰 등 인터넷 기반 사업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요즘 △고객 관리 △아이템 선정 △판매망 이용 등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다방면에서 우후죽순처럼 개발, 적용되고 있다. 이 단계에서 경영자는 인공지능의 사업 경영 활용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지게 마련이다. 사업 전망 예측과 진행 관리 측면에선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만 시스템을 움직이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이 만만찮은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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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가트너는 “미국 기업의 75%가 빅데이터 관련 혁신에 투자하기 시작했거나 향후 2년 안에 투자할 예정”이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추세를 반영한다면 향후 2년간 빅데이터 프로젝트 관련 투자액은 2420억 달러(약 274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무수한 아이디어가 경합을 벌이는 IT 시장에선 매 순간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극찬 받던 생각이 순식간에 퇴출되는가 하면, 수 년간 일명 ‘얼리어답터’들의 기대를 모으던 제품이 한순간 과대선전에 불과했던 걸로 판명되기도 한다. 1990년대부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기계학습과 빅데이터 관련 기술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대중의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지만 이 추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진 미지수다.

조지 S. 포드(George S. Ford) 미국 상급법률및경제공공정책연구소(Phoenix Center For Advanced Legal & Economic Public Policy Studies) 수석연구원은 “어떤 IT 기술이 일상으로 정착되려면 두 부문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때 ‘두 부문’이란 첨단 기술 개발자, 그리고 해당 기술 구현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담당하는 정책 결정권자를 각각 일컫는다. 양 날개가 어떻게 균형을 잡고 날아 오르는가에 따라 해당 기술은 고공으로 비상할 수도, 비틀거리다 추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분명한 건 양쪽 모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건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소비자, 즉 사용자란 사실이다.

포켓몬 고 열풍, 기계로 노는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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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포켓몬 고 열풍, 기계로 노는 인간들

풍경 하나. 지난 16일(이하 현지 시각) 밤 10시,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섭씨 30도를 웃돌던 한낮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이곳에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걸어온 사람, 승용차를 끌고 온 사람 할 것 없이 시선은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고정돼 있었다. 주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운전석에서 뛰어내려 대열에 합류하는 이도 눈에 띄었다. 공원 곳곳은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선 걷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북적댔다. 이따금 환호를 지르거나 큰 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공원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전부 스마트폰을 보며 열중해 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으며 옆 사람과의 대화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관련 영상을 보려면 여기 클릭). 

풍경 둘. 그 전날인 15일 미국 샌디에이고 바닷가 절벽에서 두 청년이 실족, 부상 당한 채 경찰에 구조됐다. 그중 한 명은 발견됐을 때 의식 불명 상태였다. 다행히 이른 구조로 병원에서 치료 받으며 회복 중인 그들은 사고 당시 둘 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뭔가를 쫓아가다 절벽인 줄도 모르고 ‘직진’하다 사고를 냈다.

풍경 셋. 역시 15일, 영국 월트셔 카운티에선 10대 소년 네 명이 탄광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됐다. 모두 14세이거나 15세인 네 친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자신도 모르는 새 탄광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컴컴한 갱도 속에서 뭔가를 찾아 헤매다 직경이 30미터 이상 되는 환기통 축 바닥에서 기진맥진한 상태가 돼 인근 지역 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상은 전 세계 곳곳에서 불과 며칠 새 벌어진 일이다. 세 장면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통해 뭔가 찾고 있었다. 대체 뭐였을까? 뭐였길래 넋을 놓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까?

 

2016년 7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모든 사태의 주범은 당신이 익히 알고 있듯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반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Pokemon Go)’다. 포켓몬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인 동시에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괴물 캐릭터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지난 1995년 일본에서 초등생용 오락 게임으로 첫선을 보인 이후 TV와 만화영화, 캐릭터 상품 등으로 잇따라 제작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스페셜리포트_03 ▲포켓몬에 등장하는 괴물 캐릭터(사진 출처: 포켓몬 코리아)

‘포켓 몬스터(Pocket Monster, 주머니 속 괴물)’의 약칭인 포켓몬의 종류는 2016년 7월 현재 729개. 이들은 어떤 생태계에도 속하지 않는 특수 생명체이며, 빠른 속도로 자가 진화를 거듭하며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 포켓몬은 일명 ‘몬스터볼(혹은 포켓볼)’로 불리는 둥근 공 모양 무기로 제압할 수 있다. 무기를 맞은 포켓몬은 몬스터볼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포켓몬을 맞힌 사람은 ‘포켓몬이 들어 있는 몬스터볼’을 갖게 된다. 포켓몬을 많이 포획할수록 몬스터볼은 점점 진화하고, 몬스터볼의 위력이 강해질수록 게임은 ‘레벨 업(level up)’ 된다. 20여 년 전 등장해 말 그대로 ‘추억 속 게임’이 돼버린 줄 알았던 이 게임은 지금, 무서운 속도로 전 세계 사람들을 몰입시키고 있다.

 

20세기 포켓몬, 모바일에서의 화려한 부활

▲국내 ‘포켓몬 고 성지(聖地)’로 꼽히며 인기 몰이 중인 강원도 속초에서 포켓몬 고를 실행한 모습(사진 출처: 연합뉴스)

구글 내 스타트업으로 출발, 독립한 나이앤틱(Niantic, Inc.)이 포켓몬 고를 출시한 건 지난 6일(현지 시각)이었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먼저 출시된 후 소셜 미디어 상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인기에 힘입어 불과 열흘 만에 총 35개국에서 정식 출시됐다.

사실 포켓몬 고의 구조 자체는 새로울 게 없다. 포켓몬을 주제로 한 이전 게임과 유사하게 포켓몬을 몬스터볼로 공격, 포획하면 수준이 올라간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공격 방식이다. 화면상에서 터치 패드 등으로 공격하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모바일(mobile), 즉 ‘움직일 수 있다’는 특성은 여러 가지를 바꿔놨다. 개발진은 일단 게이머가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을 미리 파악, 그 인근에 포켓몬을 배치해야 했다. AR 기술은 바로 그 과정에서 도입됐다. 또한 곳곳에 숨어 있는 포켓몬은 게이머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야 찾을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포켓몬 고 사용자는 모바일 기기 위에 증강현실로 표현되는 포켓몬을 포획한 후 훈련시켜 전투에 내보내거나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차원의 재미다.

포켓몬 고 사용자의 위치는 GPS 위치 탐지기에 기반한 구글 맵 서비스를 통해 파악된다. 한국에선 지역 내 보안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 초반 출시 지역에서 제외됐다. (그 와중에 강원도 속초 인근에서 구글 맵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단 사실이 알려지며 일부 ‘열성 유저’들이 포켓몬 고 게임을 즐기려 새벽부터 속초로 몰려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발 닿는 곳이 전부 ‘729종 포켓몬 사냥터’

고작 모바일 게임 하나에 전 세계가 이렇게 들썩이는 세태, 대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모바일 시대, 일명 ‘미스터 모바일(Mr. Mobile)’을 자처하는 모바일 기술 전문 리뷰어 마이클 피셔(Michael Fisher)의 설명을 따라가보자(피셔의 포켓몬 고 사용기 영상은 여기 참조).

피셔의 판타지 세계는 방 구석 옷장이나 거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책상 앞 PC에 앉아 탐험 세계로 떠날 수도, 3D 고글을 착용한 채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도 있지만 그는 거리로 나서는 쪽을 택한다. 그는 걸어가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포켓몬 고 앱을 실행시킨다. 지금 자신의 모습과 가장 유사한, 혹은 그저 마음이 가는 아바타를 설정하고 나면 GPS로 받은 데이터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설정에서 ‘AR’을 활성화하면 ‘리얼타임’의 현실 세계가 모바일에서 펼쳐진다. 그가 걷기 시작하면 아바타도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포켓몬 고 신드롬’은 불과 두어 주 만에 전 지구적 현상이 됐다. 사진은 포켓몬 고를 즐기며 포켓몬 잡기에 여념이 없는 캐나다 사람들(사진 출처: 연합뉴스)

피셔는 스마트폰을 계속 보며 ‘포켓스톱(PokeStop)’을 찾아간다. 포켓스톱은 ‘포켓몬들이 등장하는 장소’를 일컫는 용어. 실제로 포켓몬 고엔 만화 ‘포켓몬’에 등장하는, 무려 729가지 몬스터가 나타난다. 스마트폰 화면은 마치 사진을 찍을 때처럼 눈앞 경관을 보여주고 그 위엔 포켓스톱을 가리키는 그래픽이 뜬다. 열심히 걸어 포켓스톱에 접근하면 포켓몬의 모습이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다. 이때 포켓몬은 펭귄을 닮은 ‘피플럽(Piplup)’일 수도, 그 유명한 ‘피카츄(Pikachu)’일 수도 있다.

피셔는 화면을 터치해 하단 중앙에 있는 몬스터볼(포켓볼)을 포켓몬에 던진다. 포켓몬은 폴짝 뛰기도, 빙그르르 돌기도 하며 볼을 피한다. 몬스터볼(포켓볼)을 제대로 맞은 포켓몬은 그 안에 갇힌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볼(포켓볼)은 한층 강력한 무기로 진화한다. 게임 구조는 보다 복잡해지고 그와 비례해 몰입도 역시 높아진다.

 

‘흔한 일상에 살짝 더해지는’ 판타지의 위력

‘스토리(story)’에 열광하는 건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관련 내용은 지난해 12월 2일 스페셜 리포트에서도 다뤄진 적이 있다.) 하지만 똑같은 얘기라도 그걸 담아내는 형식은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꾸준히 진화한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면 이런 예는 어떨까?

1940년 영국 런던.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 등 페번시(Pevensie) 집안 4남매는 독일군의 공습을 피해 교외에 위치한 ‘디고리 커크’ 교수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어느 날, 막내 루시는 커크 교수네 빈 방에 있던 옷장에 문득 호기심을 느끼고 옷장 문을 연다. 놀랍게도 옷장 안은 눈 덮인 숲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통로를 지나자 환상 속 대륙 ‘나니아’가 펼쳐졌고 거기엔 △인간 말을 할 줄 아는 사자 △유니콘 △반인반수(半人半獸) △백색 마녀 등 다양한 전설 속 캐릭터가 살고 있었다. 4남매는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사건에 연루되고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해내는 영웅이 된 후 현실 세계로 되돌아온다.

이상은 ‘판타지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영국 작가 C.S.루이스(C.S.Lewis, 1898~1963)가 1950년 발표한 소설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1부의 줄거리다. 7부작까지 발표된 이 소설의 초판은 1950년부터 1956년까지 출간됐으며 41개 언어로 번역, 출간돼 1억2000만 부 넘게 팔렸다(2010년 기준). 그뿐 아니다. 라디오 드라마와 TV 영화, 연극 등으로 끊임없이 각색됐으며 2005년을 기점으로 극장용 영화도 세 편이나 제작됐다.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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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점은 ‘현실에 판타지가 더해지는 방식’이다. 소설 속 루시가 옷장을 여는 순간 그 존재를 드러내는 캐릭터는 서구인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옛날 이야기 따위를 통해 접해온 것들이다. 단, 그 전개 방식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이런 설정은 예나 지금이나 늘 인간을 매료시켜왔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현실적 이야기 전개에 살짝 더해지는 판타지 요소’에 열광한다. 그리고 그 두 차원을 자연스레 연결시키는 건 시대 상황에 따른 미디어의 힘이다.

포켓몬 고의 인기 비결도 같은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 강렬한 몰입감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 ‘흔하디 흔한 일상에 살짝 더해지는’ 판타지는 의외의 열광을 낳는다. 여기에 20년 넘게 수많은 ‘덕후’의 사랑을 받아온 캐릭터(포켓몬), 그리고 이들을 잡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게이머 스스로 강자(强者)로 거듭나는 스토리라인까지 더해지며 포켓몬 고는 ‘대놓고 가상현실’을 표방하는 여느 게임보다 한층 더 폭발적인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낸다.

 

유희적 인간, ‘기계’로 또 한 차례 진화하다

어찌 됐든 2016년 여름, 포켓몬 고는 세간의 다양한 분석을 등에 업고 인기몰이 수준을 넘어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몇 가지 사례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 포켓몬 고 출시 국가에선 지금 이 시각에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사고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일부에 맞서 꿋꿋이 포켓몬 고의 장점을 찾아 공유하는 이들이 늘고 있단 사실이다.

‘포켓몬 고 예찬론자’들이 꼽는 대표적 장점은 ‘활동성 증가’다. 어둠침침한 방구석에 틀어박혀 즐기던 이전 게임들과 달리 두 다리를 움직여 뛰어다녀야 하는 방식인 만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애착도 커진다, 는 논리다. 실제로 ‘물가에서 포켓몬을 찾다 우연히 변사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미국 여고생’ 따위 사례는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더한다.

포켓몬을 잡으려 부지런히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건강하고 단단한 몸매를 얻게 된다, 고 주장하는 부류도 있다. 실제로 요즘 온라인 상에선 ‘포켓몬 고를 시작하기 전과 후’를 비교한 사진이 다양한 종류로 패러디(parody)돼 돌아다닌다<아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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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고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아니 오늘날 사회∙문화 전반이 지향하는 상호작용성(interaction)을 극대화한 놀이 방식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놀이와 예술 할 것 없이 ‘일방성’은 이제 점차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현대인은 무슨 일이든 스스로 참여하고 서로 주고받으며 나누는 방식을 선호한다. 참여 태도도 그 편이 훨씬 적극적이다.

20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네덜란드 출신 역사문화학자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는 일찍이 유희적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개념을 주창했다. 인간은 본래 놀이를 추구하며 놀이를 통해 성장하는 존재, 란 게 그 골자였다. 그렇다면 기계를 이용해 노는 21세기 인간은 ‘호모 루덴스 마키나(Homo Ludens Machina)’ 정도로 재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포켓몬 고 열풍은 어쩌면 이 같은 신(新)인류의 출현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신드롬인지도 모르겠다.

C랩 과제도 등판 성공… ‘21세기형 십시일반’ 킥스타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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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스페셜리포트_도비라

 

#1. 환경 다큐멘터리 ‘태양은 뜬다’

“바다는 우리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죠. 그런데 그 바다가 우리의 땅을 파괴하고 있어요.”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에메랄드빛 수평선과 그 앞 모래 해변, 아름다운 영상 위로 담담한 원주민 언어의 내레이션이 깔린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붉은 해, 그 생명을 받쳐주는 푸른 바다, 그리고 서서히 가라앉는 섬…. 그 안에서 시한부 인생을 영위하는 이들의 얘기가 교차하는 이 필름은 지난 2010년 ‘풀프레임 다큐멘터리 필름 페스티벌’ 수상작인 동시에 2011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이기도 한 ‘태양은 뜬다(Sun Come Up)’다.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에 시시각각 높아지는 해수면, 그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남태평양 카테렛(Carteret) 섬 사례를 다룬 역작이다.

스페셜리포트_01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다큐멘터리 ‘태양은 뜬다’의 한 장면을 표현한 이미지

 

#2. 눈동자 추적 장치 ‘아이라이터’

“예술은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사회에 변화를 안겨줄 수 있는 도구입니다. 제 작업이 의료 개혁 촉진과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그리고 환우 지원에 쓰일 수 있다니 전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상은 ‘템프트1(Tempt One)’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그라피티 아티스트 토니 콴(Tony Quan)이 한 말이다. 토니 콴은 미국 서부 지역 특유의 그라피티 스타일을 구축, 명성을 떨친 인물. 하지만 퇴행성 신경 장애의 일종인 ALS, 일명 ‘루게릭병’에 걸려 눈을 제외한 모든 근육이 점점 마비돼가는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2009년, 그는 값진 선물을 하나 받았다. 눈동자의 움직임을 추적, 모니터에 형상으로 띄우는 일명 ‘아이라이터(EyeWriter)’가 그것. 아이라이터 개발엔 △프리 아트 앤드 테크놀로지 랩(Free Art and Technology Lab) △그라피티 연구소(Graffiti Research Lab) △오픈프레임웍스(OpenFrameworks) 소속 구성원 등이 참여했다. 이 장치는 2010년 시사주간지 ‘타임’ 선정 ‘올해의 발명품 50(Top 50 inventions of 2010)’에 포함된 걸 비롯, 2011년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도 전시되며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다.

스페셜 리포트 아이라이터를 활용, 토니 콴이 완성한 그라피티 아트 작품이 적용된 모습(출처: The EyeWriter)

 

#3. 어맨더 파머 노래 ‘킬링 타입’

“저라면 전쟁에 이기려 사람을 죽이진 못할 거예요.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정말 모호한 얘기예요. (중략) 난 사람을 죽이는 타입은 아니에요, 그런 타입은 아니죠….”

미국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 어맨더 파머(Amanda Palmer)의 대표곡 중 하나인 ‘킬링 타입(The Killing Type)’ 가사 중 일부다. 그의 음악 세계는 대체로 대중적이다. 하지만 세상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선 주저 없이 폭로하고 맞서는 저항 정신을 보인다. 사회적 통념을 깨는 강렬한 실험 정신과 앞서가는 사회 의식…. 어찌 보면 대중적 뮤지션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긴 어려운 성향의 소유자이지만 파머는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진입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동시에 노래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도 평가 받고 있다. 특히 킬링 타입이 수록된 2012년 앨범 ‘극장은 악이다(Theatre Is Evil)’엔 이 같은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노래가 가득하다.

위 사례들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일명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의 결과로 폭발적 파급력을 얻게 된 작업물이란 사실이 그것. 세 경우 모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며 규모가 큰 크라우드펀딩 웹사이트’로 불리는 킥스타터(KickStarter)를 통해 모금, 결실을 보게 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창의 프로젝트’ 지원에 초점… 누적 모금액 15억 달러 돌파

‘티끌 모아 태산’이나 ‘열 숟가락 모으면 밥 한 그릇(十匙一飯)’ 같은 속담은, 여럿이 조금씩 힘을 보태 큰 일을 이루는 정신이 인류 사회의 오랜 전통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하물며 지금은 인터넷으로 전 세계 구석구석 어디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21세기. 이런 전통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군중(群衆)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이 합쳐진 이 신조어에 대해 시사상식사전은 ‘자금이 없는 예술가나 사회활동가 등이 자신의 창작(혹은 사회공익) 프로젝트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에게 투자 받는 방식’이란 정의를 붙였다.

‘뜻 있는 일에 후원하는’ 크라우드펀딩의 최초 사례는 지난 2008년 1월 출범한 ‘인디고고(Indiegogo)’다. 미국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출신 다나에 링겔만(Danae Ringelmann) 등이 만든 이 웹사이트엔 흥미로운 탄생 비화가 있다. 한때 연극 동호회원으로 활동했던 링겔만은 꽤 많은 관객이 (저명 극작가 아서 밀러 연극처럼) 작품성 있는 명작을 좋아하는데도 정작 이를 실제로 상연하는 데 필요한 자금 확보가 쉽지 않아 좋은 연극이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 대안적 의미에서의 자금 모금 운동을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인디고고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인디고고는 2014년 현재 매월 전 세계에서 1500만 명이 방문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 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금이 동원되는 웹사이트는 단연 킥스타터다. 자선 목적의 활동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인디고고와 달리 킥스타터는 영화∙음악∙공연∙만화∙저널리즘∙비디오게임∙테크놀로지 등 분야별 창의적 프로젝트 지원에 초점을 둔다. 2015년 2월 현재 론칭된 프로젝트만 20만여 건,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7000건 이상이다. 기간 중 누적 모금액은 15억 달러(약 6조7000억 원)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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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펀딩 열풍은 이미 전 지구적 현상이 됐지만 ‘본고장’ 미국에서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게 사실이다. 지난 2012년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생벤처육성지원법(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 Act)에 서명했다. ‘잡스법(JOBS Act)’ 혹은 ‘크라우드펀딩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실제로 미국 내 스타트업들이 사업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스타트업 활성화 예산을 따로 조성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어 좋고, 스타트업은 필요한 자금을 보다 탄력적으로 마련할 수 있어 좋은 구조다.

국내에도 상당수의 크라우드펀딩 웹사이트가 개설돼 있다. 지난 2011년 출범해 영화·음악·미술·출판·건축·디자인·게임 분야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텀블벅을 비롯, 굿펀딩·인큐젝터 등이 킥스터와 유사한 방식으로 꾸려지는 곳. 네이버 등 주요 인터넷 포털 업체도 유의미한 창작(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문화 콘텐츠 분야 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직은 적용 범위가 다소 제한적이다. 하지만 2012년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첫 번째 국정 목표로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크라우드펀딩의 제도적 토대 마련에 나서는 등 크라우드펀딩 분야의 국내 전망은 꽤 밝은 편이다.

 

‘스마트 골프 슈즈’ 아이오핏, 입성 10시간 만에 목표액 달성

킥스타터란 명칭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기 위해 레버를 발로 힘차게 차는(kick) 모습을 본떠 붙여졌다.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를 보유한 킥스타터가 ‘21세기형 소통 경제의 꽃’인 크라우드펀딩 열풍을 이끌게 된 비결은 뭘까?

킥스타터는 일단 ‘웬만해선 성공하기 어려운 실험적 아이디어라 해도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담고 있다면 순조로운 출발을 보장해온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원 범주는 △미술 △만화 △무용 △디자인 △패션 △영화∙비디오 △요리 △게임 △음악 △사진 △출판 △테크놀로지 △무대공연 등 모두 13개. 이중 영화∙비디오와 음악, 게임 쪽 모금 규모가 비교적 커 세 분야를 합치면 전체 모금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개중 일부 프로젝트는 한국인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것들이어서 눈길을 끈다. 대부분 사회 현안(입양∙교육∙해녀 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필름과 게임, 그림책 등 문화 콘텐츠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일 오전 10시(이하 현지 시각) 다소 낯선 아이템 하나가 킥스타터에 등장했다. 아이오핏(IOFIT).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크리에이티브랩(Creative lab, 이하 ‘C랩’)을 거쳐 스핀오프된 스타트업 솔티드벤처의 대표 상품이다.

 

아이오핏은 ‘세계 최초 스마트 골프 슈즈’를 표방한다. 골프 칠 때 아이오핏을 착용하고 그와 연동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작동시키면 아이오핏이 사용자의 체중 분포를 측정, 자세를 분석해준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전송된다. 아이오핏의 킥스타터 데뷔 무대는 일단 성공적이다. 출시 10시간 만에 목표 모금 액수(3만 달러)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한 것. 펀딩 기간을 28일 남긴 9일 현재 누적 모금액은 5만3200달러를 넘어섰다. 조형진 솔티드벤처 대표는 “아이오핏이 킥스타터의 주된 소비층을 다소 비껴난 시장을 타깃으로 한 상품이라 걱정했는데 비교적 참신한 기술 덕에 주목 받는 것 같다”며 “킥스타터 출시 이후 조금씩 입소문이 나며 전문 골퍼들의 유입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모금 기간 내 목표액 200% 달성’은 무난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스페셜리포트03 ▲킥스타터 출시 이후 모금이 한창인 아이오핏 페이지. 사진은 10일 오전 10시(한국 시각) 캡처한 이미지다

 

‘스마트 벨트’ 웰트, ‘스마트 시곗줄’ 시그널도 출격 준비 완료

킥스타터 출시를 기다리는 아이템은 아이오핏 말고도 또 있다. 오는 30일 ‘등판’을 준비 중인 스마트 벨트 ‘웰트(WELT)’는 일종의 ‘웰빙 벨트’다. 허리에 벨트처럼 착용하면 사용자의 신체 상태가 스마트폰으로 전달돼 건강 상태를 점검해준다. 웰트를 개발한 동명의 스타트업 웰트 역시 삼성전자 C랩에서 스핀오프 절차를 거쳐 독립했다. 법인이 설립된 건 3개월이 채 안 됐지만 C랩 시절부터 무수한 고민과 실험을 거친 덕분에 ‘완성형’에 가까운 형태로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강성지 웰트 대표에게 킥스타터 출시는 말하자면 ‘매출 증대 수단’이라기보다 ‘홍보(promotion) 전략’이다. 그는 “모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일정이 잡혀 있긴 하지만 우리 자체 브랜드의 힘이 필요한 상황인 만큼 B2C, 즉 고객과의 접점을 최대한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킥스타터에선 (잠재) 고객과 바로 만날 수 있으므로 제품 본연의 가치를 ‘손으로 만져지듯’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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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트와 같은 날(8/30) ‘시그널(SGNL)’ 역시 킥스타터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다. 시그널은 시곗줄 모양의 스마트 밴드. 블루투스를 이용해 스마트폰과 연동하면 이어폰이나 헤드셋 없이 통화음을 들을 수 있다. 소리를 미세한 진동으로 변환, 손끝에 전달한 후 귀에 대면 해당 진동이 고막까지 전달되는 원리다. 당초 ‘팁톡’이란 명칭으로 이 과제를 개발한 최현철 이놈들연구소 대표 역시 삼성전자 출신으로 C랩을 거쳐 제품을 완성했다. 최현철 대표는 “제작자 입장에선 유용한 서비스라도 실제 사용자 눈엔 그렇지 않게 보일 수 있다”며 “그 때문에 킥스타터 출시에 앞서 준비할 게 많았다”고 말했다. 킥스타터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치밀하고 전략적인 ‘사전 마케팅’이 필수란 지적이다. “저희는 킥스타터를 ‘사용자 피드백 수렴 창구’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실제 판매 실적 증대를 노리기보다 후원자(backer)들에게서 유용한 조언을 받고 그 결과를 실제 제품에 녹여 시장에 다시 내놓고자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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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CES 2016 빛낸 삼성전자 C랩 출신 세 팀

 

참신한 아이디어와 창의적 열정, ICT 기술 만나 ‘날개’를 달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학교에서 배운 걸 모범생처럼 따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언더그라운드’로 지칭하며 지하로 숨어드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당당하게 추구하며 그 면면을 완전히 개방, 타인과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생각을 같이하는 이와 만나 점차 더 다양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완성해간다. 그리고 이 같은 진화를 가능케 하는 기저엔 ‘전 세계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자유롭게,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된’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기술 발달이 있다.

물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돈과 자원 문제다. 새로운 문화 형태가 가능해지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 그런 실험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창의적 열정의 소유자라면 얼마든지 준비가 돼 있겠지만 시간을 들이는 동안 그 사람의 생계를 보장해주고 필요한 준비를 해주는 돈까지 갖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창의적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온라인 네트워킹으로 조달하는’ 킥스타터 플랫폼의 발전 가능성은 이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단순 기술로 출발한 IT가 어느덧 인간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사라진 ABO를 찾아라’ 캠페인, 즐거움과 의미 둘 다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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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8일<이하 현지 시각> 영국 런던. 조간 신문 데일리미러를 받아 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1면 상단을 크게 가로지르는 제호(題號) 부분이 눈에 확 띌 정도로 달라졌기 때문. ‘Daily Mirror’란 글자가 있어야 할 부분엔 ‘D ily Mirr r’란, 익숙한 듯 낯선 로고가 박혀 있었다.

 

2015년 6월 8일, 런던 도심 뒤흔든 ‘사고’

같은 날 아침, 런던 중심가인 다우닝가(街) 1번지, 수상 관저 앞을 지나던 사람 중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방금 지나쳐 온 현관 쪽을 다시 돌아봤을 것이다. 기둥에 걸려 있는 주소 명판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으니까. ‘다우닝가 사우스웨스트 1번지, 웨스트민스터시(Downing Street SW1, City of Westminster)’라고 적혀 있어야 할 부분엔 드문드문 철자가 빠져 있었다, 이렇게. “D wning Street SW1, City  f Westmi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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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영국에서 가장 큰 서점 체인 중 하나인 ‘워터스톤즈’ 본점 간판도 이상했다. ‘Waterstones’로 쓰여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한 건 ‘W terst nes’. 역시 드문드문 이가 빠진 채였다. 저녁 무렵, 어둑해진 런던 중심가의 시네마 콤플렉스 ‘오데온 스튜디오’ 방문객들 역시 기묘한 광경을 마주했다. 파란색 네온사인으로 유명한 ‘ODEON STUDIO’ 글자가 ‘ DE N STUDI ’로 바뀌어 있었던 것.

이후 1주일간 영국인들은 도심 곳곳에서 유사한 상황을 접했다. 유명 브랜드 로고와 상점 간판 할 것 없이 ‘철자 생략’ 행렬에 동참했기 때문. 코카콜라는 ‘C c C l ’로, 스타벅스는 ’St rbucks'로, 맥도널드는 ‘McD n ld’로…. 심지어 영국 국영 방송 BBC는 ‘  C’로 변신했다. 원래 자리에 있던 철자를 유추하지 않으면 당최 무슨 단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한 조치였다. 대체 그 7일간 영국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40% ‘곤두박질’ 헌혈자 수 회복할 묘안은?

‘사라진 ABO를 찾아라(Missing Type)’. 지난해 6월 8일부터 15일까지 영국 전역에서 전개된 캠페인 타이틀이다. 사실 이 기간은 영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헌혈(과 수혈)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지정한 일명 ‘국가 혈액 주간’이다. 영국 국립의료원(NHS, National Health Service) 혈액∙이식센터(Blood and Transplant)는 본격적 주간 운영을 앞두고 영국 내 유명 광고기획사 중 한 곳인 ‘엔진(ENGINE)’에 관련 캠페인 기획을 의뢰했다. 최근 10년간 40%나 줄어든 헌혈자로 인해 혈액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인 만큼 ‘뭔가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존 래이섬(Jon Latham) NHD 혈액∙이식센터 헌혈 마케팅 담당자와 엔진 내 캠페인 기획팀은 ‘수혈’과 ‘헌혈’이라는, 너무 익숙해 시들해지기까지 한 이슈를 다시금 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사라진 ABO를…’은 그 결과로 탄생한 아이디어였다. 영단어 ‘미싱(missing)’은 ‘절실히 필요하다’는 뜻과 ‘빠져 있다’는 뜻을 함께 지녔다. ‘타입(type)’ 역시 ‘혈액형’을 의미하는 ‘블러드 타입(blood type)’의 줄임말이기도, ‘글자 하나하나의 모양’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렇게 따지면 ‘미싱 타입’은 ‘절실히 요구되는 혈액형’인 동시에 ‘빠져 있는 글자’란 표현이 된다.

missing_1-horz ▲트위터 내 캠페인 관련 해시태그(#MissingType)를 곁들여 로고와 간판 등에 변화를 준 마이크로소프트·NHS·TESCO(사진 출처: 트위터/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혈액형이 세 개의 알파벳(A·B·O)으로 표시된다는 점에 착안해 다수의 눈에 띄는 유명 브랜드 로고나 간판, 표지 등에서 세 글자가 들어가는 부분을 빼고 빈칸으로 남겨두는 게 캠페인의 골자다. 기획팀은 이와 동시에 다수 미디어의 참여를 독려, ‘의료용 혈액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현실을 알리며 헌혈을 유도하고자 했다. 트위터에 캠페인 관련 해시태그(#MissingType)를 띄우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메시지 확산도 시도했다.

불과 1주일 남짓 동안 진행된 캠페인은 그야말로 영국을 뒤흔들었다. SNS 전략 역시 큰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 ‘핫이슈’로 떠올랐다. 파급 효과는 결과 관련 수치로도 확인된다. 캠페인 개시 직전인 지난해 5월 영국 리서치 기관 ‘포퓰루스(Populus)’가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 혈액형이 뭔지 알고 있다”는 영국인은 응답자의 49%에 그쳤다. 같은 조사에서 “(록밴드 퀸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를 알고 있다”는 사람(51%)보다도 적은 수치였다. 이 같은 현상은 10대에서 30대까지의 젊은 층에서 유독 심했다.

하지만 캠페인 후 3개월 만에 실시된 또 다른 조사 결과, 캠페인 기간 중 헌혈 참여자는 3만600명으로 전년 대비 2만 명이나 증가했다. 그중 59%는 17세부터 34세 사이 연령층이었다. 구글·혼다·스포티파이·캐드버리·도브·나우TV 등 1000여 개의 다국적 기업과 영국 내 (중소)기업은 “캠페인 취지에 동참하겠다”며 자신들의 로고와 웹사이트에서 A·B·O가 들어가는 곳을 자발적으로 비웠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자체 채널을 가동, 캠페인 지지 메시지를 퍼뜨리기도 했다. 유명 인사들의 참여도 줄을 이었다. 제인 엘리슨(Jane Ellison) 영국 공중보건부(Public Health)장관을 비롯, 요리 프로그램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셰프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 등은 몸소 헌혈에 참여한 후 자신의 이름에서 A·B·O를 제외한 서명을 SNS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기간 중 소셜 미디어를 통해 캠페인을 접한 사람 수는 약 1억4700만 명. 같은 기간 영국(과 북웨일즈) 내 미디어가 다룬 캠페인 관련 뉴스는 1000건 이상이었다. 돈 들여 광고하려 했다면 약 380만 파운드(약 54억7000만 원)의 거금을 들여야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상복도 이어져 △마스터즈 오브 마케팅 △캠페인 빅 어워즈 △D&AD 등 영국 내 톱 랭킹 홍보∙마케팅 상을 29개나 휩쓸었다(2016년 6월 기준). 지난 6월 말 개최된 ‘칸느 라이언즈 국제 창의성 페스티벌’에선 ‘건강과 웰니스’ 부문 금메달과 ‘사이버’ 부문 동메달을 거머쥐기도 했다(칸느 라이언즈 페스티벌에 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지난 6월 15일자 스페셜 리포트 ‘스토리, 감동으로 연결하다’를 참조할 것).

 

올해는 ‘20년간 헌혈 캠페인’ 삼성도 동참

기대 이상이었던 성과에 힘입어 엔진 측은 이 캠페인의 ‘세계 진출’을 기획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게 ‘2016 인터내셔널 미싱 타입(International Missing Type)’이었다. 지난 15일부터 역시 1주일간 세계 22개국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이 글로벌 캠페인엔 삼성전자도 동참하고 있다.

10-11 ▲‘인터내셔널 미싱 타입’ 캠페인에 참여했던 다양한 기업들의 로고(사진 출처: 존 래이섬, ‘미싱 타입 인터내셔널(Missing Type International)’ 발표자료/출처가 명기된 이미지는 무단 게재, 재배포할 수 없습니다)

혈액은 현대 의료 체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조건 물질 중 하나다. 혈액을 공급 받으려면 거의 전적으로 기부, 즉 헌혈에 기댈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응급 환자 가족이나 친척의 피를 즉석에서 뽑아 쓰기도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평상 시 불특정 다수에게서 기부 받은 혈액을 항(抗)응고제 처리한 후 혈액은행에 보관했다가 병원 등 필요한 곳으로 보낸다. 적십자사(Red Cross) 같은 국제 비영리 단체의 지원이 더해지는 것도 이 단계에서다.

혈액 기부자 수가 급감하는 건 비단 영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이슈다. 삼성은 일찌감치 이런 현실을 직시,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헌혈 행사를 꾸준히 펼쳐왔다. 대표적인 게 지난 1996년부터 지속해오고 있는 그룹 차원의 임직원 헌혈 캠페인. (1년 중 공급이 가장 달리는) 동절기 혈액 수급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매년 2월 실시하는 이 행사의 누적 참가 임직원은 29만여 명. 올해도 1월 21일부터 2월 28일까지 22개 계열사에서 1만여 명이 동참했다.

samsung ▲올 1월 삼성그룹이 실시한 헌혈 캠페인에 동참, 헌혈을 실시하고 있는 삼성물산 임직원들

삼성은 일선에서 헌혈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대한적십자사 후원 역시 계속해왔다. 대표적 예가 (혈액검사기와 혈액냉장고, 헌혈용 침대 등 전용 장비를 갖춘) 헌혈 버스 지원. 지난 2012년엔 삼성생명이 한 대, 올해는 삼성그룹이 두 개를 각각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했다. 헌혈 봉사는 계열사별로도 진행된다. 삼성SDI는 지난 2009년부터 임직원 한 명이 헌혈할 때마다 회사가 5000원을 후원,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하는 일명 ‘레드 러브 도네이션(Red Love Donation)’ 행사를 펼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임직원 한 명이 헌혈할 때마다 회사가 1만 원을 후원,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 삼성전자 역시 2006년부터 자체 헌혈 캠페인을 지속해오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혈액 기부 봉사에 동참해온 삼성의 입장에서 이번 캠페인 동참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삼성전자는 행사 기간 중 삼성닷컴 웹사이트에서 ‘A’를 제외한 ‘S MSUNG’ 로고를 노출시키는가 하면, 공식 채널인 국·영문 뉴스룸을 통해 관련 콘텐츠를 발행하는 등 광범위한 노력으로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남의 불행’에 냉담한 현대인, 진심 되찾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변화를 효과적으로 일으킬 수 있을까?’ 끊임없이 자문자답한다. 인터내셔널 미싱 타입은 그런 이라면 누구나 반색할 메시지를 품고 있는 캠페인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앞서 든 몇몇 수치는 캠페인의 열기를 전하는 표면적 사례에 불과하다. 타인의 불행에 냉담한 이들의 가슴을 두드려 ‘내 피를 나눠서라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진심을 이끌어낸 비결, 도대체 뭘까?

실제로 동일한 의문을 품은 여러 논객이 이 캠페인의 성공 요인을 다각도로 분석, 발표했다. 그중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건 이 캠페인의 가공할 대중 동원력이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논조다. 이와 관련, 영국 정부 디지털 서비스(Government Digital Service, GDS)에서 디지털 테이크업(digital take-up, 사용자가 디지털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데이브 월리(Dave Worley)는 “미싱 타입 캠페인은 시의적절하고 유의미해서 성공한 측면이 있지만 이를 잘 활용하면 다른 모든 디지털 테이크업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내셔널 미싱 타입(사라진 ABO를 찾아라) 캠페인은 일단 그 의미가 튼실하다. 디지털 문화와 기반구조를 잘 활용한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재미(fun)’ 요소다. 인간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여럿이 즐겁고 재밌게’ 할 수만 있다면 놀라울 정도의 효율성을 보이며 거뜬히 수행해내는 존재, 란 사실을 이보다 명쾌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 빠진 철자’ 몇 개로 헌혈의 가치를 되새긴 이번 캠페인의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은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홍채 인식 갤럭시 노트7’의 탄생이 의미심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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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홍채 인식 갤럭시 노트7’의 탄생이 의미심장한 이유

1903년, 윌 웨스트란 범죄자가 미국 일리노이주(州) 리븐워드 형무소에 도착했다. 웨스트의 서류를 훑어보던 교도관 매클로리는 그의 정면과 측면 상반신 촬영 사진을 보고 문득 ‘예전에 본 적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 형무소에 온 건 난생처음”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매클로리는 서류더미를 샅샅이 뒤져 자신이 전에 봤던 사진을 찾아냈다. 주인공은 윌리엄 웨스트. 2년 전 종신형을 선고 받아 리븐워드 형무소에 수감된, 다른 죄수였다. 2년 간격을 두고 똑같은 형무소를 찾은, 게다가 이름도 비슷한 윌 웨스트와 윌리엄 웨스트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만큼 얼굴도, 체격도 판박이였다. ‘지문 인식’이란 개념이 채 자리 잡기 전이던 시절이 빚어낸, 웃지 못할 일화다.

윌 웨스트가 윌리엄 웨스트 때문에 억울해하던 1900년대 초반, 범죄자 식별과 관리엔 일명 ‘베르티옹 감식법(Bertillon system)’이 활용됐다. 1870년대 프랑스에서 고안된 이 방식은 용의자의 신체 부위를 측정, 그 비율로 진범 여부를 판단하는 형태였다. 베르티옹 감식법에 따르면 윌과 윌리엄은 의심할 여지 없이 동일 인물이었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베르티옹 감식법의 한계를 세상에 알리고 ‘개인의 정체성을 보다 정확히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요구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1905년, 경찰 당국은 윌 웨스트와 윌리엄 웨스트의 지문(指紋)을 채취했다. 모든 게 똑같아 보였던 두 사람의 지문 모양은 확연히 달랐다. 지문이 ‘인간 정체성 확인의 핵심 근거’로 공식 채택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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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다한 ‘아날로그식(式) 바이오메트릭스’

베르티옹 감식법이나 지문 판독 방식은 아날로그 시대의 바이오메트릭스(biometrics)를 대표한다. 그리스어 ‘생명(bio)’과 ‘측정(metrics)’이 합쳐진 바이오메트릭스는 인간 개개인의 정체성 판별에 쓰이는 기술을 일컫는 용어. 이때 판별 기준은 ‘인체적 특성 측정’이다.

누군가를 엄밀히 구별해야 할 필요성이 발생하는 경우는 주로 두 가지다. 범죄자를 색출∙관리할 때가 하나, (모두에게 함부로 공개할 수 없어) 특정 공간의 출입 제한이 필요할 때가 다른 하나다. 그런 측면에서 바이오메트릭스의 초기 형태에 해당하는 지문 감식 체계의 최초 도입 장소가 형무소인 점은 퍽 자연스럽다.

20세기 내내 바이오메트릭스를 대표하며 절대적 권한을 행사해온 지문 감식법은 최근 들어 심심찮게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라텍스 고무로 만든 손가락 모형에 가짜 지문을 새겨 범죄 현장에 남기는 등의 수사 교란 방식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정체성 확인 기술의 목적과 방식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촬영 기술과 빅데이터의 발달로 바이오메트릭스 기술은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드는 추세다.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는 사용자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다가 필요 시 책상이나 식탁 위에 툭툭 내려놓고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그 안엔 중요한 개인 정보가 엄청나게 담겨 있다. 그뿐 아니다. 최근엔 모바일 뱅킹 서비스가 활성화되며 스마트폰이 곧 ‘자산 접근 창구’가 되기도 한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 분실(이나 도난)’이 치명적 사고인 건 그 때문이다. 자칫 은행 계좌를 탈탈 털릴 수도, 돌이키기 어려운 불명예를 뒤집어쓸 수도 있다. 디지털 시대, ‘쓰기 쉬우면서도 보다 정교한’ 정체성 확인 기술의 등장이 절실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ID∙패스워드 딜레마… 디지털 시대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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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접근 수단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아이디와 패스워드’의 조합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말하자면 양날의 검 같은 것이다. 정작 사용자 본인이 아이디나 패스워드를 잊어버려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 실제로 아이디나 패스워드 같은 마이크로인터랙션(마이크로인터랙션과 관련, 보다 자세한 설명은 지난 5월 18일자 스페셜 리포트 ‘‘거의 모든 것의 인터랙션’ 시대, 최후의 승자는?’을 참조할 것) 디자이너는 늘 딜레마에 빠진다. 새로 만들거나 바꾸는 방법을 아주 어렵게 설계하면 정작 사용자가 분실했을 경우 해당 소프트웨어 이용 자체가 힘들어지고, 반대로 너무 쉽게 설계하면 나쁜 마음먹고 달려드는 사람이 얼마든지 찾아내거나 바꿔 유용(流用)할 공산이 커진다. ‘적정선에서의 타협’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반면, 정교하게 설계되고 첨단 기술로 뒷받침된 바이오메트릭스 기술은 그럴 가능성을 ‘제로(0)’에 가깝게 해준다. 이때 활용 가능한 생체 정보는 △지문 △음성(목소리) △얼굴 모양 △DNA △홍채 △망막 △체취 등 다양하다. 물론 지문이나 얼굴 모양 등은 예전부터 사용돼온 정보다. 하지만 여기에 디지털 기술이 더해지며 정확성과 사용성, 편의성 등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됐다.

유럽에서 근대 국가가 발달하던 시절, ‘안면 인식법’은 범죄자를 더 철저히 관리∙감시할 필요성이 생겼을 때 처음 등장한 기술 중 하나였다. 다만 당시엔 사람 얼굴을 유난히 잘 기억하는 사람을 경찰관으로 선발, 그들에게 ‘안면 인식을 통한 범죄자 판별’ 임무를 맡겼다. 17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 관행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미묘한 사건∙사고’에서의 판단에 활용됐다. 하지만 판별자의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억울한 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의 안면 인식 기술은 전혀 다르다. 빅데이터 기술에 기반한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을 활용, 무수한 데이터 속에서 인공지능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오류의 가능성을 제로에 가깝게 줄일 수 있다(인공지능이나 딥러닝과 관련, 보다 자세한 설명은 지난 3월 23일자 스페셜 리포트 ‘“인공지능의 미래가 두렵다”는 당신에게’를 참조할 것).

 

노트7이 채택한 바이오메트릭스, 홍채 인식

디지털 시대의 바이오메트릭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전 시대의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여기, 아주 좋은 예가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출시한 갤럭시 노트7 홍채 인식 기능이 바로 그것.

인간 눈의 구조

홍채 인식(iris scanning)이란 인간 눈동자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 즉 홍채의 모양을 인식해 그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홍채 표면에 나타나는 무늬도 전부 제각각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홍채 형태(pattern)는 일생을 두고 변하지 않는다. 식별 기준이 되는 특징 수만 해도 지문은 46개, 홍채는 266개로 차이가 크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눈동자 자체를 타인의 것으로 대체한다면 모를까, 홍채 형태는 지문과 달리 위조가 전혀 불가능해 그만큼 확실한 식별 기준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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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서 보듯 갤럭시 노트7의 홍채 인식 과정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친다. 내장된 카메라로 사용자의 눈을 촬영한 기기는 눈 모양을 스캐닝, 그중 홍채 형태만 추출한 후 데이터로 인코딩해 저장한다. 이후 사용자가 인증을 위해 특정 부위에 눈을 다시 갖다 대면 기기는 등록 단계에서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둔 사용자의 홍채 형태 코드와 이를 대조한 후 본인 여부를 최종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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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법도 간단하다. 홍채 인식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실행하고 화면의 설명에 따라 기기 전면 상단을 지그시 인식하기만 하면 사용자 본인의 홍채 형태가 ID로 등록된다. 이렇게 등록된 홍채는 크게 △잠금 해제(화면, 보안 폴더) △웹 로그인(삼성 패스 활용, 기본 탑재 브라우저에서만 가능) △앱 로그인과 본인 인증(삼성 패스 활용, 2016년 8월 현재 국내 3개 은행 모바일 뱅킹 앱 다운로드 후 활용 가능) 등의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다. 홍채 인식엔 인체에 무해한 적외선(IR) LED가 쓰이며,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상태에서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단, 선글라스는 제외).

 

삼성전자, ‘긍정 인증’ 바이오패스 시대 열다

갤럭시 노트7의 바이오메트릭스는 소위 ‘긍정적 인증 방법’을 기반으로 한다. 특정 데이터를 입력해두고 해당 데이터와 합치하는지 여부를 인증하는 방식이다. 문자나 숫자 등 기존에 쓰이던 ID와 성격이 같지만 생체 정보를 판단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바이오패스(BIOPASS, 생물학적 허가증)’라고도 불린다.

이와 대비되는 방식이 ‘부정적 인증’이다. 특정 형태를 입력해놓고 그와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사람은 통과시키고 일치하는 형태를 지닌 사람은 잡아내는 방식이다. 공항 검색대 같은 장소에서 범죄 이력이 있는 여행자를 색출할 때 주로 쓰인다. 이처럼 범죄자 관리에 최적화된 기능은 최신 바이오메트릭스 기술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범죄자라면 누구나 수색의 눈을 피해 자신을 위장하려 할 게 분명하다. 따라서 이럴 땐 (위장이 불가능한) 생물학적 특성을 동원,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범죄를 다루는 공공기관이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바이오메트릭스 기기를 도입, 사용하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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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문화의 확산과 함께 일상에 필요한 모든 기술이 손안에 잡힐 듯 간편해지고 있다. 바이오메트릭스 역시 그런 흐름을 타고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되는 중이다. 특히 바이오패스 기술은 ‘PC 시대’가 시작될 때부터 사용자를 혼란스럽고 귀찮게 해온, ‘모바일 시대’ 이후엔 작아진 자판으로 사용자의 골치를 아프게 했던 ID와 비밀번호 체계의 훌륭한 대체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인식 오류 확률을 확 줄인 지문 인식 앱이 개발되는가 하면, 고가의 홍채 인식 장비는 스마트폰 앱으로 개발될 정도로 소형화∙간편화됐다. 음성 인식 기술도 날로 정교해지는 추세다.

생체 인식 기술의 쓰임새도 점차 확장되고 있다. 종래의 범죄 관련 영역에서 벗어나 점차 더 긍정적이고 일상적인 측면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발상의 전환은 때로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다. 평생 바뀌지 않는 ‘나’만의 특징. 한때 범죄자의 발목을 묶는 사슬 정도의 역할에 그쳤던 그 정보가 이젠 ‘(타인에 의해 잘못 유용되는 일 없이) 스마트폰 문화를 아낌없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가능성’이란 선물로 돌아오고 있다.

 

올해 일정 닻 올린 임직원 해외봉사단, ‘여섯 살 해봉단’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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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스페셜리포트_도비라 1

‘현지인에게 가장 필요한 걸 가장 우리다운 방식으로 건넨다.’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 활동을 관통하는 첫 번째 가치다. 말하자면 ‘삼성전자 보유 기술을 바탕으로 현지인이 자신들에게 당면한 사회 문제 해결의 물꼬를 트고, 더 나아가 진일보한 가치까지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시나리오다.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 활동이 ‘정보통신기술(IT) 환경 개선과 교육’을 주축으로 구동되는 건 그런 측면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_일본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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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원이 되려면 만만찮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평균 경쟁률은 적어도 8대 1, 많게는 10대 1에 이른다. 사내 인트라넷에 지원자 모집 공고가 올라오기 한참 전부터 뜻 맞는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독창적 봉사 활동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회의에 돌입한다. 파견이 확정된 후엔 같은 팀에 배정된 임직원끼리 바쁜 일정 틈틈이 시간을 내어 ‘현지인에게 뭘 더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고 그에 필요한 준비 작업에 열중한다.

올해부턴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해졌다. 봉사 현장의 실제 수요(needs)를 보다 면밀하고 심도 있게 파악, 현지인을 실질적으로 돕는 일명 ‘프로젝트 봉사’ 활동 비중이 강화된 것. 그간의 운영 노하우에서부터 건져 올린, 일종의 방향 감각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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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처음 도입된 프로젝트 봉사는 일반적인 봉사와 그 성격이 좀 다르다. 일단 봉사 기간이 한참 남은 시점에서부터 현지 비정부기구(NGO)와의 지속적 협의를 거쳐 철저한 사전 준비 작업이 이뤄진다. 또한 핵심 프로그램은 봉사가 끝나고 단원들이 떠난 후에도 현지 주민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알맹이’를 갖춰 설계된다. 자연히 파견 국가가 늘수록 ‘프로젝트’ 수도 덩달아 증가한다. 특정 지역이 겪는 문제도, 그에 대한 해결책도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에티오피아. 여성의 인권 수준이 낮아 조혼(早婚)이 무시로 이뤄지고,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이곳에 임직원 해외봉사단을 파견하면서 올해 삼성전자는 일명 ‘여성 자립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희망 여성을 모집, 요즘 에티오피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사진 촬영∙편집 기술을 전수하고 스튜디오 창업 교육을 제공하는 게 골자. 이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거친 여성이 ‘사진’을 매개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려는 것이다.

사실 프로젝트 봉사는 몇 년 전부터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종종 시도돼왔다.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무분별한 유전 개발로 산업화가 가속화되는 바람에 대부분의 국민이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간파한 아제르바이잔 파견 봉사단원들은 기간 중 현지인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보급하는 봉사 활동을 펼쳤다.

그뿐 아니다. 전기 사정이 나쁜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Congo, 이하 ‘DR콩고’)과 브라질 오지 마을을 찾은 단원들은 ‘쉐이크 딜라이트’란 명칭의 손전등을 제작,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쉐이크 딜라이트는 별도 전원을 연결할 필요 없이 흔들어주기만 하면 자동으로 전기를 발생시켜 빛을 내는 장치다.) 잠비아에선 야간 교통사고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 못 쓰는 휴대전화 배터리를 재활용해 만든 야간 통행용 휴대 전등 ‘선라이트’ 제작, 보급에 앞장섰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한 곳인 멕시코 유카탄 지역 주민을 위해선 디지털 사진 강의 프로그램이 기획됐다. 베트남 지역에선 못 쓰는 자전거를 이용해 제작된 놀이기구 ‘달베 자전거’가 현지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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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하나를 가득 채운 학생들의 검은 얼굴. 그보다 더 시선을 모으는 건 얼굴보다 검고 깊은 눈동자다. 기초 인코딩 요령에서부터 사무용 소프트웨어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현지 통역의 진행은 서툴고 가뜩이나 느린 인터넷 접속은 툭하면 끊기지만 학생들은 도통 집중력의 끈을 놓을 줄 모른다. DR콩고∙세네갈∙브라질∙베트남…. 지난 2010년 시작된 이후 매년 그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의 ‘단골 아이템’ IT 교실 풍경이다.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은 현지 학생들의 취업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IT 기술 교육을 국가별 상황에 맞춰 진행한다. 파견국 정보와의 사전 조율을 통해 수요를 파악하는 한편, 현지 NGO와의 연계를 거쳐 실행 단계에서의 도움도 받는다. 이러닝(e-learning)센터와 디지털 도서관 등 지역사회 발전에 필요한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한편, 실제 학생 교육에도 힘을 기울여 2016년 8월 현재 총 23개국의 현지 학교에 디지털 교육 기자재(PC∙모니터 등)를 기증했고 임직원 봉사단원들이 교육 봉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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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T 기업답게 삼성전자가 전수하는 기술 교육은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 받는다. ‘IT 교육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고루 지원해준다’는 점에서 현지인의 호응은 기대 이상이다. 임직원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송재란<위 사진> 삼성전자 사회봉사단사무국 대리는 “실제로 IT 교실 운영에 참여한 삼성전자 임직원은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현지 학생들의 열정에 부응하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보다 훨씬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교육에 나서곤 한다”고 귀띔했다. “우리에겐 이미 익숙해져 일상이 된 걸 가르치지만 현지인은 ‘새로운 걸 알게 됐다’며 진심으로 고마워해요. 그럴 때면 ‘아, 내가 정말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구나!’ 싶죠. 평소엔 느끼지 못하다가도 해외봉사 한 번 나가보면 확실히 알게 돼요. 삼성전자 임직원으로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걸 갖고 있는지, 나눠줄 건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런 사실을 깨달으면 갑자기 마음이 넉넉해지죠.”

 

중제 지난 2010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아담(Miradham Kamilov)<아래 사진> 무선사업부 소프트웨어전문개발팀 선임은 다음 달 2일 임직원 해외봉사단 자격으로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을 찾는다. 이번 방문이 그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 자신이 우즈벡 출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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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에선 1년에 한 번 ‘IT위크’란 행사가 열려요.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 IT교실도 그 즈음 진행되죠. 현지에서 IT교실의 유명세는 상당해요. 전 세계 IT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주최하는 행사인 만큼 기간 중 현지인들은 IT 분야 업무에 대해 많이 배우죠. 5년 전쯤부턴 정부 지원도 한층 적극적 형태로 바뀌었어요. 실제로 요즘 우즈벡 청년 인구의 절반가량은 IT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이번 봉사는 저 혼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삼성’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 기왕이면 고향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선배’로 기억돼야죠.”

삼성전자가 실시한 해외 IT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꿈을 키운 인재가 성인이 된 후 삼성전자에 입사, 그 꿈을 실현해가는 시나리오는 아담 선임 말고도 또 있다. 지난해 역시 임직원 해외봉사단원 자격으로 모국 베트남을 찾은 빗하(Nguyen Viet Ha)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반도체연구소 책임이 그 주인공(빗하 책임의 베트남 봉사 관련 내용은 ‘삼성전자 해외봉사단, 베트남 오지마을로 봉사활동을 떠나다’란 제목의 기사로 삼성전자 뉴스룸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의 활동 이력이 한 줄씩 늘어갈수록 점점 더 많은 IT 꿈나무가 현지에서 그 뿌리를 튼실히 내려가고 있다. 초기엔 많지 않았던 교육 ‘이후’ 교류도 점차 풍성해지는 추세다. 실제로 일부 단원은 봉사단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자신이 가르쳤던 현지 학생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IT교실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취업에 성공했다”거나 “IT교실에서 배운 내용 덕에 대회에 나가 상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면 단원들은 “바쁜 틈틈이 고생해가며 다녀온 봉사가 결코 헛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새삼 흐뭇해지곤 한다.

아담 선임에게도 잊히지 않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지난해에도 우즈벡 봉사에 참여했었거든요. 타슈켄트기술대학(TUIT)에서 드론 관련 기초 교육을 실시했는데 유독 ‘미로길’이란 친구가 눈에 띄었어요. 수업 때도 ‘참 똘똘한 아이다’ 싶었는데 저희가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궁금증을 계속 물어보며 공부를 계속하더라고요. 절 비롯한 단원들도 원격 멘토링 형태로 지원을 이어갔고요. 그 친구, 결국 자신의 힘으로 만든 드론을 띄우는 데 성공했죠. 지금요? ‘자율 비행 솔루션’ 만드는 엔지니어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답니다.”

 

“남을 받들면 내가 올라간다” _로버트 잉거솔(1833~1899) 미국 법조인 겸 정치가 해외봉사단 활동을 경험해본 삼성전자 임직원은 하나같이 봉사 당시를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이라고 말한다.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현지인의 폭발적 반응. ‘뭔가 뜻깊은 일을 해냈다’는 충만감은 지난한 준비 과정과 현지에서 겪는 크고 작은 고생의 기억을 가뿐히 날려버린다. 봉사 전후 수 개월간 동고동락한 팀원들과 한층 탄탄한 유대관계를 갖게 되는 건 ‘덤’이다. 이런 충만감을 만끽한 이 중 일부는 실제로 봉사를 생활화한다. 마치 전도하듯 주변 동료나 선후배에게 봉사를 권하기도 한다.

‘봉사’를 계기로 만나 사내 결혼에까지 성공한 허영∙이유경 부부가 대표적 예다. 삼성전자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에 재직 중인 두 사람은 자타공인 ‘봉사하는 부부’다. 허영 사원은 재작년과 작년 임직원 해외봉사단의 일원으로 각각 브라질과 DR콩고에 다녀왔다. 이유경 사원 역시 올해 임직원 해외봉사단 자격으로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른다. 두 사람의 결혼식 주례를 서며 백년가약을 지켜본 이 역시 지난해 허 사원과 함께 DR콩고 봉사에 나섰던 삼성전자 임직원 선배(당시 봉사팀장)였다.

5 6 ▲허영(위 사진)∙이유경 부부는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이 맺어준 자타공인 ‘봉사 커플’이다. 허 사원은 재작년과 작년 브라질과 DR콩고에 다녀왔고, 이 사원 역시 올해 베트남 봉사단에 합류하며 임직원 해외봉사단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단발성 봉사로 출발했지만 ‘지속가능한 지원’을 꾀하는 임직원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14년 DR콩고에 파견됐던 임직원 해외봉사단원들은 읽을 책 한 권조차 변변찮은 그곳 아이들의 현실을 접한 후 한국에 돌아와 삼성전자 소속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그림책을 자체 제작, 기부했다. 같은 해 브라질 봉사단원들은 현지 아이들이 직접 쓴 감사 편지를 받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허영 사원은 “내 작은 손길 하나로 현지 학생들의 인생이 진짜 바뀔 수 있단 사실을 확인할 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보람을 느낀다”며 “출발은 ‘봉사’일지 몰라도 귀국행 비행기에선 오히려 ‘힐링’ 받았다고 느낄 때가 잦다”고 말했다.

임직원 해외봉사가 뭔가를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란 사실엔 아담 선임도 동의했다. “임직원 해외봉사단 참여는 삼성전자 임직원이라면 한 번쯤 겪어볼 만한,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치열한 경쟁률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죠. 단순한 여행과도 전혀 다릅니다. 수많은 이들과 만나 크고 작은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가고, 그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도 있으니까요. 업무와 관련된 영감을 얻을 기회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비록 개인 휴가를 반납해야 하고 준비 시간도 만만찮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에요.”

 

중제5 7  ▲인터뷰에 응한 네 사람은 하나같이 “남에게 베푼다는 맘으로 출발했다 뜻밖에 ‘힐링’ 하고 돌아오는 게 임직원 해외봉사단 활동”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임직원 해외봉사단을 꾸린 건 지난 2010년. 세네갈에 아프리카 총괄이 들어서는 것과 시기를 같이해 ‘회사 차원에서 현지 국민에게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안팎에서 머리를 맞댄 결과로 첫선을 보였다. 이후 봉사단 운영 노하우가 쌓이며 파견 국가 범위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으로 확장됐다. 첫해 ‘봉사단원 31명, 교육 대상자 50명’이었던 프로그램 규모 역시 올해 ‘봉사단원 200여 명, 교육 대상자 1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2016년 8월 현재까지 삼성전자가 임직원 봉사단을 파견한 국가는 모두 8개. 봉사단원의 누적 규모는 1121명에 이른다. 기간 중 전 세계 개발도상국에 구축된 IT 교육 시설은 23개, 프로젝트 봉사는 11건이었다.

삼성전자가 임직원과 함께 진행 중인 해외 봉사 활동은 전 세계적 흐름과도 궤를 함께한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국제연합(UN)이 발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17개 항목 중 ‘양질의 교육(Quality education)’과 ‘적절한 일자리와 경제 성장(Decent work and economic growth)’은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이 추구하는 두 가지 덕목, 즉 △일자리 창출로 연계될 수 있는 교육 봉사 △현지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 봉사와 상당 부분 지향점이 같다.

삼성전자는 올해도 지난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봉사팀이 출국, 현지에서의 일정을 이미 시작했다. 다음 달 2일엔 우즈벡 봉사팀이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사회봉사단사무국에 따르면 오는 11월까지 200여 명의 임직원 봉사단원이 7개국을 방문, 현지 IT 학습 환경을 구축하고 개선하며 현지 사정에 최적화된 프로젝트 구축에 앞장설 계획이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삼성전자 임직원 해외봉사단 활동, 올해는 또 어떤 날갯짓으로 기분 좋은 변화를 이끌어낼까?

3D프린팅 기술, ‘고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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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3D프린팅 기술, ‘고지’가 보인다

 

#가능성의 발견: 점이 모여 평면으로, 평면이 모여 입체로

1970년대 후반, 컴퓨터에 연결해 쓸 수 있는 잉크젯 프린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보급된 ‘드롭 온 디맨드(DOD)’ 잉크젯 프린팅은 잉크를 담은 헤드가 지나가면서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필요한 곳에 필요한 양만큼의 잉크를 분사해 글자나 그림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의 분출 단위는 개당 폭이 10분의 1㎜도 안 되는 사각형 점이다. 이 작은 점이 무수히 모여 육안으로 보면 평면적인 글자나 그림 모양을 만들어낸다.

당시 잉크젯 프린팅 원리를 접한 업계 개발자 사이에선 재밌는 얘기 하나가 떠돌았다. 점이 무수히 모이면 평면이, 평면이 무수히 쌓이면 입체가 된다. 무수한 점으로 평면적 이미지를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면 무수한 평면을 쌓아 입체적 이미지를 찍어내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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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일본 나고야시 공업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코다마 히데오는 최초의 3D 프린터를 개발했다. 자외선을 쐬면 굳는 성질을 지닌 폴리머(중합체)를 한 켜 분사한 후 자외선을 쬐고, 그 위에 또 한 켜 분사해 자외선을 쬐어 굳히는 공정을 반복해 입체적 조형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다. 이어 1984년엔 알랭 르 메오떼 등이 유사한 공정을 특허 등록했다. 하지만 일본도, 프랑스도 당시엔 이 기술의 시장성을 크게 보지 않았다. 결국 두 기술 모두 사실상 사장(死藏)됐다.

르 메오떼가 특허 등록을 마친 지 2주 후, 미국 개발자 찰스 헐(Charles W. Hull)은 코다마가 개발한 3D 인쇄술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 파일 포맷을 내놓았다. 이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3D 인쇄술 개발엔 확연히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헐은 그 추세를 업고 ‘3D 시스템즈’란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다시 20여 년이 흘렀다. 오늘날 3D프린팅은 다양한 작업을 구현해내기도, 기대 이하의 결과물로 사람들을 실망시키기도 하면서 여전히 IT 산업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초 개발 후 36년: 3D프린팅 기술의 숨가쁜 변화상

스페셜 리포트는 △초읽기 들어간 ‘모든 것의 정보’ 시대(2016년 6월 29일) △무섭게 진화하는 기계, 그 종착역은?(2016년 7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글로벌 정보기술 연구·자문 기업 가트너가 꼽은 ‘2016 10대 전략 기술 동향(Top 10 Strategic Technology Trends for 2016)’을 소개한 적이 있다. 3D프린팅 역시 이 목록에 포함돼 있다. 그만큼 3D 인쇄술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과 개발 노력이 뜨겁단 얘기다. 하지만 이 기술의 실제 적용과 관련해선 여전히 회의적 시선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기껏해야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만들어내는 기술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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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팅은 그 원리만 떠올려도 무궁무진한 응용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기술이다. ‘입체적 모양을 아주 정교한 수준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얼마든지 복제해 만들어내는’ 일은 말 그대로 모든 제조업이 꿈꾸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등 세계적 미래학자들은 “종전의 인쇄술, 즉 2D 프린팅이 (무형 자산인) 지식과 정보의 생산∙보급에 혁신을 가져왔듯 3D프린팅은 (거의 모든 유형 자산인) 물건의 생산과 보급에 혁신을 안겨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986년 찰스 헐이 3D시스템사(社)를 설립한 이래 스트라타시스·헬리시스·큐비탈 등 유수 업체가 3D프린팅 기술 개발에 도전했다. 비슷한 시기에 SLS·FDM 등 신기술이 속속 탄생했고 3D 프린터도 대중이 이용하기 쉽도록 ‘보다 작고 저렴한’ 버전으로 개발됐다. 당연히 적용 범위도 확장됐다.

3D프린팅이 의료 분야에 최초로 적용된 건 1999년이었다. 한 청년의 방광 모양을 3D프린팅으로 완성한 후 그 표면에 청년의 세포를 코팅, 제자리에 넣는 수술에서였다. 이 같은 이식(transplant) 수술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이식된 기관을 인체 내 면역세포들이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명 ‘과잉면역 반응’이다. 하지만 3D프린팅 방광 이식술의 경우, (프린팅된) 방광 표면이 환자 환자 자신의 세포로 둘러싸여 있어 그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후 이 원리를 이용한 의료용 3D 조형물 개발은 한층 활발해졌다. 2002년엔 귀나 신장, 뼈 등 신체조직을 미세하게 3D프린팅으로 구현한 인공 기관이 첫선을 보였다.

2006년엔 다양한 재료를 복합적으로 이용한 3D프린팅 기술이 개발됐다. 그 시초는 3D프린팅 시스템∙자재 공급 기업 ‘오브제’가 엘라스토머와 폴리머를 활용해 선보인 최초의 3D자전거였다. 2008년엔 의족에까지 관련 기술이 적용돼 무릎부터 발까지 완벽하게 일체형으로 구현된 3D의족에 의지해 걷는 사람이 생겨났다. 2010년 11월엔 3D프린팅 자동차가, 그해 12월엔 인공혈관이 각각 등장했다.

2011년, 3D프린팅은 식품 분야에까지 적용되기 시작했다. 영국 엑셀러대학교와 브루넬대학교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데클람과 제휴, 새로운 온도 조절∙냉각장치를 장착한 잉크젯 스타일 3D프린터로 초콜릿을 정밀 가공하는 데 성공한 것. 이 같은 시도에 힘입어 오늘날 영국엔 다양한 식자재를 3D프린팅으로 가공, 고객의 눈길과 입맛을 사로잡는 레스토랑이 다수 성업 중이다. 같은 해 (비록 모형이긴 하지만) 3D프린팅으로 제작된 일체형 비행기가 비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3D프린팅 소재는 비교적 가공하기 쉬운 플라스틱을 넘어 까다로운 금속으로까지 확장됐다. 금속을 가루로 만들어 합성수지와 섞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기술 발달의 결과, 2013년엔 로켓 부품을 3D프린팅으로 만들어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강도와 내구성이 높은 금속의 특성을 활용, 의수족이나 보행보조 기구 등이 다양하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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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인쇄술은 여느 신기술에 비해 결코 개발∙성장 속도가 느리지도,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3D프린터에 대한 수요도 만만찮아서 2016년 9월 현재 몇 백 달러(몇 십만 원) 선에 구입 가능한 보급용 제품도 다수 나와있다. 대부분 PC 옆에 두고 손쉽게 쓸 수 있는 데스크톱 형태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새로 선보이거나 꽃피우기 시작한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3D프린팅 역시 “더 빠르게, 더 작게, 더 편리하게”란 방향으로 노력을 이어가야 하는 지점에 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사용자 친화적’ 기술이 될 수 있을까?

불과 20여 년의 역사로, 과학기술로선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3D프린팅. 보다 많은 사용자의 일상에서 사랑 받는 기술로 성장하려면 그 방향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난해 연말 경제 전문지 ‘포춘(FORTUNE)’에 연재된 3D프린팅의 현주소와 미래 가능성에 대한 특집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기사에서 제시된 세 가지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①골프공 법칙_“작게, 가치 있게, 그리고 독특하게”

“골프공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면 3D프린팅을 일상화하는 타깃 아이템이 될 수 있다.” 3D프린팅 소프트웨어∙서비스 제공 기업 ‘머티리얼라이즈(Materialise)’가 만든 일명 ‘골프공 법칙’의 요지다. 실제로 3D프린팅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조리스 필즈는 “작고 가치가 높으며 독특해야 하는 아이템이라면 3D프린팅 대상으로 딱 좋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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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8일자 스페셜 리포트 ‘3D프린팅 유니버스가 몰려온다’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만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는 이 같은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는, 일반 사용자용 아이템이다. 좀 더 전문적 직종에서도 그리 크지 않은 데스크톱 3D프린터를 이용하면 보청기나 치과용 보조물 따위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더 큰 물품에 들어가는 소형 부품도 여기에 해당한다.

 

②색채 프린터_단 한 번의 흐름으로 원하는 제품을!

요즘 시판 중인 데스크톱 3D프린터는 아직 하나의 제품에 다양한 색상을 입히지 못한다. 마치 컬러 인쇄술이 개발되지 못했던 시절, 모든 2D 출력물이 흑백으로만 제공되던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총천연색 프린팅에 익숙해진 오늘날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이 프린터에서 원하는 색깔까지 갖춰 완벽한 모양으로 출력돼 나오길 바란다. 단색 폴리머로 제작, 출력되는 아이템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일반 사용자 차원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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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3D프린팅 자체가 가는 끈 모양의 폴리머에 열을 가해 파일에서 제시된 디자인대로 분사하며 한 층 한 층 쌓아가야 하는 공정인 만큼 하나의 층은 한 가지 색깔을 갖게 된다. 이런 방식에서 완성된 아이템의 표면에 원하는 대로 다양한 색깔이 구현되게 하려면 표면에 색을 입히는 또 하나의 공정이 프린터에 통합돼야 할지 모른다. 실제로 3D프린터 개발자들은 기계를 더욱 단순하게, 더욱 작게, 그래서 더 값싸게 하는 과제와 씨름 중이다. 최근엔 여기에 전혀 새로운 공정을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연동∙개발∙통합하는 과제까지 더해지는 추세다.

그래도 인간은 ‘일단 품은 꿈이라면 어떻게든 이뤄내는’ 끈기와 열정을 갖고 있다. 단 한 번의 흐름(flow)으로 원하는 색상까지 갖춘 최종 제품을 만들어 내놓는 3D프린터를 구현하기 위해 ‘메이커봇’이나 3D시스템 같은 ‘강자’들은 지극 이 시각에도 경합을 벌이고 있다.

 

③금속 프린팅_3D프린팅에 최적화된 원자재, 개발될까?

다양한 기계가 사용되는 현대 생활에서 작은 금속 부품은 ‘절대 필수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를 견고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건 오랫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한 동시에 양질의 금속 원자재 확보도 필요한 고난도 작업이다. 사실 대다수 기계 제조업체의 경쟁력은 정교한 부품 생산 능력에 크게 좌우된다. 3D프린팅은 ‘대단히 정교한 모양을 얼마든지 똑같이 만들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기술을 금속 아이템 제작에 이용할 수 있다면 응용 범위는 크게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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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피츠버그 소재 알루미늄 생산 대기업 ‘알코아’는 “금속 3D프린팅에 최적화된 원자재 개발”이란 목표를 갖고 있다. 스트라타시스나 3D시스템 같은 기존 3D프린팅 업체들도 관련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속 아이템을 인쇄해낼 수 있다면 3D프린팅의 미래는 확실할 것”이란 전문가 전망의 사실 여부가 밝혀질 날이 머지않았다.
 


알고 보면 꽤 거대한 블루오션, 사이니지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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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니지(signage).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단어는 사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퍽 가까운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 사이니지의 어원엔 영단어 ‘사인(sign)’이 있다. 국내에서 사인은 ‘서명(署名)’이란 뜻으로 가장 많이 쓰이지만 ‘표지(판)’ 역시 사인의 의미 중 하나다. 사이니지는 여기서 출발, ‘(표지판처럼) 누군가에게 특정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시각적 구조물’을 통칭하는 용어를 일컫는다. 이를테면 △교통신호등 △간판 △도로표지판 △식당 메뉴판 △(건물에 부착된) 대형 스크린 등이 모두 사이니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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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커뮤니케이션의 ‘잇 아이템’

오늘날 사이니지라고 하면 거의 틀림없이 ‘디지털 사이니지’를 가리킨다. 실제로 요즘 도심을 걷다보면 고층 빌딩 전면에 부착된 전광판이 자주 눈에 띈다. 빠른 속도로 바뀌는, 잘 디자인된 화면 속 이미지와 글씨는 걷거나 차를 타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히 감각적이다. 이 장치가 바로 디지털 사이니지의 대표 아이템 ‘DOOH(Digital Out Of Home, 야외용 디지털 디스플레이)’다. 만약 당신이 여기에 매료됐다면 디지털 사이니지의 신세계에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셈이라고 할 수 있다.

SAMSUNG CSC ▲삼성전자 사이니지는 올 4월 13일 서울 마포 소재 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특별 방송’에서도 활용됐다. 사진은 스마트 사이니지(95형, 모델명 ‘ME95C’) 제품

미래형 커뮤니케이션의 ‘잇(it) 아이템’으로 세계 시장에서 급부상 중인 사이니지, 그 쓰임새와 잠재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제부터 언급할 가상 사례 중에선 당신이 이미 체험한 것도, 아직 접하지 못한 것도 있을 테다. 그리고 각각의 비율은 당신이 글을 읽는 시점에 따라 수시로 바뀔 공산이 크다. 디지털 사이니지 기술이 가공할 속도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 장치로 시동을 건 후 승용차에 올랐다. 내부 전면 대시보드 빼곡히 각종 이미지가 떠올랐다. 웨어러블 기기로 미리 설정해둔 경로를 따라 각 지역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 새롭게 생겨나 내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보기 쉽게 정리된 것이다. 대시보드 자체가 어엿한 사이니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시간 여유만 있다면 ‘반(半)자율운행’ 모드로 설정해놓고 이것저것 탐색해볼 텐데 아쉽게도 오늘은 일정이 촉박하다. 하는 수 없이 ‘진행’ 모드로 바꾼 후 운행을 시작했다.

첫 번째 행선지는 친구 A의 집. 대시보드가 “도착 5분 전”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화면을 터치하자, A 소유 웨어러블 기기에 도착 예정 시각이 자동으로 전송됐다. 때 맞춰 아파트 입구에 나와 있던 A를 태우고 올림픽대로를 달려 얼마 전 새로 생긴 쇼핑몰을 찾았다. 쇼핑몰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해당 쇼핑몰의 엠블럼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그 안에서 해볼 수 있는 체험 시연 이미지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배경과 베젤 둘 다 투명한 재질을 채택, 정보가 담긴 이미지만 보일 수 있게 만든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활용 사이니지’다.

주차장 입구에서 역시 웨어러블 기기로 관심 매장을 검색한 후 데이터를 전송했다. 잠시 후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장치가 작동, 운전 중인 내 시선에 맞춰 투명 배경 사이니지를 띄웠다. 방문하고자 하는 매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용도다. 차를 세운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당 매장이 있는 층에서 문이 열렸다. 평소 좋아하는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가 모여 있는, 개방형 쇼핑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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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내 키 정도 되는 모델의 전신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이니지. IoT 원리로 구동되는 이 사이니지는 내가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빅데이터로 내 과거 쇼핑 이력을 참조해 내가 좋아할 만한 최신 유행 아이템을 다양한 조합으로 연출, 차례차례 보여줬다. 오는 주말, 여자친구를 만나 산책할 때 입을 만한 옷을 찾고 있었던 터라 가벼운 천연 재질의 페도라와 데님 셔츠, 치노 팬츠가 어우러진 이미지가 등장했을 때 화면을 정지시켰다. 페도라를 터치하자 가격과 브랜드, 디자인이 서로 다른 제품이 차례로 표시됐다. 그중 소재가 톡톡하고 색감이 깊어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제품을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라이트 블루(light blue) 계열 셔츠는 그 자체로 흠 잡을 데 없어 바로 ‘찜’ 했다. 다만 통이 과하게 넓어 보이는 팬츠는 아무리 유행이라 해도 좀 부담스럽다.

고민하다 ‘쇼핑 도우미’를 찾았다. 사이니지 한쪽의 ‘콜(call)’ 버튼을 터치하자 금세 친절한 미소를 띤 여성 도우미가 나타났다. 휴대용 사이니지를 손에 든 채 나타난 그는 내가 고른 아이템을 바로 착용할 수 있게 돕는 한편, 사이니지 보드 위에서 나머지 의상과 액세서리에 어울릴 만한 팬츠도 검색해줬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8 ▲지난해 IFA에서 공개된 사이니지 활용 미래형 쇼핑 솔루션. 사용자의 관심사를 자동으로 인식, 그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광고가 상영된다. 삼성 페이 등을 활용한 결제 기능도 추가할 수 있다 

A가 염두에 뒀던 캠핑 장비까지 구매한 후 푸드코트를 찾았다. 처음 와본 쇼핑몰이었고 규모도 컸지만 푸드코트 찾느라 헤매진 않았다. 웨어러블 기기로 먹고 싶은 음식 몇 가지를 전송했더니 지나는 길목마다 설치된 사이니지들이 해당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장소로 가는 길을 보여줬기 때문. 개방형으로 설계된 푸드코트 입구에도 대형 사이니지가 위치, 판매 중인 음식 이미지를 차례로 보여줬다. ‘매콤한 토마토 요리에 마늘빵이나 찍어 먹을까?’ 사이니지에서 ‘T’ 자를 터치, 토마토 요리를 선택했다. 그와 동시에 사이니지엔 푸드코드에서 판매되고 있는 토마토 요리가 차례로 떠올랐다. 종류가 너무 많은 것 같아 바로 옆 카테고리에서 ‘핫(hot)’과 ‘시푸드(sea food)’ 버튼을 함께 눌러 범위를 좁혔다.

‘지중해풍(風) 매콤 토마토 해물 수프’를 고른 후 ‘사이드디시(side dish)’ 메뉴에서 ‘마늘빵과 치즈를 곁들인 로메인 샐러드’를 골라 사이니지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바구니 모양 아이콘에 넣었다. 화면엔 결제해야 할 총액이 나타났다. 내 웨어러블 기기를 터치, 삼성 페이로 결제하자 사이니지와 웨어러블 기기에 주문 번호가 떴다. A와 나는 편한 자릴 잡고 앉아 푸드코트 중앙 위쪽에 늘어선 사이니지 중 우리의 주문 번호가 나타나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떤 분야에서든 ‘인터랙션’ 가능해

디지털 사이니지가 위 시나리오에서처럼 비단 쇼핑몰에서만 빛을 발하는 건 아니다. 일상 속에서, 그리고 전문적 작업이 수행되는 공간에서 사이니지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이를테면 케이팝(K-pop) 공연장 곳곳에 설치된 크고 작은 사이니지는 무대 정면이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앉은 관객에게도 공연 팀의 세세한 움직임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증강 현실을 적용할 경우, 멤버별 인적 사항과 특징을 알려주는 인포그래픽을 곁들여 볼 수도 있다.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에 상호작용적 요소가 더해지는 셈이다.

스포츠 경기장 역시 디지털 사이니지의 존재감이 돋보일 수 있는 공간이다. 스포츠 경기장은 객석에 따라 경기장 전체가 잘 안 보이는 사각(死角)지대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눈이 빠른 사람이라도 중요한 장면을 놓치기 쉽다. 이럴 때 사이니지를 적절히 활용하면 모든 경기 장면을 순간순간, 그리고 구석구석 즐길 수 있다. 각 선수의 성명과 특기사항, 경기 흐름에 대한 해석 등 추가 정보 제공도 가능해 경기를 한층 깊이 있게 감상하기에도 좋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3 ▲아웃도어용 소형 사이니지는 방수·방진 기능을 지원, 어떤 환경에서도 보다 생생한 경기 관람을 돕는다

협력 작업이 필요한 시각적 프로젝트에서도 사이니지는 단단히 한몫한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디자인 작업을 거쳐 목업(mock-up)을 제작, 최종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여럿이 머릴 맞대고 합의안을 도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껏 이런 회의는 빔프로젝터나 오버헤드프로젝터(OHP) 사용이 가능한 공간에서만 진행할 수 있었다. 실내가 너무 어두워도, 너무 밝아도 자료 공유가 쉽지 않았다.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한 점도 문제였다.

하지만 태블릿 PC와 연동된 LED 사이니지와 함께라면 어디서나 아무 제약 없이 시각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설사 야외라 해도 밝기 조절 기능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열람이 가능하다). 회의 진행 시 중앙 통제용 대형 사이니지와 개별 참석자용 모바일 사이니지를 연동시키면 모든 참석자가 원안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덧붙여 모두와 공유할 수 있다. ‘일방통행식(one-way)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4 ▲삼성전자가 개발한 전자 칠판(모델명 ‘DM65E-BC’) 시연 장면. 손가락으로 글씨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손바닥이 지우개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어 편리하다. 다수의 의견을 조율하기도 편리해 ‘인터랙션’ 측면에서 특히 강점이 있는 제품이다

이 같은 디지털 사이니지의 장점은 어떤 조직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특히 브레인스토밍 작업 시 그 효율성은 극대화된다. 집단지성의 효율적 구현에 사이니지가 기여할 수 있는 몫이 작지 않단 얘기다. 교육 분야에서도 시청각 미디어의 효율성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디지털 사이니지는 시청각 미디어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갖춘 장치다. 일단 화면 자체가 선명하고 눈에 부담을 덜 준다. 시청 위치에 따른 화면 차도 크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인터랙션(interaction)’이 가능하다.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넘어서서 학생들에게 창의적 적극성을 유도하는 게 21세기 교육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만큼 사이니지가 교육 현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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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6 ▲기차역(위 사진)과 공항에서 활용 가능한 사이니지를 가상으로 구현한 모습 

지금껏 대중이 가장 흔히 접할 수 있었던 사이니지 중 하나는 도로표지판이었다. 디지털 사이니지의 활용도가 가장 큰 분야 중 하나가 ‘교통’이기도 하다. 실제로 기차∙전철역과 고속버스 터미널, 공항 등에서 시시각각 출발하고 도착하는 운송편의 정보를 정확하고 알기 쉽게 보여주는 전광판은 모두 사이니지다. 비행기나 KTX 열차 좌석에 앉았을 때 시선이 닿는 곳에 위치한 스크린 역시 사이니지다. 이 밖에 △호텔 경영 △헬스케어 △미술(박물)관 △관광(유적)지 △보안 시설 등에서도 사이니지의 쓰임새는 활발하다. 그리고 그 적용 분야는 계속 늘고 있다.

 

‘220억 달러 시장’ 거머쥘 승자는?

글로벌 인터넷 시장 조사 기관 ‘모도어 인텔리전스’의 추산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 세계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 규모는 149억 달러(약 16조 7000억 원) 수준이다. 연간 성장률은 8% 선. 이 추세대로라면 오는 2020년엔 219억 달러(24조 5000억 원)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 ‘거대 블루오션’을 견인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지난 2009년 이후 7년 연속 사이니지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 점유율은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의 경우 28.1%로 압도적 선두 자리를 지켰다. 첨단 사이니지 기술을 활용한 ‘히트 상품’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LCD 기반 투명 디스플레이 △세계 최대 규모 e-LED 사이니지 △초슬림 베젤(1.7㎜) 비디오월(모델명 ‘UH55F-E’) △UHD 사이니지 △DOOH 활용 세이프티 트럭(관련 기사는 여기 참조) 등이 대표적 예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7 ▲올 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ISE 삼성 부스 입구에 설치, 관람객을 맞았던 미러 디스플레이

삼성전자의 이 같은 활약은 디지털 사이니지 기술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글로벌 전시와 평가 자리에서 단연 주목 받고 있다. 올 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 최대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시회 ‘ISE(Integrated Systems Europe) 2016’에서 삼성전자는 ‘AV뉴스(AVNews)’가 주는 ‘올해의 AV 디스플레이 혁신상(AV Display Innovation of the Year)’을 수상했다. 지난 6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시회 ‘인포콤(InfoComm) 2016’에선 삼성전자 스마트 사이니지 아웃도어 ‘OHD’ 시리즈가 인포콤 공식 미디어 파트너사 ‘커머셜 인티그레이터’ 선정 ‘최고의 상업용 디스플레이 제품’에 꼽히기도 했다. ‘디지털 사이니지 매거진’이나 ‘렌탈앤드스테이징 시스템’ 등 사이니지 전문 매체가 UH55F-E를 ‘최고의 비디오월’로 선정하는가 하면, 미국 디지털 AV 전문 미디어 ‘레이브’는 삼성전자를 ‘가장 호감 가는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로 2년 연속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삼성전자는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16’에서 ‘모션 센서 터치 사이니지 솔루션’<아래 영상 참조>을 선보였다. 3D 센서를 사이니지와 결합, 사용자 동작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신개념 기술이다.

 

“디지털 사이니지, 인류 삶 바꿀 것”

사이니지는 ‘도장을 찍어 자기 소유물임을 알리는 행동’을 일컫는 라틴어 ‘시그나레(signare)’에서 출발한 단어다. 인류 문화는 날로 편리하고 정교하게 발달해왔으며, 사이니지 역시 그에 맞춰 진화를 거듭했다. 그 결과, 여러 개의 단어 조합이 말해야 할 내용은 점차 (간판과 표지판, 게시판 등) 간단한 이미지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이미지는 한층 역동적이면서도 심미적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메시지는 보다 정확해졌고 메시지 발신자와 수신자 간 상호관계성(interaction)은 보다 강화됐다.

사이니지는 명실상부한 ‘차세대 커뮤니케이션의 대표 주자’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모든 측면에서 첨단 ICT 기술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아이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이니지 관련 기술∙제품 개발 레이스에 전 세계 유수 두뇌와 기업이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이렇게 치열한 시장에서 업계 선두주자답게 열정적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어떤 기업보다 사이니지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디지털 사이니지가 아날로그 광고판을 대체, 향후 인류 삶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란 송준호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엔터프라이즈마케팅그룹 과장의 설명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디지털 불평등 개선 해법? 디지털에서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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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엔 두 명이 앉아 있다. 왼쪽 사람은 여성, 나이는 20세쯤? 즐거워하는 것 같다. 오른쪽은 40세 전후의 남성.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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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공상과학 같은 소재 ‘보는 인공지능’

‘다행이다!’ 사키브 샤이크(Saqib Shaikh)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 막 그는 가까운 동료들에게 자신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얘길 들려줬다. 스마트 안경에 인공지능 원리를 탑재, 시각장애인이 주변 상황을 눈으로 보듯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앱이다. 샤이크는 자신이 개발한 앱 얘길 놀라워하며 좋아해주는 동료의 반응이 좋았다. 뭣보다 손수 만든 앱이 정확히 구동한다는 점이 뿌듯했다.

영국 런던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는 샤이크는 일곱 살 때 시력을 잃은 이후 시각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장애인학교에서 난생처음 컴퓨터를 접한 그는 급속도로 디지털 세계에 빠져들었고, 얼마 안 가 역량 있는 개발자로 성장했다. 그의 관심사는 자연스레 ‘장애인의 불편을 덜어주는 소프트웨어 개발’로 이어졌다. 그리고 오랜 노력 끝에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으로 주변 상황을 인식해 알려주는 앱 ‘씨잉 AI(Seeing AI)’ 개발에 성공했다.

시각장애인이 씨잉 AI 채택 스마트 안경을 착용하면 일상이 놀랍도록 편리해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길을 걷다 주변 상황이 궁금해졌을 때 안경테를 문지르면 안경테에 내장된 카메라가 사용자 눈앞 상황을 촬영, 해당 이미지를 인공지능을 검색한 후 언어로 변환한다. 이 언어는 다시 음성으로 전환, 역시 안경테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사용자의 귀에 들어간다. 길을 걷다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의 정체가 궁금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며 안경테를 문지르면 “한 소년이 스케이트보드를 탄 채 회전했다”고 말해주는 식이다.

씨잉 AI의 가능성은 스마트폰과 연동될 경우 한층 커진다. 음식점에서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씨잉 AI 채택 스마트 안경을 착용한 사용자는 점원이 건네는 메뉴를 받아들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 이때 앵글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으면 안경테 내장 스피커는 “왼쪽으로 약간 회전한 후 20㎝ 정도 뒤로 물러나라”와 같은 안내 음성을 반복적으로 내보낸다. 메뉴판이 제대로 찍힌 후엔 거기 쓰인 글씨까지 자동으로 읽어준다. “애피타이저, 샐러드, 파니니, 피자… 파스타.” 이쯤 되면 공상과학 영화가 따로 없다.

 

이야기 둘, UX에 최적화된 솔루션 ‘차세대 AAC’

“반갑습니다.” 태블릿에 내장된 스피커폰 너머로 인사 음성이 들려왔다. 그 직후 스크린에 입력된 ‘반갑습니다’ 글자를 내보이는 조재현(39)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장애인 인권 강사로 활동 중인 조씨는 뇌병변으로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건 물론, 발화장애로 ‘말로 하는 대화’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와의 의사소통엔 별 문제가 없다.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손가락으로 태블릿 자판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면 태블릿이 그걸 음성으로 변환해주기 때문.

조재현씨가 사용 중인 태블릿엔 보완대체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이하 ‘AAC’) 장치가 탑재돼 있다. 삼성전자가 사내 크리에이티브랩(Creative lab, 이하 ‘C랩’) 과제 형태로 개발 중인 일명 ‘차세대 AAC 솔루션’이다. 조씨는 이 장치에 대해 “예전에 사용했던 제품과 비교해 기능이 많은 데다 음성 변환도 훨씬 부드럽게 된다”며 “특히 마침표 구분 기능이 있어 음성이 문장 단위로 변환, 기계음처럼 들리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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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AAC 솔루션은 여러모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에 최적화돼 있다. 사용자 눈높이를 고려해 설계된 ‘영역 선택’ ‘문장 선택’ 등의 특수 키(key)는 행사 진행이나 강연 기회가 잦은 조재현씨에게 특히 요긴하다. 직접 입력하는 글자는 물론, 앱에서 제공되는 그림이나 문장까지 선택하면 곧장 음성으로 출력해주는 기능도 발화장애인 입장에선 쓰임새가 다양하다.

 

이야기 셋, 전신마비 딛고 ‘인터넷 스타’ 된 의사

“병원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느꼈습니다, 두 눈에 가득한 영(靈)적 힘을요. 망가진 육신과 삶이 어두웠던 만큼 그의 영혼은 더욱 밝게 타올랐죠. 누구라도 그걸 외면할 순 없었을 겁니다. 관건은 ‘어떻게 그 힘을 끌어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울까?’ 하는 거였죠.”

‘의사 출신 스타 블로거’ 장쑤(Zhang Xu, 53)가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을 때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끈 미국인 의사 존 앨디스(John Aldis)의 말이다. 장쑤의 삶은 그가 34세였던 지난 1997년을 기점으로 극적 반전을 맞았다. 승승장구하는 정형외과 의사로 국영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그는 예멘에 파견 진료를 떠났다가 사고로 목을 다쳤다. 베이징으로 호송됐을 당시 그는 거의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치료 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평생 전신마비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길 듣곤 자살을 기도했다.

그 즈음, 중국에서 장쑤를 치료하던 일본인 의사 한 명이 그에게 ‘조니(Joni)’란 제목의 책을 선물했다. 장쑤와 비슷한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한 미국 소녀의 수기였다. 책을 읽은 후 감동 받은 장쑤는 자신의 동료인 앨디스 박사가 중국으로 병문안 왔을 때 “이 책을 중국어로 번역, 출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앨디스 박사는 인터넷 검색을 활용, 저자와 접촉했고 어렵잖게 승낙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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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유망한 정형외과 전문의였던 장쑤(왼쪽 사진)는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후 우연찮은 기회에 인터넷을 접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 일은 장쑤에게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앨디스 박사는 “자신이 오프라인에서 몇 주간 시도해도 못해냈던 일을 내가 인터넷에서 손쉽게 처리하는 걸 본 장쑤가 어느 날 인터넷에 대해 묻기 시작하더라”고 말했다. 앨디스 박사는 이후 장쑤에게 최신형 노트북을 선물하고 인터넷 사용법도 가르쳐줬다. 하지만 온몸을 거의 쓰지 못하는 그에게 자판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窮則通)! 때마침 태국 방콕에 거주하던 장쑤의 지인 한 명이 헤드마스터 커서 컨트롤 장치를 그에게 선물했다. 중국의 한 IT 기업은 음성으로 커서를 움직여 중국어와 영어를 입력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그에게 기부했다.

이후 장쑤는 인터넷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장애를 갖기 전보다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중증장애인 전용 재활센터 건립’이란 새 목표도 갖게 됐다. 결국 그는 지난 2005년 주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고향 안샨에 ‘안샨 베데스타 재활 선교회’란 비영리단체를 설립, 현재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모두를 위한 인터넷’,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다

혹시 ‘DDD(Disability Digital Divide)’란 용어를 아시는지. 우리말로 번역하면 ‘장애인 디지털 불평등’ 정도가 될 이 용어는 최근 몇 년간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두 중 하나다. IT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약진, 현대인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바꿔놓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지와 감각이 멀쩡해) IT 기기 조작에 능숙한’ 사람들에게 한정된 얘기다. 이런 기기를 다루려면 미세한 감각과 정확한 근육 운동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거나 듣는 일, 손을 움직이는 일에 서툰 사람은 IT 세상이 주는 혜택과 거리가 먼 삶을 누릴 수밖에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추산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 인구의 약 15%가 장애를 갖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나머지 85%의 대부분이 쓸 줄 안다 해도 인터넷을 가리켜 ‘21세기 모든 인류를 위한 기술’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미국이나 영국을 중심으로 ‘모두를 위한 인터넷(Internet for All)’ 캠페인이 전개되고 관련 법제가 앞다퉈 만들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이런 동향에 대해선 스페셜 리포트[1]에서도 몇 차례 다룬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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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접근성 개선을 위한 노력 부문에선 삼성전자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그 시도에 가속도가 붙어 다양한 성과가 속속 선보이고 있다. 단적인 예로 시각장애인 사용자를 배려한 스마트폰 ‘갤럭시 코어 어드밴스’는 인쇄물의 내용을 대신 읽어주는 ‘옵티컬 스캔’처럼 시각장애인의 ‘눈’을 대신해줄 수 있는 기능을 다수 탑재, 주목 받았다.

TV 접근성 기능 부문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 TV에서 시각장애인 사용자를 배려한 ‘접근성 바로가기’ 메뉴를 활용, 음성 안내 기능을 활성화하면 △채널 이동 △음량 조절 △방영 프로그램 정보 등을 음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低)시력자의 경우 ‘포커스 확대’나 ‘고대비 화면’ 기능을 활용하면 화면 속 글자를 보다 쉽게 인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리모컨 버튼명을 음성으로 안내, 시각장애인이 버튼 위치를 보지 않고도 파악할 수 있게 돕는 ‘리모컨 익히기’ △저청력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신에게 적절한 볼륨을 선택, 방해 받지 않고 TV를 시청할 수 있는 ‘음성다중 출력’도 눈에 띄는 기능이다. 

그뿐 아니다. △신체 움직임이 서툴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안구 작동만으로 마우스 이용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든 ‘아이캔’ △색약인이 정확하고 풍부한 색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갤럭시 디스플레이 색약 솔루션’ △시각장애인·지체장애인 등이 혼자서 안전하게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돕는 교통 약자 버스 탑승 솔루션 △‘터치(touch)’ 동작을 기본으로 해 손발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한 이가 쓰기엔 여러모로 불편한 스마트폰의 접근성을 개선해주는 솔루션 ‘두웰’ 등 삼성전자가 이미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혹은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 보조 기기와 솔루션은 날로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시각장애인에게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치는 ‘시각장애인정보화교육센터’를 운영, 이 같은 기술을 보다 많은 이와 공유해오고 있기도 하다. (삼성전자의 사용자 접근성 향상 노력은 아래 영상에서 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장애인이 기술적 지원에 힘입어 디지털 공동체에 입문하고 난 이후엔 지금껏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소통’과 ‘참여’의 세계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한두 가지 장애에 가려져 있었을 뿐 그들 역시 풍부한 상상력과 다양한 재능, 따뜻한 사랑을 품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DDD 개선 노력을 통해 장애인이 디지털 공동체의 일원이 됐을 때 돌아오는 긍정적 피드백’은 앞서 소개한 세 가지 사례에서도 충분히 입증된다.

사실 이는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소통 방식이 갖는 특성이기도 하다. 사람의 감각과 기관을 움직여 해야 하는 일을 디지털 기술이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설사 해당 감각과 기관에 장애가 있다 해도 기술적 기반이 뒷받침되기만 한다면 그의 창의력이나 열정을 세상에 표출하는 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디지털화(digitization) 열풍이 낳은, 뜻밖의 선물이라고나 할까?

‘혼자서 이미 군중인’ 1인 가구 세대, 스마트홈 시장 판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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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빠를 깨운다. 벽에 붙은 버튼 중 하나를 누르자, 아빠의 침대가 반으로 접히더니 토스터 같은 모양으로 바뀐다. 아빠는 다 굽힌 토스트마냥 튕겨 나와 던져진다. 그 상태로 바닥이 움직여 아빠를 욕실로 이동시키고 거울 앞에 세운다. 위쪽에서 집게 두 개가 나오고, 그 끝에 달린 치약 묻는 칫솔이 아빠의 이를 닦아준다.

 

#스마트홈의 원조, ‘젯슨 가족’ 하우스

엄마는 여섯 살짜리 막내아들 ‘엘로이’에게 “아침으로 뭘 먹고 싶으냐”고 묻는다. 그런 다음, 벽에 달린 여러 개의 메뉴 중 달걀 프라이를 선택한다. 요리에 서툰 엄마가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못해 달걀 프라이는 다 타버린 닭 구이 같은 맛으로 변해버렸다. 집 안에서 기계에 가장 밝은 엘로이는 조심스레 말한다. “엄마, 아무래도 로봇 가사 도우미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이상은 1960년대 미국 방송국 A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만화영화 ‘젯슨 가족(The Jetsons)’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세계 최초 TV용 컬러 애니메이션 시리즈’였던 이 작품은 요즘도 IT 전문가 사이에서 종종 거론된다. 집∙사무실 등 극중 젯슨 가족의 일상이 펼쳐지는 공간 곳곳에서 ‘스마트홈’ 기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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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홈이란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이하 ‘IoT’)에 기반, 가정 환경 관련 노동 관리를 자동화하는 기술을 일컫는다[1]. 젯슨 가족은 몇 년 전부터 스마트 테크놀로지에서 가장 ‘핫(hot)한’ 장르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스마트홈 기술을 반세기나 앞서 예견한 셈이다. 하지만 젯슨 가족네 집에 등장하는 스마트홈 기술은 요즘 한창 개발되고 있는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를까?

 

#‘안전’과 ‘솔로’ 두 마리 토끼 잡아라!

스마트홈 아이템을 개발, 판매하는 기업 ‘아이컨트롤 네트웍스(ICONTROL NETWORKS)’은 지난 2014년과 2015년 미국∙캐나다 소비자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모아 보고서를 펴냈다. 국내 상황과 다른 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스마트홈 기술에 관한 전반적 동향을 살펴보는 덴 적잖이 도움이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응답자들은 “왜 스마트홈 기술을 구입하는가?”란 질문과 관련, 애니메이션 속 젯슨 가족이 구현했던 모습과는 꽤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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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픽에서 알 수 있듯 응답자가 가장 선호한 스마트홈 기술 관련 키워드는 단연 ‘안전’이었다. 실내 감시 카메라는 말할 것도 없고 실외등 자동 원격 조정 장치와 현관문 원격 잠금 장치, 심지어 집 안 TV를 먼 곳에서 켜고 끄는 장치까지 전부 ‘안전’과 관련돼 있다. 실제로 며칠간 집을 비우거나 밤에 늦게 들어가더라도 저녁이 되면 거실과 현관 앞에 불이 켜지고 거실에 TV가 켜져 있다면 밖에서 볼 땐 누구나 “안에 사람이 있다”고 여길 것이다.

보고서가 보여주는 ‘소비자 선호 스마트홈 기술’, 그 두 번째는 에너지 절약과 관련된 것이다. 추운 겨울 외출할 때 실내 난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던 경험, 누구나 있게 마련이다. 보일러를 ‘외출’ 모드로 설정해놓고 나가면 난방비는 절약되겠지만, 밤에 집에 돌아왔을 때 온 집안이 썰렁해져 있어 온기가 돌게 하려면 한참 걸린다. 그럴 때 난방 장치를 원격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집에 도착하기 전 보일러를 적당히 돌려 따뜻하고 포근한 실내를 만들어둘 수 있다.

일반 가정에서 난방비 다음으로 많이 쓰는 게 조리용 에너지원이다. 여기엔 에너지와 안전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걸려 있다. 집을 나와 한참 가다가 ‘혹시 가스 불을 켜두고 나온 건 아닐까?’ 별안간 불안해졌던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에너지 사용 상태를 확인하고 원하는 대로 바로잡을 수 있는 기술의 중요성을.

이처럼 스마트홈 기술은 도난에 의한 것이든 부주의에 의한 것이든 가정에서 혹 발생할지도 모를 사고를 막는 일, 즉 ‘안전’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나홀로족’ 젊은이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처럼 선호되고 있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 젊은 층일수록 스마트홈 장비 선호도가 높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안전 관련 품목의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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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가는 1인 가구, 스마트홈이 해법?

혼자 사는 사람이 한 세대를 구성하는 건 전 세계적인 추세다. 애틀랜타∙덴버∙시애틀∙미니애폴리스 등 미국 주요 도시는 이미 전체 가구의 40% 이상이 1인 가구다. 워싱턴이나 맨해튼으로 넘어오면 그 비율은 50%에 육박한다. 이 숫자가 놀랍다면 유럽 대도시로 시선을 돌려보자. 프랑스 파리에선 전체 가구의 50% 이상이, 스웨덴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 도시인 스톡홀름에선 전체 가구의 60%가량이 1인 가구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 최대 도시 서울의 경우, 지난해 1인 가구 비중이 27%로 올라서며 4인 가구 비중을 앞질렀다. 아직 해외 대도시에 비해선 낮은 수준이지만 증가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 오는 2020년이면 30%에 이를 전망이다. 산업도시의 특성이 강한 울산 같은 데선 1인 가구 비중이 57%까지 치솟았다.

1인 가구 증가 추세는 어찌 보면 반가운 현상이다. 가족이 가까이 살고 있는데도 굳이 ‘나홀로 라이프’를 즐기고 싶어 혼자 나와 사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훨씬 많은 사람이 직장을 따라 1인 세대를 구성한다. 따라서 1인 가구 비중이 크단 건 그만큼 해당 도시에 경제적 기회가 풍부하단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특히 오래전부터 살아와 익숙해진, 여러 명의 가족 구성원이 한 집에 사는 형태에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안전 사고 발행 위험성이다. 뭔가를 훔치려는 사람 입장에서 ‘빈 집’이나 ‘(여성과 노약자 등) 만만한 사람이 혼자 사는 집’은 꽤 구미가 당기는 먹잇감이다. 에너지 사용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라면 아이가 가스레인지를 켜놓은 채 외출해도 집에 있던 엄마가 끄면 된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이 이런 부주의를 저질렀을 경우 그 사고가 어떤 재앙으로 이어질진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반면, IoT 허브로 연결된 각종 기기가 갖춰진 집이라면 이 같은 문제는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다. 현관을 나오면 알아서 문이 잠기고, 어두워지도록 귀가하지 않아도 거실과 현관 등이 자동으로 켜지며, 거실 TV 역시 자동으로 재생돼 마치 누군가 있는 듯한 인상을 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간 큰 도둑이라도 이런 집에 침입할 엄두를 내긴 힘들 것이다. 그뿐 아니다. 수도관 어딘가가 잘못돼 물이 새더라도 집 주인에게 스마트폰으로 연락이 가기 때문에 집 전체가 물바다 될 염려도 없다.

 

#1000㎞ 거리서 집에 든 강도를 잡다

다음은 1000㎞나 떨어진 곳에서 집에 든 강도를 잡은 수잔(Susan)씨의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전 1년의 절반은 미네소타에서, 나머지 절반은 캔자스에서 살아요. 그래서 이쪽 집에 머무를 때 다른 쪽 집 사정이 늘 궁금했죠. 가격이 합리적이면서도 좋은 제품이 없는지 살펴보던 중 우연히 스마트싱스 스마트 모션 센서와 허브 제품을 알게 돼 구입, 미네소타 집에 설치했어요. 스마트폰에 미니 모니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도 깔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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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 그때 전 캔자스에 살고 있었어요. 오전 7시 58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는데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어요. 1000㎞도 더 떨어진 곳에 있는 미네소타 집 안에 뭔가 움직임이 있다, 는 내용이었죠. 미니 모니터 앱을 켜고 보니 현관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고 문 옆 탁자 위엔 장비 상자 같은 게 놓여 있었어요.

전 그 즉시 미네소타 집 근처 경찰 지구대에 전화해 “누군가 내 집에 들어간 것 같다”고 신고했어요. 바로 그 순간, 도둑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서둘러 나가려다 메고 있던 가방 속 물건이 주르르 흘러내린 거죠. 도둑은 그걸 주워 담느라 몇 분 지체하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3분쯤 후 다시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지하실에도 움직임이 있다, 는 내용으로요. 그쪽 카메라를 모니터로 보니 경찰이 잠복해 있는 게 보였어요.

그 순간, 스마트폰 전화벨이 울렸어요. 받아보니 경찰이더군요. “집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뒤뜰에 검정색 밴이 한 대 주차돼 있는데 혹시 당신 거냐”고 물었어요. 전 아니라고 답했죠. 경찰은 제 얘길 듣자마자 밴을 포위하고 습격, 그 안에 있던 도둑을 잡았어요. 도둑은 벽장에 붙박이로 설치돼 있던 제 금고를 뜯어 도망치려다 경찰차가 골목길을 막고 있는 걸 보고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대요.

근데 참 희한하죠.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전 전혀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어요. 상황이 전개되는 걸 차분히 지켜보면서 오히려 뭔가 힘이 생겨나는 것 같았답니다. 불과 200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이처럼 기분 좋게, 그리고 편안하게 도둑을 잡을 수 있다니! 나중에 제 얘길 듣고 스마트싱스 장비를 둘러본 경찰도 꽤 놀라는 눈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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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홈 기업, 1인 가구에 주목하라

대도시에서 1인 가구가 늘어가고, 타인과 부대끼며 살기보다 혼자 사는 걸 선호하는 젊은 층이 급증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지나친 개인주의가 빚어낼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릭 클리넨버그(Eric Klinenberg) 미국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최근 ‘솔로로 간다: 혼자 살기, 이상할 정도로 늘어나며 놀라울 정도로 매력 있는(Going Solo: The Extraordinary Rise and Surprising Appeal of Living Alone)’이란 책을 펴낸 그는 자신의 오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더 활발하게 사회 생활을 영위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스템이다.

클리넨버그 교수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집단 생활을 영위하고 핵가족을 기본 단위로 살아가는 존재’로 규정돼온 인간이란 생물은 비로소 ‘혼자 살아가기’ 실험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전 세계 사회가 디지털 방식으로 얽히게 되면서부터다. (중략) 이제 인간은 혼자 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시기와 방식, 조건으로 타인과 함께할 수 있게 됐다.”

“혼자서 이미 군중(One is crowd)”이란 주장은 비단 클리넨버그 교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회 평론가들이 “나홀로족이 오히려 더 폭넓고 풍부하게 디지털 사회 생활을 즐기며, 그 연장선상에서 오프라인 사회 생활도 자유롭게 영위한다”고 입을 모은다. 21세기, 새로운 밀레니엄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이 같은 경향은 스마트홈 장비 선호 추세와도 쉽게 연결된다. 그리고 향후 스마트홈 장비가 어떤 방향으로 개발돼야 할지에 대한 ‘힌트’도 제공한다.

미래의 스마트홈 장비에선 안전과 에너지 관리 등 예전 세대가 관심을 보일 분야를 한 단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요리를 해주는 기기, 혹은 음식을 같이 먹을 때 누군가와 나누는 느낌을 제공하는 기기가 나오진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스마트 쿠커’나 (투명 배경 모니터가 활용되는) 가정용 사이니지 같은 장치가 밀레니엄 세대의 선호 아이템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반려동물이나 식물 재배 관련 장비가 각광 받을 수도 있다. 요즘 1인 가구 중에선 동식물을 키워보고 싶어도 집을 비운 사이 관리 문제가 걱정돼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에게 물이나 사료를 자동으로 제공하고, 사용자가 그 상태를 쉽게 모니터링할 수 있게 설계된 기기 등이 각광 받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교실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스마트스쿨의 변신이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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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769년,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황량한 시골. 젊은 부부 한 쌍이 마차를 타고 일대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듯한 어린 아이들이 작업에 한창이었다. 하루 종일 과일을 따고 씻어 껍질을 벗긴 후 화덕에 졸여 잼을 만들고, 그 이후에야 겨우 저녁밥을 얻어먹고 좁은 방에 모여 쓰러져 자는 아이들. 한창 배워야 할 나이지만 학교에 가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날 남편은 결심했다.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농장을 새로 차리고, 불쌍한 아이들을 데려다 제대로 교육 기회를 줘야겠다!’ 그에게 교육이란 ‘어린 세대의 인생 준비를 돕는 것’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머리와 손발, 마음을 조화롭게 발달시켜 실생활에 쓸모 있는 재능과 직관력을 길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 는 게 남편의 믿음이었다. 남편의 이름은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 ‘근대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교육관은 오늘날까지도 교육 철학의 기초가 되고 있다.

 

021907년, 눈빛이 유난히 초롱초롱한 한 여성이 이탈리아 로마 빈민가의 한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 건물엔 ‘까사 데이 밤비니(Casa dei Bambini, 이탈리아어로 어린이의 집이란 뜻)’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아침이 되자, 아이들이 하나둘 건물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행동거지가 유난히 부산스러운 아이들, 주위가 산만해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 거동이 불편해 엄마 등에 업혀 오는 아이들…. 여성은 그 모두를 다정한 미소로 맞으며 안내했다.

여성의 이름은 마리아 몬테소리. 의사로서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가까이서 관찰해온 그는 “모든 아이는 각자 나름의 형태로 세상을 배우고 세상에 참여할 의욕이 충만하다”고 확신했다. 그에 따라 종전까지 ‘가르칠 수 없는’ 존재로 간주돼온 과잉행동 어린이나 지적(知的)장애 어린이도 끌어 안을 수 있는 교육법을 개발했다. 핵심은 ‘아이들이 자연스레 어울려 노는 과정에서 자신의 흥밋거리를 찾아 집중하며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교육법은 오늘날에도 비단 장애아 교육뿐 아니라 아동 교육 전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래 교실, 관건은 ‘교육 가치 구현해내는 기술’

페스탈로치와 몬테소리는 둘 다 근대의 문턱에서 종전 교육의 흐름을 크게 바꾼 ‘선구자’로 평가 받는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오랜 기간 ‘권위주의적 학습을 통해 기계 부품 같은 인간을 양산해내는 시스템’이었던 교육은 시대에 맞게 개선돼왔다. 그에 따라 오늘날 교실의 풍경도 크게 바뀌었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_01▲상당 기간 권위적이고 획일적이었던 교실 풍경은 근대로 접어들며 페스탈로치나 몬테소리 같은 몇몇 선구자에 의해 크게 바뀌었다. 사진은 19세기(왼쪽)와 21세기 미국 소재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

하지만 현실적 문제는 남아있다.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 각국의 교실 다수가 여전히 수십 년 전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보폭을 충분히 따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해도 지금 10대인 청소년이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했을 때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면 적어도 2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 20년 후 세상은, 그리고 교실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더욱이 교육 철학 자체는 페스탈로치나 (미국 철학자 겸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 같은 이들의 혜안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한 세기가 지나도 그들의 통찰이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일 정도다. 따라서 미래의 교실은 이들의 교육관을 온전히 실현해야 한다는 과제를 여전히 떠안고 가게 될 것이다.

소셜미디어 전문가 에단 던윌(Ethan Dunwill)은 기술 발달에 따라 달라질 교실의 미래상을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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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의 모습이 훨씬 융통성 있게 변한다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한 학생을 위해 서서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이 들어서고 일부 학생은 교실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집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시에 개인 워크스테이션을 이용할 수 있다. (학생용) 단말기는 (교사용) 화이트보드와 상호작용한다

○ 증강현실∙가상현실 사용 빈도가 늘어난다
가령 학생이 책에서 지도가 그려진 페이지를 편 후 특수 고글을 착용하면 해당 지역 모습이 3차원으로 보인다. 미술 작품이 그려진 페이지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터치하면 작가(나 비평가)가 나와 작품을 해설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이용할 수 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학생도 가상현실을 활용, 도시 소재 유명 박물관 소장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 다양한 형태의 과제 수행이 가능해진다
교사가 같은 과제를 제시해도 학생들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탐구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위인 A의 생애를 조사하라’는 과제를 예로 들면 어떤 학생은 전통적 방식의 보고서를 제출하겠지만 다른 학생은 자신의 탐구 과정을 동영상 클립으로 제작할 것이다. 프레지(Prezi, 프레젠테이션 도구의 일종)를 활용, 애니메이션 만들기에 도전하는 학생도 나올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 발표할 수 있는) 전용 플랫폼을 통해 구현 가능하다

실제로 이 같은 시나리오 중 일부는 이미 교실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실현 자체가 불가능한 기술은 아닌 셈이다. 결국 관건은 ‘기술이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구현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 개개인에게 내재된 기량을 최대한 이끌어내 창의적 인재로 키우는 일, 200년 넘게 이어져온 교육의 궁극적 지향이 오늘날과 같은 ‘테크놀로지 기반 사회’에서도 흔들림 없이 구현될까?

 

삼성 스마트스쿨 지원 대상 확대, 이면의 의미

삼성 스마트스쿨. 도시와 도서·산간 지역 간 디지털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12년 삼성전자가 국내 농산어촌 초·중학교를 대상으로 운영 중인 사회공헌 프로젝트다. IT 기술을 활용, 학생별 맞춤 학습을 지원하는 미래형 교육 방식이 골자. 2016년 10월 현재 스마트스쿨로 선정, 관련 혜택을 받은 학교는 36개교 109개 학급이다.

삼성 스마트스쿨은 올 들어 한 차례 변화를 시도했다.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춰온 이제까지와 달리 올해부턴 지원 대상을 지역 구분 없이 병원·다문화센터·지역아동센터·특수학교 등 ‘어린이·청소년(6세~18세) 대상 교육 시설’로 확대한 것. 말하자면 격차에 대한 시각의 지평을 넓힌 셈이다. 여기엔 “쉬이 가르치기 어렵다, 고 사회적으로 낙인 찍힌 아이에게도 지적 잠재력이 충분히 있는 만큼 ‘맞춤형 교육법’ 제공으로 이들이 여느 아이와 똑같이 잠재력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몬테소리식(式) 교육 철학’이 내포돼 있다.

%ec%82%bc%ec%84%b1%ec%8a%a4%eb%a7%88%ed%8a%b8%ec%8a%a4%ec%bf%a8 ▲올 6월 삼성 스마트스쿨로 선정된  전북 군산 대야남초등학교 학생들이 태블릿과 전자칠판을 활용한 수업에 참여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삼성 스마트스쿨로 선정된 학교나 시설은 △갤럭시 태블릿 △전자칠판 △스마트스쿨 솔루션 △무선 네트워크 등이 연계된 첨단 교실 환경을 제공 받는다. 해당 학교(시설)의 교사(강사)에겐 이 같은 환경을 십분 활용,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연수 프로그램도 제공된다. 이렇게 되면 일반적 교실 환경에선 교육 받기 불편했던 학습자도 얼마든지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다. 에단 던윌이 예측한 ‘교실 미래상’이 얼추 실현되는 것이다.

올해 삼성 스마트스쿨 대상 기관 선정 작업은 ‘자체 심사’와 ‘일반인 투표’ 등 두 단계 전형을 거쳐 이뤄진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15일부터 한 달간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연을 신청 받아 자체 심사(서류∙방문)를 진행, 후보 기관을 14개로 추렸다. 지난 5일부턴 이들 14개 기관의 신청 사연을 다시 홈페이지에 공개, 일반인 대상 ‘공감’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31일까지 계속될 이 투표에서 1만 표 이상 획득한 기관은 전부 최종 스마트스쿨 지원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해외에서도 영국 비드커뮤니티초등학교를 비롯, 주요 국가 다수 학교에서 유사한 방식의 디지털 클래스룸 운영을 지원해오고 있다. 지난 2013년에 첫선을 보인 이후 3년 이상 지속돼온 이 프로젝트의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각각의 분석 지표는 ‘(삼성전자의) 디지털 기기 활용 학습이 일반적 형태의 학습에 비해 △학습 의욕 고취 △집중도 향상 △기억력 신장 등의 부문에서 탁월한 효과를 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아래 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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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준비하는 교육’서 ‘삶 그 자체인 교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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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탈로치와 몬테소리의 교육 철학은 처음 등장한 지 두 세기 이상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상적 형태로 추앙 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지역 격차에 따른 물리적 환경 차이, 장애 유무를 비롯한 학습자의 처지 차이 등이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국내외에서 시행 중인 삼성 스마트스쿨, 그리고 디지털 클래스룸 프로젝트는 괜찮은 대안일 수 있다. 지역 격차는 태블릿을 통한 가상현실 등 적절한 소프트웨어가 제공되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장애로 인한 학습 능력 격차도 마찬가지다[1].삼성 스마트스쿨이나 디지털 클래스룸에서와 같은 교육 환경이 제대로 구축된다면 학생들은 간접 체험도 직접 체험인 듯 실감나고 재밌게 누릴 수 있다. 또한 동시대에 가장 앞선 기술도 익힐 수 있다. 이는 자연스레 학습자에게 ‘미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기량’을 선사하게 되지 않을까? “삶을 준비하는 교육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삶 그 자체인 교육”(존 듀이)의 21세기 버전인 스마트스쿨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1] 최신 IT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불평등 해소 격차 방안은 지난달 28일 삼성전자 뉴스룸에 게재된 스페셜 리포트 ‘디지털 불평등 개선 해법? 디지털에서 찾아라!’에 자세히 나와있다

프로듀서 S,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삼성전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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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실제 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와의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한 결과물입니다
∙ 본문에 삽입된 사진은 전부 갤럭시 S7로 촬영됐습니다

눈을 떴다. 시선을 채운 건 낯선 천장. 잠이 서서히 깨면서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나흘째구나….’

여긴 인도 북부 잠무카슈미르(Jammu and Kashmir 州) 동쪽에 위치한 도시 ‘레(Leh)’.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에 포함돼 있으며, 오래전 아시아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 상인들의 종착지였던 곳이다. 레의 또 다른 특징은 해발고도 3500m의 고산지대란 점이다. 덕분(?)에 내리 사흘간 고산병으로 고생 좀 했다.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두통에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통증까지…. 도착 후 이틀간은 거의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었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1▲해발 3500m 고산지대에 위치한 인도 도시 레의 풍경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2▲레를 둘러싼 자연 풍광. 고산지대란 지리적 특성 덕분일까, 레에서 이런 절경을 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누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레에 머물기로 한 7일 중 촬영에 소요되는 기간은 나흘. 나머지 사흘간은 원활한 작업을 위해 현장 섭외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 참! 소개가 늦었다. 난 삼성전자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릴 영상 ‘당신의 히말라야는 무엇인가(What Is Your Himalaya)?’ 제작차 이곳을 찾은 프로듀서 S다(사람들은 대개 날 ‘S 프로’라고 부른다). ‘레 소재 브랜드숍에 삼성전자 물품을 나르기 위해 달리는 배달원’ 얘길 영상으로 담는 게 이곳에서의 내 임무다.

 

해발고도 3500m, ‘하늘 가장 가까이 있는’ 매장을 취재하라!

그 옛날 라다크(Ladakh)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레는 2016년 10월 현재 인구 약 3만 명 규모의 도시가 됐다. 도심 상점가를 장식한 간판 중엔 한국인의 눈에 유독 반가운 게 하나 있다. 파란 바탕에 ‘SAMSUNG’이란 흰 글씨가 선명한 삼성전자 브랜드숍이 바로 그것. 현지인을 대상으로 삼성전자 모바일 기기를 주로 판매하는 이곳은, 고도로만 따지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삼성 매장이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3▲레 북부에서 만날 수 있는 삼성전자 브랜드숍. 삼성전자 매장 중 ‘하늘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이다

볼리비아·나이지리아·가봉·파타고니아…. 오랫동안 영상 제작자로 활동하며 세계 각국 오지(奧地)를 꽤 많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이번 ‘레 프로젝트’는 녹록지 않았다. 촬영지 사전 답사 한 번 못해본 채 기획 작업부터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출국 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거라곤 제한된 현지 정보를 ‘구글링(googling)’으로 찾아보는 게 고작이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뒤지다 결국 두 손 두 팔 다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떠나자!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도착 나흘째, 첫 번째 촬영일이 밝았다. 고산병이고 뭐고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정신을 차리고 현지 코디네이터 A와 약속한 숙소 로비로 향했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4▲나름 ‘오지 촬영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이 상당한 내게도 레에서의 촬영은 매 단계 도전의 연속이었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5▲오토바이로 질주(?) 중인 사람이 이번 영상의 남자 주인공이다. 연기 경력이 전무한 일반인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연기력으로 촬영진을 만족시켰다

“S 프로, 두통은 좀 나았어? 여기 우리 배우들 왔어.” 먼저 와 있던 A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 뒤로 영상에 출연할 남녀 주인공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참고로 이번 출장에선 레에 살고 있는 A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다. 촬영 장소 섭외에서부터 현장용 소품 조달에 이르기까지…. 그 덕분에 난관의 연속일 수 있었던 작업은 그나마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A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아슬아슬 주행’이 장장 1300㎞… 멀고도 험한 고객과의 만남

“자, 다들 모였으니 떠나볼까요?” 호기롭게 출발한 것도 잠시, 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난 ‘세상 겁쟁이’가 돼 있었다. 촬영지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도로 너비는 차 두 대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고, 그 옆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도로 상태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설상가상, 스태프를 태운 트럭 기사의 운전 솜씨가 지나치게 ‘터프(?)’했다. 차에 탄 내내 “추락 사고로 한 달에 한두 명은 죽어 나가는 곳”이라던 A의 말이 뇌리를 맴돌았다. 속절없이 밀려드는 공포감을 물리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알고 있는 모든 신(神)에게 기도 올리기’뿐이었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6▲델리에서 레까지 이동하려면 위 사진처럼 깎아 지른 듯한 절벽 길을 1300㎞나 달려야 한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7▲이번 영상은 그 성격상 험준한 도로변에서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현지 관계자 얘길 들어보니 삼성전자 제품을 레 브랜드숍에 운송하려면 내가 달린 도로보다 훨씬 험준한 여정을 거쳐야 한단다. 실제로 삼성전자 물품 운송 트럭은 인도 북부 도시 델리를 출발, 1300㎞의 절벽길을 쉼 없이 달려야 비로소 레 브랜드숍에 도착한다. 해가 지면 상황은 더 위험천만해진다. 델리만 벗어나도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의지할 거라곤 자동차 헤드라이트뿐. 이마저도 끄면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를 덮친다.

아, 물론 하늘 가득 쏟아져 내릴 듯한 별빛과 은하수가 장관을 이루긴 한다. 허나 ‘목숨 걸고’ 야간 주행을 계속해야 하는 운전자에게 그 따위 풍경이 의지가 될 리 만무하다. ‘이렇게 외진 곳을 거침없이 달려 사람을 만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구나!’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이란 사실이 새삼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해외 드론 반입 금지’ 인도서 촬영용 드론 공수, 성공할까?

대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고, 그 사이사이 ‘별일 없이 촬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동안 트럭은 우리 일행을 목적지에 내려놓았다. 레 도심에서 두 시간 반쯤 떨어진 거리의 이곳은 영상 도입부에 들어갈 드론 항공 촬영 분량을 찍기 위해 미리 찾아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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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촬영용 드론을 입수하는 과정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촬영 전날 오후 여섯 시, 미리 섭외해둔 뭄바이 현지 드론 업체가 “아무래도 협조가 어렵겠다”며 말을 바꾼 게 발단이었다. “레 지역 해발고도가 너무 높아 드론을 띄울 경우 오류 발생 위험이 크다”는 게 업체 측 설명. ‘해외 드론 반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인도 규정을 감안, 어렵게 현지 업체 섭외를 결정했던 터라 더 난감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려는 찰나, 문득 전날 촬영 장소를 섭외하느라 이동하던 중 하늘 높이 떠 있던 드론의 광경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 드론의 주인을 찾자, 무조건!’ 이후 때아닌 ‘어제 레에서 드론 띄운 사람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맨땅에 헤딩’이 따로 없는 상황,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당초 예상과 달리 레가 상당히 넓게 분포한 도시란 사실도 알게 됐다. 당연히 ‘대충 이쯤 떠 있었던 (것 같은)’ 드론을 찾는 일은 한양서 김 서방 찾기만큼이나 힘들었다.

죽으란 법은 없다고 했던가, ‘솔루션’은 뜻밖의 경로에서 튀어나왔다. “아, 그거요? 며칠 전부터 열리고 있는 라다크 축제에 방송국이 촬영 나왔거든요. 그 사람들이 쓴 장비예요.” 한 현지 스태프의 단비 같은 목격담을 바탕으로 ‘드론 입수’ 시도에 다시 불이 붙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때마침 우리 팀이 묵고 있던 숙소 주인이 “그 방송국 사람들과 연이 있다”며 다리를 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기적처럼 방송국 드론 팀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촬영지 출발을 불과 30여 분 남겨놓은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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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장에서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촬영용 드론을 공수하는 일이었다. 아래 사진은 우여곡절 끝에 확보한 드론을 띄워 촬영하는 모습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다소 폐쇄적인 데다 군사지역이기도 한 장소에서의 촬영은 쉽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에 대한 경비가 유독 삼엄한 현지 분위기 때문에 매일 아슬아슬한 일정이 이어졌다. 난관은 또 있었다. 촬영지 대부분이 건조한 산악지대인 탓에 한 발짝만 떼어도 미세한 분진이 물안개처럼 피어 올랐던 것. 레에 도착한 지 만 하루도 되기 전에 스태프의 입술이 하나둘 트기 시작했다. 몇몇 예민한 스태프는 며칠 만에 기관지가 상해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촬영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삼성 휴대전화를 구매하는 고객, 그리고 그 고객을 위해 천리 길을 달려 제품 운반에 나서는 사람들의 얘길 영상으로 담겠다’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스태프가 ‘중무장’에 나섰다. 마스크로, 수건으로 코와 입을 겹겹이 감싼 채 촬영은 계속됐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 응원에 기운이 절로… “오길 잘했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11▲촬영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삽시간에 스태프 주변으로 몰려들어 장비를 신기한 듯 구경했다

“아저씨, 이게 뭐예요?” “와, 신기하다!” “어, 나 이거 뭔지 아는데!” 고산지대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레 지역 아이들에게 외국인 관광객이나 그들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지극히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우리 스태프가 지닌 첨단 영상 촬영 장비는 그들 눈에도 퍽 신기했던 모양. 촬영 팀이 길을 나서면 어디선가 귀신같이 뛰어나와 장비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곤 쉴 새 없이 조잘댔다. “저도 나중에 크면 감독이 될 거예요.” “난 스마트폰 파는 사람이 될 거다.” “그럼 난 스마트폰 만드는 사람!” 

그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녀도 크게 다르지 않고 매번 신기한 게 아이들이란 존재다. 촬영 막바지,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그러더니 이내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촬영 장비들을 가리키며 이것저것 물어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러곤 생각했다. ‘좀 고생스럽긴 해도 오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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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적 기능주의’ 빌트인 가전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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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배치와 장식은 권력을 반영한다. 특정 건물(혹은 장소)에서 제일 눈에 띄고 공들여 꾸며지는 공간은 지위 높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가장 중시되는 곳이다. 그에 반해 권력 없는(적은) 집단이 쓰는 공간은 설사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도 비교적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별다른 꾸밈없는 형태로 존재하게 마련이다.

 

주방의 환골탈태… ‘주변부’서 ‘중심부’로

전통 한옥에서 권력 상층부 공간은 이를테면 사랑채다. 집안 어른이 거주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유교적 가부장 사회를 대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부터 사랑채는 하늘로 치솟는 듯한 팔작(八作) 기와지붕은 물론, 큰 재목을 깎아 기둥을 받친 누각까지 그 집안의 격조에 맞춰 최대한 멋지게 지어졌다.

반면, 가사노동은 한 집안을 유지해가는 실질적 활동인데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공간에서 이뤄지곤 했다. 건물 제일 가장자리에, 문도 제대로 달리지 않은 채 자리 잡은 부엌. 거기서 뒤뜰로 이어지는 살림 공간을 떠올려보자. 이곳에선 아낙네들이 반짝반짝 닦고 공 들인 장독, 어쩌다 한구석에서 자연스레 자란 분꽃과 맨드라미 정도가 정겨움을 더했다. 하지만 ‘격조’니 ‘심미’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같은 풍경은 다른 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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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공간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입,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부터다. 실제 이 무렵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가사노동에서 면제되는 여성 수가 급증했다. 가정에 남아 가사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여성을 위한 배려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이 시기에 선보인 가전제품은 여성이 가사노동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 줄여줬다. 가사노동 공간의 인테리어에 공을 들이는 풍조 역시 이 시기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대거 보급되며 주방과 세탁실 등 가사노동 공간이 거실 공간과 연결됐고, ‘예쁜 주방’을 선호하는 경향은 더 뚜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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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로 접어들며 주방을 비롯한 가사 공간의 격(格)은 한층 올라갔다. 특히 외식 산업이 발달하고 레토르트 식품 등 반(半)조리 상태 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데다 ‘집밥’ 등 좋은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향수까지 더해져 가정 내에서 주방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이와 함께 ‘아름다우면서도 높은 수준의 기능을 갖춘’ 주방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도 커지고 있다.

 

비움의 미학… 주방도 ‘미니멀리즘’ 열풍

오늘날 주방에서 가장 선호되는 디자인 철학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다. 흔히 미술 작품에서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면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고 선(線)·형(形)·색(色)의 사용을 극도로 절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실제로 요즘 소비자들은 갖가지 물건이 꽉 들어찬 주방보다 여백미를 살린 공간에 한두 가지 소품으로 ‘포인트’를 준 주방 인테리어를 훨씬 선호한다.

독일계 헝가리인인 예술사회학자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 1892~1978)는 자신의 책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근대 초기 유럽 실내 꾸밈에 반영된 신흥 부유계층의 심리를 지적한 적이 있다. △화려하고 중후한 가구 △세계 각국에서 온 희귀 장식품(청나라 도자기, 타이 비단, 아프리카 목각 등) △한쪽 벽면을 꽉 채우는 책장 따위가 모두 한 공간에 놓이는 인테리어의 기초엔 ‘해외 식민지 경영으로 얻게 된 경제적 여유와 자신의 박식함을 자랑하려는 심리’가 깔려있단 게 당시 그의 주장이었다.

미니멀리즘적 실내 공간을 선호하는 21세기 소비자의 심리는 어떻게 해설할 수 있을까? 이때 미니멀리즘이란 ‘표면적 심미 요소보다 성숙한 내면적 에너지를 작품 형태로 내보일 줄 아는 관록의 표현’과 같은 의미다. 오늘날 소비자가 단순한 주방을 선호하는 건 그만큼 예술적 감각이 성숙해졌단 뜻이기도 하지만 좀 더 실용적인 이유도 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동양의 풍수(風水) 사상이다. 풍수 사상은 20세기 말부터 서구 선진국 일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입, ‘풍수 인테리어(Feng Sui interior)’란 개념으로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 풍수 인테리어의 기본 중 하나는 ‘덩치 큰 가구가 공간을 점유하는 일이 없도록 공간을 적절히 비워두는 것’이다. 그래야 공간 속에서 에너지가 원활히 순환돼 쾌적한 환경이 완성되고 사용자의 건강 유지에도 유용하단 논리다. 미니멀리즘의 ‘신(新)과학’이다.

2 ▲삼성 빌트인 가전을 설치해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구현한 주방

주방은 이제 더 이상 하인들이나 드나드는 저급한 장소도,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여성의 전용 공간도 아니다. 가족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애정이 집중되는 공간인 동시에 온 가족이 서로에게 필요한 일을, 기분 좋게, 효율적으로 나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이 점차 ‘미니멀리즘’ 경향으로 나아간다는 건 곧 ‘(음식 장만을 비롯한) 가사노동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핵심 기초’란 사실을 21세기 소비자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단 사실을 보여준다.

가사노동 공간에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를 구현하려면 빌트인(built-in) 가전제품의 존재는 필수다. 빌트인이란 실내를 꾸밀 때 벽면에 가구를 짜면서 가전제품이나 기타 기구를 그 안에 집어넣어 돌출해 보이지 않도록 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실제로 냉장고나 오븐레인지, 세탁기 등 덩치 큰 가전제품이 주방 공간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면 보기에도 부담스러울뿐더러 원활한 작업 공정도 해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빌트인 가전제품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미 1960년대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최근 지어지는 주거용 주택에서도 빌트인 가전 비율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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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유럽 시장점유율 15%, 40% 돌파

냉장고·세탁기·건조기·오븐레인지·쿡탑·레인지후드·전자레인지·식기세척기…. 오늘날 주로 생산되는 빌트인 가전 품목이다. 빌트인 가전은 기존 프리스탠딩(free-standing) 제품보다 면적은 덜 차지하면서도 기능은 엇비슷하게 수행해야 해 그만큼 높은 수준의 생산 기술이 요구된다. 그에 따라 생산 단가도 올라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빌트인 가전 시장 규모는 이 같은 부담에도 아랑곳없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를테면 지난해 북미 지역 가전 시장 총 규모는 280억 달러(약 31조5000억 원)이었는데 그중 빌트인 가전 시장 규모는 42억 달러(약 4조7000억 원)로 약 15%였다. 건축(인테리어)업자 사이 유통분만 따지면 그 비중은 34%까지 치솟았다[1]. 총 시장 규모가 438억 달러(약 49조2000억 원)인 유럽 지역 내 빌트인 가전 비중은 그보다 훨씬 높은 41%(181억 달러, 약 20조3000억 원) 선이었다. 주방 전문 업체 간(B2B) 유통 가운데 빌트인 비중은 90%에 이르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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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전 시장에서 빌트인 수요 증가세도 만만치 않다. 역시 지난해 6조 원 수준이었던 전체 시장에서 빌트인 가전 규모는 7900억 원 수준이었다. 전체 시장 대비 점유율로 따지면 13%에 불과하지만 B2B 유통 측면에서 집계하면 수치가 80%까지 올라간다[3]. 최근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에선 빌트인 가전제품이 단연 대세란 뜻이다. 그간 빌트인 가전 수요는 주로 건설사 간 거래에서 발생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엔 개별 가정의 인테리어 리모델링 작업에서도 빌트인 가전의 인기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빌트인 가전을 장만할 수 있는 공간의 종류와 수로 날로 느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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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빌트인 가전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행보는 심상찮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의 눈만 즐겁게 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생활 자체를 바꿔준다’는 제품 철학 아래 어떤 주방 인테리어에도 품격 있게 조화되는 빌트인 제품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주부들 사이에서 단연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는 전기레인지는 실내 공기 오염 우려와 화재 발생 위험 등 가스레인지가 지닌 여러 단점을 차례로 해소하며 ‘기술 개발과 디자인이 심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빌트인 가전, 첨단 기술∙디자인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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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광택이 아름다운, 흰 벽면. 그걸 터치하면 냉장고와 푸드 프로세서, 오븐레인지가 등장한다. 아, 식기세척기도 물론 내장돼 있다. 원하는 온도의 물이나 얼음을 공급해주는 정수 장치도 벽면을 터치하면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식탁 위에 설치된 쿡탑을 이용하면 음식 데우기 정도 작업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 조리도, 식사도 하지 않을 땐 주방 수납장 한쪽 끝에 설치된 빌트인 세탁기∙건조기 세트로 쾌적하게 의복을 관리할 수 있다. 이처럼 빌트인은 철저히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사용자의 수요를 삼키며 손에 잡힐 듯한 현실로 다가왔다.

디자인은 기술을, 당대 사회상을, 그리고 그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21세기가 성숙기를 향해 나아가는 요즘, 이 모든 건 결국 ‘여백의 미를 통한 더 나은 삶의 추구’로 불리는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빌트인 가전은 그 끝 어디쯤엔가 자리 잡고 있다, 그걸 가능케 해온 기술과 디자인 개발진의 자부심을 품고서.


[1] 자료 출처: 맥킨지(Mckinsey) 북미법인

[2] 자료 출처: GfK 데이터(GfK data) 유럽법인

[3] 자료 출처 : GfK, 유로모니터(Euromonitor), A.T. Kearney(커니) 등

사물인터넷의 꿈, 아틱(ARTIK)으로 영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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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명 기타리스트가 있었다(편의상 A라고 해두자). A에겐 이렇다 할 재산도, 변변한 친구도 없었다. 가진 거라곤 오래된 기타 한 대뿐. A는 기타를 메고 다니며 조용히 연주할 만한 곳, 들어줄 이가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이면 어디든 멈춰 기타를 연주했다. 낡아빠진 기타 현에 그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지상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기타 치는 것 말고 A가 할 줄 아는 일이란 없었다. 끼니는 건너뛰기 일쑤였고 공원 벤치에서 웅크린 채 잠드는 날도 허다했다.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A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물론 짬짬이 거리 연주도 쉬지 않았다.

 

#카페, 아티스트들의 아지트 되다

어느 날, A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을 공터에서 기타 연주에 몰두하고 있었다. 낯선 신사 한 명이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줄도 모른 채. 신사는 연주 직후 돌아서는 A의 뒤통수에 대고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기타만 치고도 편히 살 수 있게 해주겠네.” 주저하는 A에게 신사는 재차 말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자네의 연주 실력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가?”

신사는 A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운 채 인근 도시로 향했다. 차가 멈춘 곳은 ‘아틱(ARTIK)’이란 간판이 달린, 아담한 카페였다. 어느덧 이슥한 시각, 그날 영업이 모두 끝난 실내의 탁자와 의자는 한쪽으로 치워진 채였다. 몇몇 사람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었고 가운데 빈 공간에선 한 소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빼어난 가창력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킨 소녀의 공연이 끝나자, 이번엔 두 청년이 ‘랩 듀오’로 나섰다. 그 뒤로 소년 서넛이 리듬에 맞춰 브레이크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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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재능으로 똘똘 뭉친, 하지만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영업 후 카페 공간을 빌려주자’는 건 카페 운영자인 신사의 아이디어였다. 신사는 개중 실력이 탁월한 몇몇에겐 방송 출연도 알선해줬다. ‘재야의 고수’들이 모인단 입소문이 퍼지며 아틱은 금세 유명해졌다. 젊고 유능한 아티스트는 이곳에서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기량을 펼쳤고, 관객 역시 이곳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즐겼다. 아틱이 ‘아티스트와 소비자 간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1].

 

#길은 ‘나는’ 게 아니라 ‘내는’ 것

“태초에 지상엔 길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가면 그게 곧 길이 된다.” 중국 사상가 루쉰(魯迅, 1881~1936)이 정의한 ‘길’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란 신세계로 향하는 여정을 고려할 때도 이 같은 해석은 유효하다. 이를테면 지난 2014년 9월 17일 삼성전자 뉴스룸에 게재된 스페셜 리포트 ‘진화된 공간 혁명, 사물인터넷(IoT)’의 마지막 두 단락처럼 말이다.

건강하게 작동하는 생태계의 보호 아래 생동감 있게 활동하는 생명체의 존재처럼 우리의 생활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물들이 왕성한 교감을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세계는 말 그대로 ‘공간의 혁신’이라고 할 만하다. 이 공간은 작게는 일명 ‘퓨처홈(혹은 스마트홈)’으로 불리는, 안전하고 쾌적하며 인간과의 교감이 전제된 가정환경에서부터 출발해 크게는 지구 전체를 이어주는 인프라 관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무한하게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인터넷 세상으로 향하는 길목엔, 현재로선 미처 생각지도 못할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래 왔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험한 길을 닦아가며 모두가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물인터넷은 인간을 한 차원 높은 세상으로 이끄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위 글이 쓰인 후 2년여가 흘렀다. 그 사이 사물인터넷이란 ‘새 길’은 사람들의 곁에 꽤 가까이 다가왔다. 2년 전 사물인터넷이란 용어조차 낯설어했던 사람들은 오늘날 사물인터넷을 ‘기초 상식’ 수준의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이 같은 변화가 있기까진 무수한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사람 수는 점차 늘고 있다. 스마트홈이나 헬스케어 등의 분야에선 이미 상당수 기기가 사물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 출시됐다.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가면 길이 된다”는 루쉰의 예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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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나의 길이 생겨나려면 길을 ‘트는’ 작업이 필요하다. 방향을 똑바로 잡아야 하고, 잡초도 베어내야 하며, 걷는 이의 진로를 방해하는 큰 바위나 작은 돌도 치워야 한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그 작업을 다 도맡아 해준다면? 그래서 평평한 길이 탄탄하게 펼쳐진다면? 그 길에 들어선 사람 누구나 신나게 속력을 내어 달려갈 것이다.

사물인터넷 구현 과정에서도 남보다 앞서 길을 개척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사물인터넷 플랫폼 ‘아틱(ARTIK)’을 개발, 출시하며 그들이 작업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본격적 지원에 나섰다. 건강한 사물인터넷 생태계 구현에 나선 선구적 개발자의 후원자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앞선 이야기 속 기타리스트 A와 신사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아틱, 개발자들이 반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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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틱은 프로세서(AP)와 메모리, 통신 등으로 구성된 초소형 사물인터넷 모듈이다. △소프트웨어(드라이버) △저장 장치 △보안 솔루션 △개발 보드 △클라우드 등 여러 기능이 하나의 모듈에 집적된 게 특징. 사물인터넷 관련 아이템을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틱을 활용하면 원하는 기기를 빠르고 손쉽게 제작, 상용화할 수 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사물인터넷 기기 중 하나인 도어록(door lock)을 예로 들어보자. 사물인터넷 환경이 구현된 건물 입주자라면 스마트폰 관련 기기 판매처에서 스마트 도어록 제품을 구입, 본인 집 현관문(이나 방문)에 설치하면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해당 건물의 플랫폼이 읽어 들일 수 있도록 등록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보안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할 수도 있다.

만약 사물인터넷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공간(이를테면 아파트)에서 자신의 집에만 스마트 도어록을 설치하려면 일은 곱절로 복잡해진다. 와이파이(Wi-Fi)로 항상 인터넷이 가동되도록 하는 건 기본. 관련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후 그걸 구동할 수 있게 해주는 드라이버 설치 역시 필수다. 사람을 식별한 후 그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저장,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듈도 갖춰야 한다. 보안 프로그램 설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때문에 설사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생산자)가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주거 보안에 대한 관심이 커지니 스마트 도어록 수요가 높아질 것’이란 예측 아래 관련 제품을 개발, 출시한다 해도 해당 제품이 실제 시장에서 호응을 얻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제품 개발∙생산과 별도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너무 많은 탓이다.

하지만 아틱 같은 사물인터넷 플랫폼이 있다면 얘긴 좀 달라진다. 아틱만 도어록에 심으면 웬만한 문제가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마트 도어록 개발진은 도어록이란 하드웨어와 (도어록이 신호를 받아 움직이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다. 시간도,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구조다. 더 고무적인 건 아틱이 (비단 도어록뿐 아니라) ‘상상 가능한 사물인터넷 기기 일체’에 적용될 수 있단 사실이다.

 

#‘2세대 플랫폼 출시’가 갖는 의미

17 ▲삼성전자가 지난달 공개한 ‘아틱 0’(사진 왼쪽)과 ‘아틱 7’ 

지난달 삼성전자는 ‘아틱 0’과 ‘아틱 7’을 새롭게 선보였다. 아틱 0은 △냉난방·환기 기기 △조명 제어 기기 △건강 정보 모니터링 기기 등에 특화된 개발 모듈이다. 작고 가벼우며 전력을 적게 소모할 뿐 아니라 가격대도 저렴하다. 아틱 7은 △강력한 무선통신 기능 △고사양 멀티미디어 프로세서 △리눅스 운영체제(OS) △보안 기능 등을 탑재, 여러 대의 컴퓨터와 근거리 통신망 등을 연결하고 제어하는 고성능 게이트웨이에 적합한 개발 모듈이다.

두 모델의 이전 제품인 ‘아틱 1’ ‘아틱 5’ ‘아틱 10’이 출시된 건 지난해 5월. 당시 이들 제품이 출시되자 “고도로 집적된 모듈 시스템(Systems on Modules, SOMs)에 처리·기억·무선연결 기능이 탑재, 모든 개발자가 안전하고 지능적이며 상호작동 가능한(interoperable) 사물인터넷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여기에 아틱 0과 아틱 7 등 한층 진화된 솔루션이 더해지며 사물인터넷 세상으로 가는 길은 한층 탄탄해졌다.

%ec%ba%a1%ec%b2%98 ▲(왼쪽부터)‘아틱 0’ ‘아틱5’ ‘아틱7’ ‘아틱10’

아틱 시리즈는, 말하자면 사물인터넷 생태계 구축의 주춧돌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삼성전자는 여기에 그간 자체적으로 쌓아온 대(對)소비자 노하우를 층층이 적용, 다양한 작업을 가능케 해준다. 대표적 예가 올 4월 열린 ‘삼성 개발자 컨퍼런스 2016’에서 공개된 개방형 데이터 교환 플랫폼 ‘아틱 클라우드(ARTIK Cloud)’다. 아틱 클라우드는 삼성 스마트폰에 적용 중인 보안 플랫폼 녹스(Knox) 수준의 첨단 보안 성능을 갖춰 열쇠 관리나 암호화, 신분 확인 등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뿐 아니다. 삼성전자는 공기청정기 등 이미 시판 중이거나 출시 예정인 가전 제품에도 아틱을 활용, 사물인터넷 솔루션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는 게 ‘부문별 개발진과의 협력’이다. 실제로 국내 최대 인터넷포털 네이버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홈 서비스 ‘아미카(AMICA)’에 아틱을 활용하기로 했다. 일단 네이버 계정을 보유한 사용자가 별도 인증 절차 없이 아틱 클라우드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아틱과 협력 관계에 있는 파트너는 부문별로 포진해 있다. △스내피 우분투(Snappy Ubuntu)와 타이젠(Tizen) 등 리눅스 소프트웨어 파트너 △레진(Resin.io)과 실리콘랩(Silicon Lab) 등 플랫폼 파트너 △애로우(Arrow)와 디지키(Digi-Key), 무진(Mujin) 등 글로벌 유통 파트너가 대표적 예다.

 

#반갑다, 삼성의 IoT 생태계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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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인터넷 개념은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한낱 꿈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꿈을 현실로 바꾸려면 일단 꿈을 많이 꿔야 하는 법. 삼성전자는 지난 수십 년간 전기∙전자기기의 신기원을 열며 한때 ‘꿈’으로 치부됐던 생활 환경 구축을 주도해왔다. 그리고 이제 ‘사물인터넷’이란 새로운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꿈의 실현 속도는 ‘같은 꿈을 꾸는 이가 많아질’ 때에도 당겨질 수 있다.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 관련 분야에서 지식과 기술을 축적해온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파트너십을 형성 중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틱 시리즈는 각계각층에 분포한 IT 분야 지성과 열정의 작업물을 한데 모으는 한편, 이들을 보다 넓은 세상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방방곡곡에 흩어져 소소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아티스트를 찾아낸 신사처럼. 그들을 한 곳에 모아 각자의 재능에 열중하게 만드는 한편, 다양한 네트워크를 가동해 그 재능이 세상을 더욱 빛낼 수 있도록 도운 카페 아틱처럼.


[1] 이 이야기는 아틱의 개념과 관련,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픽션이다

 


앰비언트 인텔리전스(AmI), ‘전자 집사’에서 ‘삶의 동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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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비언트 인텔리전스(Ambient Intelligence). 아직 다소 낯설게 느껴질 이 단어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ICT 기술 분야, 그중에서도 가장 앞서가는 흐름을 표현한 키워드다. 앰비언트는 ‘특정 분위기가 일정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양’이란 뜻의 형용사, 인텔리전스는 ‘지성’이란 뜻의 명사다. 따라서 이 두 단어가 결합된 앰비언트 인텔리전스는 ‘(우리) 주변 환경을 이루는 지성’ 정도로 번역된다. 약자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뜻하는 ‘AI’와 구별하기 위해 ‘AmI’로 표기한다.

 

#오직 ‘나’만을 위해 작동하는 고도의 지성

가상의 사용자 ‘A’가 거주하는 한 스마트홈(smart home)을 예로 들어보자.

아침에 일어난 A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 욕실로 향하는 통로에 자동으로 불이 들어온다. 그와 동시에 욕실 내 온도가 따뜻하게 조성되고 딱 A가 좋아할 정도로 따뜻한 물이 준비된다. 샤워를 끝내고 거실로 가면 밤새 ‘에너지 절약’ 모드였던 실내 온도가 알맞게 올라가 있다. 블라인드도 자동으로 올려진 상태다. TV 역시 A가 좋아하는 뉴스 채널에 맞춰 켜졌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갓 내린 아메리카노를 대기 중이고 토스터에선 식빵이 A의 입맛에 마침맞게 구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가능해지려면 집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똑똑해져야 한다. 사용자의 움직임을 파악, 분석하는 건 물론이고 이후 행동을 예측해 그에 맞게 필요한 준비도 마쳐야 하기 때문. 그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집은 ‘사용자 맞춤형 환경을 알아서 조성해주는’ 고도의 지성, 다시 말해 AmI 환경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혹자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의 발달로 21세기는 ‘전자 집사(electronic butler)’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집 안 일을 척척 해주는 집사처럼 사물인터넷이 작용하는 스마트홈 자체가 사용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알아서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AmI 서비스의 영역은 ‘가정’을 훌쩍 넘어선다. 일상 영역 어디서나, 어떤 시기에서나, 필요한 모든 일을 정확하게 지원해줘 사용자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다.

출근 준비를 마친 A가 현관으로 향하면 문이 열리면서 승용차가 시각에 딱 맞춰 대기하고 있다. 차에 오르면 자동으로 안전벨트가 채워지며 시동이 걸리고, 차는 목표 출근 시각에 늦지 않도록 알아서 도로를 선택, 자율 주행한다. 만약 주행 도중 A에게 심장 박동 이상이나 호흡 곤란 같은 건강 문제가 생기면 미리 등록해둔 건강 관리 기관에 해당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동시에 차는 알아서 안전한 길가에 정지하고 잠시 후 차가 전송한 위치 신호를 따라 앰뷸런스가 도착한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일상으로 복귀하는 길, 식품을 구매하기 위해 동네 마트에 들렀다. 점원은 태블릿으로 A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그에 맞는 식품을 권한다.

해외 출장을 가게 된 A. 회사에서 출장 사실이 결정되고 온라인 상에서 승인이 떨어지면 그와 동시에 A 전담 여행사에 해당 정보가 전달된다. 잠시 후 가장 적절한 비행기 티켓이 발권된다. A는 그저 출장 당일 가방을 챙긴 후 공항으로 향하기만 하면 된다. 체크인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만으로 모든 절차가 재빨리 점검, 승인되고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던 A는 유유히 비행기에 탑승한다.

AmI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평가의 공정성이 확보된다는 사실이다. 당장 이런저런 공인 시험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AmI 환경에선 토플(TOEFL)이나 토익(TOEIC) 점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평소 수업 시간이나 과외 활동 시간에 보여준 성취도가 실시간으로 기록돼 해당 분야에서 얼마나 준비된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 데이터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커닝이나 운(運)이 작용할 여지 따위란 없다. 그저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 공정한 평가 수치가 차곡차곡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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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구축의 전제 조건? ‘일상화된 컴퓨터’

"가장 심오한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다. 그것들은 일상 환경(setting) 속으로 엮여 들어가 다른 사물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가 돼버린다.”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개념을 최초로 명시한 미국 컴퓨터공학자 마크 와이저(Mark Weiser. 1952~1999)의 논문 ‘21세기를 위한 컴퓨터(The Computer for the 21st Century)’는 이 두 문장으로 시작한다. 20세기 사람들은 일상의 소소한 일거리를 도와주는 로봇의 출현을 꿈꿨다. 하지만 로봇 구현에 필요한 기술적 기반이 갖춰지자, 관련 기술은 (눈에 보이는 실체인) 로봇 조립에 쓰이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채) 일상으로 녹아 들어갔다. 앞서 열거한 ‘AmI 환경 가상 시나리오’에서도 기술은 전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인간은 그저 ‘뻔하고 번거로운’ 일을 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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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변화는 꽤 오래전부터 조금씩 진전돼왔다. 1930년대에 등장한 최초의 컴퓨터는 덩치가 크고 시끄러운 기계였다. 미국 해군처럼 막강한 조직(혹은 아주 큰 기업)만이 갖출 수 있는 설비였으며 소유자는 별도 공간을 마련하고 여러 전문 인력을 동원, 장비를 공유하도록 했다. 1950년대 말 IC(Integrated Circuit, 집적)회로가 발명, 보급되면서 컴퓨터는 점점 작아졌다. 1980년대에 이르러선 웬만한 가정에서도 퍼스널 컴퓨터 한 대쯤은 갖추게 됐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컴퓨터 보급률은 ‘잘해야 1인당 한 대’가 고작이었다.

1990년대 후반, 컴퓨터는 점차 다른 기기와 통합되기 시작했다. 세탁기∙냉장고∙TV 등과 결합, ‘스마트 가전’ 분야를 탄생시켰고 자동차 분야에선 ‘(컴퓨터가 기계를 움직이는) 메카트로닉스’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컴퓨터와 레코더의 통합은 MP3 플레이어의 발명으로 이어졌고, 컴퓨터와 전화의 만남은 스마트폰을 등장시켰다. 이 단계에 이르러선 컴퓨터 자체에 이동성(mobility)이 생기며 관련 기술이 또 한 차원 도약했다. 오늘날 현대인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기 중 상당수는 알게 모르게 컴퓨터와 통합돼 있다. 사실상 무수한 컴퓨터의 지원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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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T∙연결성∙빅데이터… ‘첨단 기술의 첨단’

마크 와이저의 예언은 적중했다. 컴퓨팅 기술은 점차 다른 기기나 아이템에 녹아 들어가 본래 모습을 감췄다. 와이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1세기 컴퓨팅 기술은 (서로 다른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넷의 지원 아래 또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유비쿼터스 컴퓨팅으로 명명했던 컴퓨터 분야의 ‘제3의 물결’은 이미 지구 전역을 휩쓸고 있다. 그 물결을 타고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일상 환경이야말로 AmI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AmI는 IoT의 구현으로 연결성(connectivity)이 온전하게 이뤄져야 최적화되는 기술이다. 오늘날 가장 자주 언급되는 최신 ICT 기술, 이를테면 △인공지능 △빅데이터 △센서 △클라우드 컴퓨팅 △바이오메트릭스 △스마트홈 △스마트 헬스케어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첨단 기술의 첨단’에 서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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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든 A의 스마트홈을 다시 예로 들어보자. 외출에서 돌아온 A가 현관에 접근하면 현관 외부에 장착된 센서가 A 소유 스마트폰 위치 발신 장치에서 나오는 정보를 읽어 들인 후 중앙 데이터 처리 장치로 보낸다. 중앙 데이터 처리 장치는 접수된 정보를 분석, A가 집 주인이란 사실을 확인한 후 A가 귀가했을 때 필요한 일련의 조치를 관련 기기에 지시한다. 그 결과, A의 집은 A가 들어올 수 있도록 스마트 잠금 장치를 풀고 문을 열어준다. 신발장을 열어 실내화를 내어주고 에스프레소 머신이 커피를 내리도록 한다. 거실 TV 전원을 켜 A가 그 시간대에 자주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재생되도록 설정해둔다.

이 장면만 봐도 AmI 환경이 완벽하게 구현되려면 상당 수준의 센서 가동 기술과 (사용자 정체성 확인에 필요한) 바이오메트릭스 기술의 존재는 필수다. 사용자의 안면∙행동 유형이 인식돼야 하는 만큼 인공지능도 기반 기술로 요구된다. 현관 자물쇠와 신발장, 에스프레소 머신과 TV 등 과거엔 단순 기계 장치에 불과했던 기기에도 IoT을 구현하는 컴퓨팅 기술이 빠짐없이 포함돼야 한다.

AmI 적용 영역이 가정을 넘어서려면 사회 전반적으로 연결성에 필요한 인프라(infrastructure)가 갖춰져야 한다. 더 나아가 의료∙교육∙금융∙쇼핑∙행정 등 분야별 사회 활동 관련 기기와의 연결을 담당하는 메카트로닉스 부문도 확대돼야 한다. 결국 AmI는 이 모든 게 갖춰져야 구현될 수 있는 상황인 동시에 이 모든 것의 발달을 촉진하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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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삶에 녹아들 정도’로 친근해져야

세상을 크게 바꿔놓을 잠재적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한쪽에선 신기술의 가능성에 열광, 해당 기술 개발에 몰입하거나 지원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선 그 기술이 인간에게 가져올 부정적 측면을 두려워하며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기술자들이 관련 기술 개발에 온 열정을 바쳐왔다. 그런가 하면 스탠리 큐브릭 같은 영화감독은 1968년 자신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에서 ‘우주선에 탄 인간을 교묘하게 죽여가며 지구 정복을 꿈꾸는 인공지능(HAL9000)’의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내며 신기술에 내재된 위험 요소를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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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컴퓨터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수는 점차 줄어드는 양상이다. 다이앤 쿡(Diane J. Cook)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전기엔지니어링∙컴퓨터과학학부 교수는 “AmI이 구현되기까진 기술적 기반 외에 컴퓨팅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란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처럼 컴퓨터 응용 기기를 매일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컴퓨팅=(의외로) 재밌고 친근한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이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단 얘기다.

어떤 관계든 양쪽 힘이 모두 작용한다. 똑같은 기술이라도 부정적으로 쓰이면 위험천만해지고 긍정적으로 쓰이면 필수불가결해진다. 일찍이 마크 와이저가 말한 것처럼 “컴퓨터는, 숲 속 길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으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인간을 자신에 맞추도록 강제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 환경에 녹아 들어가는’ 기계가 될 수 있다.” 그야말로 AmI이 ‘제대로’ 구현되는 세상을 맞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 제4차 산업혁명의 방아쇠 당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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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엔 똑같은 모양의 검정색 자동차 단일 모델만 수십만 대 찍어냈던 일명 ‘포드(Ford)’ 공정이 대세였다. 하지만 ‘생산 라인 하나 만들어 두고두고 쓰던’ 시대는 진작 지났다. 21세기 기업은 정반대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다양성을 앞세운 인터넷 세상에 걸맞게 점점 더 새로운 걸 추구하는 소비자 기호를 맞춰야 하고, 다른 한편으론 대량 생산 공정으로 그걸 제대로 공급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이 난제를 해결할 돌파구, 있긴 한 걸까?

몇몇 호기로운 기업은 이 같은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한다. “생산 공정을 (고정된 기계 라인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태계처럼 만들면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기본적 자재와 생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주변 환경 변화에 적응해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생산하고 그 결과물을 사용 가능할 때까지 돌볼(care) 수 있다면, 제품의 수명이 다한 후엔 재생(recycling) 궤도에 진입시켜 이를 다시 태어나도록 해줄 수 있다면 ‘한 번 해볼 만한 게임’이란 설명이다. 물론 이 같은 시나리오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기(device)뿐 아니라 공정(process) 자체가 똑똑하게(smart), 그리고 지능적으로(intelligent) 바뀌어야 한다.

 

생산 공정, ‘고정형’에서 ‘생장형’으로

만약 당신에게 ‘디지털 쌍둥이(digital twin)’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캐드(CAD, Computer Aided Design)로 구현된, 당신과 비슷한 모양의 3D 그래픽을 떠올릴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의 쌍둥이를 만들어내는 일쯤은 오늘날 생산공정에서 그리 어렵잖게 실현 가능하다.

디지털 트윈은 ‘신개념 생장(生長)형 공정’을 한마디로 요약한 개념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기민하게 대처해 성공적으로 살아남으려면 디지털 방식으로 구성된 제품의 ‘쌍둥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는 논리에서 처음 등장했다.

%ec%8a%a4%ed%8e%98%ec%85%9c%eb%a6%ac%ed%8f%ac%ed%8a%b808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가상 목업’의 사례

혹시 ‘목업(mock-up)’이란 단어를 아는지. 제품 디자인 과정에서 심미적 판단을 위해, 혹은 어느 정도의 기능을 예측하기 위해 일단 외관만 실물과 비슷하게 만든 모형을 일컫는다. 20세기의 목업은 나무나 플라스틱 등 가공하기 쉬운 소재로 완성됐다. 하지만 오늘날 목업은 대부분 캐드 따위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작된다. 이 ‘캐드 목업’은 실제 물건과 겉보기엔 다를 게 없지만 3D 기술을 적용,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자유자재로 틀어서 볼 수 있다. 원하는 부분을 확대해 관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물이든 가상이든 현재까지의 목업은 처음 만들어진 상태 그대로 멈춘 채 존재한다. 디자이너가 특정 의도를 갖고 별도 요소를 투입하기 전엔 결코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 반면, 디지털 트윈은 생산과 소비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감가상각이나 돌발변수 같은 ‘예측 불가 요인’에 반응하고 그에 맞춰 신호를 보낸다. 시장에서 시시각각 발생하는 변수들에 적절히 대응, 사후 조치한 후 다음 번 제품 생산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 메커니즘은 흡사 살아있는 인체가 환경 속 돌발 요인으로 손상을 입으면 통증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 어딘가 아플 때 해당 부위를 응급 처치해 회복시키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디지털 트윈 체제에선 이미 시장에 나와 쓰이는 제품이라도 소비자의 요구나 환경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유연하게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이런 구조를 가능케 하는 원리는 뭘까? 생명체의 환경 변화 반응 기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몸은 부단히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체온과 혈류(血流) 등 모든 조건을 평형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체 표면과 내부에선 무수한 센서 세포가 끊임없이 활동 중이다. 이 세포들은 크든 작든 이상(異常)이 감지되면 다른 세포에 신호를 보내 해당 이상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추가 피해도 막는다. 익히 알려진 면역 기능의 작동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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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공정, 혹은 이미 생산된 제품의 사용 과정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가상 목업과 비슷한 방식으로 디지털 트윈을 만들고 △공정 관리자의 태블릿에 이를 제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심은 후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에 센서를 설치해 △거기서 발생하는 신호가 태블릿 속 디지털 트윈에 실시간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제품(혹은 공정)의 디지털 트윈 프로그램 공유자는 언제 어디서나 제품 관련 문제 발생 여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다. 그와 거의 동시에 이들의 집단지성을 기반으로 최적의 솔루션이 도출, 현장에 곧장 전달되고 가장 적절한 조치가 취해진다. 모든 제품이 이런 방식으로 제작, 관리되면 생산 공정 오류로 인한 비용 손실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비자 요구에도 한층 더 완벽에 가깝게 부응할 수 있다.

 

비쌀수록, 진입장벽 높을수록 효과적

마이클 그리브즈(Michael Grieves) 미국 플로리다기술연구소(Florida Institute of Technology) 생애주기·혁신경영센터(Center for Lifecycle and Innovation Management, CLIM) 공동대표는 디지털 트윈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하고 적극적으로 알려온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 2014년 펴낸 ‘디지털 트윈 백서’에서 디지털 트윈 콘셉트 모델의 구성 요소를 △실제 공간에 존재하는 물리적 제품(physical products in Real Space) △가상 공간에 존재하는 가상의 제품(virtual products in Virtual Space) △가상·실제 제품 간 데이터와 정보의 연결성(connections of data and information that ties the virtual and real products together) 등 세 가지로 규정한다.

이 개념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특정 제품을 예로 들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자전거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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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 체계에선 신규 모델 개발 시 종전처럼 단순히 3D 목업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온라인 신호가 반영되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 적용된다. 자전거의 경우 이 신호는 바퀴 회전축을 비롯해 타이어∙핸들∙안장 등 각 요소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전달된다. 이 프로그램이 담긴 태블릿만 있으면 △바퀴에 전해지는 압력 △핸들의 융통성 △핸들과 앞 바퀴 연결 정도 △바퀴의 회전 속도나 강도에 따른 기기 상태 변화 등 다양한 속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실물 자전거와 그것의 가상 3D 이미지, 이 둘을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의 연결성. 이 세 요소가 자전거의 디지털 트윈 체계를 완성한다.

디지털 트윈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로 만들어질 수 있지만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로도 구현이 가능하다. 자전거 바퀴 회전축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스캔하면 자전거의 속성과 상태를 알리는 메시지가 증강현실로 덧붙여져 보인다. 이를 통해 이미지 디자이너와 부품 관련 기술자가 각자 자기 태블릿을 보면서도 동일 기종 문제를 의논하며 품질을 높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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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은 단가가 비싼 제품, 혹은 생산∙사용 현장이 멀고 접근하기 어려운 제품의 경우 그 효과가 더 높아진다. 대표적인 게 (풍력 발전에 쓰이는) 풍차다. 풍차는 대당 제작 단가도 높을뿐더러 기후 등 주변 환경에 맞춰 제대로 설치해야 하는, 까다로운 제품이다. 일단 판매되면 오랜 기간 사용되는 데다 풍차 상태를 점검하는 기술자가 발전소에 상주하기도 쉽지 않다. 여러모로 디지털 트윈을 사용하는 게 유리하다. 에너지가 주된 수입원인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irc, GE) 같은 기업이 디지털 트윈 방식 도입에 앞장서는 건 그 때문이다. 실제로 GE는 일찍이 “향후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의 디지털 트윈을 만들고 생산 공정에도 디지털 트윈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생산업 전반에 지각변동 일으킬 것”

디지털 트윈의 강점은 비단 제품의 생산∙관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장 떠오르는 예만 꼽아도 △제품 설계 부서와 생산 공장 간 거리가 먼 업종 △세계 각지에 생산 공장이 분포한 업종 △유행에 민감한 다품종 소량 생산 품목(이를테면 패션)이어서 지속적 디자인 업그레이드 작업이 필요한 업종 등은 모두 디지털 트윈 방식으로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트윈이 모든 생산 공정에 적용되면 생산 합리화와 원가 절감까지 유도할 수도 있다. 종전까진 제품 생산 과정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현장에서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그 과정에서 감지되는 이상 기류는 서류 형태로 보고되는 게 일반적이어서 자칫 못 보고 지나치는 오류가 적지 않았다. 설사 파악된 오류라 해도 서류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완전하게 표현되기 힘들어 누락되는 부분도 상당했다. 어렵사리 작성된 보고서를 전문가가 열람한다 해도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어찌어찌 솔루션이 도출돼 업체에 전달되더라도 누락이나 왜곡을 완전히 피하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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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디지털 트윈 체계를 적용하면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가 발생 단계에서부터 실시간으로 감지된다. 그 결과는 시각적 이미지로, 또 소프트웨어를 통한 구조 분석 결과로 전환돼 365일 24시간 관련 기술자와 관리자에게 전달된다. 이 방식을 도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내려가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모든 생산 라인은 생태계처럼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디지털 트윈 체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디지털 트윈은 향후 모든 유형의 생산 공정에 도입될 게 분명하며, 종국엔 업계 전반이 근본적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더스트리얼 사물인터넷(IIoT)’의 꽃

사실 생산 업계가 디지털 트윈 체계를 떠올릴 수 있게 된 건 실시간 온라인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인프라 구축 덕분이다. 실제로 ‘센서를 활용한 기기 간 연결’을 뜻하는 센서라이제이션(sensorization)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추세다. 모바일 기기 보급률 역시 빠른 속도로 ‘1인 1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빅데이터나 클라우드, 그리고 대용량 중앙처리장치(CPU) 부문 발전 속도도 눈부시다. 이 모든 건 ‘인더스트리얼 사물인터넷(Industrial IoT, IIoT)’의 기반이 되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트윈은 말하자면 ‘IIoT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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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디지털 트윈을 가리켜 “제4차 산업혁명의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석탄 중심 기계공업 시대’를 열었던 제1차 산업혁명 △20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석유 중심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던 제2차 산업혁명에 이어 △컴퓨터와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제3차 산업혁명이 논의되기 시작한 게 불과 수 년 전이다. 실제로 제레미 리프킨의 책 ‘제3차 산업혁명’이 출간된 건 지난 2012년.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3D 프린팅을 필두로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한) 제3차 산업혁명 관련 기사를 처음 게재한 건 2014년이었다.

최근 제기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나리오는 대부분 사물인터넷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제3차 산업혁명과 가장 구분되는 지점은 생산방식에서의 ‘소통’ 유무다. △제품의 생산∙사용 과정에서 현장 센서를 통해 문제가 제기되고 △디지털 트윈 프로그램 공유자 전원의 집단지성으로 솔루션이 도출되며 △그 솔루션이 다시 생산∙사용 현장으로 전달돼 피드백 역할을 하는 ‘고리 구조’다.

머지않아 제품 자체가 보내는 신호는 물론, 제품 사용자의 반응도 실시간 피드백으로 전달되지 않을까? 그 단계에 이르면 생산자와 소비자 간 경계는 무너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활발한 소통의 장(場) 형성’이야말로 디지털 트윈이 촉발할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 특성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세상을 뒤집다 ①정치_SNS, ‘아테네 민주주의’ 부활의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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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2016년도 어느덧 한 달여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뉴스룸은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스페셜 리포트 송년 특집 5부작 ‘디지털, 세상을 뒤집다’를 연재합니다. 말 그대로 디지털, 그리고 정보통신(IT) 기술이 바꿔놓은 사회 전반을 다각도로 조명해보는 심층 기획입니다. 오늘날 첨단 기술, 즉 테크놀로지는 모든 이에게 ‘좋든 싫든 껴안고 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생업에 몰두하는 사이,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디지털 혁명의 면면을 생생한 사례와 함께 만나보세요


발칸반도 남단에 위치해 바다에 면(面)한 아테네는 기원전 480년 무렵, 그리스 최강의 도시국가였다. 당시 아테네에선 “북(北)으로 아티카를 정벌해 영토를 넓히자”는 ‘육상파’ 아리스티데스(Aristeides)와 “무조건 바다로 진출해야 한다”는 ‘해상파’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가 팽팽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고심하던 아테네 시민들은 투표로 승부를 가린 후 패자는 추방하기로 했다.

투표는 ‘깨진 도자기 조각에 추방됐으면 하는 후보 이름을 적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명 ‘오스트라시즘(ostracism)’으로 불린 이 제도는 민주정치를 중시했던 아테네가 균형 잡힌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일종의 시민심판이었다. 추방하고 싶은 정치가 이름이 적힌 도자기 조각, 그리스어로 ‘오스트라콘(ostracon)’이 일정 수 이상 되면 해당 정치가는 이후 10년간 아테네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nypl2▲이미지 출처: 뉴욕공공도서관 디지털 갤러리

아리스티데스는 ‘공정한 아리스티데스’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청렴결백하고 성실한 정치가였다. 오스트라시즘이 있던 어느 날, 아고라(광장)로 향하는 아리스티데스를 한 노인이 붙잡았다. 노인은 그에게 도자기 조각 하나를 내밀며 거기에 ‘아리스티데스’를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일단 공손한 태도로 자기 이름을 적어 건네며 아리스티데스는 물었다. “혹시 이 사람이 어르신께 뭐 잘못한 거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아니, 난 그 사람 누군지도 몰라요. 다만 다들 공정하다, 공정하다 하니 나 한 명이라도 반대 의견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 에피소드는 “민주주의가 대체 뭐냐”는 질문에 답할 때 종종 인용되는 사례다. 요컨대 민주주의의 핵심은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세력의 균형’이란 것이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이 이처럼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을 갖게 된 기반은 뭘까? 오늘날 대다수의 정치사(政治史) 학자들은 그 해답을 ‘정보 공유’에서 찾는다.

실제로 아테네엔 ‘정신적 중심지’로 불린 판테온 신전이 있었다. 아고라는 그 바로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 좀 안다’는 사람들은 매일 아고라에 모여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그 주변엔 누군가의 얘기에 귀 기울이려 틈 날 때마다 아고라를 찾는 군중이 끊이지 않았다. 아테네 시민이 자국은 물론, 인근 지역 정세까지 훤히 알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일찍이 영국 철학자 겸 정치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아는 게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l)’라고 말했다. 실제로 누구든 상황을 잘 알면 그 상황을 움직일 수 있는 힘도 갖는다. 고대 아테네에선 시민 누구나 비슷한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권력의 균등 분배’를 전제로 한 민주정치가 이곳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인터넷은 21세기형 팬옵티콘” 푸코는 틀렸다?!

“머지않아 인터넷 민주주의가 득세할 것”이란 예언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학계였다. 1980년대 초, 최초의 인터넷 모델 아르파넷(ARPANET)이 미국 국립과학재단 지원금으로 구축됐고 이에 따라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 다양한 의견이 부딪치는 가운데 이론을 형성하는 게 학계의 성격인 만큼 인터넷 민주주의에 대한 예견은 이내 반론에 부딪쳤다. 두 입장 간 논쟁은 (전 세계 대중에게 인터넷이 채 보급되기도 전인) 19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치열했다.

논점은 명확했다. 인터넷 사용률 증대는 (정치로서의) 민주주의 구현에 기여할까,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는 쪽에선 “역사적으로 볼 때 정보 공유가 확대되면 민주주의가 구현돼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드는 ‘정보 공유 확대 수단’의 대표적 예가 바로 인쇄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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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 이래 유럽에서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실종 상태였다. 하지만 16세기에 접어들며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계기는 종교개혁이었다. 서기 380년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이래 기독교는 1300년 이상 ‘유럽의 종교’로 자리매김해왔다. 그 사이, 구(舊)기독교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도 종교개혁이 본격화한 건 1517년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비밀의 열쇠는 구텐베르크의 손끝에서 탄생한 인쇄술이 쥐고 있다. 독일 신학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위 사진>가 쓴 ‘95개조 반박문’이 수천 장씩 인쇄돼 뿌려진 덕에 대중이 구(기독)교의 진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으리란 추론이다. 실제로 프랑스혁명(1789~1799)이 왕정을 뒤엎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던 비결이 당시 파리에서 성업 중이던 인쇄소였단 얘기도 있다.

한편, 인터넷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에 회의적인 사람도 적지 않다. 다만 이들은 무조건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라기보다 “인터넷이 발달한다 해서 그게 무조건 민주주의 확산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맥락에서 종종 인용되는 게 일명 ‘팬옵티콘(panoptic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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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 계몽사상가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위 사진>이 처음 고안한 이 개념은 ‘소수 권력자가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은 채 세상을 감시, 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물’이란 뜻을 지닌다. 20세기 초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1984)가 ‘지식을 독점해 민중의 눈을 가리고 조정하는 절대 권력자’의 아이콘으로 제시하며 일약 유명해졌다. ‘인터넷 민주주의 회의론자’들은 “인터넷은 (대중이 쉬 접근하기 힘든)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자칫 소수의 권력자가 장악, 제어하게 되면 ‘21세기형 팬옵티콘’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한다.

푸코가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지도 어느덧 3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학계에선 엄청난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찬반 목소리는 여전히 섞여있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오늘날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정치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단 사실이다. 인류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디지털이 삶의 기반을 이루는’ 길로 가고 있다. 정치는 그런 경향을 가장 단적으로 반영하는 분야 중 하나다. 권력의 본질은 지식(정보)에 있으며, 디지털 세상에서 지식(정보)에 접근하는 일은 날로 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포럼 주제로 ‘테크놀로지’가 채택되는 세상

‘아랍의 봄(Arab Spring)’이란 시사용어가 있다. 지난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돼 2012년 중반 아랍연맹[1]과 인근 국가로까지 확산된 대규모 정치 저항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라크∙리비아∙시리아∙예멘에서 발발한 내전은 최악으로 치달았고 바레인∙이집트∙알제리∙이란∙레바논∙요르단∙쿠웨이트∙모로코∙오만∙수단에선 대규모 시민봉기가 이어졌다. 지부티∙모리타니∙사우디아라비아∙소말리아∙서(西)사하라, 그리고 팔레스타인 영토에서도 소규모 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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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사태를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란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발단부터가 그랬다. 거리를 떠돌며 잡상인 노릇을 하던 23세 튀니지 청년 무하메드 부아지지가 정부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 이 장면은 동영상으로 촬영돼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특히 부아지지의 모국이었던 튀니지 국민들은 그렇잖아도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에 갖고 있던 불만을 폭발시키며 혁명을 일으켰다.

튀니지발(發) 혁명의 불씨는 아랍 세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압제적 정부는 시위 대중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며 언론 통제에 나섰지만 이번엔 먹히지 않았다. 시위에 참여한 대중과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스마트폰과 PC로 SNS에 접속, 가공할 인권 유린 현장을 실시간으로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통치자의 억압적 행동은 오히려 일파만파로 인근 국가의 저항 행동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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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는 전 세계 인구의 SNS 사용 실태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SNS로 정치적 사안 관련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비율은 비(非)아랍권 20개국 평균치가 약 34%였다. 반면, 이집트와 튀니지 두 나라 평균치는 60%를 넘어섰다. ‘내가 속한 지역공동체’를 SNS 대화 화제로 떠올리는 사람 비율도 비아랍권 20개국 평균은 46% 선이었지만 아랍권 4개국(이집트∙튀니지∙레바논∙요르단) 평균은 70% 이상이었다. SNS 활용과 정치적 행동 간 상관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정치적 행동이 늘 아랍의 봄 사태처럼 극단적 형태를 띠는 건 아니다. 정치(政治)의 학문적 정의는 ‘자원을 분배하는 사회적 방식’이다. 다시 말해 ‘먹고사는 데 필요한 걸 어떻게 나누는가?’란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정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왜 ‘지식(정보)의 폭넓은 공유’가 민주주의 정치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지는지 이해가 된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일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첨예한 관심사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정보를 모든 이가 똑같이, 그리고 훤하게 알고 있다면 특정인이 그걸 독점하고 아닌 척하긴 사실상 어렵다.

이처럼 정치적 행동 방식이 바뀌면서 정치의 관심 분야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 사회적기업 퍼스널 데모크라시 미디어(Personal Democracy Media)는 매년 ‘퍼스널 데모크라시 포럼(Personal Democracy Forum)’이란 회의를 열어 ‘현대인의 일상에서 구현되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관련 사례를 발표한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우리에게 필요한 테크놀로지(The Tech We Need)’. 참석자들은 △알고리즘 신뢰성 △시민기술 대(對) 정부기술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시민 권리 △우리가 원하는 웹 △모두를 위한 공유경제 등의 안건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민주주의 구현이 필요하다’고 보는 공간이 하나같이 IT 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실은 이 행사 하나로도 명확해진다.

 

밀레니엄 세대, ‘투명한 미래 정치’ 이상 실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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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하와이대학교 이스트웨스트센터가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명 ‘밀레니엄 세대(Millennial generation, 1980년부터 1995년 사이 출생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는 SNS를 통해 크고 작은 수준의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는 일을 놀이처럼 자연스레 즐긴다. 동아리 결성이나 지도자(leader) 선출에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예산 집행 방식 모니터링,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 파악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를 스마트 기기로 자유롭게 주고받으며 각자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습득하며 자란 세대는 그에 기반해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자원 분배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행동이 갈수록 투명하게 진행될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1] Arab League. 중동 국가들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고 주권과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1945년 3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결성된 지역기구

프로듀서 S, 베트남 옌딘 마을서 독주 대작하다 뻗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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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실제 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와의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한 결과물입니다
∙ 본문에 삽입된 사진은 전부 갤럭시 S7로 촬영됐습니다

“부모님은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사세요. 90세 할머니를 모시며 농사를 지으시죠. 취직한 후론 자주 뵙지 못했어요.”

01▲환한 미소가 매력적인 짱. 아직 앳돼 보이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을 떠나와 지난 2014년 삼성전자 베트남복합단지에 입사한 ‘당찬 여성’이다

지난달 29일(이하 현지 시각). 하노이 인근 박닌성(Bac Ninh) 소재 삼성전자 베트남복합단지의 한 회의실. 찡 티 짱(Trinh Thi Trang, 21)이 입을 열었다. 지난 2014년 입사한 그는 성실한 근무 태도로 우수 사원에 선정, 올가을 삼성전자 베트남복합단지가 주최하는 ‘베트남 사원 부모 초청 행사’에 자신의 부모를 초청할 수 있게 됐다.

 

‘3년차 우수 사원’ 짱의 고향을 앵글에 담자!

“11월 초로 예정된 베트남 사원 부모 초청 행사 참가 가정 중 하나를 선정, 해당 사원과 그 부모 얘길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오라”는 숙제를 받아 들고 베트남에 왔다. 짱을 만난 건 영상 주인공을 선정하기 위한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첫 번째 피면접자였던 그의 고향은 삼성전자 베트남복합단지에서 300㎞가량 떨어진 타인호아(Thanh Hoa)성 옌딘(Yen Dinh) 지역. 박닌성에서 타인호아성까지만 차로 서너 시간이 걸리고, 타인호아성 시내에서 짱이 사는 동네까지 가려면 다시 차로 두 시간쯤 이동해야 한다.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는’ 여정이다.

02 03 ▲짱의 고향인 옌딘 지역의 한 마을. 그가 근무하는 삼성전자 베트남복합단지에서 승용차로 줄잡아 여섯 시간은 이동해야 하는 시골이다

“처음 제가 삼성전자에 입사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많이 반대하셨어요. 어린 여자가 고향을 떠나면 보호 받지 못하고 고생만 하게 될 거라면서요. 아버진 제가 고향에서 계속 학교에 다니며 편하게 살길 바라셨어요. 결국 제 의지를 꺾진 못하셨지만요.”

짱이 담담하게 풀어놓는 얘길 듣다 보니 그가 가족을, 그리고 고향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로 느껴졌다. ‘그래, 이 친구의 가족을 만나야겠어!’ 그렇게 영상의 주인공이 정해졌다. 베트남에 온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요지부동’ 짱 아버지 마음 돌아서게 한 건…

이튿날, 날 비롯한 영상 제작팀은 무작정 짱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옌딘으로 향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박닌성에서 행사가 시작되기 전 짱의 고향인 이곳에서 찍을 수 있는 건 뭐든 찍어둬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짱의 아버지가 완고한 거절 의사를 밝혔기 때문. 그는 촬영을 고사했을 뿐 아니라 “베트남 사원 부모 초청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1박 2일 일정의 행사엔 여행 프로그램도 포함돼 있었다.) “할 일이 많습니다. 농사도 지어야 하고 소에게 여물도 줘야 해요. 저와 아내가 자릴 뜨면 노모는 어떡합니까? 전 이곳을 떠날 수 없어요.”

04 05 ▲무작정 찾아간 짱의 고향. 다행히 현지인들의 따뜻한 환대 덕에 빠듯한 일정에도 촬영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영상 제작 마감 시한은 점점 다가오는데 짱의 아버지는 도무지 요지부동이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뜻밖의 지원군이 나타났다. 마을 이장님이었다. 짱의 작은할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자초지종을 전해 듣곤 영상 제작진과 짱의 부모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우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장님 댁에 달려갔다.

우리에게서 베트남 사원 부모 초청 행사 소식과 영상 제작 취지 등을 전해 들은 이장님이 이윽고 입을 뗐다. “좋은 취지군요.”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삼성전자가 하는 행사에 우리 마을 출신인 짱이 제 부모를 초청할 수 있게 된 것도, 홍보 영상 주인공으로 선정된 것도 경사 아닙니까. 마을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독주냐 촬영이냐’ 기로에서… 최후의 선택은?

이장님이 나서자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우선 짱의 아버지가 촬영을 허락했다. 베트남 사원 부모 초청 행사에도 참석하기로 했다. 짱의 부모가 마을을 비우는 며칠간 집안일은 이웃들이 돌아가며 맡아주기로 했다. 마을에 드론(drone∙무인항공기)을 띄워 촬영하는 일도,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일도 일단 이장님 허가를 받고 나니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06 07 ▲천금 같은 ‘이장님 승인’ 덕에 드론 촬영 일정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래 사진은 영상에서 부모님이 짱을 만나러 가는 버스를 드론으로 촬영하는 장면. 최적의 장소를 미리 정해두고 한 시간여 대기하다 지나가는 버스를 발견하고 재빨리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 축하주가 빠지면 섭섭하죠!” 그날 오전, 이장님의 한마디에 영상 촬영팀을 위한 ‘환영 술상’이 차려졌다. 이장님이 집에서 직접 빚은 베트남 민속주도 올라왔다. 한국의 전통 소주처럼 생긴, 말간 증류주였다. 이장님이 직접 따라주는 술을 한 모금 입에 털어 넣었다. “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소주보다 도수가 훨씬 높은 독주(毒酒)였다. 스태프들이 돌아가며 한 잔씩 권커니 잣거니 하다간 본격적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 죄다 곯아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렇잖아도 빠듯한 일정, 지금 당장 작업에 착수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08 ▲이장님이 영상 제작팀을 위해 마련한 술상. 바로 이 자리에서 이장님과 1대 1로 대작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하지만 베트남 예법상 어른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젊은 사람이 먼저 일어나는 건 말도 안 되는 무례였다. 자칫 그랬다간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리저리 고심하던 난 이내 ‘큰 결심’을 내렸다. “이장님, 이 술 진짜 귀한 것 같습니다. 혼자 먹기도 아까운데 다른 사람들은 그만 내보내시고 저랑 둘이서 한 잔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럴까요? 허허.”

그렇게 이장님과 단둘이 대작(對酌)하기 시작했다. 잔을 비울 때마다 ‘건강 기원 악수’를 주고받는 이곳 주도(酒道)에 따라 ‘건배 1회, 악수 1회’를 이어간 지 한 시간 반. 어느새 앞에 있던 됫병 두 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통역도 없어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눠야 했지만 날 손주 대하듯 챙겨주시는 이장님 덕분에 거리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 속 쓰려…. 머린 또 왜 이렇게 아픈 거야?’ 눈을 뜬 곳은 이장님 집 안방. 날은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다. 이장님과 대작하다 그대로 뻗어버린 모양이었다. 쓰린 배를 움켜쥔 것도 잠시, 슬슬 촬영 진행 진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 결단(?)의 결과로 얻은 시간을 쪼개어 스태프들은 순조롭게 촬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팀원이 초췌한 내 몰골을 보더니 찡긋 눈웃음 짓곤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협조 잘 해줘 생각보다 일찍 촬영 마칠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로님, 고생하셨어요!” 

09 10 ▲베트남 농민들의 평온하면서도 정겨운 일상 풍경은 아래 영상에서 좀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 그리고 남은 이야기

그날 저녁, 이장님이 “한 잔 더!”를 외치셨지만 아주 어렵게 뿌리치고 이장님 댁에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숙소로 돌아왔다. 이장님과 또 한 번 대작했다간 이튿날 오전 6시부터 시작되는 촬영 일정을 도저히 맞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한참 어른이신데 그 도저한 체력이 놀라울 뿐이다.) 그나저나 이 자리를 빌어 이장님께 심심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장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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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을 뒤집다 ②경제·경영_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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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두 손으로 번쩍이는 칼을 잡고 왼쪽 어깨 높이로 들어올렸다가 머리 위로 한 번 휘두르곤 엄청난 힘으로 내리쳤다. 무쇠봉은 마치 나무꾼이 잘 드는 도끼로 어린 가지를 내리쳤을 때처럼 두 조각 나서 땅으로 떨어졌다.

"위대한 예언자의 목에 걸고 하는 말씀입니다만 이렇게 훌륭한 솜씨는 처음 봅니다!“ 술탄은 잘린 무쇠봉의 단면을 꼼꼼히 살피며 말했다. 그러곤 왕의 크고 단단한 손을 잡고 들여다보더니 웃으며 자신의 여위고 마른 손과 비교했다.

다음으로 술탄은 바닥에서 비단과 깃털로 된 쿠션을 집어 들고 왕에게 말했다. “형제여, 그대의 무기가 이 쿠션을 자를 수 있겠소?” “아니요.” 왕이 대답했다. “이 세상의 어떤 칼도 그에 맞서는 힘을 갖지 않은 걸 자를 순 없소. 아더왕의 보검(寶劍) 엑스칼리버라 해도 그 일은 해낼 수 없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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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그럼 보시지요.” 술탄은 이렇게 말한 후 소매를 걷어 (가늘고 마른, 하지만 끊임없는 훈련 덕에 뼈∙근육∙힘줄만으로 굳어진) 팔을 드러내곤 초승달처럼 얇고 굽은 그의 칼을 칼집에서 빼냈다. 그 칼은 프랑크족(族)의 칼처럼 빛나지 않았고 둔탁하게 푸른빛이 감돌았지만 섬세한 물결무늬가 수도 없이 새겨져 장인이 얼마나 공들여 만든 무기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리처드왕의 그것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무기를 휘두르며 술탄은 왼쪽 발에 체중을 실어 약간 앞으로 나아가며 쿠션을 갈랐다. 그 동작이 얼마나 솜씨 있게, 힘 들이지 않고 진행됐던지 쿠션은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쪼개졌다기보다 저절로 갈라진 것처럼 보였다.

 

이상은 스코틀랜드 역사소설가 월터 스콧(Walter Scott, 1771~1832)의 대표작 ‘십자군 이야기(Tales of the Crusaders)’의 한 대목이다. 때는 소위 ‘암흑기’로 불리던 12세기 말. 3차 십자군 전쟁의 접전지였던 예루살렘 인근 아크레에서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Richard the Lionheart)와 적장인 이슬람 쿠르드족 출신 술탄 살라딘이 물 밑 협상을 위해 은밀히 회동, 서로의 칼을 비교하는 장면이다.

이 소설이 출간됐던 1825년은 서유럽이 세계 최고 강자로 군림하던 시기였다. 특히 영국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반면 유럽인은 자신들의 초라했던 과거, 즉 중세 얘긴 좀처럼 꺼내려 하지 않았다. 월터 스콧은 이런 상황에서 십자군 이야기를 비롯, 여러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며 중세 기사들의 용맹과 낭만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 그 덕분이었을까, 이후 중세를 향한 유럽인의 시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콧은 이 같은 성과를 인정 받아 당시 ‘제일 잘나가는 작가’로 인식됐을 뿐 아니라 남작 작위까지 받았다. 오늘날에도 문화사에서 널리 거론되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21세기와 중세, 실은 서로 닮았다?

요즘 중세는 좀 다른 맥락에서 재평가 대상에 올랐다. ‘21세기 사회가 여러모로, 특히 거시적 경제구조란 측면에서 중세와 퍽 닮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 실제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중 한 명인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일찍이 1990년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세계 경제는 20세기 후반 테크놀로지와 19세기 자유무역, 중세 (국경을 초월한) 세계무역의 흥미로운 조합이 돼가고 있다.”

중세와 21세기의 ‘닮은꼴’을 주장하는 이 같은 이론을 학계에선 ‘신중세주의(neo-medievalism)’라고 명명한다. 신중세주의 이론가의 대표 주자인 스티븐 코브린(Stephen J. Kobrin)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교수(경제사학)는 “오늘날 국제정치∙경제 분야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중세 유럽 사회의 주요 조직 원리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며 그 근거를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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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을 통일했던 문화 시스템이 ‘기독교’였다면 21세기 문화 시스템은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이야말로 전 세계에 통용되는 시스템이며, 온라인을 통해서라면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집중성이 동원될 수 있다.

코브린 교수는 “오늘날 세계 경제는 과거처럼 조직적 위계 질서 속에서 엮이는 게 아니라 정보 체계와 기술을 통해 통합되는 ‘전자 경제’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고도의 정보통신 기술 △융통성 있는 생산 체계와 조직 구조 △시장 세분화 △세계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제3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디지털 혁명은 제조업과 상업을 물질적 차원에서 해방시켰으며, 모든 기업을 (업종과 무관하게) ‘정보 처리자’로 만들었다.

 

‘4차 진입’의 근거, 속도∙범위∙효과

코브린 교수를 비롯한 여러 석학이 3차 산업혁명 이론을 처음 내세운 건 1990년대 말이었다. 하지만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일부에선 이미 “3차 산업혁명을 넘어 4차 산업혁명기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오늘날 세계 경제가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 그치지 않고 (전혀 별개의 과정인) 4차 산업혁명의 출발선에 있다고 보는 근거는 속도와 범위, 그리고 (시스템) 효과 등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현대 사회의 기술 혁신 속도는 과거 어느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게다가 그 변화는 ‘직선적’이 아니라 ‘지수함수적’이다. 둘째, 각각의 혁신이 미치는 범위는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모든 산업’에 이른다. 이처럼 폭넓고 심도 있는 변화로 인해 생산과 경영, 그리고 통치방식 등 모든 게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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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억 세계 인구가 모바일 기기로 연결되면 정보 처리 능력과 정보 저장 용량, 지식 접근성은 사실상 무한대로 확장될 것이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자동차 △3D 프린팅 △나노 테크놀로지 △바이오 테크놀로지 △물질과학 △에너지 스토리지 △퀀텀 컴퓨팅 등 분야별 기술 혁신에 힘입어 몇 배, 아니 몇 십 배로 증폭되고 있다. 말 그대로 가공할 만한 효과를 발휘하는 셈이다. 

‘세상을 뒤바꾼 디지털’을 정치 부문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지난 회차 스페셜 리포트에도 언급됐듯 지식은 권력의 기반이다. 그런데 누구나 거의 대등하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에서 권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그에 따른 자원 분배도 상대적으로 균등해질 것이다. 그 결과, 물건이 생산∙소비되는 방식은 과거와 완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화 혁신이 정치 혁신으로, 다시 경제 혁신으로 이어지는 이 같은 방식은 예부터 인류 역사가 반복해온 유형이기도 하다.

 

세계경제포럼, ‘셀럽’들의 말∙말∙말

디지털 경제가 수렴되는 개념인 4차 산업혁명과 관련, 오늘날 가장 치열하고 진지한 토론이 벌어지는 장(場) 중 하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다. 세계경제포럼은 전 세계 저명 기업인∙경제학자∙저널리스트∙정치인 등이 모여 경제 현안을 놓고 토론, 연구하는 국제민간회의다. 매년 1월 말 개최되는 이 포럼의 올해 주제가 때마침 ‘제4차 산업혁명’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패널들의 발언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글로벌 여론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중 일부를 잠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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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조직, 변화 맞춰 재점검돼야”

제3차 산업혁명이 단순히 컴퓨팅을 산업과정에 도입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제4차 산업혁명은 여기에 다양한 기술이 통합되면서 경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빠르고도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경영진 역시 이렇게 변화하는 환경을 이해하고 조직을 기초부터 재점검, 혁신을 끊임없이 거듭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어릴 때부터 급변하는 디지털 문화를 접한 사람은 이전 세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마치 힘들이지 않고 모국어를 구사하듯 쉽고 자연스럽게 디지털과 더불어 살아간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 경제 돌파구를 모색하는 작업 역시 이들 세대에 잠재된 힘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때 한층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 교육 역시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1] biomass energy. 생물 자원을 발효하거나 가스화(혹은 광합성)해 거기서 알코올∙메탄∙수소 등을 채취, 이용하는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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